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중헌의 문화와 사람] '환상의 듀오', 화술 달인(達人) 주호성 배우의 인생 연극
- 12월 8일까지 대학로 공간 아울서 앙코르 공연 - 주호성·정재연 배우 찰떡 호흡...세대·젠더 간 갈등, 멋진 하모니로 풀어낸 생활 속 연극
인터뷰365 정중헌 기획자문위원 = “연극이 잘 되는 나라가 행복한 나라다!”
제목을 '환상의 듀오'로 바꿔 극단 원이 대학로 공간 아울에서 앙코르 공연(11월 21일~12월 8일) 중인 무대에서 주인공 천일염 역을 맡은 주호성 배우가 객석을 향해 던진 대사가 새삼 귀에 꽂혔다.
문화부국, 문화강국이라는 말처럼 문화와 예술이 번성하면 그 나라 국민들의 삶의 질은 높아지고, 일상이 행복해지는 것은 진리인데 우리 현실이 그런 것일까 하는 생각이 들어서다.
22일 공연에, 얼마 전 성남에서 공연된 대연장과 성남문화재단 합동공연 '소작지'(노경식 작, 주호성 연출)에 출연했던 젊은 배우들과 함께 관람한 '환상의 듀오'는 제목 그대로 환상적인 2인극이었다.
두 달여 사실주의 연극 대작 '소작지'를 연습하면서도 '듀오' 연습에 박차를 가했던 주호성 배우는 ‘화술의 달인(達人)’이라 해도 지나치지 않을 정도로 일상의 대사들을 속사포처럼 쏟아내면서도 고저장단에 틀림이 없어 쏙쏙 귀에 들어왔다.
괄목할 변화를 보인 쪽은 정재연 배우였다.
현실에서나 무대에서나 아버지 뻘인 주호성 배우와 듀오 연기를 펼쳐야 해 초연 때는 약간 긴장된 면도 없지 않았으나, 이번 무대에서는 세대 차이를 진솔함과 애교로 털어버리고, 찰떡같은 케미를 보여주고 있다. 사실 청년과 중년들이 노인 세대와 젠더 갈등을 극복하고 소통하는 일이 쉽지 않은데, 정재연 배우는 어떤 먹통 고집쟁이도 돌려놓을 만큼 적극적이며 진심을 다하는 신뢰 연기를 보여준 것이다.
주호성 정재연의 '환상의 듀오'를 다시 보면서 극의 내용이나 대사가 매우 'up to date(최근의, 현대식의)'하다는 것을 발견했다. 픽션이긴 하지만 우리 현실에서 실제 있을 수 있는 일, 작가가 숙고해 지어낸 문어(文語)가 아니라 요즘 우리 일상에서 쓰는 구어(口語)를 쓰고 있어 친근감이 들뿐더러 극의 내용에 빨려들었다.
주호성 배우는 이 '환상의 듀오'를 통해 두 가지를 얘기하려는 것 같았다.
하나는 배우의 진실성이었다. 배우는 대사만 외워 무대에 서서는 안 되며, 그 대사를 완전하게 숙지해 자기 것으로 만든 후 상대와 주고 받을 때 관객을 감동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
배우뿐 아니다. 무대 전반에 걸쳐 최선을 다해야 한다는 것이 주호성 연출의 소신이다. 조명이나 음악은 물론 빨간 피터로 변하는 분장을 보면, 얼마나 공을 들여 무대를 만드는지 그 정성이 느껴진다.
또 하나는 작품을 통해 전하려는 ‘출구(出口)’라는 메시지다.
아프리카에서 포획되어 온 원숭이는 인간에 의해 ‘빨간 피터’라는 이름이 붙여지고, 인간의 말을 따라하는 구경거리가 되지만, 학술원에 제출하는 보고서에서 드러나듯 끊임없이 ‘출구’를 모색한다.
고령화 시대를 맞아 70~80대 노인들은 여러 요인에 갇혀 출구를 못 찾고 헤매고 있고, 20~30대 젊은이들 역시 출구가 보이지 않아 답답해 하는 것이 우리 현실이다.
'환상의 듀오'는 이 출구가 막힌 두 세대를 연결하여 불통과 단절보다는 갈등을 치유하고 아름다운 이중주를 연주해 가는 과정을 리얼하게 그려내 공감을 안겨주고 마음의 출구를 열어주고자 한다.
고독한 노배우가 아름답고 마음씨 고운 사회복지사를 만나 나이와 세대를 뛰어넘어 결이 고운 하모니를 연주하는 무대에는 정우석(복지팀장), 신비경(딸), 이민수(경찰), 이하늘(피싱녀) 배우들이 따뜻하게 에워싸고 있다. 사실 공연 시간 120분은 다소 길긴 하지만 주호성 정재연 두 배우의 호흡이 엄청 잘 맞고, 분장과 의상 교체 때마다 이들이 산뜻하게 무대를 채워주어 결코 길게 느껴지지 않았다.
'소작지' 공연을 위해 오디션을 통해 선발한 젊은 배우들-이기복, 변지석, 장문규, 서정우, 장민기, 강민주, 김민수, 오준석-은 공연을 관람하며 주호성 배우의 찰진 대사와 달인의 화술에 애정이 듬뿍한 박수로 호응했다.
22일은 마침 주호성 배우의 생신일. 젊은 배우들은 공연 마치고 함께 한 기념촬영 무대에서 즉석 케익 커팅과 ‘생일 축가’를 합창하는 흐뭇한 광경을 연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