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찬선 시인의 시로 보는 세상 풍경] (13) 동구릉서 태조 이성계 한탄을 듣다
인터뷰365 홍찬선 칼럼니스트 = 경기도 구리시 인창동에 동구릉이 있다. 서울 동쪽에 조선시대 9개 왕릉이 있다고 해서 붙은 이름이다. 이곳엔 조선을 건국한 태조 이성계(李成桂, 1335~1408)의 건원릉(健元陵)을 비롯, 9개의 능이 있다.
동구릉에서 서울로 오면서 만나는 고개가 망우리고개다. 태조는 자신이 묻힐 유택(幽宅)을 확정하고 한양으로 돌아오다가, 고개에서 쉬면서 오랫동안의 근심을 잊은 동네라고 해서 망우리(忘憂里)라는 이름이 붙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동구릉 입구에는 태조의 ‘백운봉에 올라(登白雲峯, 등백운봉)’이란 한시가 비석에 새겨 있다.
引手攀蘿上碧峯(인수반라상벽봉)
一庵高臥白雲中(일암고와백운중)
若將眼界爲吾土(약장안계위오토)
楚越江南豈不容(초월강남기불용)
손 당겨 댕댕이덩굴 휘어잡고 푸른 봉우리에 오르니
암자 하나 흰 구름 속에 높이 누워 있구나
만약 눈에 들어오는 세상을 내 땅으로 만든다면
초나라와 월나라 강남인들 어찌 받아들이지 않으리
이 한시는 이성계가 조선을 개국하기 전, 고려의 무장(武將)으로 활약할 때 삼각산(三角山) 백운대에 올라 지은 것이다. “만약 눈에 들어오는 세상을 내 땅으로 만든다면”이라는 셋째 구에서 쇠퇴해가는 고려를 무너뜨리고 새 왕조를 만들어보겠다는 포부를 느낄 수 있다.
삼각산은 백운대 인수봉 만경대의 세 봉우리가 세 개의 뿔처럼 솟아있다고 해서 붙은 이름이다. 요즘은 북한산(北漢山)으로 통한다. 북한산은 한강(漢江)의 북쪽에 있는 산이란 뜻이다. 서울의 옛 이름인 한양(漢陽)은 한강의 북쪽, 북한산의 남쪽에 있는 고을이라서 붙은 이름이다. 낙양(洛陽)이 낙수(洛水)의 북쪽에 있어서 그런 이름을 얻은 것과 마찬가지다.
삼복 찜통더위가
건원릉 억새에 더욱 힘을 실어주자
잔디 대신 함흥의 억새를 심으란 뜻이 어디론가 사라졌다
사내로 태어나 대장부 돠었다가
베개밑송사 이기지 못해 가슴에 품은 한이
두고두고 후손들 발목을 잡았을까
왼쪽엔 선조, 앞에는 문종, 오른쪽엔 영조 거느린
검암산 산줄기는 고요하기만 한데
100년도 살지 못하는 사람이
끝없는 역사를 좌지우지 하려다
제풀에 쓰러진 꼴을 우스대는 자들은 알기나 할까
- 홍찬선, '동구릉에서 이성계를 생각하다' 전문
동구릉에는 태조 이성계의 건원릉 외에 8개 릉이 더 있다.
5대 문종과 현덕왕후의 현릉(顯陵), 14대 선조와 의인왕후 및 인목왕후의 목릉(穆陵), 18대 현종과 명성왕후의 숭릉(崇陵), 21대 영조와 정순왕후의 원릉(元陵), 24대 헌종과 효현왕후의 경릉(景陵) 등 왕릉 6기가 있다.
또 순조의 아들로 대리청정을 하다가 갑자기 사망한 효명세자(문조익황제로 추존)와 신정왕후의 유릉(綏陵), 16대 인조의 계비 장렬왕후의 휘릉(徽陵), 20대 경조의 정비 단의왕후의 혜릉(惠陵) 등이다.
조선왕릉은 이밖에도 여주의 영릉(英陵, 세종대왕과 소헌왕후)과 녕릉(寧陵, 효종과 인선왕후), 서울 내곡동의 헌릉(獻陵, 태종과 원경왕후)과 인릉(仁陵, 순조와 순원왕후), 서울 삼성동의 선릉(宣陵, 성종과 정현왕후)과 정릉(靖陵, 중종), 경기도 파주의 장릉(長陵, 인조와 인열왕후), 강원도 영월의 장릉(莊陵, 단종), 경기도 남양주 진접의 광릉(光陵, 세조와 정희왕후), 경기도 수원의 건릉(健陵, 정조와 효의왕후)과 융릉(隆陵, 사도세자), 경기도 남양주의 홍릉(洪陵, 고종과 명성황후)과 유릉(裕陵, 순종과 순명효황후 순정효황후), 경기도 고양의 서삼릉 등이 있다.
셈범이 달랐다
정안대군은 아버지를 도와 나라를 세운 공을 따졌고
신덕왕후는 조선의 첫 왕비임을 내세웠다
이성계가 문제를 키웠다
다른 셈법을 하나로 조화시키지 않은 채
한 곳의 셈법을 손들었다
수가 틀어진 정안대군이 움직였다
같은 목적을 이룰 때 같았던 셈범이
목적을 이룬 뒤 달라졌을 때
욕심이 비극을 불렀고
욕심이 참화를 만들었다
셈법과 욕심도 세월의 폭력을 견뎌내지 못했다
- 홍찬선, '이방원과 신덕왕후의 셈법'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된 조선왕릉을 찾아갈 때마다 조선의 비극을 생각한다. 이성계가 말년에 계비 신덕왕후의 베개밑송사에 넘어가지 않고 장자상속의 원칙을 세웠다면 1,2차 왕자의 난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왕자의 난이 없었더라면 수양대군이 어린 조카 단종을 몰아내는 쿠데타도 일어나지 않았을지 모른다. 그 뒤의 피비린내 나는 쿠데타의 빈발도 막았을 것이고, 대한제국이 일제에 허망하게 무너지지 않았을 수도 있다.
역사에 가정은 없다. ‘그랬더라면…’ 하는 아쉬움은 실패한 사람이 떠올리는 회한(悔恨)일 것이다. 그래도 억새가 가득 덮인 이성계의 건원릉에 가면 저절로 ‘역사의 가정’이 떠오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