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숏평 - 새로운 서평] 잘 팔리는 매장의 비밀 · 하루 라틴어 공부 外
- [비평연대] 서민서·최상현·김재훈 ·김성신의 500자 서평
젊은 문화비평가와 출판전문가들의 커뮤니티인 '비평연대'는 숏폼콘텐츠 시대에 대응하기 위해 500자 내외의 '매우 짧은 연대 서평'의 형식을 고안했습니다. 2030세대 지식인 특유의 빛나는 감각으로 제시되는 다양한 책들을 통해 지식의 최전선을 경험할 수 있습니다. [인터뷰365 편집자주]
■ 잘 팔리는 매장의 비밀 (목경숙·이동숙·송은아·문정원·이민영 지음, 지음미디어, 2025)
나는 커피 맛도 모르면서 카페에 간다. 내가 4500원을 내는 이유는 두어 시간 동안 '느낌 좋은' 공간에서 테이블 하나를 빌리기 위해서다. 당연히 집에는 커피도, 테이블도 있다. 내가 사는 건 좋은 느낌이다.
또, 약속 시간이 남으면 올리브영에 간다. 역시 화장품도 잘 모르고 들어가서는 마스크팩 하나라도 털레털레 사 들고 나온다. 이상하게 들어서기만 해도 왠지 피부가 좋아질 것만 같은 청량한 느낌이랄까. 사놓고 냉장고에 넣어놓더라도 일단 집어 들게 되는 거다.
'잘 팔리는 매장의 비밀'은 '그냥 왠지 머물고 싶고, 사고 싶더라니까'라는 말로 퉁치곤 하는 소비심리를 공간 설계로 자극하는 법을 담은 책이다. 비주얼 머천다이징으로 단순히 매장을 예쁘게 꾸미는 것을 넘어서 소비자에게 브랜드의 철학을 전하는 교감까지 고려한다.
이제 오프라인 매장은 제품만을 판매하는 시장을 넘어서 고객에게 '힙한' 경험을 제공하는 체험장이 돼야 한다. 내가 매장에 들어서면서부터 보고, 걷고, 머무는 방식을 모두 고려했다니. 전문가들이 머리를 맞대고 공간을 설계했으니, 지갑이 얇아지는 건 내 탓이 아니라 당연한 결과라고 위안해 본다.(서민서 / 출판마케터·비평연대)
■ 누구나 꾸는 꿈 (김주현 지음, 워크룸프레스, 2009)
“29-30p. 이상이 의미를 갖는 것은 실현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현실을 직시하도록 도와주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룰 수 없다 하더라도 꿈을 꾸고 그것을 위해 노력하는 것은 아름다운 일이다.”
세상이 변하려면 절망을 직시해야 하는가? 아니면 이상을 품고 바뀔 것이라 희망하며 살아야하는가?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의 차이일 뿐, 정답은 없다고 생각한다. 다만, 불가능할지라도 앞으로 나아갈 때 세상은 어떤 변화의 바람이 분다는 건 분명 희망적이다.
책은 제목의 ‘꿈’이라는 키워드를 관통한다. 작가의 작품 속 꿈은 곧 타인의 꿈이 되어 거울처럼 비춰보기도 하고, 누군가에겐 현실을 뚫는 힘이자 나의 뜻대로 되지 않아도 겸허해지도록 한다.
‘그림은 나에게 탐구 활동이고, 꿈이고, 원하는 곳에 닿으리라는 희망(27p)’ 이라는 말처럼 순간순간의 선택에 충실하듯 고른 문장을 따라 읽다 보니 밑줄로 책을 도배하고 있는 나를 보았다. 이 책에 나온 모든 문장을 꼭꼭 삼켜서 삶으로 체화하고 싶다는 욕망이 일었다. 설령 눈에 띄지 않아도 작품을 만드는 사람들은 선을 긋고 채색하기까지 작은 선택이 큰 차이를 만들고 있음을 안다. 사소한 것이라도 나에게 의미 있고 가치 있다면 끊임없이 정진하며 나아갈 때 비로소 변화가 일어난다는 걸 저자는 이 책을 통해 솔직하게 고백한다.(최상현 / 출판평론가·9N비평연대)
■ 제2차 세계대전 이야기: 전장의 눈물, 운명의 날 (김휘찬 지음, 한언 출판사, 2025)
전쟁은 늘 머나먼 역사나 영화 속에서만 존재하는 줄 알았다. 나와는 상관없는, 그저 과거의 비극이거나 다른 나라의 현실일 뿐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몇 해 전, 러시아와 우크라이나가 전쟁을 시작했다는 뉴스를 들었을 때, 문득 이런 생각이 스쳤다. 휴전 국가인 우리나라는 과연 언제까지 안전할 수 있을까. 품고 있던 질문이 나를 지금 이 책으로 이끌었다.
김휘찬 작가의 '제2차 세계대전 이야기: 전장의 눈물, 운명의 날'은 2차 세계대전이라는 방대한 사건을 연대기적이면서도 스토리텔링 방식으로 풀어낸다. 덕분에 복잡한 전황의 흐름도 자연스럽게 따라갈 수 있다. 읽다 보면 마치 누군가 곁에서 차분히 이야기해 주는 듯 친숙하지만, 그 친숙함 속에서 전해지는 내용은 차갑고 잔혹하다. 웃음기 없는 전쟁터의 바람들이 페이지 사이로 스며드는 느낌이다.
책은 전쟁의 발발부터 종전까지를 시간 순서로 전개하며, 단순한 사건 나열에 그치지 않고 그 배경과 선택, 그리고 그 결과로 이어진 역사의 방향을 보여준다. 교과서에서 스쳐 지나간 사건들이 여기서는 살아 숨 쉬듯 이야기를 풀어주려 했다. 뒷이야기와 전쟁 속 인간 군상의 모습은, 역사가 단지 날짜와 지명의 나열이 아님을 깨닫게 한다.
이 책을 덮고 보면, 2차 세계대전은 단순히 과거의 비극이 아니라 현재 국제질서의 토대라는 사실이 선명해진다. 전쟁이 남긴 상처와 교훈은 여전히 우리 삶의 밑바탕에 깔려 있다. 그리고 그것을 외면한 대가는 언제든 되풀이될 수 있다.
전쟁을 모른 채 살아가는 것은 행운이지만, 그것이 영원하리란 보장은 없다. 그렇기에 지금 우리는, 과거를 더 깊이 알아야 하지 않을까. 이 책은 그 시작점이 될 수 있다.
책의 마지막에 나오는 한 문장이 오래도록 가슴에 남았다.
“그리고 그 냉전의 첫 번째 전장은, 바로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이 한반도가 될 것이었습니다.”
(김재훈 / 건축설계·공간 디자인·비평연대)
■ 하루 라틴어 공부 (김태권 지음, 유유, 2024)
미학을 전공한 저자는 순전히 독학으로 만화를 그리기 시작해, 2003년 역사교양만화 '십자군 이야기'의 출간과 동시에 만화가로서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한 독특한 이력의 소유자다. 이후 저자는 한국 만화로서는 독특한 분야를 개척한다. '르네상스 미술이야기'는 교양 만화, '에라스무스 격언집'은 고전 만화, '한나라 이야기'는 역사 만화다. 한데 모으면 ‘인문학 만화’라고 할 수 있다.
깊이 있는 인문학을 바탕으로 만화를 그리기 위해 저자는 동양과 서양의 고전 원문들을 독해하고, 라틴어와 희랍어까지 공부한다. 동양의 고전을 이해하기 위해선 한자를 반드시 알아야 하듯이, 라틴어는 오늘날의 서양 문명의 근본을 이해하는 열쇠라고 할 수 있다.
'하루 라틴어 공부'는 서양의 수많은 고전 속에서 찾아낸 365개의 라틴어 문장을 하루에 하나씩 읽을 수 있도록 구성하고 있다. 어떤 사물이나 개념의 속 내용을 새겨서 느끼거나 깊이 생각하는 것을 ‘음미’라고 하는데, 이 책은 라틴어 문장을 음미할 수 있도록 한 것이 특징이다.
‘모두스 비벤디 (modus vivendi)’는 직역하면 '삶의 방식'이라는 의미다. 저자는 이 문장을 두고 사람이 살아가는 방법도 뜻하지만, 쓰임새가 다양한 문장이라고 설명한다. 생물의 생활양식이나 국제관계를 설명할 때도 이 표현을 쓰기 때문이다. 19세기 서양에서는 당장 평화조약을 맺기는 어렵지만 그럭저럭 싸우지 않고 어울려 살아가는 방식을 의미하는 말로 '모두스 비벤디'라는 문장을 사용했다고 한다. 그러니까 타협과 평화 공존의 기술을 보여주는 말이라는 것이다.
이 표현은 오늘날에도 사용된다. 다양한 국제적 갈등의 상황에서 '일시적이지만 효과적인 해결책'을 의미한다. 이 말을 우리 일상으로 가져올 수도 있다. ‘상대편의 가치관이나 태도에 전적으로 동의하는 건 아니지만 더 큰 일이 해결될 때까지 잠정적으로 양보하겠다’라는 의미가 된다. '논어'에 등장하는 ‘화이부동(和而不同)’과도 비슷하다. ‘사이좋게 지내며 화합을 도모하되 자신의 의지 없이 동화되지는 않는다’라는 의미니까. 화이부동은 줏대 없이 남의 뜻대로 움직이는 것을 경계하고자 할 때 꺼내 쓸 수 있는 고사성어다. 라틴어의 ‘모두스 비벤디’와는 의미상 비슷한 면도 있지만, 미묘한 차이도 있다.
오래전 사용했던 언어 속에 숨겨져 있던 옛사람들의 세계관과 삶에 대한 통찰력을 배울 수 있는 것이 이 책의 장점이다. ‘옴니아 무탄투르, 니힐 인테리트(omnia mutantur, nihil interit)’ 직역하면 ‘모든 것은 변화할 뿐 사라지는 것은 없다’이다. 로마의 시인 오비디우스가 남긴 문장이라고 한다. 저자는 이 라틴어 문장을 “세상 모든 것이 변해도 우리 본질은 변하지 않는다”라고 해석한다. 라틴어 문장들은 마치 해리포터의 마법 주문처럼 들리기도 한다. 아침마다 거울을 보며 이 문장을 소리 내어 읊는다면 하루를 살아가는 데 필요한 지혜와 용기를 얻을 수 있을 듯하다. (김성신 출판평론가, 비평연대 가디언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