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찬선 시인의 시로 보는 세상 풍경] (16) 사랑에 빠진 셰익스피어의 '로미오와 줄리엣'으로 무더위를 날리다
인터뷰365 홍찬선 칼럼니스트 = 인생은 연극이다. 무대는 하루하루 삶의 현장이고, 배우는 바로 우리다. 셰익스피어가 희곡 '당신이 좋아하는 대로(As You Like It)' 제2막 7장에서 말한 것처럼 “이 세상은 모두 하나의 무대, 그 위의 남녀는 한낱 배우일 뿐”이다.
입추(8월 7일)와 말복(8월 9일)이 지났지만 한낮은 아직도 무더위가 기승을 부리던 날, 예술의전당 CJ토월극장을 찾았다. 지난 7월5일부터 오는 9월14일까지 공연되는 연극 '셰익스피어 인 러브(Shakespeare in Love)'를 보기 위해서였다. ‘사랑에 빠진 셰익스피어’ 쯤으로 번역되는 연극을 보는 극장에 들어서니 무대가 설레게 했다. 그 어느 연극무대보다 크고 높고 깊고 넓었다. 오늘 연극에서는 과연 어떤 삶이 펼쳐질까…
사랑은 기적이다
무기력에 빠져
붓이 의지를 져버리고
한 줄은커녕 한 마디도 나아가지 않을 때
사랑이 펜을 춤추게 한다
삶의 저 깊은 곳에 자리한 아픔을
아지랑이처럼 아른거리며 보일 듯 말듯 물결치는 고통을
무더위에 시달리는 한여름밤의 꿈을
박수로
감동으로
한 줄기 바람으로 바꾸는 마술을 부린다
400년을 한결같이 마르지 않는 상상력의 샘으로
막혔던 말문을 틔우고
갇혔던 생각을 활짝 열고
멈췄던 글이 술술술 풀린다
사랑을 기적을 만들어 내는 신약이다
- 홍찬선, '사랑의 묘약' 전문.
'셰익스피어 인 러브'는 셰익스피어가 초기에 쓴 불후의 명작, '로미오와 줄리엣'의 창작과정을 그린 연극이다. 톰 스토퍼드와 마크 노먼이 쓴 원작을 바탕으로 1999년에 영화로 만들어졌고, 한국에서는 2023년 1월 초연된 뒤 이번에 두 번째로 공연되고 있다.
셰익스피어는 '로미오와 줄리엣'을 쓸 때 처음에는 '로미오와 에델, 해적의 딸'이라는 작품을 쓰고 있었다. 셰익스피어는 연극 오디션에서 토마스 켄트라는 이름으로 남장(男裝)을 한 부자 상인의 딸, 비올라 드 레셉스를 캐스팅한다. 그는 연회장에서 켄트가 비올라라는 여자임을 알게 돼 한눈에 반한다. 하지만 비올라는 이미 가난한 귀족 위섹스와 정혼한 상태였다. 비올라와 사랑에 빠진 셰익스피어는 당초 극본을 바꿔 '로미오와 줄리엣'을 썼다는 줄거리다.
이는 셰익스피어가 '로미오와 줄리엣' 같은 대작을 쓰기 위해선, 사랑의 기쁨과 고통을 겪었을 것이라는 가정 아래 만들어 낸 창작물이다. 작가가 작품을 쓸 때 상상력이 중요하지만, 상상력을 펼치려면 최소한 실마리를 삼을 만한 경험이 있을 것이란 개연성이 작품의 주제다. 물론 작가가 직접 경험하는 경우도 있고, 다른 사람의 경험을 듣고 간접적으로 하는 추체험(追體驗)도 있을 수 있다. 연극을 보면서 셰익스피어가 남긴 아름다운 ‘소네트’ 가운데 18번이 떠올랐다.
그대를 여름날에 비유해 볼까
그대는 더 사랑스럽고 더 온화하구나
여름은 너무도 짧게 머무르지
때로는 태양이 너무 뜨겁게 내리쬐고
종종 그의 황금빛 얼굴은 구름에 가리우며
아름다움도 결국은 쇠퇴하고 마는 법
우연이나 자연의 순환 속에 빛을 잃지
그러나 그대의 영원한 여름은 시들지 않으리
그대가 가진 아름다움도 사라지지 않으리
죽음도 감히 그대를 자기 그늘에 데려가지 못하리니
시간 속에서 영원히 살아남을 그대 있기에
사람들이 숨 쉬고 눈으로 볼 수 있는 한
이 시는 살아 있고 그대도 그 안에 영원하리라
- 셰익스피어 소넷트 18번
연극은 150분(중간휴식 20분) 동안 이어졌다. 다른 연극보다 30분~50분 정도 길었지만, 그다지 지루하지 않았다. 크고 높고 깊고 넓게 자리 잡은 무대가 연극이 진행되면서 끊임없이 바뀌었다. 연극이 긴박하게 이어지면서, 장면이 끊어지지 않고 무대가 바뀌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배우들의 연기력도 몰입도를 높였다. 이날 캐스팅은 셰익스피어 역에 이상이 배우, 비올라 역에 김향기 배우, 셰익스피어의 친구인 키트 말로우 역에 서창원 배우였다. 이상이 배우는 지난 5월31일부터 7월20일까지 JTBC에서 토,일요일에 방영됐던 드라마 '굿보이'에서 검도 선수 출신의 김종현 경사역으로 열연해 눈에 익었다. 서창원 배우는 처음 보았는데, 이상이 배우와 호흡을 맞춰, 셰익스피어가 대본이 막히거나 비올라와 만날 때 어색한 장면을 자연스럽게 이겨낼 수 있도록 해주었다.
'셰익스피어 인 러브'를 보는 3시간이 그야말로 후다닥 지나갔다. 극장에 들어설 때 무더웠던 바깥은 어느덧 시원한 바람이 불었다.
삶은 한바탕 연극이라고 한다. 한 편의 연극을 보면서 짜증 나는 무더위를 날려버리는 것, 그것도 ‘사랑의 묘약’이 지니는 신비한 약효였다. 연극을 보기 전에 예술의전당 오페라하우스 지하1층에 있는 구내식당에서 가성비 좋은 열무비빔밥도 한여름 밤의 무더위를 다스리는 좋은 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