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찬선 시인의 시로 보는 세상 풍경] (6) 양재천 수목터널길에서 건강의 길을 얻다
인터뷰365 홍찬선 칼럼니스트 = 집에서 가까운 숲이 있다는 건 행복이다. 숲과 함께 내가 흐르는 건 축복이다. 숲과 내를 가슴에 품는 건 사랑이다. 사랑이 내와 숲에서 피어나는 건 즐거움이다. 즐거움을 누리는 건 부자다. 늘 깨달음을 얻는 사람이 참부자란 걸, 해 뜰 무렵 양재천 수목터널길을 달리면서 다시금 깨달았다.
양재천은 1990년대 초반에는 악취가 진동하는 5급수였다. 냇물에 물고기가 살 수 없었고 물가 둔치와 습지도 죽어 있었다. 1995년부터 복원되기 시작해 지금은 붕어와 송사리 등 물고기 20여 종, 너구리 멧밭쥐 등 포유류 6여 종, 맹꽁이 두꺼비 등 양서류 10여 종, 박하 망초 등 식물 310여 종, 왕사마귀 꼬리명주나비 등 곤충 80여 종, 황조롱이 수리부엉이 등 조류 40여 종이 사는 자연생태학원으로 바뀌었다. 2015년에 서울시 미래유산으로 지정됐다. 2022년 큰물로 피해를 입었을 때 물억새와 수크령 등을 심어 시민들의 아름다운 산책과 건강달리기 코스가 되었다.
가장 뜨거운 날들이
가장 빨리 지나간다는 걸
나는 그 길 끝에서 알았다
모든 것이 커 보이고
모든 것이 전부 같던 시간
그 안에 나는 있었고
그 밖에 나는 없었다
그러나 시간이 말해주었다
불꽃은 순간이 그늘이 오래 간다고
여름, 그 길을 지나며 나는 비로소
조용히 살아가는 법을 배웠다
- 최원현, '여름, 그 길을 지나며' 전문.
길가에 서 있는 ‘사색의 쉼터’가 그렇다고 알려주었다. ‘양재천의 쉼표’라는 말로 고개를 끄덕였다. 시인과 수필가의 글을 새겨놓은 알림판이었다. 일찍 일어나 사랑의 이중창과 떼창을 부르는 까치와 참새들도 추임새로 거들었다.
사뿐사뿐 달리다 보니 ‘양재천 헌수 수목 터널 길’이란 안내문이 눈에 들어왔다. 2013년 3월부터 2014년 4월까지 왕벚나무 느티나무 복자기나무 등 7종 1013그루를 심었다는 설명이었다.
“이 길은 양재천을 사랑하는 우리 구민들이
마음과 뜻을 모아 손수 나무를 심어 이룬
헌수 수목 터널 길입니다.
봄에는 왕벚나무와 가을에는 단풍 든 느티나무가
계절 따라 옷을 갈아입고 속삭여 오는
사랑의 말을 들으며 걸어 보세요.
우리의 사랑만큼 저들도 사랑을 보내오는 게 보이지 않나요?
우리가 심은 나무들
향기로 색깔로 말을 걸어오는 나무들과
온정 깊은 우리의 사랑도 나무처럼 가꾸어 보면 좋겠습니다.
2014. 11. 20. 강남구”
그동안 양재천 수목터널길을 백여 차례 걷고 달렸을 텐데 이런 설명문이 눈에 들어온 건 처음이다. 마음이 있어야 보이고 마음이 있어야 들린다는 말이 새삼 떠올랐다. 설명문을 읽으며 문득 이 세상에는 다섯 종류의 사람이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달리다 멈춰 메모장을 꺼냈다. 오랜만에 달려 헉헉대는 가슴을 달래며 펜을 들었다.
이 세상에는
다섯 종류의 사람이 있다
피땀 흘리며 심는 사람과
정성 들여 힘껏 가꾸는 사람과
그저 공짜로 누리는 사람과
깊이 고마워하며 널리 알리는 사람과
심술 가득해 자꾸 허물어뜨리는 사람…
양재천 숲길을 달려
멀리 떠나려는 건강을 붙잡으며
나는 어떤 사람인지를 물어보았다
가슴으로
길에게
까치에게
하늘에게
- 홍찬선, '양재천에서 다섯 종류의 사람을 생각하다' 전문.
시를 주우면서 깨달았다. 건강은 약과 의사가 지켜주지 못한다. 건강은 건강할 때에만 지킬 수 있다. 잃은 뒤 땅을 쳐도 떠난 버스는 돌아오지 않는다. 양재천 수목터널길을 뛰며 다시금 생각한다. 쥐어짜듯 아프던 가슴이 시나브로 잔잔해진다. 오늘 며칠 치의 건강을 챙겼다. 시와 글은 덤이었다.
장대비 잠시 그치고
계곡으로 안개 몰려들면
산골짜기마다
물소리 요란하다
산 중턱 고즈넉한 암자
정적 속 목탁소리 들리는 듯
사슴 닮은 비구니 보이지 않고
솥뚜겅 같은 연잎은
고인 빗물 쏟아 놓는다
- 남종구, '소나기' 전문.
마침 양재천 너머 롯데월드타워 123층 옆으로 해가 발갛게 떠올랐다. 달리면서 솟은 땀이 안쓰러웠는지, 구름이 살며시 햇살을 가려주었다. 건강의 길을 얻은 양재천 수목터널길은 그렇게 하루를 힘차게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