[시인 영화감독 백학기의 시네스토리] ‘오발탄’(1961)과 배우 김진규·최무룡·문정숙·윤일봉·이대엽
[내 가슴에 남아있는 한국고전영화와 그 배우들(18)] - 韓 관객들이 꼽은 최고의 영화 1위, 유현목 감독의 '오발탄' - 한국 리얼리즘 영화의 대표작
▶[내 가슴에 남아있는 한국고전영화와 그 배우들(17)]'성춘향'(1961) 배우 김진규와 최은희·허장강·도금봉 이어서
인터뷰365 백학기 칼럼니스트 = 한국영화사에서 언제나 관객들이 꼽은 최고의 사랑을 받은 영화가 있다. 여기에서 부동의 1위를 고수해온 영화 ‘오발탄’(誤發彈, 1961, Aimless Bullet)은 유현목 감독(1925~2009)이 메가폰을 잡은 영화다. 김진규, 최무룡, 문정숙, 윤일봉, 서애자, 노애신, 이대엽, 김혜정 등 당시 한국 충무로에서 손꼽는 명배우들이 대거 출연했다.
한국 리얼리즘 영화의 신화 또는 걸작으로 평가되는 '오발탄'은 제목에서부터 어둡고 음울한 분위기가 짙게 배어 있다. 당시 시대상을 반영한 걸작이다.
“그래 난 네 말대로 아마 조물주의 오발탄일지 모른다”는 영화 속 대사에서처럼 1950년대 한국전쟁 전후 상이(傷痍)군경들의 불우한 삶을 배경으로 어두운 군상(群像)들의 고통과 절망 등을 담아 시대적 분위기를 리얼하게 그려냈다.
한국 현대 문학사의 전후문학(戰後文學)구성원 1세대 작가들 가운데 가장 대표적인 소설가인 이범선 원작의 ‘오발탄’은 충무로의 두 작가 나소운·이종기 등에 의해 각색됐다.
당초 ‘오발탄’은 1960년 완성됐으나, 군부에 의해 상영이 보류돼 그 이듬해인 1961년에 개봉했다. 35㎜ 흑백영화로 만들어진 이 영화의 특징은 대사 위주를 지양하고 영상주의적인 표현을 시도한 점이 두드러진다.
영화 스토리를 보자. 계리사 사무소 서기인 철호(김진규)는 전쟁통에 미쳐 정신이 나가 “가자!”를 외치는 어머니(노재신), 영양실조에 걸린 만삭의 아내(문정숙)와 어린 딸, 양공주가 된 여동생 명숙(서애자), 실업자인 퇴역군인 동생 영호(최무룡), 학업을 포기하고 신문팔이에 나선 막냇동생 민호를 거느린 한 집안의 가장이다.
철호는 시시때때로 자신을 괴롭히는 그 아픈 치통을 앓으면서도, 치과에 갈 엄두를 내지 못한다. 계리사의 월급으로는 한 가족을 먹여 살리기도 빠듯하기 때문이다. 비관적인 현실을 탓하며 괴로워하는 동생 영호는 비관적인 현실을 타개하기 위해 은행 강도를 저지른다. 철호는 경찰로부터 영호가 은행을 털다 붙잡혔다는 전화를 받는다. 경찰서를 찾아간 철호는 동생 영호를 면회하고 집으로 낙담해 집으로 돌아온다. 그즈음 철호는 아내가 아이를 낳으려고 한다는 소식을 듣고 병원으로 가지만 아내는 숨을 거둔 뒤다.
잇따른 불행에 좌절한 철호는 아내의 시신을 보지도 않고 병원을 나와 길거리를 방황한다. 철호는 결심한 뒤 치과에 들러 이를 뺀다. 밤거리를 헤매던 철호는 식당에서 설렁탕을 사 먹은 후, 택시를 타고 해방촌, 서울대학교병원, 서울중부경찰서 등 목적지를 계속 바꿔간다. 어디로 가야할지 모르고 우왕좌왕하는 철호는 억지로 뽑은 사랑니 때문에 피를 뚝뚝 흘리고, 운전수는 어쩌다 오발탄 같은 손님이 걸렸냐면서 투덜거린다.
철호는 오발탄 같은 자신의 처지를 한탄하다가 "가자"라고 말한다. 혼잡한 밤거리를 비추면서 영화는 엔딩. 당대 현실의 비극적 상황을 스크린에 담아낸 영화의 사실주의적인 접근과 빼어난 영상 표현은 한마디로 압도적이다. (한국영화데이터 베이스 참고)
‘오발탄’은 철호를 중심으로 힘들게 살아가는 인간군상들과 당시 시대상, 사회의 모습을 가감 없이 보여주는 데 성공한다.
여동생 명숙(서애자)은 상이군인으로 제대한 경식(윤일봉)과 서로 사랑하는 사이지만, 경식은 자신의 아픈 다리 때문에 명숙을 멀리한다. 양공주로 밤거리에 나서게 되는 명숙. 한편 영호는 다방레지이자 영화배우인 미리(김혜정)에게 영화 출연을 제의받지만, 자신의 옆구리에 난 관통상 때문에 이를 포기한다.
영호는 우연히 군대 시절 야전병원에서 만났던 설희를 다시 만나게 되고. 설희의 집에까지 간 영호는 설희의 옆집에 사는 시를 쓴다는 청년으로부터 적의에 찬 시선을 받는다. 며칠 뒤 설희와 하룻밤을 보내게 되는 영호. 다음날 설희의 집을 찾아간 영호는 설희가 이웃집 청년에 의해 살해당했음을 알게 된다. 설희의 방에서 실탄이 든 권총을 숨겨가지고 나오는 영호. 영호는 은행을 털 결심을 하고 박하사(이대엽)에게 운전을 부탁한다. 그러나 총소리에 놀란 박하사는 도망가 버리고, 영호는 돈이 든 가방을 들고 도주하다가 잡히고 만다. 특히, 절망한 영호가 권총을 하늘에 쏘는 장면은 그의 울분을 드러내는 명장면 중 명장면으로 일컬어진다.
신문 배달을 하는 막냇동생과 죽음을 맞는 간호장교 설희, 영호와 같은 상이군인으로 권총 강도를 도와주다가 배신한 박하사 등 인물 캐릭터는 사실 원작에는 없다. 영화의 사실성과 인물들의 리얼리티를 살리기 위해 각색된 캐릭터다.
명숙을 멀리하는 역을 한 배우 윤일봉은 한국영화인협회 부이사장, 한국배우협회 회장, 영화진흥공사 사장 등을 역임한 관록 있는 배우다. 1934년 충청북도 괴산 출생이다. 1947년 용산중학교 재학시절에 미국공보원 문화영화 ‘철도이야기’에 아역으로 출연한 경험이 영화계와 인연이 됐다. 당시 미군정보공보부와 OCI가 한국 철도 역사를 다룬 문화영화를 제작하기 위해 주인공이 될 중학생을 찾던 중 윤일봉이 낙점됐다. 어느 날 안철영, 이용민 두 감독이 학교에 찾아와 윤일봉을 보고 캐스팅했다는 후문이다.
이후 정식 데뷔는 ‘구원의 애정’(민경식 감독,1955년)에서 주연을 맡으면서 이루어졌다. 이어 이강천 감독의 ‘격퇴’(1956), 김소동의 ‘아리랑’(1957) 등을 통해 1950년대 중후반 인기배우로 부상했다. 최초의 한국-홍콩합작 영화인 ‘이국정원’(1957)에 출연한 것을 계기로 20대 말부터 30대 중반에 이르는 6여 년의 시기 동안 홍콩, 대만, 할리우드 등에서 합작한 영화들에 출연했다(경향신문).
1967년 이형표 감독의 ‘애화’로 대종상 남우조연상을, 1972년 정진우 감독의 ‘석화촌’으로 청룡영화상 남우조연상, 1977년 이두용 감독의 ‘초분’에서 대종상 남우조연상, 그리고 1984년엔 ‘가고파’로 대종상 남우주연상을 수상하는 등 다수의 영화에서 주연, 조연을 넘나들며 관록 있는 연기를 선보인 배우다.(동아일보, 매일경제, 한겨레신문)
발레리나 윤혜진의 아버지이자 배우 엄태웅의 장인 윤이기도 한 윤일봉. 그의 아내인 유은이 씨의 남동생이 배우 유동근이니, 유동근의 매형이기도 하다.
‘오발탄’에서 눈에 띄는 연기로 관객들을 사로잡은 배우 이대엽은 주지하다시피 배우 은퇴 후 국회의원과 성남시장을 역임한 정치인으로 더 많이 대중들에게 알려져 있다.
1935년 일본 나고야 출신인 이대엽은 임권택 감독의 데뷔작 ‘두만강아 잘 있거라’(1962)을 시작으로 ‘돌아오지 않는 해병’(1963, 이만희 감독) ‘빨간 마후라’(1964, 신상옥 감독)등의 영화에서 선이 굵직한 연기로 대중들의 사랑을 받았다.
대학 졸업 후 마산 회원 초등학교에서 교편생활을 하던 중 당시 마산에 ‘나 혼자만이’라는 세미뮤지컬 영화촬영을 위해 왔던 한형모 감독의 눈에 띄어 영화에 입문했다. ‘나 혼자만이’에서 이대엽은 사투리를 쓰는 농구선수로 등장한다. 당시 방언(사투리)을 쓰는 배우들이 없어 고투하던 제작진이 경상도 사투리를 쓰는 이대엽을 우연히 캐스팅했다는 후문이다.
‘오발탄’을 한국 리얼리즘의 절정이라고 평한 영화 평론가 이영일은 “한 가족 구성원들을 통해 전쟁이 남긴 상처와 전후의 궁핍한 사회상을 그려내고 있다. 이들은 보다 나은 삶을 추구하지만 현실과의 싸움에 패배하고 방향을 잃고 있는 현실을 보여 준다”며 “영화는 특히 주인공 철호(김진규)의 무기력과 좌절에 초점을 맞춤으로써 시대의 분위기를 효과적으로 환기시키고 있다“고 덧붙인다.
김종원 평론가 또한 ‘영화천국 61호’에서 “‘오발탄’은 분단의 비애와 실향의 좌절감, 이산의 고통을 실성한 노파의 절규를 통해 표출한 리얼리즘 영화의 수작으로, 유현목 감독의 시대정신과 작가 의식이 돋보인다“고 강조했다.
한국전쟁 전후 한국 사회의 부조리한 그림자를 스크린에 과감히 담은 몽타주와 사운드 기법, 그리고 이미지의 충돌 등 여러 실험적 요소를 가미해 한국 리얼리즘 영화의 시금석으로 평가되는 ‘오발탄’. 충무로와 일반 관객들 사이에서 시적인 영화미학을 리얼리즘으로 그려낸 걸작이라 평가가 지금도 이어지고 있다.
‘오발탄’은 지난 1984년 영화진흥공사의 "광복40년 베스트10"에 1위를 기록했다. 또 1998년 조선일보 선정 '대한민국 50년 - 영화, 영화인 50선'에서도 1위에 뽑혔다. 1999년 한국일보 선정 '21세기에 남을 한국의 명작(영화)'1위에도 선정됐다. 같은 해인 1999년 월간 ‘스크린’ 창간 15주년 기념 '한국영화 베스트20'1위, 1999년 KBS TV선정 '20세기 한국 톱-영화'1위, 1999년 MBC TV선정 '20세기를 빛낸 한국영화 및 영화인 조사' 1위를 기록하는 기염을 통한 영화다.
당시 제작비 8백만 환에, 제작을 맡은 기술협회장이자 영화조명계의 거장이었던 김성춘 조명감독, 촬영감독 김학성, 유현목 감독이 모여 동인제 형식으로 투자해 제작했다는 후일담은 널리 알려져 있다. 이와 함께 김진규, 최무룡, 윤일봉, 문정숙, 김혜정 등 스타배우들이 ‘오발탄’에서 최저의 생활비만 받고 무보수로 출연했다. 그럼에도 제작비가 부족해 3개월이라는 제작기간이 소요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