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 영화감독 백학기의 시네스토리] ‘자유부인’(1956)과 배우 박암·김정림·이민·노경희·주선태·김동원
[내 가슴에 남아있는 한국고전영화와 그 배우들(9)] - 한국 멜로의 고전, 한형모 감독의 ‘자유부인’ - 한국 리얼리즘 영화의 명작 중 하나로 꼽혀
▶[내 가슴에 남아있는 한국고전영화와 그 배우들(8)] 피아골’(1955)과 배우 노경희·이예춘·허장강·김진규·윤왕국 이어서
인터뷰365 백학기 칼럼니스트 = 서울 수도극장 개봉 당시 10만 명이 넘는 관객 수를 기록하며 한국영화 흥행 1위를 기록한 ‘자유부인’(한형모 감독)은 작가 정비석의 소설이 원작이다. 소설이 연재되는 동안 신문부수가 폭발적으로 증가했다는 사실은 이 소설의 대중적 인기를 방증한다. 오늘날까지도 제목만으로도 ‘선정성’을 떠올리게 하는 한국 멜로의 고전이라 할 수 있다.
영화 내용을 보자. 오선영(김정림 분)은 대학교수인 남편(박암 분)에게 부탁해 한태석이 운영하는 고급 양품점에서 일을 하기 시작하고, 이웃집 대학생 춘호(이민 분)는 선영에게 접근하여 춤을 가르쳐 준다. 단순한 불륜의 드라마를 넘어 명품과 향락의 문화를 일찌감치 잡아낸 장면들이 지금 봐도 놀랍다. 단순히 파격적인 내용으로 사회를 들썩이게 한 것 뿐만이 아니라 시대를 앞서 나간 한형모 감독의 편집, 연출 감각으로 한국 리얼리즘 영화의 명작 중 하나로 꼽힌다.
당시의 보수적인 한국 사회에서 ‘불륜’이라는 매우 파격적인 소재를 다룬 데다 사회성이 짙은 작품으로 영화사적으로도, 사회적으로도 큰 족적을 남긴 작품으로 남는다. 이 영화는 의외로 등록문화유산 347호로 지정됐는데 그 이유가 당시 사회에 던진 충격이 만만치 않았다는 것이 등재 이유다.
전작 자유부인의 성공을 여세로 만들어진 1957년 작 ‘자유부인’ 속편은 안타깝게도 필름이 남아 있지 않다. ‘자유부인’은 이처럼 그 명성(?)에 걸맞게 ‘자유부인(1969)’, ‘자유부인 '81’(1981), ‘자유부인 2’(1986), ‘1990년 자유부인’(1990) 등 시대별로 만들어지기도 했다. 이중 윤정희, 최무룡, 남궁원 주연의 1981년 판은 서울 국제극장에서 개봉해 관람 인원 28만여 명을 동원했다.
한편 배우 박암은 1951년 서울대 치대 출신으로 모교에서 6개월간 조교 생활을 한 후 극단 ‘신협’에 입단하면서 연극 활동을 하다가, 그 이듬해 영화로 데뷔했다. 당시 배우로서는 높은 학력을 가져 법조인, 의사, 기자, 형사 등 다양한 역할을 맡았다.
특히 김기영 감독과 오랫동안 작품 활동을 함께 해온 것으로 유명하다. 김기영 감독이 연출한 대부분의 작품에서 조연 혹은 단역조차 서슴지 않고 얼굴을 내밀었다. 1988년 ‘지금은 양지’라는 영화 작품을 끝으로 은퇴했다. 은퇴 후 불과 5개월이 지나 1989년 3월에 세상을 떴다.
배우 이민은 1950년대 한국영화 팬들을 사로잡은 사나이. 김진규, 최무룡 시대가 오기 전 스크린을 사로잡은 배우가 이민이다고 영화평론가 김종원은 말한다. 영화 ‘비오는 날의 오후 3시’(1959)에서 이민은 김지미의 상대인 미국인 2세로 등장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