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은희 감독의 AI스토리텔링] 전혜정 작가 "AI활용, 인간의 창작 과정에 대한 성찰 됐죠" ②
[인터뷰365] 'AI스토리텔링 연구자' 전혜정 작가 - "AI는 다수 인간이 생각하는 편향을 비추는 거울" - 기술적 숙련도보다 더 중요한 건...기획력·안목
AI스토리텔링은 인공지능(AI)이 사람과 협력하거나 스스로 이야기를 창작하는 기술 및 개념을 의미합니다. 스토리텔링 작법서 '4줄이면 된다'의 저자 이은희 감독이 AI스토리텔링에 관심 있는 다양한 분야의 인물을 만나 4가지 주제에 대해 질문을 던지고, 응답을 듣는 새로운 형식의 인터뷰 시리즈를 선보입니다. 이번 <'AI스토리텔링 연구자' 전혜정 작가>편은 2회로 나눠 게재합니다. <편집자주>
인터뷰365 이은희 인터뷰어(/감독 겸 작가) = 전혜정 작가는 자신을 록 음악과 장르물, 게임을 좋아하는 오타쿠이면서 스토리 작가이자 연구자라고 소개한다. 23살 때 썼던 단편 소설 ‘아무도 몰라’가 우연한 기회에 출판된 이후 본격적으로 글쓰기를 시작했고, 미대-디자인 전공으로 박사까지 공부한 것과는 다소 거리가 있는 스토리텔링으로 청강예술산업대에서 교수로 재직하게 되었다. 거기다 직접 웹소설을 쓰고 ‘지식백과’나 ‘과학하고 앉아 있네’ 같은 유튜브 방송에도 출연하고 있다.
그런 그는 요즘 챗(chat) GTP PRO 버전과 구글 제미나이 울트라(ULTRA) 버전, 클로드(Claude) 등으로 웹소설 쓰기를 실험 중이라고 한다. 각 플랫폼에서 제공하는 최고 사양을 사용하고 있지만 일시 정지를 당하기 일쑤라니 얼마나 지독하게 생성형 AI를 귀찮게 했는지 알법하다. 그런 그가 들려주는 생성형 AI 사용기, 아니 모험기를 들어보자.
▶① 인공지능으로 글쓰기 한계 실험 중인 'AI 모험가' 전혜정 작가 이어서
3. 인간의 역할과 개입
- 인간의 안목과 결단, 해석은 AI로 대체 불가능
- "AI, 통계적 편향 정직하게 드러내죠"
- 정확한 프롬프트를 통해 AI를 훈련할 때, 가장 인간적인 개입이 필요한 순간은 언제라고 보나요?
"여기서 '인간적'이라는 것을 '스스로 호기심을 갖고 의미를 부여하며, 주체적인 의지를 갖는 것'으로 정의하고 싶습니다. 이런 관점에서 가장 인간적인 개입은 '최초의 질문을 던지는 순간'과 '최종 결과물이 내 의도에 맞았는지, 다르지만 내 의도를 기꺼이 수정해도 될 만큼 창의적인지를 판단해서 선택하고, 이 작품이 세계와 어떤 연결을 갖는지 비평적으로 해석하고 의미를 부여하는 순간'에 필요합니다.
AI는 스스로 "왜 이런 그림이 필요한가?"라고 묻지 않습니다. 그 최초의 발상과 기획, 즉 '표현하고 싶은 욕망'은 오롯이 인간의 몫입니다. 그리고 AI가 쏟아내는 무한한 결과물 속에서, 단순히 예쁜 이미지가 아니라 나의 최초 기획 의도와 철학에 부합하는 단 하나의 이미지를 골라내는 '안목'과 '결단', 그리고 거기에 새로운 의미를 부여하는 '해석'이야말로 가장 대체 불가능한 인간의 개입입니다."
- AI 스토리텔링에서, 오히려 인간 작가가 더 배우거나 개선해야 할 지점이 있다고 느낀 적은 없나요?
"AI와 작업하다 보면 오히려 제 생각과 언어가 얼마나 모호하고 편향되어 있는지를 깨닫게 됩니다. AI는 제 프롬프트를 제가 의도한 맥락이 아닌, 학습된 데이터에 기반해 지극히 '통계적으로' 해석합니다.
예를 들어, 제가 AI에 "자유를 향해 달려가는 사람"을 그려달라고 요청했다고 가정해 봅시다.
인간 작가는 이 프롬프트에서 '자유'라는 추상적 개념을 떠올립니다. 그리고 그 개념을 시각화하기 위해 상징(symbol)을 사용합니다. 예를 들어, 부서진 쇠사슬을 끊고 달려가거나, 어두운 터널 끝의 빛을 향해 뛰거나, 드넓은 초원을 향해 달려가는 사람의 이미지를 구상할 것입니다. '자유'는 이 이미지들 속에서 은유적으로 표현됩니다.
하지만 AI에게 '자유(freedom)'는 추상적 개념이 아니라, 그 단어와 가장 높은 확률로 함께 등장했던 이미지들의 통계적 집합입니다. 그 데이터의 대부분은 무엇일까요? 바로 '자유의 여신상(Statue of Liberty)', '미국 국기(American flag)', '흰머리수리(Bald eagle)' 같은 것들입니다.
그 결과, AI는 제가 의도한 '억압으로부터의 해방'이라는 보편적 개념을 그려내는 대신, 자유의 여신상이나 성조기가 등장할 확률이 높아집니다. 뻔하고 클리셰인데 또한 미국적 맥락이죠.
바로 이 지점에서 AI는 다수 인간이 생각하는 편향을 비추는 거울이 됩니다. AI의 엉뚱한 결과물은, 저 자신이 '자유'라는 단어를 보편적이거나 추상적인 개념이라고 가정했지만, AI의 학습 데이터 속에서 그 단어는 특정 국가의 특정 상징물들과 매우 강하게 편향적으로 연결되어 있었음을 폭로합니다. 저는 보편을 의도했지만, AI는 통계적 편향을 정직하게 드러내 보인 것입니다."
- 저도 창작 과정에서 AI에게 이후 전개를 질문하곤 하는데 그때 나온 결괏값은 ‘가야 할 길’이 아니라 ‘가지 말아야 할 길‘로 이해한다는 차원에서 도움을 받고 있어요. 통계적으로 추천된 것은 결국 창작자에게 ’뻔하다‘로 이어지니까요.
"이러한 AI의 엉뚱한 결과물은 역으로 인간 언어의 다의성과 제 지시의 불명확성을 비추는 거울이 됩니다. 이 과정에서 인간 작가는 자신의 아이디어를 더욱 날카롭고 명료하게 다듬는 훈련을 하게 됩니다. 즉, AI에서 더 좋은 결과물을 얻기 위해, 역설적으로 제 '기획력'(추상적 개념을 구체적이고 보편적인 상징으로 번역하는 능력), '언어 구사력'(통계적 편향을 우회할 수 있는 묘사적 언어를 찾는 능력), 그리고 '안목'(결과물에 나타난 편향의 원인을 읽어내는 능력) 을 끊임없이 연마해야 함을 절감합니다."
- 앞으로 AI와 인간이 공동으로 스토리를 만들 때, 어떤 역할 분담이 가장 이상적이라고 생각하나요?
"인간은 총괄 기획자, 감독, 철학자, 최종 결정권자. 즉, 프로젝트의 '왜?'를 설정하고, 전체적인 방향성과 톤을 결정하며, AI가 내놓은 결과물들의 옥석을 가리고, 최종적으로 의미를 부여하는 역할을 합니다.
AI는 지치지 않는 브레인스토밍 파트너, 초안 생성기, 시각화 조수. 인간의 추상적인 아이디어를 수많은 구체적인 시안으로 빠르게 시각화하고, 반복적이고 기술적인 부분을 처리하여 인간이 더 핵심적인 창작 활동에 집중할 수 있도록 돕는 역할을 합니다.
결국 인간이 '방향'을 제시하고 '의미'를 부여하면, AI는 그 길 위에서 가장 효율적으로 '가능성'을 펼쳐 보이는 협업 관계가 가장 이상적이라고 생각합니다."
- 향후 인간 작가에게 기대되는 새로운 능력이나 감각은 무엇인가요?
"기술적 숙련도보다 '본질을 꿰뚫는 안목'과 '세계관을 재해석하는 기획력'이 훨씬 중요해질 것입니다. 이미지가 넘쳐나는 시대에 중요한 것은 예쁘고 멋진 것을 잘 만드는 능력이 아닙니다.
정말 필요한 능력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이 정리할 수 있습니다.
▶편집자/큐레이터가 지녀야 할 안목: 수많은 AI 생성물 중에서 진주를 골라내는 능력.
▶철학자가 지녀야 할 기획력: 세상에 없던 새로운 질문과 개념을 던지고, 그것을 예술로 기획하는 능력.
▶소통가가 지녀야 할 협업 능력: 나와 다른 지능(AI)의 특성을 이해하고, 그와 효과적으로 소통하여 최상의 결과물을 이끌어 내는 능력.
결국 기술은 AI에 맡기고, 인간은 사유하고, 질문하고, 발견하고, 의미를 부여하는 역할에 집중하게 될 것입니다.
이것은 작업과 세계의 관계를 탐구하고, 연결에 의미를 부여하는 것으로, 실은 원래 예술가의 영역입니다. 잘 그리는 능력 뒤에 원래 이 능력이 필요했었습니다. 다만 지금까지는 기술이 좀 더 주목받았다면, 점점 더 기술 뒤에 당연히 전제되었던 이 능력이 더 주목받게 될 뿐입니다."
4. 실무 경험과 협업의 미래
- AI, 단순한 그림 도구 넘어 지적인 파트너 가능성 엿봐
- '진정성' 영역, 인간 스토리텔러 감각이 절대적
- 경험상, AI 스토리텔링이 가장 빛났던 순간은 언제인가요?
"한번은 '들뢰즈의 위상적 사유를 그림으로 그려달라'는 매우 추상적인 요청을 했습니다. 인간 디자이너에게 요청했다면 상당히 긴 설명과 소통이 필요했을 개념입니다. 하지만 chat GPT와 연동된 Dall-E는 들뢰즈 철학의 핵심인 '흐름', '연결', '연속성' 등의 개념을 이해하고, 이를 반투명한 레이어의 중첩, 노드와 선들의 연결 같은 디자인적 언어로, 매우 성공적으로 시각화해 냈습니다. 인간의 복잡하고 추상적인 철학적 개념을 AI가 나름대로 해석하고 창의적인 이미지로 '발견'해 준 그 순간, AI가 단순한 그림 도구가 아니라 지적인 파트너가 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았습니다."
- 그런데도 인간 스토리텔러의 감각이 절대적으로 필요했던 순간은 언제일까요?
"인간의 몸과 시간을 통해 축적된 '과정' 자체가 의미가 되는 작업에서는 인간의 감각이 절대적입니다. 예를 들어 '불화(佛畵)'를 AI로 그릴 수 있겠지만, 그것은 의미가 없습니다. 불화의 가치는 결과물의 미적 완성도뿐만 아니라, 작가가 한 획 한 획 기도를 담아 그려나가는 그 수행의 과정에 있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역사성, 문화적 맥락, 신체적 경험, 그리고 창작 과정의 진정성이 작품의 핵심일 때, 데이터의 학습만으로는 결코 도달할 수 없는 영역이 존재합니다. 그 영역에서는 인간의 감각이 대체 불가능합니다.
인간은 하나의 몸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그 하나의 몸으로 경험한 세계는 그 누구와도 같을 수 없습니다. 어느 시대, 어느 성별, 어떤 정체성을 가지고 태어난 하나의 인간 개체는 그 존재만이 가진 예술의 가능성을 품고 있습니다. AI는 정반대의 위치에 있습니다.
AI는 수많은 인간의 경험을 데이터로 학습한 '통계적 총체'일 뿐, 자신만의 고유한 삶이나 역사를 가진 몸이 없습니다. '슬픔'이라는 감정에 대한 수만 가지 텍스트와 이미지를 조합하여 '그럴듯한 슬픔'을 표현할 수는 있지만, 단 한 번도 자기 자신이 직접 슬픔을 겪어본 적은 없습니다. 따라서 작품의 깊이가 작가의 고유한 정체성, 즉 그가 살아온 시대의 공기, 그가 겪은 사회적 모순, 그리고 그의 몸에 각인된 감각적 기억에서 비롯될 때, AI는 결코 그 영역을 흉내 낼 수 없습니다.
AI가 아무리 발전하더라도, 단 하나의 몸으로 단 한 번의 생을 살아가는 인간만이 만들어낼 수 있는, 대체 불가능한 '진정성'의 영역이 존재합니다. 바로 그 지점에서 인간 스토리텔러의 감각은 언제나 절대적으로 필요할 것입니다."
- AI 또는 AI 스토리텔링이라는 주제 또는 수단을 두고 인문학 기반 작가와 협업할 때, 가장 기대하는 점은 무엇인가요? 과학 기반 기술자들과의 협업도 궁금합니다.
"제가 이미 AI를 기술적 도구가 아닌 인문학적 성찰의 대상, 즉 '이해할 수 없는 타자'로 보고 접근하고 있기 때문에, 다른 인문학 기반 작가와의 협업은 그 성찰의 깊이를 더하고 새로운 차원의 질문을 던질 수 있는 매우 흥미로운 기회가 될 것이라고 기대합니다.
첫째는 '개념과 기획의 증폭'입니다. 저는 AI가 '다이소 세계관'처럼 안전하고 보편적인 결과물을 내놓는 경향이 있다고 진단합니다. 이를 넘어서기 위해서는 기존에 없던, 날카롭고 도전적인 '질문'을 던지는 인간의 기획력이 필수적입니다. 인문학 기반 작가는 바로 이 '질문'을 만드는 전문가입니다. 그분들의 깊이 있는 텍스트 해석 능력, 서사 구조에 대한 이해, 인간 심리에 대한 통찰은 AI에 던질 질문의 차원을 다르게 만들 것입니다. 단순히 '아름다운 그림'을 넘어 '특정한 철학적 개념을 시각화'하거나 '사회적 모순을 드러내는 서사'를 만드는 등, 저 혼자서는 생각지 못했던 복합적인 기획을 함께 만들어갈 수 있을 겁니다.
둘째는 '해석의 확장'입니다. AI는 의도 없이 무한한 결과물을 쏟아냅니다. 이때 인간의 역할은 그 결과물들 속에서 의미를 '발견'하고 '해석'하여 하나의 작품으로 완성하는 것입니다. 인문학 작가는 이 과정에서 최고의 파트너가 될 수 있습니다. 저는 시각적 '안목'을 통해 이미지를 선택한다면, 그분은 그 이미지에 깊이 있는 서사와 상징을 부여하고, 작품 전체를 관통하는 일관된 메시지를 엮어낼 수 있습니다. AI가 우연히 만들어낸 '의미의 미끄러짐'을 포착하여, 그것을 작품의 핵심적인 장치로 만드는 날카로운 해석을 더 해줄 수 있을 거라 기대합니다.
반대로 과학 기반 기술자와 소통할 때는 제가 가장 바라는 점은, AI를 ‘단순한 도구(tool)’로만 간주하고 ‘잘 쓰기만 하면 된다’라는 식의 접근 방식에서 벗어나 달라는 것입니다. 특히 뇌과학의 ‘뇌 가소성(neuroplasticity)’ 개념을 바탕으로, 이 새로운 기술이 인간의 사고방식을 어떻게 근본적으로 바꾸고 있는지 함께 깊이 고민하고 싶습니다.
과거 인류가 키보드를 쓰기 시작했을 때, 단순히 글을 쓰는 매체만 바뀐 것이 아니었습니다. 문장과 문단 단위로 사고하며 전체 구조를 그리던 방식에서, 단어 단위로 조립하고 파편적으로 생각을 이어가는 방식으로 우리의 인지 구조 자체가 바뀌었습니다. 이는 사소한 기술적 차이가 인간의 정신에 엄청난 결과를 낳는다는 것을 보여주는 명백한 증거입니다.
AI는 인류 역사상 가장 강력하게 인간의 인지 구조에 개입하는 기술이 될 것입니다. 따라서 AI를 그저 ‘더 똑똑해진 포토샵’ 정도로 여기고 ‘AI 툴 활용법’을 교육하는 것만으로는 문제를 해결할 수 없습니다. ‘AI 툴’이라는 개념은 애초부터 성립되지 않는 단어입니다. 도구는 ‘나의 확장’이지만, AI는 ‘타자(他者)’입니다. 돌도끼는 주먹의 확장이고 자동차는 발의 확장입니다. 도구는 나의 의도를 수행하며 내 몸의 연장선이 됩니다. 도구는 ‘기획 이후’에 쓰이지만, AI는 ‘기획 자체’에 개입합니다.
AI는 명확한 기획이 없어도, 모호한 ‘니즈’만으로도 수많은 초안을 제안하며 기획 단계부터 참여합니다. 이 과정에서 AI는 인간의 기획을 돕는 것을 넘어, 인간의 기획 능력을 점차 의존적으로 만들고 심지어 퇴화시킬 위험이 있습니다.
과학 기반의 기술자 중 일부는 이에 대한 논의를 무시하면서, AI를 사용하면 쉽게 전문가 퀄리티 결과물에 도달할 수 있다고 하면서, 교육 현장에 뚜렷한 정책 없이 도입해야 한다거나, ‘AI 툴 교육’을 해야 한다거나 하는 식으로 단순하게 접근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러나 노력 없이 AI로 쉽게 얻어진 좋은 결과물은 그 결과물이 사용되는 일이 있어도, 그 인간의 진짜 실력을 키워주진 않습니다. 실력이 높아진 것처럼 느껴지는 것도 할루시네이션입니다."
- 향후 꿈꾸는 AI와 인간 작가 간의 이상적인 협업 프로젝트가 있다면요?
"2023년, 강원키즈트리엔날레에서 관객 참여형 AI 전시를 한 적이 있었는데요, 다양한 단어 카드를 만들어 놓고, 관객들이 그중에서 무작위로 골라 미드저니에 입력하게 했습니다. 아이들이 어떤 단어를 조합하든 AI는 대부분 '통계적 미감', 즉 많은 사람들이 좋아할 법한 안전하고 보편적인 범주의 이미지를 만들어냈습니다.
하지만 진짜 핵심은 그렇게 지극히 평균적인 미감의 결과물들이, 단 한 번도 똑같이 반복되지 않고 매번 다른 모습으로 무한히 생성된다는 점이었습니다. 그 순간, 작품의 '작가'는 시스템을 설계한 저, 단어를 고른 아이, 그리고 그 조합을 해석한 AI, 이 셋의 공동 창작이 되었습니다.
이 프로젝트의 목적은 '아름다운 한 점의 그림'을 얻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평균 미감'이라는 명백한 한계 안에서 펼쳐지는 '무한한 불확정성' 자체를 체험하게 하는 것이었습니다. 이는 예술 창작이 한 명의 작가가 '완성된 한 점의 작품'을 내놓는 행위가 아니라, 여러 주체가 참여하여 '확률적 세계관'을 함께 구축하고 탐험하는 과정이 될 수 있음을 보여주는 시도였습니다.
이처럼 제가 꿈꾸는 이상적인 프로젝트는 AI의 '불확정성'과 '의도의 미끄러짐' 자체를 작품의 핵심 개념으로 끌어안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하나의 동일한 프롬프트(가령 "가장 슬픈 의자")를 AI에 천 번 입력해서 나오는 천 개의 서로 다른 이미지를 모두 모아 하나의 작품으로 전시하는 프로젝트가 있을 수 있습니다. 이 프로젝트에서 개별 이미지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중요한 것은 하나의 개념이 AI라는 확률적 장(field)을 통과하며, 얼마나 다양하고 예측 불가능한 모습으로 분기하는지, 그 '가능성의 다중우주' 자체를 보여주는 것입니다. 이는 '완성된 한 점의 작품'이라는 전통적 예술 개념을 해체하고, AI 시대의 창작이 '확률적 세계관을 구축하는 행위'임을 보여주는 작업이 될 것입니다."
긴 인터뷰를 마무리 하며 전혜정 작가가 AI를 활용한 창작 활동을 통해 오히려 인간의 창작 과정을 더 깊이 성찰하게 되었다는 고백이 떠올랐다. 그는 AI가 놓치는 감정의 결, 맥락의 깊이를 분석하며 인간 고유의 사고 흐름을 더 명확히 인식하게 되었다고 말했다.
그의 실험과정은 단순히 기술을 도구로 활용하는 것을 넘어, AI가 만들어낸 결과물과 인간의 사고방식 사이의 차이를 탐구하는 과정 자체가 창작의 일부였다. 아이러니하게도, 비인간적인 존재를 통해 인간다움의 본질에 다가가게 된 셈이다. 이러한 통찰은 기술 시대 창작자가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했다.
이번 인터뷰를 진행하면서 전혜정 작가는 모두 다 담아내기 어려울 만큼 많은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그가 단순히 AI의 스토리텔링의 가능성을 논하는 것을 넘어서 그 중심에서 실험자이자 학자로 살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