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하영 365칼럼] 불안한 세상 속 ‘자아’ 찾으려는 몸부림...토월정통연극 '햄릿'

[앨리스 박사의 문화로 보는 세상풍경] - 2024 예술의전당 토월정통연극시리즈 - 24년 내공의 배우 조승우의 연극 데뷔작 - 오디션으로 발탁된 5명의 신예 배우들 포함 총 15명 배우 원 캐스트 공연

2024-11-18     주하영
토월정통연극

인터뷰365 주하영 칼럼니스트 = 영국의 대문호 윌리엄 셰익스피어의 서거 400주년인 2016년 4월 23일, 세계 곳곳의 190개국을 방문해 난민 캠프에서의 공연까지 합쳐 총 197개 국가의 사람들에게 연극 '햄릿'을 선보인 12명의 배우와 4명의 스태프들이 런던으로 되돌아왔다.

1601년 엘리자베스 시대의 관객들을 대상으로 초연되었던 셰익스피어의 가장 유명한 작품인 '햄릿'을 “전 세계로 가져간다”는 2년 전의 포부가 마침내 결실을 맺는 순간이었다.

셰익스피어 탄생 450주년이던 2014년 4월 23일을 첫 시작으로 “지구상의 모든 나라에서 햄릿 순회공연을 펼친다”는 글로브 극장의 아이디어는 '햄릿'이 여전히 변화하는 세상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는 작품이며, 수많은 해석과 통찰이 가능한 “무한한 걸작”이라는 점을 인식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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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햄릿'이라는 단 하나의 작품으로 전 세계 19만 마일을 돌며 공연한 기록을 담은 책 '햄릿 글로브 투 글로브'에서, 당시 글로브 극장의 예술감독이었던 도미닉 드롬굴은 “‘햄릿’은 결코 가만히 서서 우리를 기다리지 않으며 항상 새로운 이해를 요구한다”고 피력한다.

그는 “연극 '햄릿'에 대해 ‘아하! 이제 알겠어’라고 말하는 순간은 결코 오지 않을 것”이며, 또 “절대로 그렇게 되어서도 안 된다”고 강조한다.

방문하는 곳마다 다른 역사적, 정치적 순간과 마주한 국가들에서 같은 연극임에도 다른 반응을 낳고, 이전에는 깨닫지 못했던 것들을 혼란과 이해의 과정을 거쳐 통찰하게 되는 경험이 되풀이되었다고 말하는 드롬굴은 이렇게 덧붙인다.

“하나의 공연이 자연의 다른 형태를 모두 거울처럼 비추어 담아낼 수는 없겠지만, 새로운 감수성을 꿈꾸며 들썩이는 욕망에 휩싸인 ‘햄릿’은 세상의 폐허와 잿더미 속에 무너져 내리는 마음의 고통을 겪으며 더 나은 미래를 창조하기 위해 애쓰는 순간에 있는 모든 사람에게 말을 건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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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의전당 CJ 토월극장에서는 “순수 예술장르인 연극의 부흥을 도모하며, 동시대 최고의 공연 작품을 기획·제작” 하는 것을 목표로 하는 토월정통연극시리즈의 2024년 작품 '햄릿'의 막이 내렸다.

예술의전당은 유명 매체 배우와 연극배우, 오디션을 통해서 발탁된 신인 배우를 함께 기용해 예술인의 발굴과 지원을 도모한다는 목적에 따라, 토월정통연극 '햄릿'을 데뷔 24년 만에 첫 연극 무대에 도전하는 배우 ‘조승우’와 오디션을 통해 발탁된 ‘5명의 신예 배우’가 함께하는 공연으로 선보였다.

이미 여러 뮤지컬 무대를 통해 몰입도 높은 연기와 폭발적인 에너지, 무대 장악력으로 인정받아 온 배우 조승우의 첫 연극이라는 이유만으로도 관객들의 관심은 뜨거웠다. 또, 올해 여러 버전의 연극 '햄릿'이 소개된 만큼 어떤 새로운 재해석을 보여줄 것인지에 대한 궁금증도 더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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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출을 맡은 신유청은 프로그램북을 통해 “자아에 대한 인식이 꿈틀거리는 시기”인 르네상스 시대에 탄생한 연극 '햄릿'에 주목하면서, “세상에 내동댕이쳐진 인간에게 방황은 상수다”라는 진술로, 삶의 목적과 존재의 의미를 찾아 헤매는 ‘햄릿’의 방황에 집중한 듯한 의견을 피력했다.

“서양 정전의 어떤 극작품보다 더 많이 연구되고 인용”되는 신화로 자리 잡은 작품, “매일 매 순간 어딘가에서 누군가에 의해 공연되고 있다”고 말해지는 연극 '햄릿'은 배우들에게도 신화적 지위를 갖고 있는 작품이다.

영미권의 저명한 배우들의 차별화된 연기는 하나의 역사를 구축하고 있고, 전임자들의 명연기뿐 아니라 동시대에만도 세계는 “800가지 햄릿”이 격돌하지 않은 적이 없다고 할 만큼 ‘햄릿’에 대한 폭넓고 다양한 해석이 존재한다.

2006년, 앤 톰슨과 닐 테일러는 ‘아든판 셰익스피어 햄릿’의 소개글을 통해, 엄청난 연구와 분석, 해설, 비평이 더해지고 있는 “햄릿 현상(the Hamlet phenomenon)”을 언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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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셰익스피어 학자 호레이스 하워드 퍼니스가 1908년, 이미 도서관에 가득한 400여권의 해설서들을 지칭하면서, “더 이상 햄릿에 대한 글을 쓰지 말아 줄 것”을 간곡히 부탁했던 연설을 인용한 톰슨과 테일러는, 1990년대까지 ‘햄릿’에 관한 출판물이 연평균 400여 종을 넘어설 정도로 발전을 거듭했음에 주목했다.

2016년, 톰슨과 테일러는 이러한 ‘햄릿 현상’이 불과 10년 만에 더욱 놀라운 속도로 다양하게 성장하고 있음을 지적하면서, 세 가지 텍스트 판본에 대한 수정과 새로운 논쟁이 더해진 업데이트 개정판을 선보였다.

1603년에 출판된 ‘제1사절판(Q1)’과 1604년의 ‘제2사절판(Q2)’, 1623년의 ‘제1이절판(F)’의 세 가지 텍스트 판본의 차이에 관한 주석과 여러 다른 해석이 담긴 비평 노트는 무려 380페이지에 달하는 분량을 차지했다.

복수와 정치, 내면의 혼란, 존재와 사유, 행동과 지연, 배신과 욕망, 사랑, 도덕적 타락을 다루는 연극 '햄릿'은 400년이 넘는 시간 동안 각 시대를 대표하는 배우들의 연기를 통해, 또 수많은 학자와 비평가, 연출가들의 분석을 통해 “가장 흥미롭지만 궁극적으로는 헤아릴 수 없는 인물”로 인한 위상을 공고히 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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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의 위텐버그(Wittenberg) 대학에서 학문을 공부하다 덴마크로 돌아온 서른 살의 햄릿은 “철학적이고 관조적”이며, 우울과 고통, 혼란에 사로잡혀 있다.

부왕의 갑작스러운 죽음 이후 두 달도 채 되지 않아 삼촌 클로디어스와 재혼한 어머니 거트루드로 인해 배신감을 느끼는 햄릿은 죽은 유령의 출몰로 인해 숙부가 선왕인 아버지를 살해하고 왕위에 올랐음을 인지한다.

들끓는 분노와 충격 속에서 ‘복수’를 다짐하지만, 곧바로 행동으로 옮기지 못한 채 “집착에 가까운 사유”로 방황하는 햄릿은 “쉽게 답할 수 없는 질문들”을 스스로에게 던지며 복수를 유예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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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햄릿은 어머니와 자신의 대화를 엿듣고 있는 자가 누구인지 확인도 하지 않은 채 칼로 찔러 충동적으로 폴로니어스를 죽이는 성급함을 보이거나, 햄릿의 목을 벨 것을 명령하는 친서를 영국 왕에게 전달하려는 로젠크란츠와 길덴스턴을 죽음으로 밀어 넣는 편지를 위조하면서 “놀라울 정도로 빠르게 행동”하는 순발력을 보인다.

본래 '곤자고의 살인'이라는 제목의 연극이지만, 숙부 클로디어스의 살해에 관한 암시와 대사를 추가해 '쥐덫'이라는 이름의 연극으로 바꿔 부왕 살해의 증거를 확인하고자 하는 햄릿은 치밀하다.

하지만 기도하는 숙부를 칼로 찌를 ‘절호의 기회’를 마주하고도 회개하는 자를 죽여 구원의 여지를 남겨줄 수는 없다는 이유로 복수를 유예할 만큼 지나친 신중함을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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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광기를 가장한 채 진실을 낚으려고 하는 햄릿의 거친 언어와 말투, 갑작스러운 돌발 행동, 날카로운 칼날처럼 파고드는 비유들은 그가 정말로 미친 것인지, 미친 척하고 있는 것인지에 대한 의문을 품은 채 관객으로 하여금, “진짜 광기와 가짜 광기”의 경계를 넘나드는 햄릿의 ‘진실’을 엿보기 위한 노력을 지속하도록 만든다.

햄릿 스스로도 “온 천지가 아버지의 원수를 갚으라고 재촉하는데, 난 대체 무엇을 하고 있단 말이냐!”라고 외칠 정도로 행동으로 옮겨지지 않는 복수는, 결국 사랑하는 여인의 아버지이자 내각총리인 폴로니어스를 죽이는 우발적 살해와, 영국으로의 추방, 오필리아의 자살, 그리고 어머니 거트루드와 레어티즈뿐 아니라 햄릿 자신의 죽음이라는 ‘비극’으로 이어지게 된다.

햄릿이 숙부를 죽이려는 순간 ‘왜 망설이는가’에 대한 논의는 단순히 극의 액션을 길게 하기 위한 플롯 장치라는 의견부터, 냉혈한 살인을 둘러싼 윤리적⸱철학적 논리의 복잡성, 솟구치는 욕망으로 인한 불안정성, 정신분석적 무의식의 발현 등 수많은 해석의 충돌을 낳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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햄릿의 독백들은 당시 셰익스피어가 읽었을 것으로 추측되는 프랑스의 사상가 미셸 드 몽테뉴의 ‘수상록’의 내용과 유사성을 품고 있고, 스티븐 그린블랫의 분석처럼, ‘자아’라는 개념이 고려되기 시작한 르네상스 시대의 사회적 심리구조를 반영하고 있는 측면이 있다.

“오늘날 가장 중요한 셰익스피어 연구자”로 지칭된 그린블랫은 셰익스피어가 '햄릿'을 통해, 자신만의 정체성을 구축하려고 시도할 때 권력 구조가 어떤 통제를 강요하는지, 개인은 얼마나 자율적으로 자아를 형성할 수 있는지, 자신을 둘러싼 사회적 맥락에 자아가 얼마나 종속되어 있는지를 드러내고자 했음을 강조한다.

2024 토월정통연극 '햄릿'은 기존의 세상에서 자신만의 정체성과 가치를 세우려고 분투하는 새로운 세대, 질식할 듯 강요되는 이전 세대의 부패함과 억압 속에서 나름의 정의를 세우고 길을 찾으려고 애쓰는 젊은 세대의 ‘몸부림’에 방점을 찍고자 한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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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둡고 추운 밤, 홀로 파수를 보던 병사가 자신을 향해 다가오는 미지의 존재를 향해 “거기 누구냐?”라고 외치는 대사로 시작하는 연극 '햄릿'은 노르웨이의 젊은 왕자 포틴브라스가 비극의 현장에 도착하고 햄릿의 유언에 따라 덴마크의 왕권을 이어받는 장면으로 끝을 맺는다.

연출 버전에 따라 생략되기도 하는 덴마크와 노르웨이의 관계와 햄릿과 포틴브라스 사이의 유사성과 대조성을 그대로 품으면서 오히려 더 강조하는 듯 보이는 토월정통연극 '햄릿'은 주인공 ‘햄릿’의 심리적 갈등과 방황, 비극의 여정에 집중하면서, 포틴브라스와 레어티즈, 오필리아, 햄릿을 모두 하나로 엮는 각색을 시도한 특징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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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견상 셰익스피어의 원작을 그대로 따른 듯 보이지만, 세부적인 장면들의 배치를 다르게 하고, 햄릿의 독백을 분리해 3개의 판본과 다른 위치로 이동시키거나, 겹쳐지지 않는 장면들을 동시에 발생하는 것으로 중첩시킨 각색은, 주인공인 햄릿의 행보에 주석처럼 나름의 설명을 제공한 효과를 낳는다.

또한, 인물들이 서로를 엿보는 장면들이 추가됨으로써 햄릿의 갑작스러운 감정의 폭발처럼 보이는 순간들이 심리적 이유와 근거를 갖게 된 부분이 있다.

가령, 오필리아를 향한 햄릿의 분노 섞인 과격한 말들은 오필리아의 아버지인 폴로니우스가 그녀에게 햄릿 왕자를 가까이하지 말 것을 명령하는 장면을 햄릿이 이미 엿본 데서 비롯된 것으로 구현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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햄릿의 유명한 독백들의 위치 역시 분절된 상태로 움직이면서 햄릿의 광기 어린 행동의 원인, 거짓으로 점철된 세상에 대한 환멸과 분노를 강조하는데, 오필리아에게 “수녀원으로 가버려!”라고 거칠게 말하는 장면은, 햄릿이 연극을 통해 클로디어스의 범죄에 대한 증거를 확인한 후, 자신에 대한 희망을 완전히 버리도록 유도하기 위해 쏟아낸 것으로 설정되어 있다.

엄청난 길이를 가진 5막 구성 원작의 장면들을 대부분 그대로 포함시킨 채 180여 분으로 축약한 각색은 ‘햄릿’이라는 캐릭터에 가장 집중한 측면이 있다.

시적인 비유들이 산문으로 변형되고 많은 대사들이 축약된 단점은 주연 배우의 노련한 전달력과 풍부한 감정, 리듬이 느껴지는 강약 조절로 인해 시적 느낌을 잃지 않고 전달된다.

축약 과정에서 햄릿을 제외한 다른 주요 인물들의 대사가 상당 부분 잘려나가면서 캐릭터의 설명이 부족하거나 다소 밋밋해진 점이 있으나, 원작에 없는 오필리아의 대사를 추가하거나 등장하지 않는 장면에서 등장하도록 만드는 등 보완적 조치를 더한 점이 엿보인다. 단, 원작에 대한 이해가 바탕이 된 경우가 아니라면 변경된 부분들을 관객이 인식하지 못했을 가능성이 존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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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월정통연극 '햄릿'은 일반적으로 아버지의 죽음에 대한 복수라는 측면에서 레어티즈와 햄릿의 유사성과 차이점으로 인해 평행한 캐릭터로 제시되는 맥락이 약화된 반면, 포틴브라스에게 햄릿이 부여하는 의미를 강조한다.

특히 마지막 장면에서 변형된 부분들이 연출의 의도를 짐작하게 하는데, 햄릿을 죽이려고 준비한 ‘독’이 든 술은 클로디어스를 의심하지 않은 채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에서 거트루드가 대신 마시게 되고, 햄릿을 확실하게 죽이기 위해 ‘독’을 바른 검에 관한 음모는 클로디어스만의 계략으로 설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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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어티즈와 햄릿을 둘 다 스친 검은 마침내 클로디어스 또한 찔러, 자신이 심은 ‘독’에 의한 죽음으로 선왕을 살해한 죄를 갚게 만드는 ‘햄릿의 복수’를 완성한다. 죽어가는 햄릿은 절친인 호레이쇼에게 자신의 명예를 지킬 수 있도록 ‘진실’을 세상에 전달해 줄 것을 부탁한다.

포틴브라스의 도착을 알리는 포성을 들은 햄릿은 “가혹한 운명을 버텨낸 그 친구”만이 자신이 간직하고 있던 “인장의 무게를 알 것”이라면서, 왕위 계승에 관한 유언을 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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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작에서 햄릿의 마지막 대사인 “이제 남은 것은 침묵뿐”을 끝내 마무리하지 못한 채 숨을 거둔 햄릿의 목소리는 포틴브라스에게로 이어지는 느낌을 낳는다.

엘시노어 성에서 전쟁터에나 어울릴법한 유혈과 주검을 마주한 노르웨이의 왕자 포틴브라스는 과거의 전쟁으로 빼앗긴 영토를 되찾은 자답게 “오늘은 두 나라의 어긋난 고리를 바로잡은 날로 기억될 것”임을 선포한다.

“남은 것은 침묵뿐”이라는 대사는 결국 호레이쇼의 입을 통해 전달되고, 햄릿에 의해 “가장 믿을만한 친구”라고 지칭된 호레이쇼가 “가장 닮고 싶었던 친구”의 진실을 전달하는 이야기 구조는, “침묵하는 세상” 속에서 어긋난 것들을 바로잡고자 분투했던 ‘햄릿’의 그림자만을 남긴 채, 성을 받치고 있던 거대한 검은 기둥들이 점점 쓰러지는 듯한 인상을 남기며 막을 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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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혹한 세상에서 의지를 갖고 굳게 버텨낸 자만이 왕관을 쓸 자격이 있다’는 의미처럼 보이는 맥락은, 행동으로만 옮기는 데 집중한 탓에 냉철함을 잃은 ‘레어티즈’와 지나치게 깊게 사유한 탓에 걷잡을 수 없는 운명의 소용돌이에서 빠져나올 수 없었던 ‘햄릿’, 선왕이 죽고 왕위를 차지한 숙부의 눈을 피해 잃어버린 것들을 되찾기 위해 전진하는 ‘포틴브라스’를, 아버지의 복수를 원했던 ‘아들 세대’라는 공통점 속에 평행하게 위치시킨다.

흥미로운 점은 오필리아의 죽음 또한 광기를 가장한 햄릿의 이해할 수 없는 행동과 아버지의 억울한 죽음으로 인한 충격 때문이 아닌, 햄릿과 유사하게 ‘복수’를 놓고 갈등하는 마음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고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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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작과 다르게 오필리아는 햄릿의 삶과 죽음, 행동과 인내, 부조리한 세상과 존재에 대한 고민이 담긴 독백의 현장을 엿듣고, 그가 떨어뜨린 칼을 주워주는데, 폴로니어스가 살해된 왕비의 침실에서 똑같은 칼이 떨어져 있는 것을 발견한다.

아버지를 죽인 원수가 누구인지를 알면서도 복수를 실행하지 못한 채 슬픔과 배신, 고통과 분노, 좌절과 실망 사이에서 방황하는 혼란은 오필리아 역시 ‘광기’로 향하도록 만든다.

물에 빠져 죽은 오필리아의 장례식 장면에서 햄릿은 죄의식과 혼돈, 극도의 슬픔을 토해내며 그녀를 향한 사랑이 진심이었음을 토로한다. 하지만 레어티즈의 날카로운 지적처럼, 사실 햄릿은 “눈물을 흘릴 자격”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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햄릿은 호레이쇼에게 아무리 걸으려고 해도 도저히 앞으로 내디딜 수 없는 절망의 깊이를 오필리아 역시 느꼈을 것이라고 토로한다. 그는 어디에도 말할 수 없는 어두운 비밀을 마음에 간직한 사람의 중압감과 외로움, 분노와 고통을 오필리아 역시 느끼는 가운데 ‘죽음’을 선택했음을 인지한다.

이처럼 각색으로 추가된 대사들은 “어긋난 시간들을 바로잡는” 운명의 햄릿이 모든 것을 되돌리기 위해 분투하지만, 그 과정에서 모든 것들을 또다시 어긋나게 만들고 있는 자신에 대한 ‘인식’과, 바라는 결과를 즉각적으로 실현할 수 없는 순간에 놓인 인간이 느끼는 ‘삶의 무게와 죄의식, 회한, 죽음과 책임의 수용’ 같은 것들을 강조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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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햄릿'의 세계 투어를 지켜본 드롬굴은 “'햄릿'에는 빛나는 주인공이 미래의 지평선을 바라보는 시선이 담겨있다”고 말한다. 자유롭게 열린 텍스트의 신비로움, 그것이 셰익스피어의 '햄릿'의 가장 큰 장점이라고 말하는 드롬굴은 불안정한 정체성의 세계를 살아가고 있는 현재야말로 '햄릿'의 질문이 가장 적절한 시기임을 피력한다.

“거기 누구인가”로 시작된 질문, 명확하게 제시할 수 없는 답변, 불안과 억압, 혼란스러움 사이에서 스스로를 정의하고자 애쓰는 몸부림, 그 몸부림이야 말고 가장 ‘삶’에 근접한 것이 아닐까? 사유와 행위, 진실과 거짓,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 사이에서 존재를 인식해야 하는 인간, 그 인간에 대한 질문, 그것이 바로 '햄릿'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