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 영화감독 백학기의 시네스토리] '동심초'(1959)와 최은희·김진규·김석훈·엄앵란 등
[내 가슴에 남아있는 한국고전영화와 그 배우들(12)] - 신상옥 감독의 본격 멜로 드라마 시대 개막 - 영화 '동심초'의 주역, 최은희·김진규·김석훈·엄앵란·이민·한은진·주증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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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365 백학기 칼럼니스트 = 꽃잎은 하염없이 바람에 지고 /만날 날은 아득타 기약이 없네 /무어라 맘과 맘은 맺지 못하고 /한갓되이 풀잎만 맺으려는고 /한갓되이 풀잎만 맺으려는고
바람에 꽃이 지니 세월 덧없어 /만날 길은 뜬구름 기약이 없네 /무어라 맘과 맘은 맺지 못하고 /한갓되이 풀잎만 맺으려는고 /한갓되이 풀잎만 맺으려는고
‘산장의 여인’으로 유명한 가수 권혜경이 부른 '동심초'는 한국인들의 사랑을 듬뿍 받는 가곡이다. 이 가사는 시인 김소월의 스승으로 알려진 김억(金億)이 중국 당나라 때 여류 시인 설도(辥濤)의 춘망사(春望詞) 시(詩)를 번안한 내용을 작곡가 김성태가 곡을 쓴 것이다.
가사처럼 스토리와 인물은 자연스럽게 드라마로 만들어진다. 유명 가곡인 만큼 가사 내용이 담긴 영화 스토리 '동심초'. 신상옥 감독의 본격 멜로 드라마 시대를 예고한 게 바로 1959년에 제작된 영화 '동심초'다. 이 영화는 당시 라디오 드라마가 대중적 인기를 얻으면서 필름으로 만들어졌다.
영화 내용을 보자. 전쟁미망인인 최은희가 약혼녀가 있는 총각 김진규를 사랑하다 맺지 못하는, 슬프고 아련한 영화다. 한마디로 고전의 맛을 물씬 풍기는 영화라고 할 수 있다.
전쟁미망인 이숙희(최은희)는 양장점이 망한 후 집에서 지내고 있다. 딸 경희(엄앵란)가 우연하게 편지를 발견해 누구인지 물어보자, 그녀는 아무렇지 않게 양장점을 운영할 때 신세 진 사람이라고 말해준다.
한편 출판사 전무인 상규(김진규)는 사장의 딸 옥주(도금봉)와 약혼한 상태다. 친구의 송별회에 가자며 상규를 찾아온 옥주는, 그에게 정말 자신을 사랑하는지 물어본다. 이어 부산으로 출장 가는 상규를 전송 나온 숙희는, 멀리서만 바라보고 돌아선다. 그러다가 역에서 숙희는 상규의 회사 동료인 한기철(김석훈)을 만난다.
사실 상규(김진규)는 숙희(최은희)의 양장점 빚을 떠맡고 있고, 둘은 서로 사랑하는 사이다. 옥주의 모친(한은진)은 상규의 누나(주증녀)를 찾아가 이상한 소문이 있다며 혼인을 서두르자고 말한다.
정종화(한국영상자료원 선임연구원)는 “신상옥의 세련된 연출이 정점을 찍은 두 개의 신만으로도 충분히 매혹적인 영화이다”며 “바로 이 두 신은 고뇌하는 지식인의 페르소나, 김진규가 연기하는 상규의 꿈에 대한 것이다”고 말한다.
그가 매혹적으로 언급한 신상옥 감독의 두 개의 장면은 다음과 같다.
<첫 번째 꿈>
전쟁미망인과 약혼녀가 있는 남자의 사랑이 쉽게 이루어질리 만무하다. 이 여사는 양장점 빚을 회삿돈으로 변통해준 상규와 헤어지기 위해 집을 팔기로 결심, 시골 외가로 내려간다. 엄마의 사랑을 이해하는 자매 같은 딸 경희(공교롭게 이 여사의 이름은 숙희)가 주소를 건네줘, 상규는 바로 그녀를 찾는다. 이 여사는 전쟁미망인으로 8년 동안 남의 눈치만 봤다며 “욕심대로 한다면 전 당장이라도 김 선생님 품으로 뛰어들고 싶어요.”라고 전제하고, 상규는 하루를 살다 죽더라도 결혼하자고 덧붙인다. 그녀는 밤에 ‘봐서’ 상규가 묵는 서울여관으로 가겠다고 한다.
이제 흥미로운 쇼트 배열이 시작된다. 이 여사를 기다리던 상규가 살짝 잠이 들었다가 손님이 왔다는 여관 보이의 말에 밖으로 나가는 장면이다. 상규가 누워 있는 바스트 쇼트에서 트랙 인, 디졸브로 넘어가며 대구(對句)를 이루는 그녀의 바스트 쇼트, 다시 디졸브로 넘어가는 상규의 바스트 쇼트에서 트랙 아웃. 여관 앞에 그녀가 와 있다.
둘은 파도처럼 일렁이는 들판의 갈대 사이에 자리 잡는다. 상규는 우리 사이에 불순이라 건 있을 순 없다며 사랑한다는 것만으로 우리는 순결하다고 하며 그녀를 안는다. 하지만 이 여사는 끝내 뿌리친다. 다시 여관 보이가 부르는 목소리로 시작되는 쇼트. 눈을 뜨는 상규를 거꾸로 잡은 과격한 앵글의 클로즈 쇼트다. 보이는 누가 와서 편지를 주고 갔다고 말한다. 상규가 어떻게 생겼느냐고 물어보니 이상하게도 보이는 “처녀예요.”라고 대답한다.
날이 밝고 똑같은 앵글의 여관 앞, 이 여사는 없다. 꿈이었고, 잠자리도 없었다.
<두 번째 꿈>
마음의 병으로 상규는 몸져눕는다. 기차역으로 가기 전 이 여사는 상규의 집으로 찾아간다. “상규 씨가 대단하시다면서요.”라고 입을 떼자 상규의 누이는 정말로 사랑한다면 나타나지 말라고 설득한다. 이 여사는 ‘외로워서’ 재가할 것이고 시골로 내려간다고 말한다. 둘의 미디엄 쇼트로 진행되던 쇼트가 살짝 앵글을 바꾼다. 둘을 확대한 니(무릎 위) 쇼트. 이 여사가 다시 묻는다. “상규 씨가 대단하세요.” “응. 조금 전에 잠들었어. 들어가.” 누이는 자리를 피해주고, 이 여사는 잠든 상규를 바라보며 눈물을 흘린다. 그리고 마음의 목소리로 “진실로 당신을 사랑한다”고 얘기한다.
바로 이어지는 쇼트는 잠자리에서 괴로워하는 상규의 바스트다. 그가 시선을 돌리자 카메라도 틸트한다. 그런데 그를 바라보는 건 이 여사가 아니라 그의 누이다. 상규가 누가 오지 않았느냐고 묻자 누이는 “누가?”라고 반문한다. 그는 말한다. “꿈이었군요.”
영화의 마지막은, 역사의 울타리 밖에서 안타깝게 이 여사를 바라보는 상규의 병든 얼굴이다. 영화 초반, 부산에 내려가는 그를 만나지 못하고 역사 밖에서 바라보던 이 여사의 얼굴과 대구(對句)를 이루는 이 장면은, 전후 한 남성의 불순(?)하면서도 순결한 사랑에 대해 이렇게 결론 내린다. 그건 꿈이었다고.
- 정종화, 신상옥 감독의 '동심초'(1959)
숙희의 장성한 딸 경희는 어머니의 행복을 위해 상규와의 재가를 권유하지만, 숙희는 자신에게 주어진 사회적 관습과 윤리적 도덕관 때문에 갈등한다는 센티멘털 스토리다.
진실로 사랑하는 둘 사이지만, 숙희는 헤어지는 길을 택한다. 서울 집을 팔아 고향으로 떠나는 숙희다. 몸져누워있던 상규는 이 소식을 듣고 서울역으로 나가 기차를 바라보며 괴로워한다.
제7회 아시아영화제 출품작인 '동심초'는 당대 최고의 여배우인 최은희와 중년 신사 김진규와의 사랑하면서도 끝내는 헤어져야만 하는 전형적인 멜로드라마 속성을 갖춘 영화로 관객들의 눈물샘을 자극했다.
관객 수 11만 8천여 명을 동원한 '동심초'는 그해 제작된 한국영화 110편 중 흥행 2위를 기록했다. 이 영화는 이상언 감독이 1967년 같은 내용을 소재로 60년대 스타 신성일을 내세워 김지미 남정임 공동주연으로 리메이크작을 만들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