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현수가 만난 人] “새로운 60년 향해 한일 관계의 굳건한 디딤돌 될 것”
[인터뷰365] '제10회 조선통신사의 길 걷기' 대장정 이끈 허남정 단장 - 한일국교정상화 60년, 광복 80주년, 을사늑약 120년의 해 맞아 - 한·일 마음 잇는 1200㎞, 조선통신사 정신 다시 걸었다 - 서울서 도쿄까지, 조선통신사의 길 위에서 피어난 한·일 시민외교 - “일본 땅 밟으며 울컥…시민이 만든 가장 아름다운 외교” - 역사와 사람을 잇는 여정, 발로 체험한 한일관계 400년 - 2007년 시작된 걷기 대장정의 의미와 올해 10회째 발자취
인터뷰365 박현수 편집위원 = 한일 국교 정상화 60주년을 기념하며 지난 3월 9일 서울 경복궁을 출발해 일본 도쿄 히비야 공원까지 53일간 장장 1200㎞를 걸었던 제10회 조선통신사 한·일 우정 걷기 대장정이 성공적으로 끝났다.
한국체육진흥회(회장 선상규)가 주최한 이 행사는 조선통신사 파견 400주년이 되는 지난 2007년, 우리 선조들의 성신교린(誠信交隣)의 숭고한 정신을 계승 발전시키고자 시작되어 이후 격년제로 실시되고 있다.
이번 대장정을 성공적으로 이끈 허남정 단장(전 한일경제협회 전무이사)을 지난 27일 서울 정동에서 만나, 대장정에 담긴 의미와 성과, 발자취 등에 대한 깊이 있는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허 단장은 인터뷰에서 “올해는 한일 국교 정상화 60주년뿐만 아니라 을사늑약체결 120년, 광복 80주년을 맞는 뜻깊은 해에 양국 합쳐 70명의 참가자 중 처음으로 한국 측 참가자가 일본보다 많아졌다는 점이 인상 깊었다"며 의미를 부여했다. 그는 이러한 변화의 배경을 2023년 한국의 1인당 GDP가 일본을 앞지른 현실과 일본 젊은이들 사이의 한국어 열풍에서 찾았다.
"60년 전 국교를 재개했던 시절에는 상상도 못 할 일이죠. 오늘날 일본 젊은 여성들은 한국어 배우기에 열심이고, 한국어와 일본어를 섞어 쓰는 것을 멋지다고 생각한답니다. 젊은 남성들도 한국 패션 트렌드를 모방하고 있고요. 정말 상전벽해입니다."
허 단장의 목소리에는 격세지감이 담겨 있었다.
걷기 여정은 경복궁 흥례문을 시작으로 부산, 쓰시마, 이키섬을 거쳐 하카타에 상륙한 뒤 오사카부터 도쿄까지 이어지는 강행군이었다.
"매일 25~40㎞를 걷는 고된 일정이었지만, 신기하게 몸이 하루하루 적응해 가는 것을 느꼈습니다. 최고령 92세부터 최연소 55세까지 다양한 연령층의 단원들이 함께 숙식하며 서로에게 힘이 되어주었죠."
역사 속에서 발견한 현재, 그리고 미래
허 단장은 걷는 길 위에서 역사와 현재가 교차하는 순간들을 여러 번 마주했다고 회고했다.
"조선통신사는 임진왜란 이후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강력한 국교 회복 여망으로 시작되었습니다. 이에야스는 임진왜란의 원죄가 없었고, 조선 역시 포로 송환과 만주 여진족의 위협에 대처하기 위해 일본과의 관계 안정이 절실했기에, 임진왜란이 끝난 지 10년도 채 되지 않아 철천지원수였던 일본에 외교 사절단을 파견한 것이죠. 200여 년간 12차례 파견을 통해 양국 간에 평화가 유지될 수 있었던 중요한 역사입니다."
충주에서는 조선통신사 부사를 지낸 박재 선생의 후손들이 환영 현수막을 걸고 기다리던 모습에 깊은 감동을 받았다고 전했다.
"역사적 인물의 후손들이 오늘날까지 그 정신을 기리고 있다는 사실이 매우 뜻깊었습니다. 우연히 만난 한국인 유학생 커플과 일본인 예비 신부의 이야기는 젊은 세대의 자연스러운 한일 교류를 보여주는 단면이었죠. 이러한 교류가 새로운 60년을 여는 희망이 되리라 생각했습니다."
걷기 여정 중에는 다양한 문화적 차이도 경험했다.
"일본 단원들의 세련된 매너와 양보하는 자세, 그리고 지구 환경 보전에 대한 높은 의식 수준은 본받을 점이 많았습니다. 특히 60대 초반의 일본 여성 단원이 '슈카츠(終活)', 즉 죽음을 준비하는 삶에 집중하고 있다는 이야기는 일본인들의 독특한 사생관을 엿볼 수 있는 부분이었습니다. 건강하고 머리가 맑을 때 죽음을 준비해야 한다는 그녀의 말은 많은 생각을 하게 했습니다."
반면, 한국의 환경 문제에 대한 아쉬움도 토로했다.
"어느 한국 단원이 '우리나라는 전국이 공사판에다 쓰레기장'이라고 말했는데, 과연 걸어보니 어디나 쓰레기가 넘쳐나더라고요. 서울올림픽 이후 변화된 우리의 화장실 문화는 일본인들도 부러워하는데, 이제는 쓰레기 문제 해결을 위한 범국민 캠페인이 절실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는 박태준 포항제철 회장이 공장에 호텔 수준의 목욕탕을 만들어 목욕 문화 확산에 힘썼던 일화를 예로 들며, 청결 문화가 생산성 향상으로 이어진다는 점을 강조했다.
국경을 넘어선 우정과 감동의 순간들
문경에서는 박정희 전 대통령이 초등학교 교사로 재직하던 1937년부터 1940년까지 약 4년간 하숙을 했던 청운각을 방문해 그의 리더십과 선각자다운 혜안에 대한 존경심을 드러냈다.
"새벽 6시에 산에 올라 트럼펫을 불어 마을 사람들을 깨웠다는 이야기는 박정희 대통령의 강한 의지를 보여주는 일화였습니다. 우리나라의 산업화 토대를 만든 리더로서 그의 혜안은 100년 앞을 내다본 것이었죠."
안동에서는 하회마을, 병산서원 등을 둘러보며 선조들의 숨결을 느꼈다고 했다. 특히 한국국학진흥원에서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인 '한국의 유교 책판'을 보고 명필들의 친필을 친견하며 양국 단원 모두에게 의미 있는 시간을 보냈다고 말했다.
일본에 들어서면서는 더욱 다양한 교류의 순간들이 있었다고 했다.
"오사카 민단에서의 환영식은 잊을 수 없습니다. 한복을 곱게 차려입은 수십 명의 어머니들이 건물 입구에 도열해 박수를 치며 우리를 맞아주셨고, 어머니 합창단의 노래를 들으며 재일동포들의 신산했던 고난의 역사를 떠올리니 눈시울이 뜨거워졌습니다. 마지막으로 모든 참가자가 손을 잡고 아리랑을 합창하며 감동을 나눴죠."
특히 교토 요도가와 강변의 깨끗한 풍경은 허 단장에게 깊은 인상을 주었다고 했다.
"시민들이 자기 쓰레기는 자기가 책임지고 가지고 간다는 이야기에 놀랐습니다. 우리의 1인당 GDP가 일본을 추월했지만, 그들이 100년 이상 갈고닦은 선진국의 의식 수준에 도달하려면 아직 시간이 더 필요하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마침내 도착한 일본 땅, 도쿄에서 꽃핀 감격
여정이 후반부로 갈수록 피로가 누적되어 건강에 이상이 생기는 단원들도 나타났지만, 허 단장은 서로를 격려하며 완주에 대한 의지를 다졌다고 했다.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출세길이자 쇼군과 조선통신사에게만 통행이 허용되었던 조선인가도(朝鮮人街道)를 걸을 때는 감회가 새로웠습니다. 역사적 현장을 직접 발로 밟으며 그 의미를 되새기는 시간이었습니다."
나고야에서는 노부나가, 히데요시, 이에야스의 역사를 품은 성들을 둘러보며 일본 역사의 흐름을 짚었고, “지뗀샤! 구루마!”를 외치며 안전 보행을 환기시키는 일본 단원들의 외침은 일상 속에서 느껴지는 문화 차이이자 배려였다고 전했다.
대망의 D-day, 도쿄 히비야 공원에 입성하는 순간은 허 단장에게 벅찬 감격이었다고 말했다.
"120여 명의 행렬이 황궁 인근을 지나는 모습은 장관이었고, 서양 관광객들이 신기한 듯 우리를 쳐다보았습니다. 사쿠라다문을 지나 히비야 공원에 들어서니 민단 관계자들과 수많은 시민들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고, 그들의 박수와 사물놀이패의 풍악 소리가 공원에 울려 퍼졌습니다."
허 단장은 "서울을 떠나 걸어서 1200㎞의 여정. 우여곡절도 있었지만, 단원들의 협력과 좋은 날씨, 그리고 일본 단원들의 헌신적인 지원에 힘입어 골인했다“며 벅찬 감격에 눈시울이 뜨거워지는 순간이었다고 회상했다.
허 단장은 마지막으로 이번 걷기 대장정이 한일 국교 정상화 60주년을 맞아 새로운 60년을 향해 나아갈 양국 관계의 굳건한 디딤돌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함께 걷고, 듣고, 보고, 느낀 이 모든 순간들이 소중한 경험이 되어 앞으로의 한일 관계를 상상하는 데 큰 자양분이 될 것입니다."
그는 글로 형언하기조차 힘들었을 조선통신사 걷기 행사 중에도 매일 자신의 블로그에 기록을 남겼고, 특히 르포 형식으로 문화일보에 9회에 걸쳐 꾸준히 기고하며 독자들과 공유해 더욱 의미가 컸다는 평가를 받았다. 발로 쓴 외교이자, 발자국마다 피어난 우정의 기록이다.
제10회 조선통신사 걷기대장정은 단순한 이벤트를 넘어 한일 양국 시민 외교의 모범적 사례로 기록될 것이다. 허남정 단장의 리더십은 그 길 위에서 사람과 역사, 국가를 하나로 묶는 ‘교린(交隣)의 정신’을 오롯이 보여줬다.
허 단장은 인터뷰 말미에 한국 일본 구간을 53일간 걸으면서 많은 사람들과 교류하는 가운데 박정희와 도쿠가와 이에야스를 대비해 보았다고 밝힌 점이 주목을 끌었다.
1598년 임진왜란이 끝나고 10년도 되지 않은 1607년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일본 내 정치·경제 혼란을 수습하기 위해 조선과의 조속한 국교 재개를 요청하고 조선통신사 파견을 성사시키며 국교를 안정화하고 무역을 재개했다. 그 결과 200년간 에도시대의 평화와 번영을 견인했으며 조선통신사는 당시 일본 외교의 상징이자 번영의 상징이 됐다.
또한 박정희 대통령은 1965년 한국 내 강한 반대 여론에도 불구하고 한일 국교 정상화 단행했다. 한일국교 정상화를 통해 경제 성장과 산업화 기반 마련, 보릿고개를 해소했다. 그 결과 불과 60년 만에 한국이 일본을 능가하는 경제적 도약을 이루는 기적을 창출했다.
허 단장은 도쿠가와 이에야스와 박정희의 공통점으로 두 인물 모두 무장(군인) 출신으로 명분보다 실리를 택했으며, 국익을 위해 과감한 결단을 내렸다는 점을 들었다.
그는 한일 관계의 새로운 60년을 위한 제언으로 조선통신사의 '성신교린(誠信交隣)' 정신을 오늘에 되살려야 한다고 강조한다. 이웃 국가와 평화 속의 공존공영은 현실적으로 선택이 아닌 필수라는 것이다.
일본은 강한 자에게 협조하는 외교 문화를 갖고 있다. 지금은 한류 열풍과 콘텐츠 경쟁력으로 한국이 협상 주도권을 가질 수 있는 '적기'라고 주장한다. 또한 한일 협력의 파급 효과로 중국, 미국과의 외교적 지렛대로 작용할 수 있다고 한다.
이 밖에 과거사 문제는 고질병처럼 악화될 위험이 있으므로 양국 정부의 현명한 관리 필요하다고 했다. 감정적 대응보다는 실용적·미래지향적 대응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외교적으로 ‘관리’할 대상이지 ‘해결’ 가능한 문제가 아님을 인정해야 한다고 밝힌 부분은 많은 생각거리를 던져줬다.
허남정 제10회 조선통신사 단장은
그는 1981년 외환은행(현 하나은행)에서 근무하다가 은행 일이 체질에 맞지 않아 퇴직한 뒤, 와세다대학 연구소에서 1년간 연수를 받고 귀국했다. 이후 외국어대 통역대학원 한일과를 졸업한 후 박태준 포항제철(현 포스코) 사장의 신문 칼럼에 감명받아, 대학원 후배의 소개로 한일경제협회에 입사했다.
허남정은 한일경제협회에서 27년간 활동하며 한일 간 민간 경제협력과 산업협력 지원사업에 힘썼고, 약 200여 차례 일본을 오가며 양국 간 교류의 현장에서 활약했다.
그는 박태준(초대 회장), 박용학(대농그룹 회장), 김상하(삼양사 회장) 세 사람을 자신의 은인으로 꼽으며, 이들로부터 많은 영향을 받았다고 했다. 특히 박태준 회장의 ‘지일(知日), 용일(用日), 극일(克日)’이라는 실용주의 대일관을 내면화해왔다.
퇴임 후에는 한양대학교 대학원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학위 논문은 ‘박태준 리더십에 대한 재고찰-일본 문화적 속성의 발현과 그 변용’. 또한, 일본인 교회에서 설교 통역으로 10여 년간 봉사하며 일본어 실력을 유지해왔다.
현재 허남정은 매일 새벽 5시 기상과 독서, 기공 수련 등으로 심신의 건강을 관리하며, 신문 기고와 저술 활동도 활발히 이어가고 있다.
저서는 ‘박태준이 답이다’, ‘산티아고 순례자들’, ‘일본은 원수인가 이웃인가’, ‘사랑스럽습니다, 그립습니다’ 등이 있으며 ‘박태준이 답이다’는 일본에서도 번역 출간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