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두호의 별들의 고향] 회고의 정담(情談)자리 함께한 언론계 원로 거목들
- 박기병·송정숙·함정훈 원로 언론인, 안부 나눔 오찬 함께해
인터뷰365 김두호 기자 = 광화문 거리에 초여름의 산뜻한 바람이 불던 지난 6월 10일 낮, 언론단체들이 모여 있는 프레스센터 지하 음식점에서 신문과 방송사 출신 원로 언론계 별들이 모처럼 안부 나눔의 오찬 자리를 함께했다.
강원민방 사장과 제22대 대한언론인회장을 역임하고 현재도 6.25참전언론인회장과 재외동포저널 회장으로 재임 중인 박기병(1932∼), 서울신문 논설위원, 관훈클럽 총무, 보사부(현 보건복지부)장관을 역임한 송정숙(1936∽), 서울신문 편집국장과 국민일보 사장을 역임한 함정훈(1937∼) 세 원로 언론인들이 건강한 모습으로 오찬 식탁에 둘러앉아 회포의 잔을 나누며 잠시 추억담의 정겨운 시간을 함께했다. 편안하고 흐뭇한 웃음이 피어나기도 한 뜻깊은 이날 자리에 서울신문에서 젊음을 보낸 후배 기자인 필자(1946∽)도 끼어 있었다.
이날 모임은 또 특별한 데가 있다. 지방 취재 일정으로 참석하지 못한 박현수(1963∼) 후배까지 5인의 언론인들이 코로나 사태에서 벗어나던 시기에 그저 목적도 조건도 없이 서로 편안한 마음으로 가끔 일정을 맞추어 대면 안부를 나누며 살자면서 만들어졌다. 모임 명칭은 함정훈 전 사장께서 오우회(五友會)로 작명하셨다. 정보관리학 박사이기도 한 박현수 大기자가 모임의 총무 역할을 하고 있다. 그는 서울신문을 거쳐 문화일보에서 정년을 보내고 지금도 연합통신에서 활동하는 현역이다.
오우회를 통해 새삼 고령화 시대의 일면을 필자 스스로도 실감할 수밖에 없는 것은 ‘인터뷰365’에 기사를 쓰고 있는 필자도 지난 연초에 팔순을 넘어 섰지만 구순의 박기병 선배 어른은 화랑무공훈장을 받은 1950년대 6.25 참전용사의 살아있는 전설 같은 분인데 강원민방 사장을 거쳐 지금도 ‘해외동포저널’의 정기 간행물을 발행하는가 하면 각종 단체의 수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송정숙 전 장관은 기흥에 살면서 직접 핸들을 잡고 서울에서 개최되는 관훈클럽 행사 등 각종 모임에 참석하고 또 한 시대 선망의 명문장 논객으로 필명을 떨쳤던 펜을 놓지 않고 단체나 언론기관 매체에 가끔 글을 올리고 있다.
함정훈 전 사장은 국내 언론사 편집기자들의 멘토였다. 언론사에서의 활동 발자취는 지금도 후배들에게 전설로 회자된다. 서울법대 출신 인맥도 만만치 않았던 그는 서울신문 재직시절 ‘함빠꾸’라는 별명이 생겨났다. 신문사를 옮겨도 평생 그 이름으로 통하고 있다.
신문의 제작 중심에는 편집국의 편집부가 차지하고 있다. 정치 경제 문화 등 각 분야의 기자들이 쓴 원고를 건네받아 제목을 달고 사진을 넣어 판을 짜는 임무를 총괄하는 편집 데스크의 위력은 신문사 편집국 내에서 막강한 권력과 같다. 되돌리는 일본말인 ‘빠꾸’에서 유래된 ‘함빠꾸’는 함량 미달의 기사를 가차 없이 되돌리는 영예로운 악명이었다.
마침내 조금씩 술기운이 퍼지면서 이날 언론의 거목들은 자신들과 인연 깊은 신문사 시절의 친숙한 이름들을 쉬지 않고 불러내 올렸다. 대다수 고인이 된 저명한 인물들과 생전에 나눈 기억들은 나쁘지 않았던 덕담으로 피어났다.
육영수 여사, YS(김영삼), 전통(전두환) 등 청와대 분들을 비롯해 장태화 신우식 이한수 등 전 서울신문 사장, 호현찬 이자헌 이구열 이의제 등 언론인 출신 명사들의 지나간 일화들이 한마디씩 첨가되어 작은 음식점 방안이 그리움과 추억의 공간으로 바뀌었다.
그중에 서울신문 ‘함빠꾸’ 어른의 편집국장 시절, 문화부 데스크를 거쳐 논설위원으로 미문(美文)의 문화면 전문기자로 명성을 날린 송정숙 논설위원이 YS가 자택인 상도동에서 연금 상태일 때 정대철 씨와 몰래 만난 비화를 두고 쓴 칼럼의 내용이 의리의 정치인 YS의 감동적인 면모를 실감케 했다는 기억으로 떠올렸다.
YS정부의 보건사회부 장관으로 임용된 계기가 된 듯한 느낌을 준 것 같았는데 송 전 장관은 그보다 “전통(전두환 전 대통령)이 국회에서 노무현 국회의원에게 호되게 청문 질타를 받을 때 몇 차례 시계를 보는 초조한 추락한 통치자의 애타는 심경을 묘사한 ‘운명의 5공 시계’ 주제의 칼럼 논평이 오히려 더 큰 반향을 일으켰다는 사례를 회고했다.
그때 그 칼럼으로 인해 정치부 기자들과 언론노조들이 전통의 입장을 두둔한 것으로 생각해 ‘전두환의 시계’ 사건을 문제 삼아 대자보를 붙이기도 했는데 “내가 주동 기자에게 정면으로 칼럼 내용을 제대로 읽었느냐를 묻자 대답을 못하였다”며 아직도 그 시절의 감정들이 생생하다고 말했다.
또 송 장관은 YS 정부에 입각해 어떤 행사에서 연설했을 때 YS로부터 “글만 잘 쓰시는 줄 알았는데 말씀도 잘 하시네”라는 찬사를 받은 일도 있었다고 떠올렸다.
한국기자협회 창설의 초기 회장도 지낸 박기병 전 대한언론인협회 회장은 “내가 건방지게 아직껏 6.25참전언론인협회 회장까지 맡고 있다”고 말문을 연 뒤 회원 26명이 쓴 회고록을 발간해 국방부 산하 군인들과 보훈처 관련 단체와 회원들에게 1만 부 넘게 배부, 민족상잔의 역사기록을 전하는 증인으로 임무를 수행한 보람을 이날 마무리 화제로 꽃피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