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하영 365칼럼] ‘도구’가 아닌 ‘목적’으로서의 인간...연극 '타인의 삶'
[앨리스 박사의 문화로 보는 세상풍경] - 2007년 美 아카데미상 & 2008년 英 아카데미상 수상작 도너스마르크 감독의 영화 '타인의 삶' 연극화 - LG아트센터 서울 CoMPAS 24 ⨉ 프로젝트그룹일다 ⨉ 라이브러리컴퍼니
인터뷰365 주하영 칼럼니스트 = 모든 인간은 타인의 삶에 영향을 받는다. 사회적 동물인 인간이 자신에 대한 인식을 얻는 방식이 타인에 기준하기 때문이다.
사회 속 인간은 출생과 동시에 부모를 비롯한 타인에게 영향을 받기 시작하며, 끝없이 사회가 규정한 가치들에 영향을 받으며 성장한다. 타인과의 경험을 통해 형성된 자아는 ‘자기의식(self-consciousness)’과 ‘자기인식(self-awareness)’이라는 심리 현상을 거쳐 특정 상황이 주어질 때, 특정 판단과 행동, 선택에 이른다.
사회신경과학자인 김학진은 '이타주의자의 은밀한 뇌구조'에서, 자기의식이 “태어난 이후 만나온 수많은 타인들과의 경험을 통해 형성된 자아를 떠올리고 이에 따라 반응을 선택하는 과정”이라면, 자기인식은 “객관적인 자아를 형성하고 왜곡된 자아를 수정하는 과정”이라고 말한다.
주변의 평가 속에 있는 자신을 바라보는 과정이 ‘자기의식’이라면, 그 평가에 대해 돌아보고 그에 맞춰갈 것인지, 자신만의 가치관에 따라 원래의 자아를 세우기 위한 선택을 할 것인지 결정하고 판단하는 것이 ‘자기인식’이라고 말하는 김학진은, “때때로 자기의식을 멈추고 자기인식으로 전환하는 과정이 필요하다”고 덧붙인다. 자기 인식이 나 자신을 보호할 뿐 아니라 더 나아가 주변 사람들까지 보호할 수 있기 때문이다.
건강한 사회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불공정에 항거하는 행위”와 “타인을 돕고자 하는 이타적 행위”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강조하는 김학진은 일상에서 쉽게 사용할 수 있는 강력하고 효과적인 자기인식의 방법으로 ‘감정’에 주목할 것을 조언한다.
타인과의 관계에서 감정이 발생할 때, 그 감정의 근본 원인을 파악하려고 노력하는 일이 깊은 자아와 대면하게 만들어주고, “뇌에 저장된 가치들을 새롭게 튜닝하는 과정”을 통해 옳다고 생각하는 가치를 세울 수 있도록 하기 때문이다. 인간은 선택을 통해 자신을 규정한다. 그리고 우리의 대부분의 선택은 ‘감정’에서 출발하는 경우가 많다.
LG아트센터 서울 U+ 스테이지에서는 1984년, 동독이 반체제 인사에 대한 도청과 감시, 탄압, 체포, 투옥을 자행하던 시기에 극작가와 배우, 감시 요원의 삶을 다룬 영화 '타인의 삶'의 연극 공연이 막바지를 향하고 있다.
2006년에 개봉되어 각종 유럽 영화제를 휩쓸었고, 2007년 미국 아카데미상과 2008년 영국 아마데미상에서 외국어영화상을 수상한 플로리안 헨켈 폰 도너스마르크 감독의 영화 '타인의 삶'은 ‘양손프로젝트’를 통해 다양한 작업을 선보여온 배우 손상규의 각색 및 연출에 의해 동명의 연극으로 재탄생했다.
프로듀서를 맡은 프로젝트그룹 일다의 양미숙에 따르면, 꽤 오랫동안 연극화를 염두에 두었던 작품은 우연한 기회로 원작자인 감독과 연락이 닿았고, “인간의 선의는 어디에서 오는가?”라는 질문을 들여다보려는 손상규 연출의 의도에 따라 각색 방향이 정해졌다.
손상규 연출은 프로그램북을 통해 “인간이 아무 상관없는 타인을 위해 움직이는 모습”을 목격하면서 품어왔던 궁금증을 영화 '타인의 삶'의 각색에 담고 있음을 피력하는데, “인물들이 서로 만나게 되는 지점과 변화해 가는 과정에 주목했다”고 말한다.
실제로 연극 '타인의 삶'은 소위 ‘슈타지(Stasi)’로 불렸던 동독 정보기관인 국가보위부 소속 대위 ‘게르트 비즐러’를 중심으로, 왜 그가 도청하던 대상인 동독의 칭송받는 극작가 ‘게오르그 드라이만’을 보호하는 선택을 하게 된 것인지, 어느 지점에서 심경의 변화를 일으키게 된 것인지를 영화보다 더 명확하게 드러낸 측면이 있다.
또, 드라이만의 연인이자 동독의 저명한 여배우인 ‘크리스타-마리아 질란트’ 역시 보다 구체적으로 캐릭터에 접근함으로써, 영화가 주로 비판을 받았던 “여성 혐오적 형상화”에서 벗어난 것으로 보인다.
영화 '타인의 삶'은 호평만큼이나 비평가들로부터 “슈타지에 대한 동정적 시선과 신념이 부족한 약물 중독 여배우의 모습”에 대한 많은 공격을 받았는데, 특히 크리스타를 취약하게 그린 부분에 대한 비판이 있었다.
하지만 1989년 베를린 장벽 붕괴가 있기 5년 전인 동독 베를린의 상황을 “진정성 있게 재창조하고 있다”는 평가에는 이견이 없었는데, 이는 도너스마르크 감독이 4년에 걸친 연구와 조사를 통해 각본을 완성했기 때문이다.
영국 언론 '가디언'과의 인터뷰에서, 도너스마르크는 아이디어의 출발은 1997년 영화학교 1학년 재학 시절이었지만, 2002년에 대본을 쓰게 되었고, 자금 지원을 받지 못해 어려움을 겪다 2004년 독일의 가장 유명한 캐스팅 에이전트를 만나게 되면서 2006년에 영화로 개봉되었다고 말한다.
코미디 영화로 만들면 자금을 지원해 주겠다는 제안을 거절한 적도 있다는 도너스마르크는 “독일에서 '타인의 삶'과 같은 정치 영화를 제작하는 일은 매우 어려운 일”이지만, 대본이 가진 힘이 대스타였던 배우들을 끌어들일 만큼 강력했고, “세상을 조금이라도 바꿀 수 있는, 오래도록 기억에 남는 영화”에 대한 열망이 원동력이 되었음을 지적한다.
슈타지에 소속된 10만 명의 비밀경찰과 약 20만 명의 정보원이 동독 체제를 유지하기 위해 “모든 것을 파악한다”는 목표로 국민을 엄격히 통제하고, 감시, 심문, 연행, 감금하던 시절, 동독 사회주의 건설에 대한 굳건한 신념을 갖고, “당의 방패이자 검”으로서 충성을 다하는 대위 비즐러는, 새로운 임무를 부여받는다.
숨기고 있는 죄를 밝혀내는 가장 좋은 방법은 40시간 이상 고강도 심문을 통해 잠을 재우지 않는 것이라면서, 학생들을 향해 건방지고 오만한 국가 배신자로부터 정보를 캐는 방법을 강의하는 비즐러는, 20년 전 함께 학창 시절을 보낸 문화계 감시 부서 책임자 ‘안톤 그루비츠’의 방문을 받는다.
동기인 비즐러보다 사회적으로 높은 지위에 있는 자신의 우월함을 드러내면서 인생은 성적순이 아님을 강조하는 그루비츠는, 문화예술계의 혹독한 검열과 블랙리스트 작성으로 수장에 오른 ‘브루노 햄프 장관’을 만나기 위해 연극을 보자고 말한다.
‘인류애’를 강조하는 동독 체제에 순응하는 인기 있는 극작가로서 서독에도 꽤 알려진 드라이만을 오페라글라스를 통해 처음 본 비즐러는, 감시 업무에 탁월한 능력을 갖춘 비밀경찰의 직감으로 그가 “오만한 타입”이며 감시할 필요가 있는 대상이라고 말한다.
그루비츠는 고위직과도 친분이 있는 드라이만을 건드리는 것은 좋은 생각이 아니라면서, 드라이만과 같은 복종하는 타입만 있다면, 정보기관은 더 이상 필요치 않을 것이라고 말하지만, 햄프 장관이 의심을 표명하자 이내 비즐러에게 도청 감시 업무를 맡긴다.
하지만 비즐러는 드라이만에 대한 감시가 이념이 아니라 권력에 심취한 햄프 장관이 드라이만의 연인인 배우 ‘크리스타-마리아 질란트’를 빼앗기 위한 의도에서 시작된 것임을 인지하게 되고, 불편함을 느끼기 시작한다.
영화는 비즐러가 드라이만과 크리스타의 삶을 밀접하게 엿듣고 감시하면서 고독한 자신의 삶을 인지하고, 브레히트의 시집이라는 문학과 연극이라는 예술, 그리고 무엇보다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음악’을 통해 점차 변화하게 되는 과정을 스크린에 서정적으로 담아낸 특징이 있지만, 연극으로 각색된 '타인의 삶'의 경우에는 좀 다르다.
연극 '타인의 삶'은, 국가라는 공동체와 조직을 위해 개인을 바쳐 충성하는 것이 사회주의의 이상을 실현하기 위한 목표에 부합하는 일이라고 여겼던 비즐러가 스스로 옳지 않다고 생각되는 일을 위해 ‘도구’로 사용되고 있음을 ‘인식’함과 더불어, 주체적으로 다른 ‘선택’을 하게 되는 맥락에 초점을 맞춘다.
손상규 연출의 각색은 영화 영상보다는 출간된 스크린 대본에 기반한 것으로 보이는데, 각색자의 해석이 드러날 수 있는 설정을 덧붙이거나 이동 혹은 변경한 지점들이 돋보인다.
각색의 의도는, 비즐러가 여배우 크리스타를 ‘무대 위 인물’로 먼저 만나게 되는 드라이만의 연극을 '사랑의 얼굴들'이 아닌, '공장의 안티고네'로 변경한 데서 처음 드러난다.
손상규 연출은, 비즐러가 “규칙 위반”을 이유로 공장 노동자의 죽음을 외면하는 공장장에게 맞서는 안티고네를 연기하는 크리스타에게 몰입하는 순간을, 두 인물이 서로 닿을 듯 얼굴을 가까이 마주하고 시선을 고정한 채 잠시 멈추는 것으로 설정한다.
“기계가 아닌 인간”임을 토로하며 공장장 크레온을 “비극의 동조자”로 강하게 비난하는 안티고네의 절규는 실제로 현실에서 규정을 어긴 사람들을 색출하고 처벌해왔을 뿐 아니라, 인간을 ‘도구적 존재’로 바라보는 비즐러를 향한 것이기도 하다.
권력에 맞서는 저항의 상징이자 약자의 이야기로 여겨지는 ‘안티고네’ 서사를 적용한 점은 영화에서는 생략된 ‘크리스타의 어린 시절 에피소드’와, 블랙리스트에 오른 탓에 7년 동안 연출을 할 수 없었던 ‘알베르트 예르스카’가 드라이만의 생일 파티에서 읽어 내려가는 ‘베르톨트 브레히트의 시 '독수리가 있었네'의 적용’을 통해 강조된다.
크리스타는 권력자의 요구를 거절한 대가가 무엇인지를 어릴 때 이미 경험한 탓에 두려움과 공포를 갖고 있다, 그로 인해 그녀는 햄프 장관이 요구하는 성 착취를 거부하지 못하는 상태에 놓여 있는데, 영화는 이 지점을 드러내지 않는 반면 스크린 대본에는 포함되어 있다.
또, 브레히트의 시는 권력이 강제한 억압을 이겨내지 못하고 끝내 ‘자살’에 이르는 예르스카의 비극을 대변한다고 할 수 있는데, 수영을 할 수 없을 것이라는 의혹을 제시하는 비방꾼들에게 자신을 입증하기 위해 연못에 뛰어든 독수리는 곧바로 익사하고 만다.
브레히트의 시 역시 스크린 대본에만 포함되어 있는데, 마크 실버만(Marc Silberman)에 따르면, 해당 시가 영화에 노출되는 것을 브레히트의 후손이 허락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한다.
도감청을 통해 드라이만과 그를 둘러싼 주변 사람들의 삶에 스며든 공포와 억압, 갈등, 상처, 부당함을 접하게 된 비즐러의 신념이 흔들리는 순간은 예측하지 못한 ‘감정’에서 출발한다.
절망적인 감정을 토로하는 예르스카와 드라이만과의 대화를 엿들은 비즐러는 “유충 만들기”라는 작전명으로 한 개인이 이룬 성취를 모두 헛된 것으로 파괴한 과정과 드라이만 도청 작전이 햄프 장관이 크리스타를 손에 넣기 위한 부패한 목적을 갖고 있음을 알게 된다.
직급이 높은 장교들을 감시할 수는 없다면서 햄프 장관과 관련된 부분은 구두로만 보고하라는 그루비츠를 향해 비즐러는 상당한 불만을 드러낸다.
국가보위부 요원으로서 비즐러의 정체성은 ‘동독 사회주의 통일당’이라는 공동체의 목표에 방해가 되는 것들을 제거하기 위한 ‘도구’일수는 있지만, 힘을 가진 자의 사적인 욕망과 이익을 추구하는 수단이 될 수는 없기 때문이다.
부당함에 대한 ‘분노’의 감정은 비즐러로 하여금 크리스타와 햄프 장관의 부적절한 관계라는 ‘진실’을 드라이만이 목격하도록 이끈다. 하지만 이후 비즐러가 듣게 되는 것은 크리스타가 과거에 겪은 ‘권력자의 부당한 횡포에 관한 이야기’와 말없이 크리스타를 꼭 안아주는 드라이만의 ‘연민’이다.
비즐러의 목소리 톤은 달라지기 시작하고, 그의 감정에는 ‘균열’이 생긴다. 드라이만의 집에서 예르스카가 읽던 브레히트 시집을 몰래 가져와 '마리 A.의 기억'이라는 서정시를 읽어 내려가는 비즐러는 예르스카의 자살 소식을 알리는 전화를 엿들으면서, 큰 ‘충격’에 빠져든다.
드라이만은 예르스카가 생일 선물로 준 음반을 들으면서, 처음 그와 함께 작업하게 되었을 때 예민한 자신을 위해 그가 직접 피아노로 곡을 연주해 주면서 고독한 마음을 위로해 주었던 일을 회상한다. 비즐러는 드라이만의 이야기와 음악을 들으면서 자신도 모르게 눈물을 흘린다.
드라이만은 완전히 이해받는다는 따뜻한 감정을 느꼈던 예르스카와의 순간을 회고하면서, “자신을 온전히 이해하는 사람이 세상에 단 한 사람만 있어도 그 사람은 나쁜 사람이 될 수 없지 않을까?”라고 질문하는데, 이는 각색자인 손상규 연출이 관객에게 던지는 질문이기도 하다.
드라이만이 자신을 온전히 이해했던 예르스카를 위해, 사랑하는 연인인 크리스타를 지켜내기 위해 정치적 목소리를 내는 길로, 동독 체제의 부당함을 고발하고 진실을 말하는 길로 향하는 것처럼, 비즐러는 ‘나쁜 사람’이 되지 않기 위해, 부당한 권력에서 힘없는 개인을 구하는 ‘방패’가 되기 위해, 도감청의 기록을 은폐하고 조작하는 길로 향한다.
연극 '타인의 삶'은 비즐러와 드라이만을 ‘이상주의자’이자 ‘순응주의자’라는 동일 선상에 놓는다. 각자의 세계에서 이상을 품은 채 현실 적응과 체제 순응의 길을 걷다 발견한 ‘모순’과 ‘충격’은 두 인물을 하나로 연결한다.
비즐러는 드라이만의 행보가 체제를 지키는 ‘칼’이 되려는 그의 신념에 어긋나는 것임을 알지만, 드라이만의 저항이 ‘도구’가 아닌 그 자체로 ‘목적’인 인간 존재로서의 정의를 실현하기 위한 것임을 이해한다.
비즐러의 이해는 크리스타가 햄프 장관을 거절하고 드라이만에게 머무는 선택을 하도록 돕는 일뿐 아니라, 동독 체제 하에서 존재론적 이유를 찾지 못해 스스로 목숨을 끊는 사람들의 숫자가 늘어가는 현실을 폭로하는 글을 드라이만이 쓴 사실을 숨겨주는 일까지 확장된다.
손상규 연출은, “독일민주공화국 40주년 기념 연극을 집필하고 있다”는 드라이만의 알리바이를 구체화하기 위해 비즐러가 ‘블라디미르 레닌’을 주인공으로 한 연극의 플롯뿐 아니라 실제 대사까지 창작해 보고서에 기록했음을 추가한다.
레닌의 대사들은 비즐러의 속마음을 드러내는 역할을 하게 된다. 비즐러가 그려낸 레닌은 “혁명은 말로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실천의 필요성과 인간은 “착취당하기 위해 태어난 것이 아니라는 점”을 강조한다. 또, 당장 성취할 수 없는 승리라 할지라도 미래 세대를 위해 희생을 감수하고 싸워야 함을 토로한다.
비즐러의 선택은 드라이만과 마찬가지로 스스로의 존재를 규명하고 의지를 피력할 수 있는, 개인의 행복을 추구하고 위계의 폭력에 부당하게 제압당하지 않을 수 있는 길을 열기 위한 자신만의 ‘저항’이자 ‘전투’가 된다.
보호를 받는 당사자인 드라이만조차 모르게 ‘타인을 위한 희생’을 감수한 비즐러가 수년이 흐른 뒤 자신에게 헌정된 책을 보며 눈물을 흘리는 것은 그제야 ‘온전히 이해를 받았다“는 기쁨과 감동에 기인한다.
조직을 배신한 대가로 좌천된 채 기계처럼 살아가던 비즐러는 모든 사실을 알게 된 드라이만이 보내는 고마움의 헌사 속에서 그의 존재가, 삶의 의미가, 다시 살아 숨쉬기 시작하는 것을 인지한다.
미국의 사회심리학자인 다니엘 뱃슨(Daniel Batson)은 “공감은 곤경에 빠진 타인의 상태를 지각함으로써 유발되는 타인 지향적 감정”이라고 말한다. 공감은 자신과 타인 간의 경계선을 모호하게 만들어 타인을 이해하고 이타적인 행동을 하도록 이끈다. 태어난 지 14개월밖에 안된 아기들조차 타인을 돕는 행동을 보인다는 연구 결과를 보면, 인간의 이타성은 내재된 인간의 본능일지도 모른다. 어쩌면 사회적 가치를 학습하는 과정이 인간을 보다 이기적인 존재로 만들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분명한 것은 인간이 ‘감정’의 균열을 통해 제한적인 자신의 시야를 인식하고, 스스로의 관점을 확장하며, 행동을 수정하는 ‘성장’의 길로 나아갈 수 있다는 점이다. 또, 타인의 삶을 자신의 것으로 받아들이는 공감의 출발점에는 인간이라는 존재를 도구가 아닌 ‘목적’ 그 자체로 보고자 하는 근본적인 갈망, 그것이 자리한다는 사실이다.
자신이 지켜온 삶을 무너뜨릴 수 있음을 알면서도 타인을 보호하는 길을 찾는 선택, 그 누가 알아주는 것이 아님에도 모두를 위해 옳은 길로 발길을 돌리는 선택, 내가 아닌 다른 인간을 위해 나의 일부를 기꺼이 내어주는 선택, 그러한 선택들보다 인간의 의미를 더 잘 정의하는 행보가 또 있을까? 1월 19일까지 LG아트센터 서울, U+ 스테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