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찬선 시인의 시로 보는 세상 풍경] (22) 영도교서 단종을 만나고, 빅테일서 가을을 맞이하다

2025-09-01     홍찬선 칼럼니스트
동묘

인터뷰365 홍찬선 칼럼니스트 = 가을이 흐르고 있었다. 기온은 여전히 34℃를 웃돌고 열대지방 스콜처럼 느닷없는 소나기에 흠뻑 젖어도, 가을이 오는 것을 막지는 못했다. 입추(立秋)를 거부하는 매미들의 앙살 떼창도 처서(處暑)를 맞이하는 귀뚜라미의 세레나데에 슬금슬금 물러나고 있었다. 여름을 보내고 가을을 맞으러 동묘를 한 바퀴 돌았다.

동묘역 3번 출구로 나오니 동묘벼룩시장이 반갑게 맞이했다. 길 양옆으로 끝없이 이어진 좌판이 어서 오라고 손짓한다. 고풍스러운 멋으로 옛날의 아름다운 추억을 불러일으키는 빈티지 옷이 2000원에서 2만 원으로 유혹한다. 지금은 찾아보기 힘든 카메라와 카세트테이프와 전축LP판과 막걸리가 널려있다.

탐심(貪心)을 애써 달래며 헌책방에 들른다. 황석영의 ‘개밥바라기 별’과 박인환의 ‘목녀와 숙녀’, 신세훈의 ‘대장 부리바’가 눈에 띄어 지갑을 연다. 1000원에서 5000원 사이니 세종대왕 1장이면 가방이 제법 묵직해진다.

단종과 정순왕후의 아픔이 서린 여인시장과 영도교

동묘벼룩시장은 단종(端宗, 1441~1457)의 아내 정순왕후(定順王后, 1440~1521)의 아픔이 고스란히 배어있는 곳이다. 열두 살 어린 나이에 조선 6대 왕으로 즉위한 단종은 삼촌인 수양대군(首陽大君, 1417~1468)의 쿠데타(계유정난, 癸酉靖難)로 왕위를 빼앗기고 영월의 청룡포로 귀양갔다. 그때 단종과 정순왕후가 소나기처럼 흐르는 눈물을 닦지도 못하고 헤어진 곳이 청계천의 영도교(永渡橋)다.

동묘

단종과 헤어진 뒤 다시는 만나지 못한 정순왕후는 낙산(駱山)의 동쪽에 있는 청룡사(靑龍寺)의 여승방인 정업원(淨業院)에 머무르며 동망봉(東望峯)에 올라 단종을 그리워했다. 여승이 된 정순왕후는 그곳에서 많이 자라던 자지초(紫芝草)를 꺾어 자지동천(紫芝洞泉)의 물에 비단을 물들여, 여인시장(지금의 동묘벼룩시장)에 내다 팔아 겨우 입에 풀칠하며 살았다. 정순왕후는 여든두 살에 죽어 경기도 남양주시 진건읍에 있는 사릉(思陵)에 묻혔다. 열일곱에 죽은 단종의 몫까지 살다간 모진 삶이었다.

권력은 허망하고 잔혹한 것이었다
사랑이 무엇인지 사는 게 어떤 것인지도
잘 알지 못했을 열일곱 살 소녀는
왕에서 노산군으로 강등돼 영월로 귀양 가는
열다섯 살 신랑을 청계천 영도교에서
생이별 당하고도 부라린 눈들 때문에
소리내 울지도 못한 채 청룡사에서 머리를 깎고
정업원에서 마른 울음 삼키며 살았다

비바람 눈보라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날마다 정업원 앞쪽 가장 높은 바위에 올라
동쪽을 바라보며 낭군을 그리워하다
어린 나이에 죽임당한 명복을 빌었다
낙산 기슭에 흐드러지던 자지초를 꺾어
자지동천 물에 비단을 물들인 뒤
동묘 옆 여인시장에 내다 팔아 입에 풀칠하며
단종 몫까지 사느라 여든두 살을 채웠다

사람이 가면 역사도 잊히는 것
250년 뒤 영조가 정업원옛터라는 비석을 세우고
소녀부터 할머니까지 매일 올랐던 바위에는
동망봉(東望峯)이란 어자(御字)를 새겨 잠깐 위로받았으나
일제강점기 때 채석장으로 변해
어자는 온데간데없이 사라졌고
여인시장은 벼룩시장으로 바뀐 뒤
영도교도 옛모습을 잃은 채 이름만 남았다

- 홍찬선, ‘동묘벼룩시장에서 영도교까지’ 전문.

영도교를 걷는다. 그날 단종의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을 느끼며 걷는다. 뒤에서 소리 없이 우는 정순왕후의 울음을 들으며 걷는다. 삼촌과 조카라는 천리(天理)를, 신하와 왕이라는 인륜(人倫)을 저버린 권력의 냉혹함을 생각하며 걷는다. 영도교를 다 건넌 뒤 오른쪽으로 돌아 ‘청계천 제5경’이라는 빨래터를 본다. 청계천 빨래터가 여기만은 아니었지만, 복개했던 청계천을 다시 복원하면서 빨래터 하나를 만들어놓았다. 빨래터를 지나 다산교를 건너 동묘역 6번 출구를 향해 걷는다.

가다 보니 ‘박수근길’이란 표지판이 있다. ‘빨래터’ ‘나무와 두 여인’ ‘아기 업은 소녀’ 등 곤궁한 삶을 따뜻한 인간애와 서정성이 가득한 작품으로 그려 낸 박수근 화가가 1952년부터 63년까지 12년 동안 살았던 판잣집이 있던 곳이란다.

동묘

집은 보이지 않았다

박수근 화가가 살았던 집터라는 표지판은 있는데
표지판 지도가 알려주는 대로 몇 번이나 오갔지만
끝내 옛집도 집터도 찾지 못했다

그럴만도 했다
박수근 옛집이 조그마한 판잣집이었다고 하니
조국근대화 과정에서 헐리고 새 건물이 들어선 뒤
동대문구 창신동 393-1번지라는 주소만 남았다
그것도 종로구 창신동 393-15, 16번지로 바뀌었고…

그렇다고 아무것도 없는 것은 아니었다
런닝셔츠 바람으로 카메라를 응시하는 박수근 화가 옆에
부인과 딸이 쑥스러운 듯 서 있는 모습을 간직한
1959년의 흑백 가족사진이 역사를 아프게 증거하고 있었다

- 홍찬선, ‘박수근 화가의 창신동 집터에서’ 전문.

박수근 화가의 집터는 가을을 찾아 나선 길에서 얻은 보너스였다. 기분 좋게 보너스를 챙기고 오늘의 목적지를 향해 간다. 너무 맛있어 ‘갱스터’라는 이름이 붙은 피자와 세계 곳곳의 유명한 칵테일 100개를 맛볼 수 있는 바, 빅테일! ‘빅테일(Big Tail)’ 바를 찾아가는 길은 운치가 있다. 조선시대나 1960년 이전의 골목을 그대로 느낄 수 있다. 동대문의류시장에서 팔리는 옷을 만들어 공급하는 곳이어서일까, 사람의 살아가는 향기가 물씬 풍긴다.

동묘

빅테일에 들어서니 아담한 무대가 반갑게 맞이한다. 금요일과 토요일 밤8시에 인디밴드가 와서 공연하는 곳이다. 바의 벽은 술병이 가득 진열돼 있다. 100개의 칵테일을 만드는 위스키와 꼬냑과 테킬라와 럼 등이다. 자리는 단짝과 연인을 위한 2인석과 가까운 벗들이 함께 할 수 있는 6인석이 올망졸망하다.

소리꾼으로 활동하는 최민종 사장의 추천을 받아 ‘갓파더’로 칵테일맛여행을 시작한다. 훈연으로 독특한 향기에 달콤한 아몬드와 체리 맛이 33% 스카치의 독함을 없애준다. 기분 좋은 맛에 기분이 뜨자 이번엔 ‘파우스트’를 고른다. 50%의 강력한 럼을 블랙커런트의 과실이 살짝 덮여주는 맛이, 철학자 파우스트를 악마 메피스토펠레스와 영혼을 파는 대신 젊음을 회복시켜주는 계약을 맺게 한다. 악마의 계약은 ‘지옥의 허니문’으로 이끈다. 61%의 불타는 론디아즈 151 럼 뒤에 오는 허브와 꿀의 향기가 달콤하게 혀를 감싼다.

동묘
동묘

취기가 오르니 테킬라 생각이 난다. 32% 테킬라가 라임의 상큼한 향기로 감싸고, 잔 끝에 묻은 소금으로 마무리하는 맛. 그 맛에 홀려 ‘이씹세기’ 초호화열차를 타고 ‘라면 먹고 갈래?’로 이어진다.

그 사이 인디밴드 ‘컵노트’의 노래 ‘네가 참 좋아’가 흐른다. 소나기 땀을 흐르게 했던 여름이 슬금슬금 물러가고 상큼한 가을이 코앞으로 바짝 다가선다.

여름이 가고 가을이 오는 길목에는
수탉꼬리를 큰 꼬리로 만드는 
술의 마술을 보러가자

단종과 정순왕후가 이별한 영도교(永渡橋)의 눈물을
청계천 빨래터에서 훨훨 털어내고
다산교(茶山橋) 건너고 박수근 화가의 창신동 집터를 지나

동묘역 6번 출구 가기 전에 왼쪽으로
세월의 법칙을 알려주는 골목 골목길을
더듬거리며 빅테일을 찾아가자

큰꼬리섬에서 수탉꼬리 100개를 찾으며
세계의 칵테일 맛 순례를 떠나보자 
동해에서 대부(갓파더)를 만나고
마가리타로 데낄라와 인사한 뒤
파우스트를 마시며 지옥의허니문에 가서
라면먹고갈래라고 물으며 이씹세기 초호화열차로 여행하자

피아노 선율에 맞춰 소리꾼 최민종의 판소리가 흐르고 
칵테일 향기에 컵노트의 네가참좋아가 녹아드는 사이
빅테일의 칵테일이 가을을 불쑥 앞당겨 놓았다 

- 홍찬선, '빅테일의 칵테일' 전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