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숏평 - 새로운 서평] 칼을 든 여자·사연 없는 단어는 없다 外

- [비평연대] 서민서·최상현·백희성·김성신의 500자 서평

2025-05-16     김리선 기자

젊은 문화비평가와 출판전문가들의 커뮤니티인 '비평연대'는 숏폼콘텐츠 시대에 대응하기 위해 500자 내외의 '매우 짧은 연대 서평'의 형식을 고안했습니다. 2030세대 지식인 특유의 빛나는 감각으로 제시되는 다양한 책들을 통해 지식의 최전선을 경험할 수 있습니다. [인터뷰365 편집자주]


칼을 든 여자 (캐머스 데이비스 지음, 황성원 옮김, 메디치미디어, 2019)

오감을 열고 음식을 먹은 지 얼마나 오래되었는가. 이 책은 유튜브에서 흔히 ‘밥 친구‘라 불리는 먹방 영상을 보는 데 익숙한 나에게 경종을 울린다. 화면 속 사람이 로제 떡볶이와 곱창을 먹을 때 참치 삼각김밥을 먹는 나는 참치와 쌀을 온전히 느낄 수 있을까. 음식에 대한 인지와 감사가 없는 식사는 씹어 삼키는 섭취일 뿐이다.

다 먹고살자고 하는 일인데. 우리는 음식과 먹는 행위를 홀대하곤 한다. ‘먹어 치운다‘는 말은 나와 음식 모두에게 가혹하다. 음식 칼럼니스트에서 한순간에 실직하고, 7년을 만난 연인과도 결별한 저자는 가장 원초적인 것에서부터 자신을 되찾기로 결심한다. 먹고, 사는 일. 저자는 도축사가 되기 위해 프랑스로 떠나, 도축에서부터 식탁 위에 고기가 오르기까지의 전 과정을 경험한다.

저속노화 식단이 유행인 지금, 우리는 성분을 넘어서 음식에 대한 예의를 논하고 있을까. 내 이빨 사이에서 짓이겨지는 풀과 고기가 어디서 왔는지, 어떻게 자랐는지, 어떤 방식으로 요리되었는지 생각하는 것은 곧 내가 무엇으로 이루어졌는지 생각하는 일일지도 모른다. 이 책은 채식주의 논쟁을 하려는 것이 아니다. 푸아그라를 먹을 땐 풍부한 육질의 부드러움을 느끼고 루꼴라를 먹을 땐 특유의 쌉싸름함과 고소함을 느껴야 한다. 그리고 그 역사를 느낄 때 비로소 식사가 완성된다.(서민서 / 출판마케터·비평연대)

서민서

사로잡는 얼굴들 (이사 레슈코 지음, 김민주 옮김, 가망서사, 2022)

모두가 나이 들어 죽기를 바라지만, 동물은 해마다 500억 명(命)이 공장식 축산으로 사육된다. 저자는 알츠하이머를 앓던 어머니의 죽음을 떠올리며, 생추어리(sanctuary, 열악한 환경에서 지내는 야생동물을 구조하고 그들에게 맞는 환경을 조성해 죽을 때까지 안전하게 보호하는 곳. 출처:동물자유연대)에서 나이 든 동물들을 기록한다.

촬영한 동물 초상에는 이름과 나이뿐 아니라 구조 당시 상태가 적혀 있다. 대부분 학대받았거나 도살장에서 구조된 동물들이었다. 초상 속 동물들의 눈빛과 주름진 피부를 통해, 살아남은 동물이 통과해 온 폭력과 착취의 과거를 마주하고, 생추어리에서 만난 동물들과의 교감을 통해 ‘살고 싶다’는 열망을 직시한다. 인간에게만 허락된 ‘나이 듦’, 그 너머에 있는 폭력과 착취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동물들의 욕망을 느낄 수 있었다. 너무 이른 나이에 폭력적으로 목숨을 잃는 탓에, 우리는 동물이 늙어간다는 모습을 상상하지 못하고, 그들을 상품처럼 소비해 버리는 문제를 보게 된다.

생태적 문화인류학자 바버라 J. 킹의 '음식에 담긴 생명체'에서는 이렇게 쓰고 있다.

“어떤 동물도 지각 있는 존재로 인정받기 위해 반드시 우리 인간과 같은 방식으로 지각이 있어야 할 이유는 없다.” (책 32쪽)

이 말처럼 우리는 인간 중심의 사고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비록 한계가 있더라도, 우리는 이들과 더불어 살아가며 그 존재 자체를 언제든 기억해야 한다.(최상현 / 출판평론가·9N비평연대)

최상현<br>

류재언 변호사의 협상바이블 (류재언 지음, 라이프레코드, 2025)

얼마 전, 나에게는 오랜 시간 공들여 준비해 온 중요한 협상이 있었다. 그러나 결과는 참담했다. 감정이 앞섰고, 나는 결국 큰소리를 내고 말았다. 협상은 결렬되었고, 그 후에 남은 것은 당혹감, 치욕, 그리고 깊은 배신감이었다. 그날 이후 나는 스스로의 선택과 태도를 끊임없이 합리화하며, 나름대로 상처를 봉합하려 애썼다.

그러다 문득, 예전에 감탄하며 읽었던 '협상바이블'이 떠올랐다. 책장을 다시 펼치는 데는 용기가 필요했다. 하지만 그 순간, 나는 그동안 내 방식이 얼마나 감정에 치우쳐 있었는지를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처음 읽을 때는 그저 ‘좋은 책’이라 생각했다. 협상의 원리와 기법, 실제 사례까지 이렇게 명료하고 현실적으로 풀어낸 책이 있을까 싶었다. 그래서였을까. 나는 내가 이미 협상을 잘 아는 사람이라고 착각했다.

그러나 실패를 겪고 다시 이 책을 읽은 나는, 완전히 다른 독자가 되어 있었다. 이전에는 흘려보냈던 문장들이 하나하나 마음에 새겨졌다. 특히 협상의 핵심 구조인 NPS(Negociation Preparation Sheet). 이 단순하면서도 강력한 원리를 나는 그저 이론으로만 받아들였고, 실제로는 실천하지 않았다. 협상 전에 반드시 써보라고 한, 아주 간단한 행동조차 생략한 내 모습에 깊은 후회가 밀려왔다.

책은 우리에게 말한다. 우리는 운전해서 출퇴근하는 시간보다 더 많은 시간을 협상에 쓴다고. 일상의 거의 모든 상황이 협상이고, 우리가 인식하지 못한 채 마주하는 수많은 대화가 사실은 설득과 조율의 연속이라는 점을 이 책은 집요하리만치 상기시킨다.

가장 인상 깊었던 구절 중 하나는 이것이다.

"거절을 좋아하는 사람은 없다. 그러나 우리는 거절당한 것이 아니라, 내가 제안한 제안을 상대가 받아들이지 않았을 뿐이다."

이 문장은 협상을 감정싸움이 아니라 문제 해결의 과정으로 전환한다. 상대를 적으로 보지 않고, 함께 해법을 찾아가는 동반자로 여길 수 있는 마음가짐이야말로 협상의 진정한 시작이다.

또한, 이 책은 ‘말’만이 설득의 도구가 아니라고 말한다. 표정, 눈빛, 자세, 제스처, 목소리 톤, 침묵의 무게까지. 모든 것이 협상의 언어다. 결국 우리는 ‘어떻게 말했느냐’보다 ‘어떤 모습으로 말했느냐’에 더 크게 영향을 받는다. 이 책을 읽으며 나는 내가 그간 얼마나 말에만 집중해 있었는지를 돌아보게 되었다.

협상이란 나만 옳다고 주장하는 것이 아니라, 상대가 이해하고 받아들일 수 있는 지점에서 함께 접점을 찾아가는 과정이다. 그렇기에 이 책은 단순한 전략서가 아니다. 이 책은 자기반성과 타인에 대한 이해, 그리고 나 자신을 컨트롤하는 훈련을 담은 ‘관계의 기술서’다.

나는 이제 ‘협상바이블’을 내 서재 가장 가까운 곳, 손이 닿는 자리에 놓을 것이다. 중요한 협상 전마다 반드시 다시 펼쳐볼 것이다. 왜냐하면 상대는 매번 다르고, 그만큼 나의 태도 또한 달라져야 하기 때문이다.

‘협상바이블’이라는 제목이 과하다고 느껴지지도, 어색하지도 않다. 이 책은 단지 협상을 잘하게 해주는 책이 아니라, 나 자신을 더 잘 알게 해주는 책이다. 협상이 곧 인간관계의 축소판이라면, ‘협상바이블’은 그 복잡한 여정을 단단하게 비추어주는 나침반과 같다.

긴 여운과 실질적인 변화를 남기는 귀한 책. 이 책은 그 이름 그대로, 협상의 바이블이다.(백희성 / KEAB건축사사무소 대표건축사, 작가)

백희성

■ 사연 없는 단어는 없다 (장인용 지음, 그래도봄, 2025)

생로병사(生老病死), 태어나고, 늙고, 병들고, 죽어 사라지는 네 개의 과정은 피할 수 없는 ‘고통’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그러니 인간은 이러한 고통을 통해 삶의 가치를 이해하고 깨달음을 얻어야만 한다. 그런데 생로병사는 사람만의 일이 아니다. 어떤 깨달음까지 가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생명을 가진 존재들은 모두 생로병사를 겪는다. 심지어는 사람이 의사소통을 위해 쓰는 ‘말(言)’에도 생로병사의 과정이 있다. 그리고 이 흥미진진한 과정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종종 깨달음을 얻을 수 있다.

‘사연 없는 단어는 없다’는 읽기엔 쉽지만, 쓰는 것은 너무나도 어려운 책이다. 책 속에 등장하는 수많은 단어의 어원을 하나하나 추적하고 확인해야 했을 테고, 그러니 쓰는데 얼마나 많은 공이 들어갔을지 쉽게 짐작조차 되지 않는다. 저자의 노고가 자체로서 감동으로 다가올 정도다. 책을 읽다 보면 오랫동안 우리 말과 지식과 독자를 깊이 사랑한 사람만이 가질 수 있는 순수한 열정을 느낄 수 있다. 아름다움과 유익함을 모두 갖춘 보석 같은 양서다. 이런 책이 나온 줄 알면서도 놓치는 건 바보짓이다.(김성신 / 출판평론가, 비평연대 가디언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