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하영 365칼럼] ‘사랑’이라는 형벌에 빠진 ‘옴므 파탈’...뮤지컬 '돈 주앙' 내한 공연

[앨리스 박사의 문화로 보는 세상풍경] - 2006년 프랑스 오리지널 팀 첫 내한 후 19년 만의 내한 공연 - 2004년 캐나다 초연 이후 전 세계 100만 명 이상 관람 - 뮤지컬 탄생 20주년 기념 업그레이드 무대

2025-04-24     주하영
프렌치

인터뷰365 주하영 칼럼니스트 = 수많은 여인들을 유혹하고 농락한 난봉꾼, 성적 욕망을 위해 여인을 정복하고 버리는 일을 강박적으로 반복하는 ‘옴므 파탈(homme fatale)’의 전형인 ‘돈 주앙(Don Juan)’은 서구 문학에서 신화적 위치를 차지해 온 인물이다.

중세부터 민담으로 전해져 온 탓에 많은 사람들이 오랫동안 돈 주앙을 알폰소 11세가 통치하던 카스티야의 14세기 실제 인물로 여겼지만, 현재에는 스페인의 극작가 티르소 데 몰리나(Tirso de Molina)의 창작으로 “신화적 원형성을 획득하게 되었다”는 평가가 많다.

1616년부터 초연된 것으로 언급되는 티르소의 '세비야의 농락자와 초대받은 석상'(원제: El burlador de Sevilla y convidado de piedra)은 1630년에 희곡으로 출간되었고, 1650년에 이탈리아에서 ‘코메디아 델라르테(commedia dell’arte)’라는 희극 형식으로 각색되었다.

1660년대에는 프랑스로 전해지는데, 1665년 프랑스를 대표하는 극작가 몰리에르는 돈 주앙을 “사회적 규범과 종교적 도덕에 도전하는 반항적 인물”로 그려냈다. 하지만 스페인에서 큰 인기를 끌었던 돈 주앙이 유럽을 거쳐 전 세계에 각인된 데에는, 오스트리아의 작곡가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의 오페라 '돈 조반니(Don Giovanni)'의 영향이 크다고 할 수 있다.

1787년 프라하에서 초연되었을 당시 모차르트가 직접 지휘한 오페라는 관객으로부터 우레와 같은 박수갈채를 받았고, 석상과의 저녁식사 초대에 응해 ‘죽음’에 이르는 지칠 줄 모르는 성적 욕망의 소유자 돈 주앙의 이야기는 이후 수많은 각색을 거치며 현재에 이르고 있다.

프렌치

최근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에서는, 스페인의 전설적인 유혹자 돈 주앙의 삶을 세비야의 뜨거운 열정을 담은 플라멩코의 화려함과 함께 새로운 해석으로 선보인 프랑스 뮤지컬 '돈 주앙'의 19년 만의 내한 공연이 막을 내렸다. 단 열흘간의 서울 공연은 대구를 거쳐 현재 부산에서의 짧은 지방 투어 공연을 앞두고 있다.

2003년에 프랑스와 캐나다에서 공동 제작된 뮤지컬 '돈 주앙'은, 프랑스의 최대 흥행 뮤지컬로 한국에도 많은 팬을 보유하고 있는 '노트르담 드 파리(Notre-Dame de Paris)'의 연출가 질 마으(Gilles Maheu)와 프로듀서 샤를 타라(Charles Talar), 니콜라스 타라(Nicolas Talar)가 협력해 탄생시킨 작품이다.

프랑스 오리지널 팀 첫 내한 공연이 있었던 2006년 당시 3만 명 이상의 관객의 마음을 사로잡았던 뮤지컬 '돈 주앙'은 2009년 라이선스 공연으로도 국내에서 인기를 끈 바 있다.

2004년 캐나다에서 초연해 30만 관객을 동원했고, 2005년 프랑스에서 연일 매진 기록의 성공을 거둔 뮤지컬 '돈 주앙'은 발매한 오리지널 사운드트랙 앨범 또한 수십만 장 이상의 판매고를 올렸다.

프렌치

현재까지 세계에서 100만 명 이상이 관람해 온 뮤지컬 '돈 주앙'은 2024년, 초연 20주년을 맞이해 LED를 포함한 기술적 업그레이와 조명의 화려함을 더해 보다 풍성한 느낌을 부여했다. 특히 돈 주앙을 젊은 20대가 아닌 30대 후반 즈음으로 작품의 세월만큼 무게를 더한 측면이 있는데, 이는 인물 표현에 있어 보다 깊이를 주기 위한 선택으로 보인다.

돈 주앙의 반복되는 여성 유혹과 성적 탐닉, 도주와 회피의 이유가 가벼움이나 한때의 젊은 혈기로 인한 욕망의 방탕함이라기보다는 냉담, 아집, 이기심으로 인해 눈먼 자의 ‘맹시’ 혹은 교만한 인간의 ‘어리석음’으로 볼 수 있는 여지가 생겼기 때문이다.

뮤지컬 '돈 주앙'의 극본과 음악을 담당한 펠릭스 그레이(Felix Gray)는 2024년 2월, 상하이 공연을 위한 '차이나 데일리'와의 인터뷰에서, 수많은 여인의 마음을 아프게 한 돈 주앙이 “광기에 근접한 사랑”을 발견하게 되면서 “가장 큰 형벌”을 맞이하게 되는 것이 수많은 다른 예술 작품들과의 ‘차별점’이라고 설명했다.

그레이는 이를 위해 석상을 만드는 조각가 ‘마리아(Maria)’라는 캐릭터를 도입했다. 돈 주앙에게 ‘사랑’이라는 저주를 내린 기사의 석상을 조각하는 여인을 통해, 단 한 번도 느껴본 적 없던 낯선 감정에 빠져드는 돈 주앙은 질투와 상처, 두려움과 아픔이 무엇인지 깨닫는 가운데, ‘죽음’을 선택하는 인물로 설정되어 있다.

프렌치

자신이 정복한 여인들을 전리품처럼 여기며 하룻밤만을 탐한 뒤 매몰차게 돌아서고, 외형적 ‘매력’과 ‘거짓’을 무기 삼아 여인들 주변을 맴돌며 반복적으로 사냥을 계속하는 돈 주앙은 좀처럼 연민하기 어려운 인물이다.

17세기 티르소의 원작이 품은 의도 또한 “찰나의 쾌락”만을 즐길 뿐 스스로의 욕망을 억제할 의지조차 없이 신을 두려워하지 않는 돈 주앙이 받게 될 ‘심판이 무엇인가’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티르소의 원작에서 돈 주앙은 결국 ‘신의 대리자’인 기사 석상의 만찬에 초대되어 “죄지은 자, 반드시 벌을 받는 법”이라는 응징과 함께 불타오르는 지옥으로 향하는 결말을 맞는다.

원작의 교훈에 유머 감각을 더한 모차르트의 오페라 '돈 조반니' 역시 유령처럼 살아 움직이는 석상이 회개하지 않는 범죄자인 돈 주앙에게 궁극적인 처벌을 내리는 결말을 달리하지 않는다.

프렌치

그레이는 돈 주앙을 이해할 수 있는 인물로 그린다거나, 정당성을 부여할 위험에서 벗어나기 위해, 돈 주앙에게 사랑하는 사람의 ‘마음’을 지켜주기 위해, 또 상처받은 라파엘(Raphaël)이 ‘복수’를 완성하도록, 결투에서 칼을 버리는 선택을 하도록 만든다. 물론 대사 없이 노래로만 진행되는 ‘성스루(sung-through)’ 뮤지컬의 특성상 돈 주앙의 선택이 갑작스럽게 보이는 측면이 있고, 충분히 설명되지 않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돈 주앙이 겉으로 보기에 화려하고 뜨거웠을지 모르지만, 실질적으로는 “아무것도 갖지 못한” 허망한 사람이자, 차가움과 냉소로 가득 차서 “삶을 망가뜨릴 이유를 찾아 헤매던” 방랑자로 보는 시선을 주변 인물들의 노래에 담아, 뒤늦게 깨달음을 얻은 공허한 인물이라는 해석을 제시한다.

프렌치

만나 온 수많은 여자들 중 처음으로 ‘사랑’을 느낀 마리아의 약혼자 라파엘과 결투를 하던 돈 주앙은 스스로 칼을 던져버리고 상대의 칼에 찔려 죽음에 이른다. 전쟁터에 나가 있던 사이 돈 주앙에게 약혼자를 빼앗긴 라파엘의 분노는 정당하지만, 타인의 상처에 공감할 줄 모르는 돈 주앙은 오히려 더 크게 흥분하며 소리친다.

그가 느끼는 사랑과 행복을 의심하게 만드는 ‘불안’과 마리아를 사랑한 다른 남자가 있었음을 용납할 수 없는 ‘질투’ 속에서, 돈 주앙은 미안함보다는 자신에게 도전한 라파엘을 결코 용서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취한다.

아버지 돈 루이스(Don Luis)와 절친한 친구 돈 카를로스(Don Carlos)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돈 주앙은 라파엘을 죽여 끝을 봐야 한다고 외치지만, 결국 그는 라파엘을 죽음으로 이끄는 순간 자신이 마리아를 잃게 될 뿐 아니라, 그녀의 마음에 영원한 ‘상처’를 남기게 된다는 사실을 인식한다.

프렌치

돈 주앙의 시신 앞에서 그의 주변 인물들은 “결코 누구도 이해할 수 없었던” 그의 마음속에 불타고 있었던 것이 과연 “악인지, 사랑인지, 증오인지” 영원히 알 수 없겠지만, “온전히 누군가를 이해하지 못한 채로 한 사람을 판단하는 일”이 어려울 수 있다는 사실을 지적한다.

“누구에게도 연민을 품지 않았던 자”이자 자신이 망쳐놓은 삶들의 고통을 깨닫지 못했던 자, 누구보다 강인하다고 믿어 의심치 않았던 자인 돈 주앙이, 스스로 “살아야 할 욕망보다 더 강인한 것”이라고 정의한 ‘사랑’으로 인해, 이전의 그와는 전혀 다른 선택을 한다는 설정은 작위적인 측면이 있다.

하지만 뮤지컬이 담아내고자 하는 것 역시 석상이 내린 ‘저주’의 완성과 돈 주앙이 저지른 죄에 대한 ‘죽음’이라는 응징, 인간의 어리석음과 삶에 대한 교훈의 맥락에서 벗어나지 않고 있는 것만은 분명하다.

프렌치

뮤지컬은 모차르트의 오페라 '돈 조반니'처럼 딸을 유혹해 겁탈하려는 돈 주앙과 결투하게 된 아버지가 죽임을 당하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기사(사령관)의 죽음을 슬퍼하는 세비야 사람들은 딸을 지키려다 죽음에 이른 “스페인 아버지의 명예”를 기리기 위해 동상을 만들기로 결정한다.

한 손에 칼을 높이 들고 말 위에 앉은 늠름한 기사의 모습을 그대로 닮은 동상은 천둥 번개와 함께 “내가 너를 저주한다, 돈 주앙!”이라고 외친다. 동상(석상)의 저주와 관련된 부분이 후반에 등장하는 모차르트의 오페라나 티르소의 원작과는 달리, 뮤지컬 '돈 주앙'은 초반부터 강렬한 ‘저주’의 이미지를 암울하게 품고 ‘응징’을 예고한다.

돈 주앙은 다른 사람들이 듣지 못하는 기사의 목소리와 살아 움직이는 유령과 같은 거대한 그의 모습을 종종 마주하는데, 기사가 “너의 벌은 사랑이 될 것이다”라고 말하는 순간, 기사의 눈에 담긴 모든 감정들에 ‘숨’을 불어넣는 조각가인 마리아가 돈 주앙의 앞에 나타난다.

뮤지컬의 경우, 원작 희곡과 오페라에 등장하는 돈 주앙을 따라다니며 방탕함에 대해 충고를 하는 하인의 존재가 오랫동안 함께 해온 친구이자 조언자인 ‘돈 카를로스’로 변경된 특징이 있다. 돈 카를로스는 어떤 면에서 돈 주앙의 ‘또 다른 자아’처럼 느껴지기도 하는데, 늘 돈 주앙의 주변에 머무르며, 그를 지켜보고, 그에 대해 설명하는 역할을 한다.

프렌치

돈 카를로스는 주는 법을 모르는 채 빼앗고 취하기만 하는 돈 주앙이 결국 홀로 남겨질 것임을 예감하고 안타까워하지만, 거짓말을 거듭하며 스쳐 지나가는 쾌락 외에 아무것도 보지 않으려고 하는 어두운 ‘악’의 마음을 가진 그를 “증오하는 만큼 사랑한다”고 말한다.

돈 카를로스는 수녀원에 있던 ‘엘비라(Elvira)’에게 결혼을 약속하고 유혹한 뒤 욕망만 채우고 도망친 돈 주앙이 책임을 다하도록 만들기 위해, 그녀가 돈 주앙의 아버지를 찾아가 간청할 것을 조언한다.

하지만 술 마시고 즐기는 일이 훨씬 더 중요하다고 여기는 돈 주앙은 아버지를 만나보라고 종용하는 돈 카를로스를 귀찮아한다. 마지못해 친구를 따라나선 돈 주앙은 아버지 돈 루이스로부터 “선택한 모든 삶의 순간들이 대가를 필요로 한다”는 애정 어린 충고를 듣지만, 아무런 소용이 없다. 엘비라가 그렇게 애원해도 돌아서지 않던 돈 주앙이 결국 마리아와 사랑에 빠지자, 엘비라는 마리아의 약혼자인 라파엘을 찾아가 ‘복수’를 하라고 부추긴다.

전쟁터에서 영웅으로 살아 돌아왔을지 모르지만, 신뢰를 저버린 배신과 연인을 빼앗긴 상실로 마음의 ‘고통’만 껴안게 된 라파엘은 복수가 ‘처벌’로 이루어져야 함을 강조한다. 엘비라와 라파엘은 “모든 것을 잊고 혼자 울거나, 사랑했던 사람을 벌해야만 하는” 기로에 서서 어느 쪽을 선택해도 괴로움과 상처만 가득한 슬픈 마음을 노래한다.

프렌치

사실 뮤지컬 '돈 주앙'의 큰 즐거움은 열정과 뜨거움, 혼란스러운 복수심, 욕망과 분노, 결투와 전쟁과 같은 요소들이 모두 ‘플라멩코(Flamenco)’라는 춤으로 표현된다는 점에 있다.

스페인 남부 지역의 집시들에 의해 탄생한 음악이자, 문화적으로 스페인의 상징처럼 여겨져 온 플라멩코는 뮤지컬의 첫 장면부터 관객의 시선을 사로잡는다. 밤하늘의 거대한 푸른 달빛을 배경으로 한 손에 부채를 들고 플라멩코 드레스를 입은 여인이 드리우는 검은 그림자는 돈 주앙의 유혹과 기사들의 집합, 돈 주앙과 여인의 아버지인 기사(사령관)와의 결투까지, 화려하고 박력 있는 플라멩코 스텝과 춤으로 표현된다.

뮤지컬 '돈 주앙'은 플라멩코 댄서들의 독무와 군무가 보여주는 화려한 역동성, 경쾌한 리듬, 넘치는 에너지를 풍성하게 활용함으로써, 열정과 욕망이 넘치는 공간이자 음악과 와인, 유혹이 지배적인 거리와 술집의 공간을 구현한다.

플라멩코 기타와 타악기를 포함한 집시 밴드의 라이브 연주와 스페인 풍의 노래는 돈 주앙이 머무는 술집이나 길거리의 공간을 댄서들의 플라멩코 춤과 함께 채우며, 사랑과 배신, 이별에 관한 가사들을 은유적으로 담아낸다.

프렌치

노래(칸테, Cante)와 기타 연주(토케, Toque), 춤(바일레, Baile), 손뼉 치기(팔마스, Palmas), 손가락 스냅(피토스, pitos)이 결합된 복합 예술인 플라멩코는 2010년, 유네스코에 의해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다.

‘플라멩코’라는 용어의 기원은 정확히 알 수 없지만, 스페인 남부 안달루시아와 무르시아에서 출발해 카리브해와 라틴 아메리카, 유럽으로 퍼져나가면서 현재에 이른 것으로 알려져 있다.

뮤지컬 '돈 주앙'에서 플라멩코는 욕망과 죽음, 전쟁터의 고통, 사랑의 축제, 복수의 갈망, 결투의 긴박함을 표현하는 다수의 장면들에서, 넘버(뮤지컬 노래) 만으로 채울 수 없는 인물의 복잡한 상황이나 감정을 보다 강조하게 된다.

음악에 맞춰 바닥을 발로 세게 혹은 가볍게 구르는 움직임을 일컫는 사파테아도(Zapateado)와 캐스터네츠, 청중들의 환호와 격려의 함성이 포함된 부름과 응답인 ‘할레오(jaleo)’를 포함한 플라멩코는 뮤지컬 '돈 주앙'에서 매우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프렌치

17세기의 유혹자이자 쾌락주의자를 21세기의 무대에 구현하는 일은 어떻게 적절한 방식으로 각색할 것인가의 문제를 불러온다. 스페인 문학자 에미 허랜드(Emmy Herland)는 돈 주앙의 이야기가 오랫동안 인기를 누리는 데에는, “유령이라는 초자연적인 요소”가 대중의 “정의에 대한 열망”을 담고 있기 때문이라는 점을 지적한다.

사회적으로 영향력을 갖고 있는 부유한 귀족이 많은 여성을 농락하고 도주함에도 처벌되지 않는 사법 시스템의 무능을 ‘기사 석상의 저주’라는 “신의 개입”으로 해결하려는 ‘정의 구현의 욕망과 필요성’이 반영되어 있다는 것이다.

허랜드는 돈 주앙에 관한 대부분의 각색들이 기사 석상의 ‘유령’이라는 존재를 배제하지 않는 이유는 바로 그 때문이라고 강조한다. 돈 주앙의 이야기의 재구성에는 “복수의 행위를 통해 정의가 실현되는가의 여부”를 중심에 둘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뮤지컬 '돈 주앙'이 초자연적인 요소를 초반부터 강렬하게 제시하면서, ‘응징’의 맥락을 느슨하게 하지 않는 이유도 이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LED 스크린의 시각적인 효과는 돈 주앙의 눈에만 보이는 기사 동상의 움직임과 목소리와 같은 초자연적인 요소들을 보다 몽환적으로 만들어 주는데, 이야기 전반에 돈 주앙의 ‘몰락’이 예정되어 있음을 관객이 인지할 수 있도록 해준다.

‘사랑’이라는 기사의 저주가 과연 ‘형벌’이 될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한 의문은 유혹과 버림의 패턴을 지속하던 돈 주앙이 ‘인식의 전환’을 겪고, 이전과는 다른 자아로 ‘변화’를 겪는다는 차원에서는 충족되지 않는다. 이 때문에 뮤지컬은 돈 주앙이 마리아와 라파엘의 관계로 인해 질투와 불안, 위협, 갈증, 상처를 느끼면서, 자신이 다른 여인들에게 행한 것이 무엇인지 깨닫도록 만든다.

사랑이란 존재하지 않는다는 태도와 타인의 감정을 가볍게 여기는 무시, 공감의 결여는 그러한 길을 걸어온 돈 주앙 자신의 삶에 대한 속죄와 책임으로서, 라파엘이 그의 복수를 완성하도록 만드는 선택, 즉 ‘죽음’으로 귀결된다.

프렌치

뮤지컬 '돈 주앙'은 플롯이나 주제적인 측면보다는 음악과 플라멩코의 전율, 초자연적인 느낌을 자아내는 시각적 무대의 화려함을 감상하는 재미가 있는 작품이다.

주로 모차르트의 오페라를 많이 차용하면서도 티르소의 희곡 원작의 무게감을 갖고 있고, ‘사랑’을 접목했다는 점에서 리하르트 슈트라우스의 교향시 '돈 주앙, Op.20'을 떠올리게도 만드는 뮤지컬 '돈 주앙'은 보다 인간적인 시선으로 주인공을 조명한다.

하지만 거리를 둠으로써 돈 주앙의 이야기를 통해 삶, 죽음, 책임, 그리고 상처와 분노, 질투와 고통을 불러오는 사랑과 욕망에 대한 질문을 제기한다. 인간이 품는 모든 복잡한 감정의 표현이 가능하다고 알려진 춤 ‘플라멩코’를 비중 있게 접목한 이유도 바로 그 때문이 아니었을까? 4월 25일~27일 부산시민회관 대극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