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숏평 - 새로운 서평] 눈물상자·넥서스·삶의 발명 外

- [비평연대] 서민서·최상현·김재훈·백희성·김성신의 500자 서평

2025-06-13     김리선 기자

젊은 문화비평가와 출판전문가들의 커뮤니티인 '비평연대'는 숏폼콘텐츠 시대에 대응하기 위해 500자 내외의 '매우 짧은 연대 서평'의 형식을 고안했습니다. 2030세대 지식인 특유의 빛나는 감각으로 제시되는 다양한 책들을 통해 지식의 최전선을 경험할 수 있습니다. [인터뷰365 편집자주]


■ 눈물상자(한강 지음, 봄로야 그림, 문학동네, 2008)

눈물상자(한강

사람이 눈물을 흘리는 이유만큼 눈물을 참는 이유도 다양하다. 어쩌면 더 다양할 수도 있다. 누군가는 울면 지는 거라는 세상의 목소리에 눈물을 굳힌다. 누군가는 울어도 달래줄 사람이 없어서 눈물을 얼린다. 누군가는 울어봤자 달라질 게 없어서 눈물을 말린다. 오래 틀어막힌 눈물샘은 꽉 막혀서 펑펑 울고 싶을 때도 가슴만 먹먹하다.

슬픔의 결을 고르는데 탁월한 한강 작가가 눈물샘 고장 난 어른들을 위해 동화를 썼다. 낙엽만 굴러가도 와르르 눈물이 쏟아지는 아이가 주인공이다. 아마 오래도록 눈물을 삼킨 어른이라면 ‘나도 어릴 땐 울고 싶을 때 실컷 울었는데’ 아련해질 수밖에 없을 거다.

눈물단지라고 놀림받는 아이에게 눈물 수집가가 찾아온다. 모든 눈물 이전의 가장 순수한 눈물을 찾기 위해 울보로 소문난 아이를 찾아온 것. 순수한 눈물은 아이만 흘릴 수 있을까. 눈물을 사서라도 흘리고 싶은 어른은 어떤 어른일까. 눈물은 정말 숨겨야 하는 것일까.

작가는 말한다. 예기치 않은 순간에 우리를 구하러 오는 눈물이 감사하다고. 한바탕 시원하게 울고 비 온 뒤 하늘같이 맑게 갠 기분을 느끼고 싶다면 이 책을 권한다.(서민서 / 출판마케터·비평연대)

서민서

■ 우울증 가이드북(오지은·반유화 지음, 위즈덤하우스, 2025)

우울증

일을 하면서 자주 깜빡하고, 실수가 잦아들었다. 상사에게 지적받을 때마다 자신감이 떨어지는 악순환의 고리에서 자꾸 걸려 넘어지기 시작했다. 책을 읽어도 활자가 읽히지 않았고 휴일에도 출근 걱정에 마음 편히 쉴 수 없었다. 설상가상 출퇴근길 지하철에서 숨이 막혀왔다. 아무렇지 않게 지내던 일상이 고장 난 것 같아 무작정 병원을 찾았다. 우울증이었다.

사실 우울증 키워드가 적힌 책은 찾고 싶지 않았다. 기대하며 읽은 책 대부분이 기-승-전-자기돌봄이라는 뻔한 클리셰 반복이었다. 유익한 정보보단 잠깐의 힐링만 얻을 뿐, 책장을 덮자마자 냉소를 지었다. 현실은 책과 다르게 병원이란 문턱을 넘기조차 쉽지 않았다. 대기자가 많아 ‘6개월은 기다리셔야 합니다’라는 응답을 받기도, 어렵게 병원에 찾아갔어도 의사의 시큰둥한 반응에 상처를 입는 일도 있었기에 병원을 불신했다.

하지만 막상 아프면 지푸라기 집는 심정으로 집는 법. 우울증인 것 같은데 병원까지 가기 망설이는 분들이 있다면 이 책을 펼치라고 당부하고 싶다. 우울증 진단부터 약에 대한 의심까지 걷어주는 문턱 낮춤이의 역할을 해 주는 친절한 가이드북이니까. 나의 의지만으로는 도저히 회복되지 않을 때, 의사 선생님은 환자의 이야기를 어떻게 듣고 진단을 내릴지 궁금할 때, 한번 내원하면 비용 부담 때문에 가기 망설여질 때 이 책은 여러분에게 유익한 정보를 아낌없이 제공한다.(최상현/ 출판평론가·9N비평연대)

최상현 

■ 넥서스(유발 하라리 지음, 김영사, 2024)

"정보의 결정적인 특징은 재현이 아니라 연결이며, 따라서 정보란 서로 다른 지점들을 네트워크로 연결하는 무언가이다."

"정보는 진실의 원재료가 아니다. 인간의 정보 네트워크는 진실을 발견하는 것만이 목표가 아니다. 인간의 정보 네트워크가 성공하기 위해서는 진실 발견과 질서 유지 두 가지가 공존해야 한다."

예로부터 난 학자들의 책을 다소 좋아하진 않았다. 읽는 내내 머리가 아파서다. 이번 책도 그래서 손이 가지 않았지만, AI가 우리 삶에 생각보다 이젠 많이 들어와 있다 보니 궁금해서 손이 갔다. 역시나 머리가 좀 아프지만 조금은, 이전과 다른 느낌이 있었다. 역사 속, 정보로 인한 인간 사회의 현상들을 풀어내는데 그 이야기들이 흥미롭다. 그리고 끝내 마주할 미래의 AI에 대해 우린 어떤 스탠스를 가져야 하는가.

정보는 우리를 얼마든지 흔들 수 있다. 책의 구절 중 2017년에 미얀마 반로힝야족 사람들이 죽고 강간당하며, 쫒겨났다. 발단은 SNS였다. 우리도 접하고 있다. 인스타 유튜브에서 우리에게 제공하고 있는 알고리즘으로 인해서다. 읽다 보니 얼마 전 본 영화가 생각이 난다. AI가 스스로 진화하여 대중에게 거짓 정보, 오류를 노출하면서 사회에 혼란이 일어나고 종교화되는 모습을. 책은 이런 AI와 거짓 정보의 어두운 이면들의 모습을 우려하며 독자들에게 직면하도록 한다.

이 책은 답을 주지 않는다. 하지만 정보와 다가올 AI 발전의 영향에 대해서 생각해 보게 한다.

"AI가 나오기 이전에도 정보의 오류로 인간 사회의 큰 영향을 미치는데 미래엔 더 심각하지 않을까? 나는 이 현상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가?"

답을 찾지는 못했지만, 많은 생각을 해보게 한다. 내용의 흐름만을 본다면 다소 독자들이 지칠 수 있을 것 같다. 주제를 위한 이야기들이 다소 반복되고 장문으로 풀어져 버려 조금 흐름에 방해가 될 수 있어 보인다. 하지만, 저자의 생각과 이런 현상들을 담은 이 책은 우리가 한 번쯤은 생각을 해보아야 하기에 여유를 가지고 접하길 권한다.(김재훈/ 건축설계·공간 디자인·비평연대)

김재훈 

■ 목표는 천하무적(우치다 다쓰루 지음, 박동섭 옮김, 유유, 2025)

목표는

무술책인 줄 알았는데, 내 인생을 겨냥하다

처음 이 책을 손에 들었을 때, 머릿속에 가장 먼저 떠오른 말은 솔직히 이랬다. “아니, 제목 뭐야. 누가 이런 걸 지었지?”‘목표는 천하무적’이라니, 너무 과장되거나 유치하게까지 느껴졌고, 무엇보다도 나는 무술엔 전혀 관심도, 배경지식도 없는 사람이었다. 아니, 단 한 번도 무술 관련 책을 자발적으로 펼쳐본 적도 없었다. 그야말로 온갖 선입견과 편견을 듬뿍 안은 채 첫 페이지를 넘겼다.

그런데 말이다. 책을 덮는 순간, 나도 모르게 혼잣말이 나왔다. “와… 제목 하나는 진짜 잘 지었다.”

이 책은 겉으로 보기엔 무도와 관련된 글 같지만, 사실은 삶의 중심을 어떻게 세울 것인가에 대한 이야기다. 싸우기 위한 기술이 아니라, 살아가기 위한 태도를 말하는 책이다. 우치다 다쓰루 선생의 무도 정신은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싸움에서 이기는 힘'이 아니라, 오히려 ‘자기 자신을 중심에 놓고 살아가는 법’에 가깝다. 남과의 경쟁은 무의미하고, 비교는 더욱 불필요하다. 오히려 지금 내가 가진 것으로 할 수 있는 것을 해보는 것, 바로 거기에서 삶의 에너지가 생겨난다는 것을 알려준다.

읽는 동안 자꾸만 내가 좋아했던 만화책, 이노우에 타케히코의 '배가본드'가 떠올랐다. 무야모토 무사시를 주인공으로 한 작품으로, 나는 이 만화를 백 번도 넘게 읽었을 정도로 좋아했다. 그런데 그 만화도 후반부로 갈수록 많은 독자가 지루하다고 느끼는 부분이 있다. 무사시가 더 이상 화려한 칼싸움을 하지 않고, 한 사람으로서의 깊은 고뇌와 성찰을 시작하는 시점. 나도 예전엔 그 부분을 조금은 갑갑하게 느꼈다. “도대체 왜 이러는 걸까?” 하고. 하지만 이 책을 읽고 나서야, 무사시의 그 ‘비전투적 침묵’이 오히려 무도의 정수라는 것을 비로소 이해하게 되었다.

책을 읽다 보니, 문득 떠오르는 두 친구가 있었다. 둘 다 사진작가가 되기를 꿈꾸었고, 열심히 준비하고 있었다. 한 명은 성실하게 사진 서적을 읽고, 사진가들을 찾아다니며 조언을 구하고, 실력을 차곡차곡 쌓아갔다. 다른 한 명은 사진기조차 갖고 있지 않았다.

다만, 손가락으로 네모 프레임을 만들어 세상을 바라보며, ‘무엇을 왜 찍고 싶은가’라는 질문을 품고 묵묵히 스스로를 들여다보았다. 그때 나는 두 번째 친구에게 이런 조언을 했었다. “빨리 작가가 되고 싶으면, 빨리 배우는 게 좋아. 이론부터 먼저 익혀.” 하지만 그 친구는 고개를 저으며 이렇게 말했었다. “나는 내가 지금 가지고 있는 시선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찾고 싶어.”

몇 년이 흐르고 나서, 그 결과는 조금 아이러니했다. 지식과 기술을 빠르게 흡수했던 첫 번째 친구는 결국 혼란 속에서 사진을 포기했고, 시행착오와 어설픔 속에서도 꾸준히 자기만의 시선을 갈고닦은 두 번째 친구는 지금은 사람들이 주목하는 사진작가가 되었다. 그의 사진엔 어딘지 모르게 묘한 울림이 있다. 매뉴얼이나 기술서로는 설명할 수 없는 독특한 감각, 삶을 겪어낸 사람만이 보여줄 수 있는 시선이 담겨 있다.

이 책도 그렇다. “완벽한 준비가 되어야 시작할 수 있다”라는 강박을 부수고, 지금 내가 가진 것으로 한 걸음 내딛게 해준다. 물론 실패할 수 있다. 어설플 수도 있다. 하지만 그 모든 과정이 결국엔 나만의 중심을 만들어주는 여정이라는 것을 이 책은 조용히 알려준다. 진짜 중요한 건 ‘완벽한 기회’가 아니라, 마음이 움직이는 그 순간을 붙잡는 용기라는 것. 그렇게 무도정신은 도장에서만 필요한 게 아니라, 우리의 일상 한가운데에서 반드시 필요한 삶의 태도가 된다.

이 책을 펼치게 된 것이 우연이라면, 참으로 잘 된 우연이다. 무도를 몰라도 좋다. 오히려 모르면 더 좋다. 이 책은 싸우는 법이 아니라, 흔들리지 않고 살아가는 법을 알려주는 책이다.

무한경쟁의 시대에, 모두가 지치고 휘청이는 오늘날. 이 책 한 권이 우리에게 속삭인다. “하늘 아래 적은 없다. 오직 나만이 있을 뿐이다.”(백희성 / KEAB건축사사무소 대표건축사·작가)

백희성

■ 삶의 발명-당신은 어떤 이야기의 일부가 되겠습니까(정혜윤 지음, 위고, 2023)

삶의

사랑을 말하는 문장이 뜨거운 선동처럼 느껴지는 것도 신기하다. 정혜윤이라는 저자의 문장은 아름답지만, 그저 반짝이는 것들을 펼쳐 늘어놓는 것에 그치지 않는다. 그 예쁜 것으로 가슴을 찌른다. 예리하게 파고든 그 이야기들은 우리 머릿속 오랜 생각의 틀에 균열을 만들고, 부수고, 깨뜨려 결국 한 걸음 더 내딛도록 만든다.

이야기를 좋아하는 사람은 대체로 선량하다. 이야기란 어떤 식으로든 인과로 얽혀 있는 상상이고, 자연스럽게 결말을 생각하게 만든다. 우린 수많은 상상의 경험을 통해, 해야 할 일과 하지 말아야 할 일, 절대 해서는 안 되는 짓에 대한 경계도 알게 된다. 만약 이야기 없이, 실제의 경험만을 통해서 배울 수 있었다면, 아마도 우리는 문명을 만들지 못했을 것이다. 그러니까 이야기는 인류 문명의 근간이기도 하다.

우리 인류는 ‘이야기 공동체’이기도 하다고 저자는 말한다. 모닥불 가에서 이야기를 나누며 진화한 생명체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우리는 이 세상에 좋은 이야기를 들려줘야 하는 의무가 있다고 강조한다. 사람을 변화시키고 세상을 바꿀 수 있는 이야기의 놀라운 힘을 보여주는 책이다.(김성신 출판평론가·비평연대 가디언즈)

김성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