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숏평 - 새로운 서평] 일하지 않을 용기·착한 대화 콤플렉스外

- [비평연대] 김성신·이솔림·김상화·황예린·백희성의 500자 서평

2025-05-30     김리선 기자

젊은 문화비평가와 출판전문가들의 커뮤니티인 '비평연대'는 숏폼콘텐츠 시대에 대응하기 위해 500자 내외의 '매우 짧은 연대 서평'의 형식을 고안했습니다. 2030세대 지식인 특유의 빛나는 감각으로 제시되는 다양한 책들을 통해 지식의 최전선을 경험할 수 있습니다. [인터뷰365 편집자주]


일하지 않을 용기-일해야 산다는 강요에 맞서는 사람들 (데이비드 프레인 지음, 장상미 옮김, 끌리는책, 2025)

"누군가 일에 대한 애착을 고백할 때는 그 일이 본질적으로 만족스러운 경험을 선사해서일 수도 있지만 사회적으로 검증된 지위를 가진 다른 성취의 기회가 없다는 것에 대한 좌절감의 표현일 수도 있다."

때론 단 하나의 문장이 한 권의 책 전체를 시원하게 가로지르고 있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이 문장을 만났을 때 그랬다. 더 설명해야 할까? 이 책을 읽어야 할 이유를. (김성신/출판평론가, 비평연대 가디언즈)

김성신<br>

착한 대화 콤플렉스 (유승민 지음, 투래빗, 2025)

말을 시원시원하게 뱉는 사람이 있다. 반면 '우물쭈물 인간'인 나는 고심해서 겨우 몇 마디를 꺼내고도 행여 실수한 것은 없는지 고민한다. 심지어 말한 시간보다 그 말을 되짚는 시간이 더 길 때도 있다. 그러나 아무리 궁리한들 어떻게 실수가 없겠나. 임기응변의 부재, 그리고 머릿속 생각을 재빠르게 언어로 조합하지 못하는 서툰 언변 때문에 부끄러운 순간은 반복된다. 이미 뱉은 말을 주워 담을 수도 없으니 그저 쥐구멍에 머리를 처박고 싶은 심정이다. 이 책 표지의 오리처럼.

'말실수가 두려워 말수를 줄이는 우리의 자화상'이라는 부제에서 드러나듯, 이 책은 실수 끝에 결국 침묵을 선택한 이들을 위해 쓰였다. 침묵의 난점은, 내 실수는 막아줄지 몰라도 남의 실수까지 막지는 못한다는 것이다. 귀찮은 일을 만들지 않으려 택한 "안 보면 그만"의 자세는 결국 '내가 옳다고 믿는 나'와 '뭘 잘못했는지조차 모르는 그'를 영원히 단절시켜 버린다. 그러니 말해야 한다. 세상은 어쨌든 말로 이루어지니까.

읽다 보면 마음이 너그러워지는 책이다. 나처럼 늘 조마조마한 심정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이 책을 침대 곁에 두길 권한다. 새로 저지른 실수로 잠 못 이루는 시간을 줄여줄 테니. (이솔림/출판편집자·비평연대)

이솔림<br>

봄철 한정 딸기 타르트 사건 (요네자와 호노부 지음, 김선영 옮김, 엘릭시르, 2016)

기분 좋게 읽을 수 있는 일상 추리물을 찾고 있다면? 요네자와 호노부를 추천한다. '봄철 한정 딸기 타르트 사건'은 요네자와 호노부의 대표적인 학원 청춘 미스터리로, 일명 '소시민 시리즈' 제1권이다. 사계절을 테마로 '여름철 한정 트로피컬 파르페 사건', '가을철 한정 구리킨톤 사건', '겨울철 한정 봉봉 쇼콜라 사건' 편으로 이어진다. 책 제목에서도 드러나지만 책마다 달콤한 디저트가 사건의 촉매가 되는 것이 특징. 고등학교에 갓 입학한 남고생 '고바토'와 여고생 '오사나이'가 콤비가 되어 학교생활 속 미스터리를 파헤치는 내용이다.

다른 학원 청춘 미스터리와 이 시리즈의 차이점은 두 주인공이 철저하게 '소시민을 지향한다'는 데 있다. 사연이 있다. 고바토와 오사나이는 같은 중학교 출신으로, 각각 비상한 두뇌와 강한 집념하에 교내에서 탐정처럼 활약해 왔다. 그러나 고교 입학 전, 둘은 이 기세가 꺾이는 모종의 사건을 겪는다(이 책에선 드러나지 않는다). 그 후 "더 이상 탐정 흉내는 내지 않겠다"고 서로가 서로에게 굳게 약속하게 된 것.

그렇기에 고등학교에서 벌어지는 각종 수수께끼들 앞에서 둘은 '결심대로 소시민이 되어 사건을 지나칠 것인가' 혹은 '결국 탐정이 될 것인가' 지독하게 갈망하게 된다. 눈에 띄는 행동은 자제키로 했지만, 자꾸만 눈앞에 놓이는 미스테리한 사건들에 매번 추리 본능을 느끼는 두 사람. 이들의 갈망은 시리즈 전체를 관통하며 내내 소설의 긴장감을 유지시킨다.

이 책의 가장 큰 매력은 고바토와 오사나이의 관계성이다. 두뇌 회전이 빠른 참견쟁이 고바토, 조용하지만 그만큼 은둔에 강한 오사나이. 둘은 친구이자 철저한 비즈니스 콤비다. 가끔 연인 관계를 빙자하기도 하지만 이는 탐정 활동 중 궁지에 몰렸을 때 탈출의 핑계로만 쓴다. 서로의 사생활은 확실히 존중하되, 지근거리에서 서로의 암약을 돕는 두 사람의 케미가 쫄깃하다. 핵심 사건은 오사나이의 자전거가 두 사람의 눈앞에서 도난당하며 시작된다. 그 자전거 속에는 디저트에 죽고 못 사는 오사나이가 소중히 기다려 온 '봄철 한정 딸기 타르트'가 들어 있었다. '발작 버튼'이 눌려버린 오사나이와 그를 말려야 할지 말아야 할지 난황에 빠진 고바토. 둘은 정말 소시민이 될 수 있을까? 봄의 끝자락, 가볍고 귀여운 추리소설로 추천한다. (김상화/출판편집자·비평연대)

김상화<br>

망고와 수류탄 (기시 마사히코 지음, 정세경 옮김, 두 번째 테제, 2021)

제국을 위해 죽으라고 무시무시한 수류탄을 쥐여 줬던 사람과 같은 정체성을 가진 ‘일본인’ 학자에게 다정함을 가득 담아 달콤한 망고를 건네주기까지, 한 사람의 인생은 어떤 굴곡을 거쳐 왔을까? 그 삶은 우리에게 무엇을 시사할까? ‘망고와 수류탄’은 식민지로서 태평양 전쟁의 상흔을 간직한 오키나와를 연구하는 일본의 사회학자 기시 마사히코가 우리에게 던지는 질문이다.

개인의 기억을 끄집어내어 입 밖으로 나오게 된 말들은 진실이기도 진실이 아니기도 하다. 여러 겹이 쌓여 바삭한 페이스트리처럼, 한마디 말은 시간과 상황, 주관적 해석을 비롯한 온갖 맥락이 층층이 쌓여 부풀어진 채로 세상에 나오기 때문이다. 하지만 저마다의 삶의 경험에 대한 구술은 단순히 흥미진진한 이야기가 아닌 거시 역사의 일부이기에 아무렇게나 좋을 대로 들을 수 없다. 구술자의 말을 오염시키지 않으면서도 의미 있는 결과물로 해석해 내는 과정에서 길을 잃지 않기 위한 연구자들의 고민과 노력이 한 권의 책에 고스란히 담겼다.

사회학자가 아닐지라도 질적 조사 방법론에 대해 제법 심도 있게 다루는 이 책을 내려놓을 수 없는 이유는, 우리가 소통하는 자세를 돌이켜 보게 만들기 때문이다. 타인을 이해할 필요조차 못 느끼고 아주 단편적인 현상으로만 판단하는 매몰찬 현대 사회에, 한 사회학자가 타인의 삶을 있는 그대로 이해하고 그 의미를 찾아 헤매는 광경은 깊은 울림을 준다.

내가 이해할 수 없단 이유로 타인을 배제해야 할 대상으로 선을 긋고, 날을 세워 대하는 세상을 향해 이 책은 외친다. 우리는 누구도 서로를 온전히 이해할 수 없기에, 서로의 진심에 가닿기 위해 끊임없이 발버둥 쳐야 한다고. 겉보기엔 수류탄처럼 제법 딱딱한 이 책 한 권이 타인에게 조금 더 둥글게 대할 수 있는 세상으로 당신을 이끌어줄 망고 몇 알이 될 것이라 믿는다. (황예린/출판마케터·문화비평가·비평연대)

황예린<br>

관계도시 (박희찬 지음, 돌베개, 2024)

덴마크의 맑고 고요한 빛, 그리고 그 속을 흐르는 따뜻한 공기. 박희찬 건축가가 들려주는 덴마크의 도시와 건축, 디자인 이야기는 마치 그 공간을 직접 거닐고 있는 듯한 생생함을 전한다. 해외에서 활동하는 한국인 건축가들이 많아졌지만, 그의 시선은 유독 담담하고 섬세하다. 화려한 건축 언어 대신, 일상의 결을 따라가며 건축과 삶이 맞닿는 지점을 조용히 비춘다.

북유럽 디자인을 사랑하는 이들이라면 한 번쯤 품었을 질문 — 왜 북유럽식 공간은 그렇게도 편안하고 아름다울까? — 에 이 책은 친절하게 답한다. 단순함 속에 깃든 온기, 절제된 선과 자연의 조화를 통해 드러나는 북유럽식 미학. 그 중심에는 ‘테니시 모던’이라는 흥미로운 개념이 놓여 있다. 차갑고 기계적인 모던이 아닌, 손의 흔적과 사람의 숨결이 느껴지는 따뜻한 모던. 그 시대성과 인간미가 섞인 디자인은, 익숙하면서도 새롭다.

덴마크를 말할 때 빠질 수 없는 단어, ‘휘게(Hygge)’. 촛불 하나, 담요 한 장, 여유로운 저녁 한 끼에서 피어나는 감성은, 박희찬의 시선 아래 건축과 도시로 이어진다. 그가 바라본 덴마크는 단지 디자인만 뛰어난 나라가 아니다. 빠름보다 느림을, 효율보다 따뜻함을 선택한 공동체의 철학이 공간 곳곳에 스며든 곳이다.

그의 작업들도 그렇다. 덴마크라는 낯선 땅에서, 그러나 너무도 자연스럽게 어우러지는 그의 건축은 한국인의 섬세함과 북유럽의 따뜻한 시선을 동시에 품고 있다. 단순히 현지에 녹아든 것이 아니라, 그 안에서 자신만의 건축 언어를 찾아낸 흔적이 묻어난다.

읽고 나면, 문득 이런 생각이 든다. ‘빨리빨리’의 문화에 익숙한 우리는 어쩌면 너무 많은 것을 흘려보내고 있는 건 아닐까. 박희찬이 덴마크에서 발견한 삶의 방식, 건축의 태도는 어쩌면 지금 이곳, 우리가 가장 필요로 하는 메시지인지도 모른다.

익명적이지 않고, 조용히 연결되며, 긴 여운을 남기는 책. 시대의 건축, 그리고 문화에 대한 깊은 통찰이 담긴 한 권의 책이다.(백희성/KEAB건축사사무소 대표건축사, 작가)

백희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