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중헌의 문화와 사람] '60년 화업' 한 눈에...강명희 화백의 대규모 기획전
- 서울시립미술관 주최, 강명희 작가 기획전 'Visit·방문' - 평생을 화폭에 아로새긴 색채의 수상록
인터뷰365 정중헌 기획자문위원 = 서울시립미술관 서소문 본관을 찾아 강명희(姜明姬·Myonghi Kang) 작가의 작품을 망라한 기획전 ‘방문(Visit)’을 관람했다.
우선 작품의 크기와 전시작품 수에 압도되었다.
지난 40여 년간 수많은 국내 전시를 관람했지만 강명희 작가만큼 대작을 대거 볼 수 있는 기회는 많지 않았다.
전시장 입구 회랑에 걸린 2002년 작 ‘복원’(캔버스에 유채)은 462x528㎝의 초대작이고 3~4m 크기의 대작이 수십 점에 달한다.
이는 한 작가가 60년 동안 국내외에서 얼마나 치열하게 작업해 왔는지를 보여주는 산 증거로, 미술계에 귀감이 될만하다.
필자는 1947년 대구에서 출생한 강명희 작가를 1980년 초반에 열혈 팬이었던 신성일(본명 강신영) 스타의 소개로 처음 만났다. 강명희 작가는 신성일 배우의 친여동생이다.
당시 부군인 임세택 화가도 함께 만났는데, 이 커플은 서울대 미대에서 화려한 스캔들을 남기고 프랑스 파리에 정착했다가 일시 귀국해 서울 구기동 서울미술관을 경영하던 시기였다.
2007년 고국으로 돌아와 제주도에 거주해온 강 작가는 60여 년간 프랑스와 중국에서의 장기 체류뿐 아니라 고비사막, 남미 파타고니아, 남극, 인도 등 세계 곳곳을 여행하며 태초의 풍경을 평면에 응축한 독창적인 화풍의 추상화를 농밀하게 담아냈다.
그의 일련의 작품들은 모네의 ‘수련’ 연작처럼 일관된 화풍을 보이고 있다.
이번 기획전은 3개의 카테고리로 되어있는데 첫 전시실에는 제주도에서 작업한 ‘서광동리에 살면서’, 두 번째 전시실에는 세계 각국의 기행을 형상화한 ‘방문’, 마지막 전시실에는 70년대 초기작을 보여주는 ‘비원’으로 구성되어 있다.
강명희 작가가 추구하는 대상은 ‘자연’이다.
“오랜 시간 대면한 자연의 풍광 속 본질에 천착하고 존재와 자연과의 관계를 화면에 담아내 독자적인 회화 영역을 구축했다.”(이번 전시 카탈로그 서문 중)
세계를 누빈 그의 회화 작품에서는 서로 다른 문화권의 영향과 동서양을 넘나드는 색채와 감성이 묻어난다는 평을 받고 있다.
세계 곳곳을 여행하며 태초의 풍경을 찾아 섬세한 붓 터치로 자연의 움직임을 담아낸 강명희 회화는 다양한 이야기와 심오한 깊이를 느끼게 한다.
따라서 관람객들은 대작들이 늘어선 전시장에서 자연 속을 거니는 느낌을 받을 수 있다. 피어나고 소멸 되는 꽃과 나무, 땅의 역사와 기억, 때로는 파괴와 죽음의 잔해들까지 응축된 화폭에서 다양한 감성을 체험할 수 있다.
1부 ‘서광리에 살면서’에는 제주에 거주하며 그린 근작들이 출품되었다. 대형 화폭에 담은 ‘한라산’은 웅장하면서도 자연의 신비를 느끼게 해준다. 이밖에도 황우치 해안, 대평 바다, 산방산, 인덕계곡 등 제주의 풍광들이 야생 그대로의 잔잔한 감흥을 안겨주고, 향토적인 따뜻한 채도가 잔잔한 감흥을 안겨준다.
2부 ‘방문’은 작가가 방문한 해외 각지에서 작업한 작품들을 볼 수 있다. 작가는 1994년 몽골과 칠레 여행을 시작으로 세계 험지를 누볐다. 몽골의 고비사막은 여덟 번이나 찾았을 만큼 열정적이었다.
태평양과 남극에서 조망한 추상 대작 등 방문지의 인상을 담은 초대형작품들은 영화 ‘아바타’의 우주와 같은 무한성을 느끼게 해준다.
출품작 중에는 프랑스 뚜렌의 화실에서 작업한 작품들도 있다. 그중에서도 전시장 입구에 걸린 ‘북원(北園)’(2002, 캔버스에 유채, 462x528㎝)이 강렬한 인상을 안겨주었다.
‘북원’에 얽힌 일화도 재미있다.
어느 날 한국에서 가져간 물감을 몽땅 써버리고 싶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캔버스를 눕힌 뒤 물감을 발로 짜내며 작품을 시작했다. 이후 자택 정원에서 풀을 뽑고 식물을 재배하며 틈틈이 붓을 들어 작품을 완성했다는 것이다. 작가의 동공에 비친 자연에 대한 인상이 화폭에 박제된, 일기장 같은 회화가 아닐 수 없다.
3부 ‘비원(祕苑)’에는 1960~80년대에 제작한 초기작들을 걸었다.
초기의 구상작품에는 그 시절 시대상이 깃들어 있어 흥미롭다.
구도를 달리한 세 점의 자화상과 구기동 풍경 등이 친근감을 안겨준다. 하지만 1970년대 중반에 작업한 ‘개발도상국’ 시리즈는 작가의 현실 비판적 시각을 드러내고 있다.
이 시기의 대표작은 1965년 창덕궁 후원을 소재로 한 ‘비원’으로, 강명희 추상회화의 뿌리라고 할 수 있다.
회화 작품 외에도 스케치, 도록, 편지 등 작가를 이해할 수 있는 자료들을 함께 볼 수 있다. 전시는 6월 8일까지이며 무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