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하영 365칼럼] 열정과 동경, 연대와 지지의 힘...국립극단 '사일런트 스카이'
[앨리스 박사의 문화로 보는 세상풍경] - ‘레빗 법칙’ 발견한 20세기 초 여성 천문학자 헨리에타 레빗의 일대기 - 미국 내 작품이 가장 많이 무대화된 극작가 로렌 군더슨의 2011년 작품
인터뷰365 주하영 칼럼니스트 = 무언가를 향한 통제할 수 없는 열렬한 마음, 애정을 품은 채 끝없이 집중하게 되는 강렬한 에너지인 ‘열정’은 전염성을 발휘한다. 누군가가 마음에 품은 열정의 불꽃은 밤하늘의 별이 되어 주변을 밝히고, 많은 이들의 시선이 그 ‘빛’을 향하도록 만든다.
도대체 무엇 때문에 그토록 뜨거운 열정을 쏟아내는가에 대한 궁금증은 사람들의 관심을 대상에 쏠리도록 만든다. 엄청난 부와 명예가 따라오는 것도 아닌데, 다른 누가 존경을 드러내거나 알아주는 것도 아닌데, 무언가를 향해 끝없이 에너지를 쏟으며 헌신하는 열정을 지닌 자의 ‘반짝이는 눈빛’은 타인의 ‘동경’을 낳는다.
보편적인 삶의 방식에 혁신을 가져올 대단한 기술을 개발하는 것도 아니고, 당장 현재를 위기에서 구할 수 있을 만한 지식을 얻는 일도 아니면서, “신호가 도달하는 데만 수백 년이 걸리게 될 전파”를 암흑 속에 흘려보내며, 매일 밤하늘을 바라보고, ‘우주’가 품은 신비를 연구하고자 평생 애쓰도록 사람들을 추동하는 것은 과연 무엇일까?
천문학자이자 행성과학자인 심채경은 '천문학자는 별을 보지 않는다'에서, 하늘과 자연, 우주를 향해 열정을 바친 사람들이 품었던 뜨거운 반짝임과 동경, 호기심이 천문학의 길로 이끄는 출발점이 되었다고 말한다.
“관측은 잠깐이지만 관측 자료를 처리하고 분석하는 일은 몇 개월씩 걸리는” 천문학 연구는 ‘우주적’ 깨달음을 얻는 순간의 희열을 향한 끝없는 연구자의 걸음과 열정, 노력, 헌신을 통해서만 가능하다.
심채경은 “남들이 보기엔 저게 대체 뭘까 싶은 것에 즐겁게 몰두하는 사람들”과 그들이 “동경하는 하늘을, 자연을, 우주를 함께 동경한다”고 덧붙인다.
지난 12월 28일, 국립극단은 2024년 시즌의 마지막 라인업 작품인 연극 '사일런트 스카이'의 막을 내렸다. '아메리칸 씨어터 매거진'에 의해 “미국 내에서 작품이 가장 많이 무대화된 작가”로 세 번이나 선정된 로렌 군더슨(Lauren Gunderson)의 2011년 작품인 '사일런트 스카이'는 대중에게 잘 알려지지 않은 20세기 초 여성 천문학자 ‘헨리에타 레빗’(Henrietta Swan Leavitt)의 삶을 소재로 하고 있다.
역사와 과학, 문학의 영역에서 제대로 조명되지 않았거나 주목될 필요가 있다고 여겨지는 ‘여성 인물’들의 삶을 주로 다루는 군더슨은 ‘정치적 행동주의’를 지지하는 작가이기도 하다.
“예술이 문화를 바꾸고, 바뀐 문화가 정책을 바꾼다”는 신념을 갖고 있는 군더슨은 “모든 것이 연결”되어 있는 세상에서 극작가로서 문화를 바꿀 수 있는 작품을 쓰는 일은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2021년 웨비나(Webinar)를 통해 진행된 메리 엘렌 헌트와의 인터뷰에서, 군더슨은 자신의 작품 대부분이 “품기 어려운 희망을 간직할 것을 당부”하는 메시지와 여전히 앞으로 나아가며 “싸워야 할 의지를 불러오는 결말”을 품고 있는데, 그 이유는 ‘연극’이라는 장르의 특성과 관련이 있음을 지적한다.
누군가의 삶이 펼쳐지는 무대는 조명이 켜지고 현실로 되돌아가 일상을 반복하기 전, 잠시 동안 “생각할 시간”을 제공한다. 연극이 불러온 질문은 집으로 돌아가는 차 안에서, 혹은 타인과 식사를 하며 “대화”를 나누는 과정에서 “변화”를 발생시킬 수 있는 ‘여지’를 품는다.
또, 공연을 보는 가운데 웃거나 반응을 보이면서 “다른 관객을 인식”하고 공감을 나누는 일은 ‘공동체 의식’을 감각하도록 만든다. 군더슨은 집단으로 모인 사람들이 무대가 보여주는 ‘타인’의 삶에 몰입하는 동시에 주변에 있는 ‘타인’을 인지하고 함께 반응하게 만드는 연극이라는 장르의 독특함이 관객으로 하여금, 공동체의 일원으로서 “내가 무엇을 해야 할까를 고민하게 만든다”고 피력한다.
연극 '사일런트 스카이'는 우연히 서점에서 발견한 레빗에 대한 전기문이 계기가 되었다.
뉴욕타임스의 과학 기자였던 조지 존슨이 2005년에 쓴 '미스 레빗의 별들'을 읽으면서 자신이 모르는 여성 과학자가 있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은 군더슨은, 우주의 크기를 발견하는 데 절대적인 기여를 한 여성 천문학자에 대한 세상의 무관심을 타파할 필요를 느꼈다.
하지만 존슨이 전기문의 서문에서 언급하고 있다시피, 레빗의 사적인 삶에 대한 일기 혹은 기록이 거의 없는 상태에서 “사연이 있는 인간”으로 그녀의 삶을 무대 위에 구현하는 일은 극작가만의 특별한 조치가 필요해 보였다.
군더슨은 존슨의 전기문이 제기하는 의문을 수용하면서, 여성의 권리와 자유가 제한되었던 시대의 한계와 사회적 배제를 중심에 놓는 선택을 했다.
존슨은, 레빗이 발견한 상관관계 법칙이 태양계가 속해 있는 우리은하(은하계)가 우주의 전부라고 인식했던 1920년대의 사고의 틀을 완전히 깨고, 우주의 영역을 수십억 배로 확장시킨 천문학자 ‘에드윈 허블’의 논문 발표를 가능하게 만든 ‘출발점’이었다면, ‘왜 미스 레빗은 허블과 어깨를 나란히 할 천문학자로 더 나아갈 수 없었던 것인가’에 대한 질문을 던졌다.
이에 군더슨은 천문학 논문 발표자로 직접 이름을 올리거나 망원경으로 직접 별을 관측하고 연구를 진행할 수 없었던 당대의 답답한 현실을 부각시켰다.
또, 존슨이 전기문에서 에피그라프로 인용한 토마스 말론(Thomas Mallon)의 '두 개의 달'(Two Moons)에서 아이디어를 얻었다.
실제 인물의 삶을 바탕으로 훨씬 더 생생한 과거를 가진 인물을 구현해 진실을 탐구하는 것으로 유명한 소설가 말론의 '두 개의 달'에는, 1870년대 후반 해군 천문대에서 ‘인간 컴퓨터’로 일하게 된 여성 인물이 등장하는데, 천문학과 정치, 로맨스를 결합한 소설의 방식이 군더슨에게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군더슨은 레빗의 전기적 사실들을 기본 토대로만 사용할 뿐 “지치지 않는 갈망과 열정”을 보유한 그녀의 구체적 성격의 형상화와 여동생 마거릿과의 대칭적 관계, 하버드천문대 소장인 피커링 밑에서 일하는 천문학자 피터 쇼와의 연애 사건 등을 모두 허구로 덧붙인다.
또, 역사 속 시기가 딱 맞춰지지 않는 여성 인물들을 한 곳에 함께 했던 것으로 배치하거나 그들이 이후에 이룬 업적을 앞쪽에 배치하는 등 실제 사실을 변형해 적용한다. 이는 “인간 컴퓨터”로 불렸던 당대 여성 천문학자들의 사회적 위치와 한계, 연대와 지지를 강조하고자 했기 때문이다.
더불어 여성 참정권 획득의 역사 속에서 ‘전통적 가치를 따르는 여성’과 ‘새로운 변화의 흐름으로 향하는 여성’의 대조적 삶과 갈등, 가족에 대한 의무와 헌신, 사랑의 조건과 한계, 사회적 성취에 필요한 끊임없는 도전과 열정의 필요, 실존에 대한 질문을 제기한다.
과학적 진보의 어려움만큼이나 사회적 진보 또한 쉽지 않으며, 우주 속에서 우리은하의 위치를 찾아내려는 노력만큼이나 사회 속 여성의 위치를 찾는 노력은 인내를 필요로 한다.
1893년, 하버드대가 남성만 입학이 가능한 학교였을 당시, 여성을 위해 운영된 학교인 래드클리프 칼리지를 졸업한 25세의 헨리에타 레빗은 별을 관측할 수 있을 것이란 부푼 ‘꿈’을 안고 하버드천문대에서 일을 시작한다.
하지만 여성들의 투표권을 보장하는 ‘미국 수정헌법 제19조’가 1920년에 이르러서야 통과되었던 시대의 한계는 여성인 레빗이 망원경을 사용하거나 자신만의 연구를 독창적으로 제안할 수 없도록 규제한다. 대신 그녀는 남성 천문학자들이 찍은 사진건판(photographic plates)들에 있는 작은 점과 같은 수많은 별들을 목록으로 면밀하게 정리하고 기록하는 “인간 컴퓨터”로의 업무를 부여받는다.
1847년 하버드천문대는 당시 “세계에서 가장 큰 망원경 중 하나”로 일컬어지던 15인치 대굴절망원경(The Great Refractor)을 설치했고, 1880년대 중반부터 관측 가능한 모든 별의 위치, 밝기, 색을 목록화하는 프로젝트를 실행했다.
1877년, 31세의 나이로 천문대 소장으로 부임한 에드워드 피커링(Edward Charles Pickering)은 엄청나게 쏟아지는 새로운 건판 자료들을 분류하고 정리할 인력이 필요함을 인식했다. 그는 “세심하게 조직되고 관리될 필요”가 있는 엄청난 양의 데이터를 여성이라는 “값싼 노동력”으로 해결할 수 있음을 깨달았다.
19세기 말, 천문학의 영역은 부유한 후원자의 자선이나 천문 연구에 관심이 있는 수도원의 기금에 의존해 운영되었기 때문에 자금이 늘 부족했다. 하지만 최저임금에 해당하는 시간당 25센트를 받고 정밀한 작업을 오랜 시간 계속하려는 교육받은 남성은 많지 않았기 때문에 ‘인간 컴퓨터’로서의 업무는 주로 여성들에게 주어졌다.
하루 7시간, 주 6일의 근무에 주당 10.50달러의 임금을 받는 인간 컴퓨터들은 매일 밤 새롭게 관측된 유리 사진건판 위의 별들을 면밀하게 분류했다.
“하얀 밤하늘에 차가운 검은 별들이 깨처럼 뿌려진 유리 하늘”이라고 불렸던 사진건판은 깨지기 쉬워 조심스럽게 다뤄져야만 했고, 여성 인간 컴퓨터들은 별들의 크기와 밝기를 측정하고 계산해 관찰한 내용을 상세히 기록함으로써 귀중한 아카이브를 만들어냈다.
하버드천문대가 1989년까지 촬영해 소장하고 있는 천문용 건판 50만 개는 이처럼 장시간 앉아서 철사와 유리로 만들어진 작은 파리채와 같은 도구를 사진건판 위에 놓고 별의 밝기 등급과 위치, 날짜를 기록하는 일을 끊임없이 계속했던 여성 인간 컴퓨터들의 노력을 통해 기록으로 구축되었다.
또, 그들 가운데에는 별들의 스펙트럼을 분류하는 ‘하버드 항성 분류법’을 개발해낸 ‘애니 캐논(Annie Jump Cannon)’과 뛰어난 광도 측정가로서 하버드 최초 여성 ‘천체사진 큐레이터’로 임명된 ‘윌러미나 플레밍(Williamina Fleming)’, 세페이드 변광성의 주기-광도 관계를 밝혀냄으로써 별까지의 거리를 잴 수 있는 기준을 제시한 ‘헨리에타 레빗’이라는, 대중에게 알려지지 않았으나 중요한 업적을 남긴 여성 천문학자들이 있었다.
군더슨은 자신의 일에 누구보다 헌신적이었으며 “거의 종교적 열정”으로 고된 작업을 반복하며, 밝아졌다 어두워지는 별들의 맥동 원인을 찾고자 했던 레빗의 끈질긴 노력을 중심으로, 자신만의 상상을 더해 극을 완성한다.
특히 레빗이 그토록 고뇌하며 찾을 수 없었던 패턴의 힌트를 마침내 발견하게 되는 순간을 ‘음악’과 연결해 극적으로 부각시키기 위한 의도에서, 군더슨은 레빗의 여동생 ‘마거릿’을 피아니스트로 설정한다.
마거릿이 작곡한 피아노 연주를 들으면서 밤하늘의 별을 바라보던 레빗은 “천문학자로 생각하는 것에서 벗어나 음악가로 생각하는 순간”을 맞이한다.
군더슨은 세페이드 변광성의 주기와 광도의 관계를 소리의 높낮이와 강약, 빠르고 느림을 의미하는 ‘음조’를 통해 발견하는 것으로 표현하는데, 긴 터널의 끝에서 깨달음의 ‘빛’을 마주하는 순간의 환희와 벅찬 감정을 대사가 아닌 ‘음악’이 주는 감동으로 드러내는 것이 연극적 효과를 극대화할 수 있기 때문이다.
레빗이 시간대별로 다른 밝기를 보이는 세페이드 변광성의 변화에 주목해 “변광 주기가 길수록 별의 밝기가 더 밝다”는 비례 관계를 찾아낸 맥락은, 무대 위 검은 하늘에 위치한 별들이 마거릿이 연주하는 음악에 맞춰 함께 깜빡일 때 극적인 효과를 발휘한다.
마거릿은 사실 레빗과는 대조적인 삶을 영위하는 인물로서, 결혼을 통해 가정을 이루고 당대의 표준에 맞는 삶을 살아가는 종교적으로 신실한 여성으로 등장한다. 레빗이 우주의 신비를 통해 신을 발견한다면, 마거릿은 음악을 통해 신을 발견한다고 할 수 있는데, 마거릿과 레빗은 전혀 다른 삶을 사는 것 같으면서도 ‘꿈’을 성취하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
청력 손상으로 인해 늘 보청기를 착용해야 들을 수 있는 레빗이 오히려 보청기를 빼놓고 침묵 속에 잠겨 건판 위 별들에 몰두할 때 보다 집중력을 발휘하는 것처럼, 마거릿은 가정의 의무인 집안일을 모두 마치고 마침내 고요 속에 침잠할 수 있는 밤이 되어서야 작곡에 몰두한다.
군더슨은 레빗이 세페이드 변광성의 밝기를 이용해 먼 은하까지의 거리를 측정할 수 있는 표준을 세우고, 우주의 크기를 측정할 수 있게 만든 ‘최초의 인물’이 되는 업적을 이룬 것처럼, 마거릿 또한 교향곡을 작곡한 여성 작곡가로 업적을 이룬 것으로 그려낸다.
1921년, 53세의 나이에 암으로 사망한 레빗과 달리 마거릿은 손주 12명의 입맞춤과 함께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자신의 교향곡을 들으면서 눈을 감는 것으로 설정되어 있는데, 이는 여성 참정권 획득 이후 사회의 진보가 반영된 결과를 군더슨이 보여주고자 했기 때문이다.
마거릿과 더불어 또 하나의 허구적 인물인 천문학자 ‘피터 쇼’ 또한 당대의 사회 분위기를 보여주기 위한 장치라고 할 수 있다.
쇼는 레빗과 사랑에 빠져 결혼에 이를 듯 잠시 로맨틱한 관계를 형성하지만, 뇌졸중으로 쓰러진 아버지 소식을 듣고 위스콘신의 집으로 돌아간 레빗이 한동안 돌아오지 못하자, 집안에서 정해준 여인과 결혼한다. 그는 부권 중심 사회의 억압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체제에 순응하고 한계를 넘어서지 못하는 인물로 표현된다.
군더슨은 쇼라는 인물을 통해, 지칠 줄 모르는 열정을 따르는 레빗을 동경하지만 기존의 관점을 뒤엎는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이나, 우리은하 밖에 또 다른 은하가 있을 수 있는 가능성을 “기존에 구축된 지성의 역사를 무너뜨릴 수는 없다”는 이유로 받아들이지 못하는 사회의 입장을 대변한다.
망원경을 마음껏 들여다볼 수 있고, 한계에 부딪치지 않고 연구할 수 있지만, 대부분의 학자들이 생각하는 이론을 그대로 수용하고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는 쇼는 “진리를 추구하지 못한다면, 우리의 삶이 도대체 무슨 의미인가”를 묻는 레빗과 대조를 보인다.
광활한 우주가 품고 있는 ‘진리’는 그것을 추구하는 사람이 맞닥뜨린 한계에는 관심이 없다. 진리가 자리하고 있는 곳에 닿을 에너지를 갖춘 자의 끝없는 두드림, 지치지 않는 열정, 멈추지 않고 나아가려는 의지를 기다릴 뿐이다.
군더슨이 레빗의 입을 통해 말하듯, 우리가 깨달아야 하는 점은 바깥세상에 있는 더 큰 존재에 대한 관심으로 향하는 길에서 자신이 “거대한 우주의 한 조각이자 일부”일 뿐임을 인식하는 것이다.
우리의 삶은 나름의 의미를 찾기 위해 앞으로 전진하는 노력을 멈추지 않는 것에서 완성될 수 있으며, “완벽한 연소의 흔적”을 남긴 채 끝에 이르러 “드넓고 깊고 어두운” 암흑 속으로 사라지지만, 시간은 상대적일 뿐, 멀리 떠나버렸다고 해서 우리 곁에서 완전히 멀어진 것은 아니라는 점을 마음에 품어야 할 필요가 있다.
벨기에의 작가 모리스 마테를링크는 우리가 몸 바쳐 사랑하는 것이 무엇이든, “언젠가 그 사랑의 잿더미 속에서 발견하게 될 보석은 사랑의 대상이 아닌 사랑 자체에서 나온 것”이라고 말한다.
“진정성 있는 사랑의 순수한 열정, 그 완강함만이 삶의 지평에 지워지지 않을 흔적을 남긴다”고 강조하는 마테를링크는 “우리의 가슴속에 깊이 자리한 감정의 본질 말고는 모든 것이 지나가고 변하며 사라져 버린다”고 덧붙인다.
우주를 향해 동경의 마음으로 온 열정을 불태운 레빗의 삶이 의미를 가지는 것도 바로 그 때문이 아닐까? 레빗이 별을 향해 쏟은 사랑의 순수함, 진보를 향한 완강한 의지는 “레빗의 법칙”이라는 이름으로 우리 곁에 남아 ‘흔적’을 드리우고 있다.
군더슨이 관객에게 선물하고자 했던 것은 그러한 그녀의 삶이 우리의 가슴속에 남기는 ‘감정’, 한계 속에서도 굴하지 않고 열정과 의지로 앞을 향했던 레빗을 비롯한 여성 천문학자들의 ‘연대와 지지’, 바로 그것이 아니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