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은희 감독의 AI스토리텔링] "인간과 AI, 아이언맨과 프라이데이 같은 협업 꿈꿔요" ④

[인터뷰365] 'AI 청년 창작자' 전시원·강다빈·안예은·박도울 씨 -'AI 영화 공모전' 수상작 '피노키오:비긴즈' 제작진 4인방 - AI, 막연한 아이디어 빠르게 구조화...감각적 요소 이미지화 유용 - 인물 감정선·설득력은 인간만이 세밀하게 조율 가능 - AI가 표현한 감각·사실의 오류는 인간이 최종 점검 필요 - ‘프롬프트 없는’ 자연스러운 협업 환경 기대

2025-08-27     이은희 인터뷰어

AI스토리텔링은 인공지능(AI)이 사람과 협력하거나 스스로 이야기를 창작하는 기술 및 개념을 의미합니다. 스토리텔링 작법서 '4줄이면 된다'의 저자 이은희 감독이 AI스토리텔링에 관심 있는 다양한 분야의 인물을 만나 4가지 주제에 대해 질문을 던지고 응답을 듣는 새로운 형식의 인터뷰 시리즈를 선보입니다. 이번 <주니어 세대가 바라본 AI>편은 각 4가지 주제별로 총 4회로 나눠 게재합니다. <편집자주>

인터뷰365 이은희 인터뷰어(/감독 겸 작가) = 전혜정 작가는 AI를 ‘사다리 걷어차기 기술’이라고 표현했다.(관련기사 ▶[인터뷰] 인공지능으로 글쓰기 한계 실험 중인 'AI 모험가' 전혜정 작가) AI가 경험을 축적하고 성장해 나가기 위한 가교로서의 사다리, 즉 중간 단계를 사라지게 만들고 있다는 의미였다. 전 작가와의 인터뷰 이후 가장 먼저 떠오른 것은 그 사다리를 바라보고 있을 주니어 세대였다. 그들은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까? 이러한 두려움에 대한 시니어 세대의 염려를 어떻게 받아들이고, 또 그들만의 답을 어떻게 찾아가고 있을까?

이런 질문을 해소하기 위해 4명의 청년들을 만났다. 2024년 서강대학교를 기반으로 설립된 생성형 AI 미디어&테크 학회 ‘헤이트슬롭’ 출신이다. 이들은 최근 CGV가 주최한 AI 영화 공모전에서 생성형 인공지능(AI) 기술을 활용한 영화 ‘피노키오: 비긴즈’로 우수상을 수상하며 괄목할 만한 성과를 냈다.  

인터뷰에는 서강대학교 전자공학과를 졸업하고 정부 과제를 받아 스타트업 창업을 준비 중인 전시원 씨, 서강대학교에서 경영학과 철학을 전공하며 마케팅적·인문학적 시각을 동시에 쌓아 현재의 AI 역량에도 도움이 되었다고 말하는 강다빈 씨, 서강대학교에서 중국문화와 미디어&엔터테인먼트를 전공하고 있는 안예은 씨, 그리고 연세대학교 기계공학과에 재학 중이면서 AI 영상물로 이미 인플루언서로 자리 잡은 박도울 씨가 함께 했다. 

4. 실무 경험과 협업의 미래

- AI 스토리텔링, 구조화와 발상의 확장·감각 표현의 시각화 강점
- AI가 표현한 감각·사실의 오류는 인간이 최종 점검 필요

- 경험상, AI 스토리텔링이 가장 빛났던 순간은 언제인가요?

박도울 = 한 번은 ‘구미호를 소재로 한 전쟁 배경의 단편 영상’을 만들려고 했는데, 머릿속에 막연한 이미지나 분위기만 있고, 정확히 어떤 이야기를 할지는 감이 안 오더라고요. 그럴 때 AI에게 “전쟁 중에 봉인된 구미호가 깨어나는 이야기”처럼 키워드만 던졌더니, 아주 다양한 줄거리 아이디어를 빠르게 제안해줬어요. 특히 인상적이었던 건, 제가 보통은 이야기의 시작부터 순서대로 생각하는 반면, AI는 ‘이런 결말로 끝나는 건 어때요?’ 하고 엔딩을 먼저 제안해준 거예요. 그걸 보니까 ‘아, 이 엔딩으로 가려면 어떤 사건이 앞에 있어야 하지?’ 하는 식으로 오히려 구성이 더 빨리 잡히더라고요. 이렇게 AI는 아이디어를 쌓는 데 그치지 않고, 제가 생각하지 못한 방향으로 상상력을 확장해주는 역할을 해줬어요. 이야기의 뼈대를 함께 세우는 데 큰 힘이 되었고, 덕분에 혼자였다면 오래 걸렸을 기획을 훨씬 빠르게 정리할 수 있었습니다.

아모레퍼시픽

강다빈 = 아모레퍼시픽 AI 챌린지에 출품했을 때, ‘장소’와 ‘향’을 영상으로 표현해야 하는 과제가 있었어요. 여수의 하늘, 제주의 바람, 경주의 달밤, 서울의 석양…. 이런 장소와 상황을 모티프로 제작된 샴푸의 향을 시각적으로 표현해야 했는데 정말 어렵더라구요. 샴푸를 근처 마트에서 팔지 않았기 때문에 향을 직접 맡아보기도 어려웠고, 시간이 부족해 모든 지역을 직접 방문하기도 힘든 상황이었어요. 게다가 AI로 실제 장소를 구현하는 것도 어려운데, 거기에 향기까지 느껴지게 제작해야 하니 첩첩산중이 따로 없었죠.

그때 AI의 도움을 많이 받았어요. 먼저 향을 구성하는 성분 데이터를 입력하고 해당 향기에 대한 사람들의 반응을 수집했어요. 예를 들어 이 향기는 시원한 느낌이다, 포근한 느낌이다, 남자 향기가 난다 이런 애매하지만 무슨 느낌인지는 알겠다는 반응들이죠. 그리고 각 도시와 상황에 대한 이미지를 러프한 프롬프트를 활용해 제작해봤어요. 단순하게 ‘서울, 석양, 도시적인 느낌’ 이렇게만 프롬프트를 넣고 이미지를 다양하게 만드는 파라미터를 활용했어요. 거기서 다양한 영감을 얻어 영상을 제작했던 기억이 나네요. 

- 그런데도 인간 스토리텔러의 감각이 절대적으로 필요했던 순간은 언제일까요?
 
박도울 = AI가 시나리오 구조를 제안해줄 때는 정말 유용할 때가 많아요. 하지만 그 구조 안에 있는 등장인물들의 감정 흐름이 어딘가 부자연스럽게 느껴질 때, 결국 사람의 감각이 꼭 필요하더라고요. AI가 짜준 이야기에서 주인공이 중요한 결정을 내리는 장면이 있었는데, 얼핏 보면 말이 되지만 “왜 이 인물이 이렇게까지 쉽게 포기하지?” 같은 의문이 계속 남는 거죠. 그 인물의 마음이 어떻게 흘러왔는지가 빠져 있는 거예요. 그럴 땐 사람이 직접 이 인물이 어떤 경험을 해왔고, 어떤 말이나 행동이 있었기에 이 결정을 하게 되는지를 다시 짚어야 했어요. AI가 이야기의 ‘틀’을 잘 만들어준다면, 사람은 그 안에 감정의 맥락과 설득력을 채워 넣는 역할을 하는 것 같아요. 이야기의 완성도는 결국 그런 세밀한 감정선에서 갈리니까요. 그 감각은 아직은 사람만이 가진 영역이라는 걸 느낍니다.

전시원 = 인간의 감각이 필요한 부분은 최종 검토 같아요. AI가 사소한 내용 자체도 틀릴 수 있고 ‘감각’적인 부분에서도 제대로 표현하지 못하는 부분이 존재할 수 있어 그런 부분에서 사람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 AI 또는 AI 스토리텔링이라는 주제 또는 수단을 두고 인문학 기반 작가와 협업할 때, 반대로 과학 기반 기술자들과 협업할 때 가장 기대하는 점은 무엇인가요?

전시원 = 에이전트가 실제 작가처럼 사고하고 글을 다루도록 학습·관리할 수 있게 경험을 전해주시는 것입니다. 이를 현업 작가님의 시선으로 보완해주신다면 완성도가 훨씬 높아질 거라 생각합니다. 즉, 현장에서만 얻을 수 있는 암묵지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현재 저는 Writer’s Room을 모방한 Custom AI Agent Team을 개발하고 있습니다. 에이전트를 만들 때 중요한 세 가지 핵심은 기억하기(Context), 정체성 부여(Persona), 능력 연결(Tools)입니다. 쉽게 말하면,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지속적으로 기억하기”, “본인이 누구인지 알려주기”, “업무를 수행하는 능력 주기”입니다. 구독형 서비스(ChatGPT, Gemini 등)은 편리하지만 직접 코드까지 다룰 수 있다면 훨씬 세밀한 설정이 가능하구요. 위 세 가지 요소에 대해 지속적으로 조언해주신다면 더 현실적이고 완성도 높은 에이전트(Agent)를 함께 만들 수 있을 것이라 기대합니다. 또한 이런 에이전트 간 협업까지 완성할 수 있다면 Agent’s Room 의 프로토타입도 만들어볼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하고 있습니다.

- 향후 꿈꾸는 AI와 인간 작가 간의 이상적인 협업 프로젝트가 있다면 소개해 주세요.

박도울 = 프롬프트조차 필요 없는 환경이에요. 지금은 ‘글쓰기’와 ‘AI와 대화하기’가 분리되어 있어요. 글을 쓰다가 궁금한 게 생기면 챗GPT를 열고, 프롬프트를 치고, 답을 받은 다음 다시 돌아와 글을 쓰는 식이죠. 작업 흐름이 자꾸 끊겨요. 저는 이 분절된 과정이 자연스럽게 하나로 이어져서, AI와의 협업이 마치 ‘혼잣말처럼’ 흐르는 형태가 되길 기대하고 있어요.

실제로 코딩 툴인 Cursor는 그런 방향으로 빠르게 진화하고 있고, 피그마나 구글 워크스페이스 같은 툴들도 점점 AI와의 대화가 ‘툴 내부에서’ 일어나는 방식으로 바뀌고 있어요. 하지만 아직은 대부분의 툴에서 ‘프롬프팅’이라는 단계를 거쳐야 하고, 그 프롬프트조차 여전히 구체적으로 말로 설명해야만 통하는 수동적인 대화 방식이죠.

하지만 새로운 모델이 나와 AI가 내 모니터와 커서를 실시간으로 관찰하면서 “이런 문장을 쓰고 있는데, 이 앞에 이런 설명이 빠진 것 같아요”라든지, “지금 쓰고 있는 흐름이 이전 단락과 조금 어긋나요” 같은 피드백을 실시간으로 건네주는 거죠.

또는 더 나아가, 인간의 뇌에 칩이 심어져 인간의 오감이나 생각의 흐름이 AI가 자연스럽게 연동돼서, 내가 무엇을 고민하고 있는지를 AI가 먼저 파악하고 제안해주는 방식도 가능할 거라고 생각해요. 그런 작업 환경이 만들어진다면 AI는 더 깊고 직접적인 ‘생각 파트너’가 될 수 있을 것 같아요. 미래의 창작은 지금보다 훨씬 더 유기적이고, 감각적이고, 흐름이 끊기지 않는 ‘몰입의 작업’이 될 거라고 생각해요.

강다빈 = 저는 가장 이상적인 형태가 있다면 영화 ‘어벤져스: 엔드게임’에 나온 아이언맨과 그의 ‘AI 비서’ 같은 프라이데이의 관계일 것 같아요. 아이언맨이 프라이데이와 함께 시간여행 모델을 구현해내는 장면을 가장 좋아하는데요. 이 장면에서 아이언맨은 자신의 아이디어를 프라이데이와 공유하면서 불가능할 것 같았던 발견을 해내죠. 발견의 소스는 아이언맨이 제공해주고 세부적인 값은 프라이데이가 계산해서 보여주는 식으로 진행돼요. 둘은 마치 인간 대 인간이 말하듯이 자연스럽게 대화하면서 아이디어를 발전시켜 나가는데 이 모습이 아주 이상적인 ‘팀’의 형태로 보였어요. 그때 영화가 개봉했을 2019년 당시에는 말이죠. 지금은 이게 AI와 인간의 이상적인 협업 형태로 보여요.

프라이데이는 종종 아이언맨에게 좋은 조언을 해주기도 하는데 단순히 명령을 듣고 이행하기만 하는 종속적인 관계는 아님이 보여지죠. 프라이데이가, 그리고 그녀의 전신인 자비스가 없었다면 아이언맨이 해내지 못했을 일들도 많아요. 이렇게 명령과 이행이라는 관계를 넘은 협력이 가능한 ‘팀’이 가장 이상적으로 보여요. 아이언맨처럼 돈이 많으면 저도 프라이데이를 가질 수 있을까요? 저에게 생길 ‘프라이데이’가 누구일지 기대도 되고, 한편으론 울트론이나 비전처럼 자아를 갖게 될까봐 두렵기도 하네요. 

이번 인터뷰에서 만난 주니어 세대는 불안과 가능성 사이에서 복잡한 감정을 안고 있었다. 한쪽에서는 취업 시장의 불확실성과 AI로 인한 일자리 대체 가능성에 대한 우려가 크게 자리하고 있었다. 동시에 또 다른 한쪽에서는 AI를 적극적으로 활용하며 새로운 기회를 열어가고자 하는 도전 정신이 뚜렷했다. AI가 가져온 변화는 이들에게 불안을 안겨주었지만, 역설적으로 그 불안은 스스로의 가능성을 시험하고 새로운 역량을 길러내는 동력으로 작동하고 있었다.

전혜정 작가가 말한 ‘사라지는 사다리’라는 표현은, 기존에 선배 세대가 거쳐야 했던 성장의 경로가 AI라는 기술에 의해 단축되고 있다는 현실을 잘 드러낸다. 그러나 이번 인터뷰를 통해 드러난 주니어 세대의 태도는 단순히 사다리를 빼앗긴 세대가 아니라, AI라는 새로운 환경 속에서 또 다른 사다리를 스스로 설계하고 구축해가는 세대였다. 그들은 AI를 단순한 위협으로만 받아들이지 않고, 기회와 도구로 삼아 자기만의 진로와 정체성을 다시 모색하고 있었다.

“당시 취업준비생이었기 때문에 내가 이걸 직업으로 삼아도 될까, 이 성과와 경험을 살리는 방향으로 진로를 틀어야 할까, 이것이 나의 ‘재능’인 걸까… 끊임없이 스스로에게 물어보곤 했죠.”라는 강다빈 씨의 말처럼 성과와 경험이 취업과 어떻게 연결될지 확신하지 못한 채 흔들리기도 하고, AI 기술의 불완전함과 한계를 직접 체감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러한 시행착오 속에서 이들은 AI를 ‘이해할 수 있는 도구’로 받아들이며 기술에 대한 거리감을 좁히고 있었다. 이는 곧 불안정한 노동시장 속에서도 자신이 설 자리를 마련하기 위한 실질적 학습 과정이기도 하다.

AI가 사다리를 걷어차고 있다는 우려가 여전히 현실적이지만, 이번 대화에서 확인된 것은 더 중요한 사실이었다. 바로, 이 세대가 새로운 사다리를 구축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들은 과거와 동일한 방식의 경로를 밟을 수는 없지만, AI라는 도구를 통해 이전 세대가 상상하지 못했던 방식으로 기회를 만들고 있었다. 이들의 실험과 도전이 앞으로 어떤 결실을 맺을지는 아직 알 수 없다. 그러나 확실한 것은, AI 시대를 살아가는 주체로서 주니어 세대가 이미 자기만의 경로를 만들어가고 있다는 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