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숏평 - 새로운 서평] 롤랑 바르트, 마지막 강의 外
- [비평연대] 맹준혁·공혜리·김미향의 500자 서평
젊은 문화비평가와 출판전문가들의 커뮤니티인 '비평연대'는 숏폼콘텐츠 시대에 대응하기 위해 500자 내외의 '매우 짧은 연대 서평'의 형식을 고안했습니다. 2030세대 지식인 특유의 빛나는 감각으로 제시되는 다양한 책들을 통해 지식의 최전선을 경험할 수 있습니다. [인터뷰365 편집자주]
■ 롤랑 바르트, 마지막 강의(롤랑 바르트 지음, 변광배 옮김, 민음사, 2015)
"시도하기 위해 희망할 필요도 없고, 지속하기 위해 성공할 필요도 없다."
-1978년 12월 16일 강의 中
꾸준히 긴 글을 쓸 때는 할 말이 참 많았는데, 멍청해진 것 같다. 깜빡거리는 커서를 바라보는 시간이 아깝다. 지금보단 조금 더 글을 쓰고 싶어서, 8월엔 이따금 새벽에 일어나 책상에 앉거나, 침대에서 노트북을 펴고 대기했다. 긴 글을 쓰던 이십 대에는 깜빡거리는 커서를 바라보며 멍이라도 때렸을 텐데, 지금은 그 시간이 아까워 자꾸 일을 하게 되거나 독서를 한다. 이게 글쓰기에 대한 회피라는 건 안다.
롤랑 바르트는 저자란 '뭔가 할 말이 있는 사람'이라고 했는데, 지금 난 할 말이 없는 걸 수도 있다. 근데 세상에 할 말이 없는 사람이 있겠나? 내가 지금 할 말이 무엇인지 찾아야 할 텐데, 그걸 찾는 시간을 나는 '비효율적'이라고 느끼는 것 같다. 거창한 성공을 바라는 건 아니지만, 자꾸 성과를 바라는 것 같다. 성과 너머에 할 말이 있을 것 같은데, 지금은 그게 잘 안된다.(맹준혁 / 출판 편집자·콘텐츠 제작자)
■식물의 사유 (루스 이리가레·마이클 마더 지음, 이명호·김지은 옮김, 알렙, 2020)
여름휴가가 끝났다. 휴가 동안 원하는 대로 먹고, 자고, 움직이다 보면, 원래 우리가 지녔던 생태적 감각이 되살아나는 걸 느낀다. 하지만 일상으로 돌아오면 다시 9시 출근, 6시 퇴근의 단조로운 시간표가 삶을 규정한다. 반복되는 노동은 삶을 지루하고 피곤하게 만들지만, 동시에 소속감과 안정감을 주며 일상을 고요하게 지탱한다. 이러한 상황에서 드러나는 것은 '몸과 마음이 잘 맞지 않는다'는 불편한 감각이다.
'식물의 사유'에서 루스 이리가레와 마이클 마더는 이러한 간극을 "계절의 리듬"이라는 개념을 통해 풀어나간다. 식물은 계절의 순환을 따라 씨앗을 틔우고,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고, 낙엽이 되어 떨어진다. 반면 인간은 산업사회의 직선적이고 기계적인 시간 속에서 살아가며 자연의 리듬을 잃어버렸다. 인간의 몸은 불편을 호소하고 마음은 소속감을 느끼며, 두 리듬은 따로따로 흘러간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계절의 리듬을 다시 회복할 수 있을까? 어쩌면 답은 거창한 것이 아닐지도 모른다. 거리에 쏟아지는 아침햇살을 느끼거나, 잠시 고개를 들어 하늘을 바라보는 것, 흔들리는 나무를 보며 바람의 방향을 가늠해보는 것. 이런 작은 순간들 속에서 우리는 계절의 변화를 온몸으로 감지할 수 있다. 이렇게 멈춤을 받아들이고 쉼을 허락하며 자연의 리듬에 몸을 맡길 때 비로소 우리 안의 '식물적 감수성'이 조금씩 되살아날 것이다.(공혜리 / 비평연대)
■ 한국의 마음을 읽다(노마 히데키, 백영서 엮음, 박제이 옮김, 독개비, 2025)
'한국의 마음을 읽다'는 한 권이면서, 동시에 한국의 마음을 들여다보는 122개의 창이다. 저마다의 창 너머로 보이는 마음의 풍경은 다른 듯 같고 같은 듯 다르다.
일본의 소설가 히라노 게이치로는 김연수의 단편집을 “언젠가 나도 이런 단편을 쓸 수 있으면 좋겠다는 공부하는 마음으로 읽”고, “한국 현대사를 넘어 ‘인간이란 무엇인가’라는 거대한 물음으로 독자를 이끄는 책”으로 한강의 '소년이 온다'를 추천한다. 작가이자 번역가인 심혜경은 '언니들의 여행법', '하루의 끝, 위스키', '모든 순간의 향기'라는 세 권의 책을 추천함으로써 여행과 위스키, 향에서 오늘날 한국인이 붙잡고 있는 감각의 좌표를 짚는다.
한일 양국 122명의 저자들이 추천하는 300권이 넘는 책 속에서 ‘한국의 마음’은 끊임없이 변주되고, 언어와 향과 빛과 몸짓이 얽혀 새로운 장르를 만들어낸다. 이 책을 읽는 동안, 한국의 마음은 단순히 관찰의 대상이 아니라 손에 쥐어 빚어보는 질감이 된다.
책 말미, 이 책을 엮은 노마 히데키는 이제 읽는 이들에게도 ‘마음’을 조형해 보라 권유하며, 독자만의 형태를 만들어 보도록 이끈다. 그렇게 완성된 작은 조각들이 모여, 결국 ‘한국’이라는 마음의 풍경을 이룰 것이기에. (김미향 / 출판평론가·에세이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