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지수 화가의 페인팅 북 리뷰] (1)'침묵을 깨워야 태양이 떠오른다'
- 치마만다 응고지 아디치에의 장편소설 '절반의 태양'
책 한 권에 담긴 활자들이 천지수의 몸과 기억과 희망을 만나 씨앗으로 응결되면, 화가는 그 작은 것을 캔버스에 심고 붓과 물감으로 키워내 한 폭의 그림으로 완성한다.
독서를 통해 창조적 영감을 얻는 실험은 어디까지 가능할까? 책 읽는 천지수 화가의 '페인팅 북 리뷰'는 그 대답 중 하나다. 첫 번째 책은 '절반의 태양'(치마만다 응고지 아디치에 글/김옥수 옮김/민음사)이다.
인터뷰365 천지수 칼럼니스트(화가·서평가) = “태양이 떠오르지 않는다면 우리가 떠오르게 만들리라”
나이지리아 작가 치마만다 응고지 아디치에의 ‘절반의 태양’은 1960년대 아프리카 대륙의 최대 비극이었던 ‘비아프라 내전’이 배경인 장편소설이다.
유학파 지식인인 올란나는 난민 수용소에서 봉사하던 쌍둥이 자매 카이네네가 적진에서 밀무역을 하다가 실종되자 영안실로 찾아간다. 영안실에는 폭격을 당해서 죽은 시신들이 햇빛에 방치되어 악취가 심했다. 시신의 형체를 알아보기도 힘든 상태라서 관리자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올란나는 시신의 얼굴들을 모두 확인하고는 도로변에서 구토를 한다. 그 순간, 그녀에게 시구 한 소절이 스쳐간다. 일상이 무참히 짓밟히고 사랑하는 사람들의 죽음을 목도할 수밖에 없는 현실에 처해있는 그녀는 아침이 되어도 지구가 멈춘 듯 떠오르지 않는 태양을 느꼈을 것이다.
비아프라 공화국은 군사 정권에 반발하는 이보족을 중심으로 독립을 선언하자, 나이지리아 정부는 즉시 비아프라를 경제봉쇄하고 전쟁이 시작되었다. 비아프라 내전(1967~1970)에서 전사자는 10만여 명이고 450만 명이 집을 잃고 약 200만명이 기아로 사망했다. 영국의 식민지배, 종족 분열책과 천연자원에 대한 이권다툼 등으로 비아프라 공화국은 전쟁의 참혹한 역사를 피할 수가 없었다.
인간의 잔인함으로 얼룩진 전쟁은 ‘태양의 실종’과도 같은 지옥이다. 좀처럼 떠오르지 않는 태양을 자유와 희망의 의지로 힘겹게 밀어 올리듯이 나이지리아에 항거하여 독립하려던 비아프라 공화국은 독립에 실패했다. 그러나 이역만리 먼 아프리카의 참담했던 지난 역사적 사건은 대한민국에 현재를 사는 우리에게 진정한 민주주의에서 안전하게 숨 쉬고 있는지 의문을 가져보라고 한다. 그리고 ‘태양이 떠오르지 않는다면 태양을 떠오르게 만들라’라고 강력히 주문하는 것만 같다.
전쟁 중 갑자기 하늘에서 비행기가 총알을 비처럼 쏟아붓기 시작하면 사력을 다해서 대피소로 피할 때까지 아이들은 배고픔을 잊고 뛰어논다.
“아포 음미리 으크와”
‘빵나무 배’라는 뜻이다. 올란나를 주인마님으로 모시고 있는 으그우는 아이들이 배가 공처럼 부풀어 오른 한 아이를 놀리는 모습을 보고도 말리지 않는다. 결국엔 다른 아이들도 걸리게 될 단백질 부족증으로 생기는 질병을 알려주어 미리 겁먹게 하지 않으려는 것이다. 전쟁으로 가장 큰 피해를 보는 희생자는 단연 ‘어린이’다. 태양처럼 밝은 미소를 가진 아이들의 동심마저 굶주림과 죽음의 공포로 훼손된다. 탐욕과 어리석음으로 점철되어 일으키는 전쟁의 광기는 인류가 사라지지 않는 한 없어지지 않는 것일까? 나는 어린아이처럼 질문하고 싶어진다.
“교육이 가장 중요해! 자신이 착취당한다는 사실도 모르는 사람이 착취당하지 않는 방법을 어떻게 깨달을 수 있겠나?”
으그우는 열세 살때 혁명가로 불리우는 교수 오데니그보의 집에 일꾼으로 들어갔었다. 주인어른인 오데니그보는 초등학교 2학년까지만 학교를 다녔다는 으그우에게 이렇게 말하고는 학교를 보내주고 응원한다. 으그우는 참혹한 내전을 겪은 후에 ‘우리가 죽을 때 세상은 침묵했다’라는 책을 쓰고 “나의 스승, 우리 주인어른에게 바칩니다”라는 헌사를 적는다.
나는 인간의 진정한 고귀함이란 미래의 주인인 아이들을 옳은 길로 인도하고 전쟁 속에서도 자유와 인권을 위해 침묵하지 않는 용기에서 발견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침묵을 깨워야 태양이 떠오른다. 침묵을 깨우는 이가 곧 태양이다. 모두가 입을 다물고 있을 때 “임금님이 벌거벗었다!”라고 진실을 외치는 어린 아이 같은 그림을 그리고 싶다. 태양처럼 빛나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