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하영 365칼럼] 베토벤 피아노 협주곡 3번, 4번, 5번...‘김선욱 & 유럽 체임버 오케스트라’
[앨리스 박사의 문화로 보는 세상풍경] - ‘베토벤 스페셜리스트’ 김선욱 & 유럽 체임버 오케스트라 협연 - 2025년 LG아트센터 서울 기획공연 CoMPAS 25 시즌 프로그램 - 베토벤 피아노 협주곡 3번, 4번, 5번 연주
인터뷰365 주하영 칼럼니스트 = ‘끝’을 예감하는 일은 때로 불타오르는 ‘열정’의 가장 큰 이유가 되기도 한다. 자신이 “인류 역사에 길이 남을 음악을 작곡”하고 있음을 잘 알고 있던 예술가가, “인생의 모든 것을 자신의 명령에 복종하도록 만들 수 있다”고 여겼던 한 사람이, 작곡가에게 가장 중요한 ‘청력’을 잃고 있음을 인지했을 때, 어떤 마음이었을까?
1792년, 오스트리아 빈에 정착한 독일의 작곡가 루트비히 판 베토벤은 피아노 건반만으로 오케스트라의 음향을 내는 “당대 가장 강한 타건을 가진 피아니스트”, “역사상 가장 뛰어난 즉흥 연주자”로 불리며 청중을 사로잡았다. 하지만 “귀족들의 열렬한 환영과 사랑을 받는 음악가”이자 진보적이고 계몽주의적인 예술가 베토벤의 밝은 미래에는 얼마 후 어둠이 깔리기 시작한다.
베토벤의 사후에 발견된 ‘하일리겐슈타트 유서’에 따르면, 베토벤은 그의 나이 26세이던 1796년부터 청력에 문제가 있음을 인지하기 시작했다. 1802년 10월, 두 동생에게 쓴 유서에서 베토벤은 여섯 해 동안 절망적인 고통을 홀로 겪어왔음을 토로하며, 이제는 누구보다 완벽했던 감각에 결함이 있음을 받아들여야 할 때가 왔다고 말한다.
귀가 잘 들리지 않아 2년간 사교 모임에 한 번도 나가지 않았던 베토벤은 자신을 “고집스러운 인간 혐오자”로 바라보는 사람들이 얼마나 자신을 오해하고 있는지, 왜 그렇게밖에 보일 수 없었는지를 호소한다.
자신을 붙잡고 있는 것은 “오로지 예술” 뿐이며, “내면에 들어 있는 것을 모두 꺼내놓기 전까지 세상을 떠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임을 강조하는 베토벤은, 예술적 능력을 완전히 발전시키기 전에 죽음이 온다면 어쩔 수 없이 “용기를 갖고” 받아들이겠지만, 가혹한 ‘운명’에 대적할 것을 다짐한다. 하지만 나흘 뒤, 베토벤은 치유의 희망을 완전히 포기했다는 절망스러운 감정을 추신으로 덧붙인다.
놀라운 점은 베토벤의 마음속에 불안과 초조, 공포가 뒤섞인 혼란스러움이 요동치고 있었을 1800~1802년 무렵이 작곡가로서 많은 작품을 창작하고 히트시킨 시기였다는 사실이다.
1800년에는 1795년에 쓰기 시작한 C장조 피아노 협주곡 1번의 개작과 교향곡 1번의 탄생 등이 있었으며, 1801년에는 “전원” 소나타와 “월광” 소나타를 포함한 더 많은 작품들이 작곡되었다.
1802년에는 밝은 분위기의 교향곡 2번과 교향곡 “에로이카” 변주곡 등으로 더욱 상승세가 이어졌다. 이후 1803년부터 1815년에 이르는 작곡가 베토벤의 ‘중기’의 시간은 “영웅적 10년”, 혹은 “프로메테우스의 시기”로 불린다.
남은 시간이 많지 않을 수 있다는 불안이 더욱 열정적으로 재능을 완성하고, 후대를 위한 작품을 남기는 일에 매진하도록 부추겼던 것일까? 아니면, 운명의 위협을 피해 영원한 시간 속에 정지하듯 ‘음악’이라는 도피처로 더 깊이 들어가고자 한 처절한 노력이었을까?
자신의 운명에 맞서야 했던 천재 작곡가의 마음을 헤아리기는 어렵지만, 베토벤의 음악에는 대조와 갈등 속에 불굴의 의지와 용기를 불러오는 활력, 초월적 기쁨과 화해, 곤경을 극복한 승리의 축하가 깃들어 있다.
퓰리처상 수상 작가인 에드먼드 모리스는 ‘인간으로서의 베토벤’에서, 베토벤 음악이 가진 보편성을 “죽음에 대한 두려움부터 삶에 대한 사랑, 그 너머의 형이상학에 이르기까지 인간의 모든 감정을 포용하고, 모든 의심과 갈등을 소리의 카타르시스로 화해시키는 능력”이라고 설명한다.
최근 LG아트센터 서울에서는 ‘베토벤 스페셜리스트’로 불리는 피아니스트 김선욱과 영국 BBC에 의해 ‘세계에서 가장 뛰어난 실내악단’이라는 평가를 받은 유럽 체임버 오케스트라의 협연이 있었다.
2025년 LG아트센터 서울 기획공연 CoMPAS 25 시즌 프로그램의 첫 번째 공연이었던 ‘김선욱 & 유럽 체임버 오케스트라’의 협연은 베토벤 피아노 협주곡 ‘3번’과 ‘4번’, ‘5번’을 순서대로 연주하며, 피아니스트의 음악적 역량을 청중이 만끽할 수 있는 무대를 만들었다.
클래식 전문 사이트인 ‘바흐트랙(Bachtrack)’에 의해 “베토벤이 던진 모든 것에 완벽하게 응답할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라는 평가를 받은 피아니스트 김선욱은 이번 협연에서 직접 지휘를 겸해 유럽 체임버 오케스트라와의 멋진 호흡을 선보였다.
1981년에 창단되어 예술감독이나 상임 지휘자 없이 최상의 앙상블을 만들어내는 것으로 유명한 유럽 체임버 오케스트라는 수준급 이상의 완성도와 예술성을 고루 갖췄다는 평가를 받아왔다. 유럽 체임버 오케스트라와 김선욱의 협연은 3년 전에도 국내에서 뜨거운 반응을 얻은 바 있다. 이번 베토벤 협주곡 지휘 및 협연은 국내 공연에 더해 독일 베를린과 벨기에 리에주, 프랑스 툴루즈, 영국 런던에서의 투어 공연의 일환이기도 했다.
2006년 18세의 나이로 리즈 콩쿠르 역사상 최연소 우승자이자 첫 아시아 출신 우승자로 주목을 받았고, 2013년 독일 본에 위치한 베토벤 생가 ‘베토벤 하우스’ 멘토링 프로그램 첫 수혜자로 선정되었던 김선욱은 2013년 8월, 본머스 심포니와 협연한 ‘베토벤 피아노 협주곡 3번’으로 BBC 프롬스에 데뷔하며 “놀랍도록 섬세한 연주”라는 평가를 받았다.
이후 세계 주요 무대에서 활약해온 김선욱이 지휘와 연주를 겸한 베토벤 피아노 협주곡 ‘3번’과 ‘4번’, ‘5번’은 세월과 함께 성장해 온 피아니스트의 개성과 해석, 깊이를 느낄 수 있는 기회가 되었다.
◆ 피아노 협주곡 3번 다단조, Op. 37(Piano Concerto No. 3 in c minor, Op. 37)
베토벤이 생애 동안 남긴 5개의 피아노 협주곡 가운데 “성숙한 소리를 들려주는 첫 번째 곡”이라는 평가를 받는 피아노 협주곡 3번은 1803년 4월 5일, 빈에서 초연되었다.
작품의 스케치는 1796년 초부터로 알려져 있는데, 한동안 1800년에 작곡된 것으로 믿었던 것과는 달리 현재에는 협주곡의 대부분이 1802년 가을에 이루어진 것으로 본다고 한다.
하지만 베토벤이 독주자로 초연을 준비하는 날까지도 협주곡은 미완성 상태에 있었는데, 베토벤이 독주의 대부분을 기억에 의존해 연주했고, 악보에는 “이집트 상형문자 몇 개가 단서처럼 낙서되어 있었다”는 이그나츠 폰 사이프리드의 기록이 자주 언급된다. 피아노 협주곡 3번의 악보는 1804년에 처음 출간되었다.
음악학자인 도널드 토비는 피아노 협주곡 3번을 “베토벤의 첫 번째 시기의 스타일이 두 번째 시기의 스타일로 발전할 준비를 하는 것을 가장 분명하게 볼 수 있는 작품 중 하나”라고 설명한다. 볼프강 모차르트의 피아노 협주곡과 비슷한 점이 엿보이던 구조에서 주제를 참신하게 활용하는 베토벤의 독창성이 두드러지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1악장은 모차르트 피아노 협주곡 24번 C단조 K.491의 형식과 주제에서 유사성을 찾을 수 있는데, 특히 독주자와 오케스트라의 복잡한 상호작용을 모방한다. 하지만 분위기는 1798년에 작곡한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 8번 “비창”의 C단조의 연장선에 있다고 할 수 있다.
2악장은 “명상적”이라는 평가가 많은데, 이스라엘 피아니스트 보리스 길트버그는 “이전의 소란스러움과는 완전히 대조적으로 고요한 내면을 응시하는 명상적인 분위기를 매혹적으로 선사한다”라고 표현했다. 베토벤의 제자 칼 체르니는 2악장의 오프닝이 “거룩하고 아득한 천상의 하모니처럼 들려야 한다”고 말했다고 한다. 서정적이고 찬송가 같은 멜로디는 영혼을 위로하는 듯 느껴진다.
3악장은 C단조로 시작하지만 가볍고 활기차며 힘찬 분위기로 바뀌면서 피아노와 오케스트라의 마법 같은 대화를 이어나간다. 익살스러움과 경쾌함을 담고 있는 3악장은 밝은 C장조의 종결부로 성대하게 마무리된다. 베토벤 시대의 청중들은 오늘날 대중이 가장 좋아하는 피아노 협주곡 5번 “황제” 보다 3번을 훨씬 더 좋아했다고 한다.
작품의 집필 시기가 하일리겐슈타트 유서를 쓴 시기와 겹친다는 점으로 인해 협주곡의 어두운 C단조 음색에 베토벤의 암울한 마음이 반영되어 있는 것이 아닌가 생각할 수 있지만, 음악평론가인 캘빈 돗시는 위기가 어떤 영향을 미쳤을지 상상할 뿐 확인할 수 있는 근거는 없다고 말한다.
◆ 피아노 협주곡 4번 사장조, Op. 58(Piano Concerto No. 4 in G major, Op. 58)
피아노 협주곡 4번은 베토벤의 가장 뛰어난 작품들 사이에 놓여있다고 할 수 있는데, 협주곡이 작곡된 1805년 후반은 청력 상실이 베토벤의 연주 경력에 심각한 영향을 미치기 시작한 시기에 해당한다. 1808년까지 베토벤은 바이올린 협주곡, 현악 사중주 “라주모프스키”, 교향곡 5번과 6번을 완성했다.
청각 장애가 베토벤의 창의성을 막을 수 없었음을 알 수 있는데, 피아노 협주곡 4번은 후대의 작곡가들을 위해 새로운 길을 열어 줄 여러 혁신이 담겨 있었다. 피아노 협주곡 4번은 1808년 12월 22일, 빈 극장에서 장장 4시간에 걸친 마라톤 연주로 교향곡 5번과 6번, 합창 환상곡 등과 함께 베토벤에 의해 연주되었고, 이 협주곡의 독주가 그의 마지막 공개 연주가 되었다.
음악 평론가인 스티븐 존슨은 1악장의 오프닝이 당대 빈의 청중들에게 당혹감을 부여했을 수 있다고 언급하는데, 고전 시대 협주곡들이 오케스트라의 도입부로 시작되는 일반적인 경우와 다르게, 베토벤의 피아노 협주곡 4번은 독주자의 조용하고 부드러운 “몽상에 빠진 듯한 주제”의 피아노 선율이 홀로 전달되기 때문이다.
피아노가 “마치 생각에 잠기듯 끊어지면 현악기는 조용하지만 마법처럼 놀라운 화음으로 화답한다”고 존슨에 의해 표현되는 1악장의 혁신은 이후 한 세기 동안 슈만, 브람스, 멘델스존에게 영향을 미쳤다.
2악장은 “베토벤이 오르페우스와 에우리디케의 이야기에서 영감을 받아 작곡했다”는 해석으로 잘 알려져 있다. 음악학자 오웬 젠더는, 오르페우스가 죽은 아내 에우리디케를 데려오기 위해 지하 세계로 보내달라고 간청하고, 지상 세계로 거의 데려오던 찰나 아내를 슬쩍 돌아보는 바람에, 다시 지하 세계로 에우리디케가 봉인되는 운명을 베토벤이 묘사하고 있다고 설명한다.
하지만 존슨은 19세기 중반 낭만주의 작가들이 지하 세계에서 오르페우스가 하데스의 분노와 야생 짐승을 진정시킨 음악으로 비유하면서 고착된 이미지보다는, 성경 잠언 15장 1절의 “부드러운 대답은 분노를 가라앉힌다”라는 구문에 착안해 작곡된 것으로 해석한다. 3악장에서는 피아노가 화려하고 우아하게 진행을 주도하면서 노련함과 절제, 정교함을 선물하는 경쾌함이 특징이 된다. 쉼 없이 공격적인 추진력이 느껴지는 3악장은 독주자와 오케스트라의 즉각적인 교감이 흥겨움을 선물한다.
하지만 피아노 협주곡 4번은 꽤 오랫동안 대중의 관심을 끌지 못했다. 1836년에 멘델스존에 의해 주목되면서 비로소 정당한 찬사를 받기 시작했는데, 영국의 음악 저술가 조지 그로브는 이러한 점 때문에 피아노 협주곡 4번을 “베토벤의 신데렐라(Beethoven’s Cinderella)”라고 불렀다고 한다.
◆ 피아노 협주곡 5번 내림마장조, Op. 73 ‘황제’(Piano Concerto No. 5 in E-flat major, Op. 73 ‘Emperor’)
베토벤의 마지막 피아노 협주곡 5번은 1809년 5월 초, 나폴레옹 군대가 빈을 포위하면서 오스트리아 궁정의 루돌프 대공을 비롯해 대부분의 귀족들이 피난을 떠난 시기에 작곡되었다. 베토벤은 동생의 집 지하실에 피신한 채로 약할 때로 약해진 청력이 더 이상 망가지지 않도록 대포 소리를 듣지 않으려고 귀를 틀어막았다.
같은 해 7월 26일, 출판업자에게 보낸 편지에서 베토벤은 주변의 무질서와 파괴가 “몸과 영혼을 공격” 하고 있다고 말하면서, 남은 것은 “인간의 비참함뿐”이라고 덧붙였다. 하지만 베토벤은 “음악이 없는 날은 없다”는 그의 원칙을 고수했고, 12월까지 피아노 협주곡 5번의 대부분을 완성했다. 예술을 향한 헌신과 열정은 충실하게 지속되고 있었다.
베토벤의 전기 작가인 존 N. 버크는 피아노 협주곡 5번에 대해 “어떤 협주곡에서도 볼 수 없었던 웅장함과 위엄, 장엄함을 갖고 있는 거대한 작품”이라고 평가한다. “베토벤의 영웅적 10년의 정점”일 뿐 아니라 전쟁과 청력 상실의 고통이 반영되었다고는 볼 수 없는 “가장 밝고 서정적인 걸작 중 하나”로 일컬어지는 피아노 협주곡 5번은 “가장 독창적이며, 창의적이고, 효과적이면서, 가장 어려운 곡”으로 평가되기도 했다.
1809년 10월, 빈 조약이 체결되면서 삶은 다시 정상으로 돌아왔지만, 베토벤이 새로운 협주곡을 발표할 기회는 주어지지 않았다. 결국 1811년, 피아노 협주곡 5번은 독일 라이프치히에서 프리드리히 슈나이더의 연주로 초연되었다. 오케스트라와 협연하기에는 베토벤의 청각 장애가 너무 심한 상태에 놓여 있었기 때문이었다.
슈나이더의 초연은 큰 성공을 거두었지만, 빈에서 선보인 1812년의 협주곡 초연은 베토벤의 제자였던 체르니가 독주자로 나섰음에도 난해한 곡이라는 평가를 받았다고 한다. 협주곡에 붙은 “황제”라는 명칭은 연주회에서 한 프랑스 장교가 “협주곡 중의 황제”라고 불렀기 때문이라는 설과 출판사의 아이디였을 가능성 등이 제기되는데, 정확한 출처는 밝혀지지 않았다. 하지만 웅장함의 측면에서 “황제”라는 명칭은 적절하다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세 개의 거대하고 묵직한 오케스트라 화음에 독주자의 화려하고 유려한 건반의 오르내림으로 시작하는 1악장은 군대의 퍼레이드처럼 힘차게 나아간다. 하지만 곧 서정적인 주제와 경쾌함, 유쾌함이 섞이면서 반복되는데, 베토벤은 카덴차를 예상하게 되는 지점에서 “카덴차를 연주하지 말고 바로 다음을 공격하라”라고 썼다고 한다.
비교적 짧은 2악장은 찬송가 같은 멜로디로 시작한다. 아름다운 피아노 선율과 오케스트라가 친밀하고 여유롭게 서로 대화를 나누는 듯한 2악장은 마음의 평화를 선물한다. 베토벤은 긴 여운이 남는 2악장을 너무 느리게 연주하지 말 것을 당부했다.
3악장은 피아노가 새로운 생각을 불어넣기 시작하면서, 승리를 향해 힘찬 발걸음을 내딛는 듯 화려하고 경쾌한 피아노와 오케스트라가 조화롭게 어우러진다. 부드러움과 생동감, 서정성이 봄의 기운을 불어넣는 듯하고, 화려하고 우아한 3악장은 피날레의 마지막 음까지 청중을 집중시키는 특징이 있다.
철학자인 프랑수아 누델만은 ‘건반 위의 철학자’에서 “자아는 내면의 불협화음과 리듬을 감추는 하나의 구조물”이고, “악기를 연주하는 것은 자신을 표현하는 것을 넘어서 우리를 자발적인 수동성과 색다른 시간의 경험으로 이끈다”라고 말했다. 베토벤의 자아에 내재하고 있던 불협화음과 리듬은 그의 음악을 통해 그를 표현하는 것을 넘어서서 청중을 다른 차원의 ‘감각’과 ‘사유’ 속으로 이끈다.
베토벤의 ‘위기’ 시기에 작곡된 피아노 협주곡들이 우리에게 남기는 ‘색다른 시간의 경험’은 무엇이 될까? 영웅적인 투쟁과 결연한 예술가의 영혼 뒤에 감춰져 있던 불협화음과 리듬을 우리는 예술이라는 ‘승화’를 거친 협주곡들을 통해 발견할 수 있을까? 후대를 위해 작곡한 베토벤은 우리가 무엇을 발견하기를 원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