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숏평 - 새로운 서평] 전장의 눈물, 운명의 날 · 이처럼 사소한 것들 外

- [비평연대] 설명문·윤인혁·강민지·최여정의 500자 서평

2025-09-05     김리선 기자

젊은 문화비평가와 출판전문가들의 커뮤니티인 '비평연대'는 숏폼콘텐츠 시대에 대응하기 위해 500자 내외의 '매우 짧은 연대 서평'의 형식을 고안했습니다. 2030세대 지식인 특유의 빛나는 감각으로 제시되는 다양한 책들을 통해 지식의 최전선을 경험할 수 있습니다. [인터뷰365 편집자주]

제2차 세계대전 이야기: 전장의 눈물, 운명의 날(김휘찬 지음, 한언, 2025)

뛰어놀기 바빴던 중학생 시절, 모자란 잠을 채워주는 고마운 과목은 ‘역사’였다. 위인들의 활약을 자장가 삼아 교과서 뒤로 꾸벅꾸벅 졸다 보면 몇십 분이 지나가곤 했었다.

그런 내게 분기점은 시험기간에 우연히 본 유명 강사의 유튜브 강의였다. 역사라면 학을 떼었던 내가, 앉은 자리에서 몇 시간을 내리 듣는 것도 모자라 도서관까지 찾아가서 프랑스 혁명을 찾아 읽었다. 과거가 내게 과목이 아닌 ‘이야기’가 된 것이다. 그렇게 그날, 철옹성 같았던 내 눈과 귀가 열렸고, 나는 도서관에 앉아 베르사유 궁전을 향해 온종일 행진했다.

역사가 우리에게 다가오는 모습에 따라, 그것은 잠시 들렀다 가는 ‘지식’이 되기도 하고, 삶을 윤택하게 하는 ‘지혜’가 되기도 한다. 이야기에 몰입하다 보면, 과거는 자연스럽게 독자의 현재로 스며들고, 이내 생육된다.

근래 가장 몰입해서 읽었던 이 책도 마찬가지이다. 저자는 인류의 아픈 역사인 2차 세계대전을 개전부터 종전까지 몰입감 있게 서술한다. 영상을 보듯 전개되는 전쟁사를 읽고 있노라면, 전투를 기록하는 종군기자의 숨 가쁨이 느껴진다. 그렇게 한 호흡에 정신없이 완독하고 나면, 내가 밟고 있는 지금 이 땅의 평화가 말로 다 할 수 없이 값진 것이었음을 다시 한번 깨닫게 된다.(설명문 / 건축 및 공간디자이너·문화평론가·비평연대)

설명문

법은 어떻게 민주주의를 배신하는가(신디 L. 스캐치 지음, 위즈덤하우스, 2025)

근래 들어 ‘사적제재(공권력에 의한 사법 절차가 아닌, 개인이나 집단이 임의로 가하는 제재)’를 소재로 한 드라마나 영화를 자주 접할 수 있다. 사람들이 이에 열광하는 이유는 법의 판결, 더 나아가 법 자체에 대한 불신이 깔려 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의 개헌 담론이나 사법개혁 담론 역시 대동소이한 맥락으로 생각된다. 권위주의 정부를 거치며 억압 받아온 민주주의에 대한 열망과 소망이 제대로 반영됐거나, 실현되지 않고 있다는 우려에 기초할 것이다.

저자는 이보다 더 큰 틀에서 논의를 전개하지만, 논의의 흐름은 크게 다르지 않다. 법이 가진 권위와 위계질서, 즉 법의 과도한 권한 행사로 인해 시민의 권리가 제대로 발현되지 않거나, 질적으로 훌륭한 민주주의가 이뤄지지 않는 점이다.

그렇다면 지연되는 민주주의 앞에서 우리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신디 스캐치는 공론장을 형성하고, 이를 위한 광장을 만들고, 공동체를 복원하며, 시민 자신에게 복종해야 한다고 말한다. 우리 위에 군림하는 법과 질서에 대한 복종이 아니라, 인간 본성에 대한 믿음으로 공동체를 되살려내는 것이다.

세계는 권위주의로의 회귀와 극단주의로 인해 혼란에 싸여 있다. 신디 스캐치가 인정한 대로, 민주주의를 회복하고 시민의 권리를 온전히 행사하려는 방안이 무의미하거나 이상적으로 보일 수 있다.

그러나 잠시 생각해 보자. 지난 수십 년간, 이 나라가 마주했던 정치·사회적 위기를 어떻게 극복했는가? 법과 이를 운영하고 집행하는 이들이 해결했는가? 아니다. 그들은 그저 시민의 요구를 집행했을 뿐이다. 시민의 열의가 민주주의의 실현을 불러왔다. 책이 제시한 방안처럼, 공론장을 형성해 담론을 만들어내고, 광장으로 나가 법의 권위와 이를 악용한 이들에게 물러나라고 소리쳤다. 이미 우리는 ‘진정한 시민’으로서 나아갈 용기와 토대를 자신도 모르게 구축하고 있었다는 사실이다.(윤인혁 / 서평가·문화예술평론가·공연기획 및 제작자)

윤인혁<br>

■ 픽사 스토리텔링(매튜 룬 지음, 박여진 옮김, 2022)

나만의 스토리로 끌림을 만들어내는 법

인지심리학자 제롬 브루너에 따르면, 스토리를 통해 정보를 기억할 때 우리의 기억력은 무려 22배나 상승한다고 한다. 그래서일까. 나만의 스토리가 담긴 사람의 이야기는 자연스럽게 귀를 기울이게 만든다. 그 끌림은 단순히 개인에 머무르지 않고, 타인에게까지 전해진다.

누군가를 설득할 때, 혹은 제품을 팔아야 할 때 우리는 흔히 내가 가진 ‘좋은 점’을 나열한다. 하지만 관심 없는 사람에게는 그저 스쳐 지나가는 정보일 뿐이다. 반대로 이 설명에 나의 ‘변화’에 관한 스토리가 더해진다면 상황은 달라진다. 왜 이 변화가 일어났는지, 그 배경에는 어떤 계기가 있었는지, 그리고 나도 비슷한 변화를 경험하려면 무엇을 해야 하는지. 이야기를 듣는 사람은 꼬리를 무는 궁금증 속에서 결국 그 사람 자체에 매료되게 된다.

이 책은 바로 그 스토리의 힘을 어떻게 만들어낼 수 있는지를 알려준다. 나를 하나의 캐릭터로 설정하고, 그 캐릭터가 더 매력적으로 다가가기 위해 필요한 다양한 기법들을 제시한다. 이를 실제로 적용한다면, 너나 할 것 없이 사람들이 우리의 이야기에 쉽게 빠져들 것이다. 단순히 말 잘하는 기술이 아니라, 나만의 스토리를 통해 끌림을 만들어내는 방법으로 우리의 매력적인 이야기에 빠져들게 만들어보자.(강민지 / 문화평론가·프롬레코드대표·비평연대)

강민지<br>

■ 이처럼 사소한 것들(클레어 키건 지음, 홍한별 옮김, 다산책방, 2023)

회사를 나서며 교보문고에 들러 책을 샀다. 그리고 1시간 남짓 차 안에서 마지막 책장을 덮었다. 130페이지의 짧은 중편소설이다.

우리에게는 늦게 당도한 아일랜드 작가 클레어 키건 작품이다. 그녀가 지금까지 펴낸 4편 중 2021년 작품이니 가장 신작이기도 하다.

소설은 아일랜드의 악명높았던 ‘막달레나 세탁소’ 실화를 배경으로 한다. 미혼모와 그녀들의 아기 3만여명이 감금되었고, 아일랜드 곳곳에 퍼져있던 같은 이름의 18개 시설에서 9천명의 미성년 미혼모와 800여명의 신생아가 사망했다.

수녀원의 한 모퉁이, 성녀 마리아의 이름을 딴 보호소에서 일어난 잔혹한 실화를 모두가 알았지만 모두가 모른척했다. 소설은 가난하지만 정직한 ‘펄렁’이라는 중년의 남자가 어린 미혼모를 수녀원에서 데리고 나오는 이야기다.

하지만 이렇게 타인의 고통에 아무렇지도 않게 외면하고, 그것이 마치 정당하다고 행동하는 인간의 이야기라면, 어슐러 K 르귄의 '오멜라스를 떠나는 사람들'이 더욱 적확하고, 펄렁의 심리묘사에 대한 작가의 글쓰기에 대한 이야기라면 올해 노벨상 수상자 욘 포세의 '아침 그리고 저녁'이 더 아름답다.

그래도, 난 키건의 이 놀랍도록 아름다운 엔딩에, 이 문장에 깊이 공감한다. 사소한 것들의 합이 삶을 이룬다는 것을. 삶에 대한 이토록 깊은 성찰을 본 적이 있던가. 키건의 차기작이 기다려지는 이유다.

“펄롱은 미시즈 윌슨을, 그분이 날마다 보여준 친절을, 어떻게 펄롱을 가르치고 격려했는지를, 말이나 행동으로 하거나 하지 않은 사소한 것들을, 무얼 알았을지를 생각했다. 그것들이 한데 합해져서 하나의 삶을 이루었다.”

(최여정 / 작가·문화평론가·비평연대)

최여정<b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