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중헌의 문화와 사람] '파리의 두 여인', 한·러·카자흐 3개국 합동으로 펼친 한민족 수난사

- 나진환 작 연출의 광복 80주년 기념 공연 - 아나스타샤, 한윤춘 등 3개국 배우들의 연기 앙상블도 볼만 - 서사 길고 통역까지 해야 해 관극 쉽지 않아

2025-06-26     정중헌 기획자문위원

생지옥보다 더 끔찍했던 한인들의 수난사

인터뷰365 정중헌 기획자문위원 = 스탈린의 강제 이주 정책에 관심이 있었던 필자는 6월 25일 나진환의 연극 '파리의 두 여인'에서 그 아비규환을 목격하고 치를 떨었다.

1937년 연해주에 살던 한인들은 영문도 모른 채 가축을 실어나르는 열차에 태워져 중앙아시아 동토(凍土)에 버려졌다.

기자 시절 우즈베키스탄 타슈켄트에 사는 고려인 화가 니콜라이 신(신순남)을 현지 취재했는데, 그가 그린 '레퀴엠(진혼곡)' 연작에서 보여진 한인 유민사는 너무도 참혹해 기억에 남아있었다. 한데 기록에나 박제돼 있던 그 아수라장을 생생히 재현한 무대를 보고 전율을 금할 수 없었다.

한국, 러시아, 카자흐스탄 3개국 배우들이 펼쳐내는 장장 180분에 이르는 유라시아 대륙의 디아스포라 대서사시. 구어체 대사가 아니라 장문(長文)의 역사와 문학적 서사(敍事)가 배우들의 독백으로 이어지고, 그것을 한국어로 듣고 러시아어 대사는 자막으로 읽어야 하는 고통스런 관극이었지만, 피처럼 진한 이 연극은 뜨거운 가슴으로 읽어내야 할 만큼 소중한 가치를 지녔다고 본다. 적어도 일제강점기를 겪은 한국인이라면 꼭 보아야 할...

5시간짜리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 온갖 고통스런 형식으로 가득한 '단테의 신곡 지옥편' 등 인문학적 성찰 시리즈를 구도자처럼 해온 극단 피악의 나진환 대표가 광복 80주년 기념으로 3개국(한-러-카자흐스탄) 공동 제작의 대작 '파리의 두 여인'을 6월 25일 개막, 29일까지 동국대 이해랑예술극장 무대에 올리고 있다.

나진환

자신이 직접 쓰고 연출하고 제작한 나진환은 이 3시간 대작을 위해 3년 전부터 러시아와 카자흐스탄을 오가며 현지 배우들을 캐스팅하고 한국 배우들과 합동 연습으로 한국인의 수난사를 유라시아 대륙으로 확대시켜 무대 위에 펼쳐냈다.

'파리의 두 여인'. 제목만 보면 낭만적인 영화를 연상케 하지만, 이 연극은 고려인들의 강제이주와 이산(離散), 디아스포라(특정 민족이 자의적 또는 타의적으로 기존에 살던 땅을 떠나 다른 지역으로 이동하여 집단을 형성하는 것)의 역사를 극화한 고난의 민족사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작가이자 연출자인 나진환은 제국주의 일본의 생체실험부터 해방 후 친일 논쟁까지 너무 많은 이야기를 담아내려 했지만, 필자는 인터미션 후반에 펼친 스탈린의 강제이주 실상을 리얼한 연기로 보여준 대목이 이 연극의 하이라이트라고 말하고 싶다.

넓은 무대에 형광 기둥으로 바닥에 경계를 그으면 그 안의 공간은 열차 칸이 되었다. 화장실도 없고 영하 수십 도의 추위에 먹을 것도 없어 날마다 죽어나가는 이 비극의 현장에서 배우들은 온몸으로, 외마디 비명으로 당시의 지옥보다 더한 고통을 보여주었다. 젖이 안 나와 죽은 아기를 열차 밖으로 던져야 하는 남편과 오열하는 아내... 기차가 서면 언 땅을 파 시체를 묻고 서로의 체온으로 추위를 견디며 생존했던 그들은 동토의 땅에서도 끝내 살아내 한국인의 끈질긴 정체성을 이어냈다. 나진환은 일제 치하의 과거에 맴돌던 민족의 수난사를 간도와 연해주를 넘어 오늘의 중앙아시아로, 세계사의 일부로 넓혀놓은 것이다.

나진환이 '파리의 두 여인'에서 보여준 작가적 상상력과 다양한 연출 기법은 독특하면서도 이전보다 업그레이드 되어 훨씬 단순하면서도 강렬한 이미지로 다가왔다.

엄밀히 보자면 이 연극은 다큐멘터리 요소가 짙은 역사극이지만 나진환은 인문학적 상상력을 듬뿍 가미시켰다.

특히 세 나라 시인들과 시를 여러 차례 등장시켰다. 윤동주의 ‘서시’, 이육사의 ‘청포도’, 도스토에프스키와 푸쉬킨(러시아), 아우예조프와 아바이(카자흐스탄)의 시를 통해 그 나라의 정체성과 민족의 정서를 보여주고자 했다. 또한 '벚꽃동산'에서 하층민으로 부를 축적해 영지를 사버리는 로빠한, 괴테의 '파우스트'에 등장하는 식객도 이 연극의 주요 캐릭터로 등장시켰다.

나진환은 유라시아 한민족의 수난사를 보여주기 위해 1940년대 말 시대의 프랑스 파리에 두 여인을 소환해 마주 앉게 했다. 한 여인은 일제강점기 한국의 선구적 여성인 화가 나혜석이다. 또 한 여인은 안톤 체홉의 '벚꽃동산'에 나오는 라넵스키야이다. 나혜석은 실존 인물이지만 라넵스키야는 체홉이 만들어낸 극 중 캐릭터로, 실존 인물과 허구의 인물을 결합해 상상의 지평을 넓힌 것이다.

전반부는 연해주 한인 공동체와 그들의 독립운동 발자취를 픽션을 가미해 극화했다. 라넵스키야의 딸 아나와 나혜석의 잃어버린 아들 내하가 카자흐스탄에서 다시 만나 새로운 삶을 이어가는 설정으로, 과거에 매몰되지 않고 미래의 희망도 보여주고자 했다.

아무튼, 작가 겸 연출자 나진환은 너무도 많은 이야기를 너무도 다양한 상상력으로 펼쳐내 필자가 그 전모를 이해하고 리뷰할 수 있는 한계를 뛰어넘었다. 그래서 관람 후 생각나는 점들만 후기로 남기자고 생각했다.

3국 합작의 이 연극에서 관심의 초점은 배우들이 아닐 수 없다. 나진환 연출은 110년 전통을 지닌 러시아의 스타니슬랍스키 엘렉트로 극장의 배우 3명과 100년 역사의 카자흐스탄 국립 뮤지컬 드라마극장의 배우 2명을 캐스팅했다. 한국에서는 극단 피악의 인문학적 시리즈의 간판 배우인 한윤춘 배우를 필두로 곽수정 문경희 등 연기파 배우를 합류시켰다.

혜석

'파리의 두 여인'에서 주목을 모은 캐릭터는 두 여인이었다.

나혜석은 곽수정 배우가, 라넵스키야는 러시아 스타니슬랍스키 국립 엘렉트로극장 소속 아나스타샤 배우가 맡았다. 두 여인은 서로 대화를 나누거나 극 중에 뛰어들어 연기를 하면서 처음부터 끝까지 무대에서 벌어지는 사건의 목격자가 된다.

곽수정 배우는 강제이주 열차에서 기아로 죽은 아이를 버려야 하는 어머니 역을 처절하게 해냈고, 아나스타샤 배우는 '벚꽃동산'의 몰락해가는 러시아 지주인 라넵스카야 역을 명확한 화술로 기품 있게 해냈다.

필자가 '파리의 두 여인'에서 가장 주목한 배우는 연해주의 독립운동가 영식 역과 후반 메피스토펠레스의 수제자인 식객 역 등 다양한 캐릭터를 심도 있게 열정적으로 표출한 한윤춘 배우였다. 그는 한인 유민사의 비극을 유려한 화술과 신들린듯한 연기로 보여주면서, 때로는 작가의 분신이 되어 극의 메시지를 전하는 역할까지 해냈다.

영식의 부인 혜영 역을 해낸 문경희 배우는 강제이주의 아픈 상처를 지닌 한국의 여인상을 잡초처럼 강인하게 해냈다.

엘렉트로 극장 소속 이브게니 배우는 러시아의 혁명가 트로피모프 역을, 아델리나 배우는 픽션의 인물 아나 역을 맡았다. 카자흐스탄 국립극장의 이실백 배우는 악기를 연주하며 노래하는 카자흐 남자 역으로 극의 아우라를 서정적으로 이끌었으며, 아크마랄 배우는 중앙아시아 여인의 삶을 대변하는 아이샤 역을 맡아 참신한 연기를 보였다. 한국의 중견 배우들인 안성채 남기필 김의현 주인서가 다양한 역할과 코러스까지 겸해 극을 단단하게 이끌어갔다.

나진환 작가 겸 연출가는 이 창작극 '파리의 두 여인'을 통해 연해주 한인 독립운동사, 스탈린의 강제 이주, 중앙아시아 디아스포라를 재조명하여 “한국의 광복이 단지 한 나라의 사건이 아닌 인류 공동의 가치와 기억을 회복하는 여정”임을 상기시키고자 했다. 여기에 여성으로서의 정체성, 시대의 굴레에 휩쓸린 예술가들의 고뇌까지 담으려 했다. 그의 기획 의도는 상당 부분 무대에서 극으로 형상화되었고, 한국의 독립운동사를 러시아에서 중앙아시아(카자흐스탄, 우즈베키스탄 등)로 확장시키며 민족의 정체성을 보여주는 데 성공했다고 본다.

하지만 그의 작품 궤적을 밟아온 필자로서는 한 번에 너무 많은 이야기를 담아내려다 과부하에 걸리지 말고, 여러 편으로 나눠 밀도를 높이고 관객도 배려했으면 하는 아쉬움을 숨길 수 없다. 너무 많은 이야기를 장황하게 펼치면 관객은 그것을 다 소화하기가 버겁기 때문이다.

파리의 두 여인은 노을을 이야기한다. 우리 한민족의 수난의 역사도 그처럼 슬프도록 아름다운 노을 속으로 사라진 것일까, 아니면 뜨거운 태양으로 다시 떠오른 것일까.

이 연극은 동토의 땅에서 희망을 일군 중앙아시아 고려인들을 우리 곁으로 다가서게 했다는 것만으로도 광복 80년 그 이상의 의미를 지녔다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