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찬선 시인의 시로 보는 세상 풍경] (15) 봉은사 명상길서 김정희를 생각하다

2025-08-08     홍찬선 칼럼니스트
봉은사

인터뷰365 홍찬선 칼럼니스트 = 걸어본 사람만이 안다. 서울 한복판에 이렇게 좋은 산책길이 있다는 것을. 걸어본 사람만이 본다. 완당(阮堂) 김정희(金正喜, 1786~1856)가 죽기 사흘 전에 써서 남긴 국보급 ‘板殿(판전)’ 글씨를. 걸어본 사람만이 느낀다. 포도(鋪道)의 열기에 시달리던 도인(都人)이 도인(道人)이 된다는 것을. 걸어본 사람만이 깨닫는다. 봉은사 명상길에서 삶과 죽음과 사람이 걸어야 할 길이 비로소 보인다는 사실을…

‘봉은사 명상길’은 부처님이 내린 선물이다. 경기고 남쪽 담장을 끼고 봉은사를 한 바퀴 도는 길, 한 번으로 부족하면 두 번, 두 번으로도 부족하면 세 번…. 맨발로 뒷짐 지고 느릿느릿 걷다 보면 세상잡사가 살며시 사라진다. 나를 잊은 채 그저 걸음삼매에 빠진다. 어느 순간, 나도 잠깐 부처가 된다.

길이 있다고 모두 걷는 것은 아니다
길이 있어도 내가 걸어야 바로 길이 된다
진양조로 느릿느릿 명상하는 길이 그렇다

봉은사 명상길은 걸을 때마다 맛이 다르다
아침에는 사뿐사뿐 솟아나는 새 생명이 다가오고
한낮에는 바쁜 일상에서 벗어난 여유가 솔솔 솟고
저녁에는 삶의 맛이 촉촉히 스며든다 

바람맞는 사람이 그 맛을 안다
꿈꾸는 사람이 그 참맛을 누린다
외로운 사람이 그 속삭임을 듣는다

초봄에는 황매화의 유혹을
여름에는 연꽃의 사랑을
가을에는 귀뚜라미의 단풍송을
겨울에는 하얀세상의 순결을

- 홍찬선, '봉은사명상길2' 전문.

봉은사

명상길을 걸으면서 벽오동(碧梧桐)을 찾아보는 재미도 있다. 벽오동은 늙어도 줄기가 푸르러, 다른 오동나무와 달리 벽오동이라 부른다. 잎이 넓고 크며 끝은 손바닥 모양으로 세 갈래 또는 다섯 갈래로 얕게 찢어졌다. 여름에 황록색의 꽃이 핀다.

벽오동을 지나 ‘판전’으로 발길을 옮긴다. 봉은사 판전은 1856년에 지어지고 1878년에 중수된 단층 맞배지붕 목조 건물이다. 판전 안에는 ‘대방광불화엄경수소연의초목판’ 3190판이 보관되어 있다. 왼쪽 벽에는 화엄경의 수호신을 그린 ‘신중도(神衆圖’가 있는데, 신중도는 1857년에 그려진 것으로 추정된다. 완당과 가깝게 지낸 초의선사(草衣禪師, 1786~1866)가 증명법사로서, 신중도를 그려 봉안하고 경판을 판전에 보관하게 된 사실을 기록으로 남겼다.

봉은사

봉은사 판전은 현판 글씨를 완당(阮堂) 김정희(金正喜, 1786~1856)가 써서 더욱 유명하다. ‘板殿’ 현판의 방서(傍書)에는 ‘七十一果病中作(칠십일과병중작)’이라고 씌여있다. ‘71세의 과천 늙은이가 병중에 썼다’는 뜻이다. 그 옆에 찍힌 낙관(落款)은 ‘阮堂’이란 글씨가 선명하다. 완당(阮堂)은 김정희의 호다. 김정희는 요즘 흔히 쓰이는 추사(秋史)보다 완당을 더 많이 사용했다.

당시 과천에 살던 김정희는 봉은사 판전이 건립됐으니 현판을 써 달라는 부탁을 받고, 온 힘을 쏟아 썼다. 김정희는 ‘板殿’을 쓴 뒤 3일 뒤에 귀천했다. 완당은 봉은사 ‘大雄殿(대웅전)’ 현판도 남겼다.

추사가 빙그레 웃고 있었다
누렇게 익어가는 황금들녘에
한머리 방방곡곡 한마음 한뜻 
하나로 물결치는 붓내음 보며

이백년 앞서 뿌려놓은 씨앗이

한겨울 옹골차게 이겨낸 굳셈
한여름 다부지게 건너온 보람
나누고 섞어 피는 글사랑 들으며

가다가 멈추면 간만큼 남는 것을
하다가 그치면 한만큼 크는 것을
가슴 가슴마다 붓짓 몸짓 하며
다잡아 비빔밥 되는 그 큰 감동을

추사는 세한도 마음으로 보고
추사는 불이선란 눈으로 듣고
추사는 수선화 꽃으로 말하며
판전으로 염화미소 전하고 있었다 

- 홍찬선, '봉은사에서 추사를 기억하다' 전문. 

봉은사

판전 왼쪽 옆에는 ‘興宣大院君永世不忘碑(흥선대원군영세불망비)’가 있다. 고종의 아버지인 흥선대원군 이하응(李昰應, 1820~1898)이 권력을 잡고 있을 때, 복잡하게 얽힌 봉은사 땅의 소유권 문제에 종지부를 찍고, 땅을 되찾아준 것을 고마워하는 비석이다. 이하응은 집권하기 전에 김정희의 제자로 붓글씨와 사군자 등을 배웠다. 둘의 인연이 죽어서도 봉은사에서 이어지고 있는 셈이다.

봉은사

판전 오른쪽 옆에는 엄청나게 큰 관세음보살상이 있다. 중생을 너무 사랑해서 부처가 되기를 포기하고, 보살로 남아 중생의 고통에 찬 소리를 눈으로 보듯 살피고 해결에 주는 관세음보살이다.

두 손 모은 뒤 대웅전 현판에서 김정희를 보고 돌아 나와 사천왕문을 올려다보면 ‘眞如門(진여문)’이라는 현판이 보인다. 신경 써서 살피지 않으면 눈에 띄지 않는다. 참된 부처의 모습은 진실한 마음으로 정성을 들여야 볼 수 있음을 뜻하는 듯하다. 마침 '봉은의 노래'가 잔잔하게 들렸다.

봉은사

탐진치 삼독을 떨친 반야와 금강의 신심이여
정혜쌍수로 세우신 빛이시여
고통스런 번뇌도 바람처럼 사라지고
마음의 상처 아물어가는 가피이어라
(후렴) 아 거룩하여라 으뜸의 보름자리 봉은사
모든 중생이 성붕하는 봉은봉은 봉은사 세세생생 영원하리

- 황학현, '봉은의 노래' 3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