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지수 화가의 페인팅 북 리뷰] (4)얽힘으로 찾은 새로운 세계
- 성혜령·이서수·전하영의 '봄이 오면 녹는'
책 한 권에 담긴 활자들이 천지수의 몸과 기억과 희망을 만나 씨앗으로 응결되면, 화가는 그 작은 것을 캔버스에 심고 붓과 물감으로 키워내 한 폭의 그림으로 완성한다.
독서를 통해 창조적 영감을 얻는 실험은 어디까지 가능할까? 책 읽는 천지수 화가의 ‘페인팅 북리뷰'는 그 대답 중 하나다. 네 번째 책은 '봄이 오면 녹는' (성혜령·이서수·전하영 지음, 다람)이다.
인터뷰365 천지수 칼럼니스트(화가·서평가) = ’너와 나는 온 우주에 펼쳐진 시간과 공간을 거슬러 연결되어 있으며, 우리는 사실 그런 의미로만 존재하고 있을지도 모른다고. 그런 초월적인 상상관계를 ‘얽힘entanglement’이라고 한다.‘
이 문장을 보고 나는 너무 반가웠다. 모든 존재들은 보이지 않는 실로 서로가 연결되어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서로가 ‘손절’한다고 해도.
세 편의 단편소설이 수록된 책 ’봄이 오면 녹는‘은 성혜령,이서수, 전하영 작가가 ’손절‘이라는 테마로 서로의 세계관을 연결하는 방식으로 썼다. 성혜령의 '나방 파리', 이서수의 ’언 강 위의 우리‘, 전하영의 ’시간여행자-처음 한 여행과 다르게 여행하는 것‘에는 모두 다른 인물들이 등장하고 시공간이 다른 곳에서 독립적으로 이야기가 펼쳐진다.
그러나, 작가들은 키워드를 공유하여 원고를 쓰면서 각자의 작품으로부터 연결고리를 만든다. 책의 말미에는 이 엔솔러지 프로젝트에 참여한 세 작가가 각 작품에 해당하는 질문과 대답 등이 담긴 코멘터리가 있는데, 영화의 쿠키 영상을 보는 것처럼 매우 흥미롭다.
이서수 작가는 ’얽힘‘을 만드는 과정이 결과물보다 더 중요할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고 한다. 이번 작업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이 얽힘이 발생할 수 있는 지점을 함께 찾아가는 순간이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내가 좋아하는 작업 중에 거즈 붕대를 엮는 작업이 있다. 내가 그 작업 방식을 특히 좋아하는 이유는 ‘얽는 과정’ 때문이다. 세상 모든 것이 연결되어 있다고 믿으면서도 망각하고 살아가는 나에게 캔버스에 붕대를 ’얽는 과정‘은 다시금 깨우쳐 주는 행위가 된다. ‘봄이 오면 녹는‘을 읽고 얻은 영감으로 거즈 붕대를 엮는 과정에서 이번엔 무엇을 깨닫게 될지 설렌다.
나는 두 개의 캔버스에 각각 붕대를 얽어보기로 한다. 너와 내가 다르듯이 각자 다른 색으로 붕대에 색을 입힌다. 하나는 바다 같은 파란색, 또 하나는 레몬 같은 노란색. 그리고 마치 다른 두 세계가 만나듯이 두 캔버스의 한 면을 맞닿게 하여 함께 얽는다. 그 두 세계란 사람과의 관계일 수도 있다. 두 화면이 잘 이어지려면 얽기 좋은 지점을 찾아야 한다. 적당한 지점을 찾더라도, 다시 풀 수도 있다. 서로 조화롭게 얽히기에 더 좋은 지점이 나올 경우다. 따라서 붕대를 얽을 때 세게 잡아당기거나, 억지로 매듭짓지 않는다. 서로 그물처럼 엮이면서 물감에 물들어 젖은 거즈 붕대가 서로의 색에 번지기 시작한다. 파란색과 노란색이 서로의 화면에 영향을 주며 번지고 얽어지면서 두 세계가 맞닿은 경계 부분은 초록빛 세계를 만든다.
두 화면이 같은 색이었으면, 당연히 새로운 색이 나올 수 없다. 다른 세계들과 공존한다는 것은 서로 충돌할지언정, 새로운 세계를 잉태할 수 있다는 긍정적 신호로 보인다. 그리고 얽혀져 관계하고 있는 두 세계는 이미 각자의 색이 서로 번졌기에 ’손절‘ 한다고 해도, 얽히기 전의 온전한 색의 상태로 돌아가기는 어렵다. 나는 두 캔버스를 얽는 과정을 통해서 내가 관계하는 다른 세계와 어떤 조화를 이룰지 힌트를 얻었다.
‘외딴섬이라고 생각했던 모두가 실은 우주 안에서 하나로 얽혀 있다는 사실에, 그리하여 어쩌면 나와 초월적으로 얽혀 있는 누군가가 어딘가에 반드시 존재한다는 상상으로.’
’기획자의 말‘을 되뇌어본다. 우리는 어쩌면 ‘얽힘’의 비밀을 탐색하는 것이 세상에 존재하는 이유 중 하나일 것이다. 나는 ‘봄이 오면 녹는’을 읽고 내 세계의 경계선을 용광로처럼 녹여봐야겠다고 생각했다. 새로운 세계의 잉태는 그렇게 된다. 내가 지금 하고 있는 이 ‘페인팅 북 리뷰’처럼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