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 영화감독 백학기의 시네스토리] '돈'(1958)과 배우 김승호·최은희·최남현
[내 가슴에 남아있는 한국고전영화와 그 배우들(15)] -김소동 감독의 영화 '돈'...당대 최고 스타 김승호 제작·주연 작품
▶[내 가슴에 남아있는 한국고전영화와 그 배우들(14)] '낙동강'(1952)과 배우 이택균·최지애 이어서
인터뷰365 백학기 칼럼니스트 = 1958년 개봉한 김소동 감독의 영화 '돈'은 순박한 농사꾼인 주인공을 통해 당대 문제가 되었던 농촌 고리대, 사기꾼의 성행 등 사회 문제를 가감 없이 드러낸 당시 리얼리즘 대표 영화다. 이 영화는 산업사회로 넘어가는 시기의 열악한 농촌의 현실을 사실적이며 비극적으로 묘사했다. 이 때문에 한국 사실주의(리얼리즘) 영화의 대표작 중 하나로 꼽힌다.
그 시대의 최고 배우 김승호가 제작과 주연을 맡은 작품으로 관심을 불러 일으켰다. 이 작품은 한편으로 여배우 최은희의 초창기 아름다운 모습을 지켜볼 수 있는 작품이다.
스토리를 보자. 순박한 농부 봉수(김승호 분)는 빚이 많은데다 딸 순이의 혼사비용도 없어 한숨으로 나날을 보낸다. 군대를 제대하고 마을로 돌아온 아들 영호(김진규 분)는 옥경(최은희 분)와 사랑하는 사이다. 옥경은 봉수의 집에서 자라 억조(최남현 분)의 부인(황정순 분)이 운영하는 술집 일을 돕고 있다.
고리대금업자이자 술집주인인 억조는 돈의 물리를 잘 알고 있는 교활한 인물. 소판 돈을 지니고 있는 봉수를 꼬여서 노름을 한 뒤 돈을 뺏을 정도로 악한 인물로 그려진다. 아무것도 모르는 봉수는 노름판에서 돈을 다 잃게 되고, 결국 돈에 눈이 멀어 장사물건을 떼러 서울에 갔다가 심지어 사기꾼에게 가지고 간 돈을 몽땅 사기까지 당한다.
울화가 치민 봉수(김승호)는 길가에 떨어진 돈을 보고 돈에 눈이 어두워 그 돈을 줍다가 돈의 주인인 억조(최남현)에게 들켜 우격다짐 끝에 최남현이 빼어든 칼로 그를 살해하려 하는데.
1950년대 활동했던 김소동 감독은 이 영화로 영화계의 사조인 이탈리아 ‘네오리얼리즘’을 반영한 ‘코리안 리얼리즘’을 성취했다는 전문가들의 평을 받았다. “한국영화가 지향해야 할 뚜렷한 길”로 인정받은 셈이다. 김승호, 최남현, 최은희를 비롯해 김진규, 황정순, 노경희 등 연기파 배우들이 대거 출현한 것만 봐도 이 영화의 성공여부가 점쳐졌다.
특히 아들 영호(김진규)를 압송하는, 떠나가는 기차(근대)를 바라보는 봉수(김승호)의 클로즈업은 탐욕에 물든 한 인물의 회한과 절망, 어찌할 도리 없는 당대 농촌의 현실을 상징적으로 보여줬다는 평가다.
경북 상주의 양반집 출생인 김소동 감독은 두루마기를 입고 상경해 제일고보(경기중고)를 다닌 후 일본 대학 불문과에 재학하면서 영화클럽 활동을 하면서 영화와 인연을 맺었다. 귀국 후 영화과학연구소를 설립해 단편영화를 제작하다가, 1947년 직접 각본을 쓴 '목단등기'(1947)로 감독으로 데뷔했다. 이후 '왕자호동과 낙랑공주'(1956), '아리랑'(1957), '오! 내고향' (1959) 등을 연출했다. '모란등'(1964), '고가'(1977) 등의 각본도 썼다. 은퇴 후 한양대에 국내 최초로 연극영화과를 설립해 상아탑에서 후진 양성에 앞장선 영화감독이다.
사설에 의하면 '돈'은 아시아 영화제 출품 결정이 반려되는 해프닝이 있었는데, 영화의 분위기가 너무 무겁고 어둡다는 이유에서라고 .
1917년 강원도 철원 출생인 배우 김승호는 일제강점기 연극무대에서 활동했다. 본명은 김해수(金海壽). 1946년 '자유만세'로 스크린에 데뷔했다. 1940~5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조연 내지 단역으로 무명생활을 하다가, 1956년 영화 '시집가는 날'에서 맹진사 역을 맡으면서 스타로서 자리를 굳혔다. 이후 '로맨스 빠빠', '마부', '돈', '인생차압', '박서방', '삼등과장' 등 250여 편의 작품에 출연했다. 한국적 서민 아버지의 대명사로 불린다.
전북 정읍 출신의 배우 박근형의 회고에서, 박근형이 연극을 마치고 선배 배우들과의 만남의 시간을 가졌는데 대선배인 김승호가 다가와 와락 끌어안으며 "이자식, 이거 배우 되겠네!"하고 극찬을 해주었다고 전한다.
김승호의 아들로는 1970년대 액션과 멜로영화에서 두각을 나타낸 배우 김희라다. 이들의 영화적 가계도는 손자대에 까지도 이어진다.
중후한 성격파 배우 최남현은 30대 초반부터 노역과 조연을 가리지 않고 스크린을 누볐다. 충무로 생활 40여 년 동안 720여 편에 출연하는 최다 기록을 세운 인물. 특히 필자에게는 1959년작 전창근 감독의 '고종황제와 의사 안중근'에서 이토 히로부미로 분한 최남현 이미지가 제일 먼저 떠오른다. 장신의 큰 키에 상대를 꿰뚫어보는 듯한 눈과 왼쪽 뺨에 붙은 검은 점 등 안중근이 저격한 이토 히로부미 대표 이미지로 오버랩 된 배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