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향식 365칼럼] “섬, 그 고요한 폭발…윤해남 화백의 감각적 풍경”

- 개인전 ‘EXPRESSIVE NATURE: 섬 Island’ 23일 개막 무료 관람 - 서울 성동구 왕십리로4길 ‘디스코스 온 아트’...내달 23일까지 전시

2025-07-24     신향식 칼럼니스트

 

인터뷰365 신향식 칼럼니스트 = 한 점의 섬이 있다. 지도 위에는 없는 섬. 바다 위에 있으되 현실이 아닌 곳. 우리가 매일 피하고 싶다가도 결국 닿게 되는 내면의 은둔지, 그곳을 윤해남은 30년 넘게 그려왔다.

서울대 명예교수 정영목이 기획한 신생 전시 플랫폼 ‘디스코스 온 아트’에서 두 번째 시리즈 'EXPRESSIVE NATURE: 섬 Island'가 막을 올렸다. 주인공은 서양화가 윤해남(69). 그가 평생 머물러온 보길도에서 캔버스에 길어 올린 섬들은 단순한 풍경이 아니다. 그것은 고독의 파장, 색의 분열, 감정의 응고다.

“무너진 색에서, 비로소 섬이 솟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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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장 입구에서 마주한 첫 그림은 말문을 막는다. 수직으로 떨어지는 붓자국과 무겁게 쌓인 안료가 이뤄낸 절벽 같은 화면은 하늘과 땅이 반으로 나뉜 것 같지만, 그 사이로 자라나는 침묵이 있다. 얼핏 보면 풍경화 같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색이 사유하는 추상이다.

붓이 아닌 손으로, 손이 아닌 몸으로 그린 것 같은 이 화면은 마치 울지 못한 노래가 굳어져 생긴 섬 같다. 색은 바랜 듯 하면서도, 내부에서 뜨겁다. 화면 주변에는 수기로 새겨진 알파벳과 숫자들이 뒷면의 일기처럼 남겨져 있다. 섬이란, 말해지지 않은 것들의 축적이라는 걸 이 한 장의 캔버스는 알려준다.

“나무와 여인, 그 사이에 태어난 불꽃”

강렬한 에너지로 휘감긴 화면 한가운데, 나신의 여인이 앉아 있다. 그러나 관능보다 느껴지는 것은 고독이다. 나무와 융합된 듯한 그녀의 형상은 뿌리이자 가지이며, 자신을 끌어안는 팔은 마치 굴곡진 세월을 어루만지는 듯하다.

그림자와 빛, 주황과 녹색, 청보라가 격렬하게 충돌하는 이 작품은 고흐의 절규와 마티스의 춤, 뭉크의 불안을 동시에 품고 있다. 그러나 끝내 남는 건 ‘윤해남’만의 리듬이다. 여성의 얼굴은 흐릿하다. 정체성을 묻는 대신, 존재의 감각을 남긴다.

“추억은 파도로, 상처는 물감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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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눈에 들어오지 않는 좁고 긴 화면. 그 위에서 파도는 일지 않는다. 그러나 바다는 있다. 검푸른 하늘 아래 핏빛이 번지고, 분홍색 물감이 뚝뚝 떨어진다. 때로 물감이 말라가는 그 틈에서 우리는 치유를 발견한다.

어쩌면 이 섬은 작가 자신일지 모른다. 붓의 방향이 아닌 감정의 중력에 따라 흔들린 색들. 바다가 아니라 마음의 수면이 여기에 펼쳐져 있다.

“시간을 껴안은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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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작고 조용한 그림에는 시간이 앉아 있다. 인체의 형상은 완벽하지 않다. 그러나 그것이 오히려 더 인간적이다. 누군가에게 기대듯 앉아 있는 이 인물은 반쯤 녹아들었고, 반쯤 남아 있다.

노란빛은 따뜻하지만 동시에 쓸쓸하고, 오른쪽 구석의 붉은 머리칼은 삶이 아직 끝나지 않았다는 신호처럼 흔들린다. 마치 노을처럼 천천히 꺼지는 생의 윤곽을 보는 듯하다.

“섬은 나이면서도, 나를 벗어난다”

윤해남은 서울대학교 서양화과를 졸업한 뒤, 30여 년을 보길도라는 섬에 머물렀다. 하지만 그의 그림 속 섬은 결코 지도에 찍히지 않는다. 그곳은 고립이 아닌 해방이며, 은둔이 아닌 사유다.

정영목 교수는 이 전시에 대해 이렇게 썼다.

“윤해남의 회화는 자유와 억압, 감각과 관념이 마주친 교차점에서 탄생한다. 그의 섬은 결국, 우리 각자의 내면으로 연결된다.”

섬은 멀리 있지 않다. 눈앞의 그림 안, 혹은 당신 마음 깊은 곳에 이미 있다.

이 전시는 내달 23일까지, 서울 성동구 ‘디스코스 온 아트’에서 무료로 관람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