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영석의 현장인터뷰] 中 주연 배우에서 韓 역진출...'중고신인' 배우 엄수빈, 연극판에 새 도전장

-중국서 주연급 영화배우로 활약...코로나19여파로 한국으로 활동무대 옮겨 -中 아나운서 출신 연기자...공리 배출한 명문 북경영화대학교 출신 - ‘맨땅에 헤딩’ 하듯 한국서 신인 배우로 ‘재도약’

2024-06-24     서영석

인터뷰365 서영석 인터뷰어 = 배우 엄수빈은 혈혈단신 중국으로 넘어가 아나운서를 시작으로 극영화 3편에서 주연을 맡았던 '중고 신인' 배우다. 게다가 장예모 장쯔이 공리 등 중국 최고의 스타급 감독 배우를 배출시킨 북경영화대학교 출신이기도 하다.

그런 그가 지난 10년간의 화려한 이력을 뒤로하고 한국 연극판에 신인 배우로 도전장을 내밀었다. 사드에 코로나19 팬데믹 등 역경의 시간을 겪으며 한국행을 택한 그는 배우의 꿈을 이어가기 위한 재도약에 나섰다.

중문과 출신...中 방송국 아나운서로 활약

서울 용산구 효창동의 평범한 가정에서 태어난 엄수빈은 끼 많던 아이였다. 어린 시절 TV를 보며 드라마 연기자들의 연기를 따라 하기도 하고 가수들이 노래를 부르면 노래와 춤을 따라 하기도 했다. 몇 번의 길거리 캐스팅도 있었다.

엄수빈은 “유년시절, 어려서부터 배우가 되고 싶다는 막연한 꿈이 있었다. 워낙 보수적인 아버지의 반대에 부딪혀 접어야 했다”고 말했다. 결국 배우의 꿈을 이뤘으니, 그 꿈이 돌고 돌아 운명처럼 20여 년 만에 다시 원점으로 돌아온 셈이다.

엄수빈은 숙명여대 중문과 출신으로, 배우가 되기 전 아나운서로 활동했다. 대학 졸업 후 일반회사에 1~2년간 근무하다 케이블 방송 등에서 프리랜서 아나운서 겸 MC로 활약했다. 그러던 중 우연히 중국 연변의 한 방송국에서 중국어가 가능한 아나운서를 모집하는 공지를 보고 지원했고 이를 계기로 중국과의 첫 인연을 맺었다. 당시 한류 훈풍이 불던 시기였고, 그런 사회적 분위기에 편승해 그 역시 승승장구했다.

엄수빈은 “연변, 청도, 대련을 수없이 오가며 한국을 소개하는 고정프로를 맡아 종횡무진으로 활약했다”고 말했다.

‘사드’ 여파로 프로그램 폐지 수난....위기를 기회로

하지만 호사다마(好事多魔)라 했던가. 고난이 닥쳤다. 2016년 경 사드 사태 여파로 '한한령'에 잘 나가던 한국드라마도 하루아침에 방영금지를 당하던 시기였다. 당시 엄수빈이 맡았던 프로그램도 폐지되는 수난을 겪었다.

“귀국을 고민하다, 방송을 하면서 PD들에게 들었던 칭찬이 뇌리를 스쳤어요. 제가 했던 프로그램 중에는 중국의 미식과 명승고적을 소개하는 리포팅 프로그램도 있었기에 어느 정도 연기가 필요했죠. 그래, 이거다! 하고 연기에 대한 꿈을 다시 꾸게 됐죠.”

위기가 기회로 바뀐 순간이었다. 그는 중국인들도 입학하기 힘들다는 북경영화대학교 연극영화과에 인터뷰까지 무난히 통과해 합격의 기쁨을 맛봤다. 이러한 도전과 결실에는 피나는 노력이 뒷받침됐기에 가능했다. 그는 스스로 ‘완벽주의자이자 일 중독자’라고 말했다.

“중국행 비행기에 오르면서 반드시 성공하겠다고 다짐했죠. 중국 문화에 동화되기 위해 한국인을 만나지도 않고 한인 타운에는 얼씬도 안 했어요. 방송국 경력이 합격에 보탬이 되었겠지만, 원어민에 가까운 발음 역시 큰 도움이 되었던 것 같습니다.”

중국어 노래 실력이 수준급이고, 소주는 못 하지만 중국 독주를 좋아한다는 그다. 엄수빈은 졸업 후 교수님들의 소개도 중국에서 연기자로 자리 잡는 데 큰 힘이 됐다고 고마움을 드러내기도 했다. 2년간의 수업 과정을 치열하게 보낸 결과이기도 하다.

“단역부터 경험을 쌓았어요. 닥치는 대로 출연했어요. 어느 날 보니 내가 주인공을 하고 있더라고요. 운이 좋았던 것 같아요. 진짜 열심히 했어요. 중국인 보다 더 중국 사람처럼 보이기 위해 발음부터 철저히 연습, 또 연습...방송에서의 경험도 많은 보탬이 되었죠.”

'코로나19'여파로 10년 중국 활동 접고 다시 한국으로...‘맨땅에 헤딩’ 도전기

엄수빈은 중국 활동 10년 동안 일 년에 한 번 구정 연휴에만 한국을 찾을 정도로 바쁘게 활동했다. 그러던 중 코로나19가 닥쳤다.

“2020년 1월, 구정 연휴를 맞아 3주 예정으로 잠시 한국에 왔다가 코로나로 발이 묶였어요. 당시 겨울옷 몇 벌만 캐리어에 들고 왔던 제게 너무나 황당한 일이 벌어진 거예요. 코로나가 장기화되면서 계속 다시 중국에 돌아갈 날만 기다릴 수 없어 뭐라도 해보려고 했지만, 당시 저는 한국에서 어떤 경로로 영화, 드라마, 연극에 출연하는지조차 몰랐죠.”

그는 “그렇다고 포기할 엄수빈이 아니었다”고 웃었다. 한국에선 신인이나 다름없었다. ‘맨땅에 헤딩’하듯 인터넷을 뒤지기 시작했다.

“인터넷 서핑을 엄청나게 했어요. 아무리 단역이라도, 돈도 못 받는 학생들 졸업 작품이라도 매달렸어요. 처음 반년은 연락도 오지 않더니 어느 순간부터 연락이 와서 2년 동안 웹 드라마, 단편독립영화, 넷플릭스 등 근 30여 편을 찍었어요. 서서히 자신감이 생기더라고요.”

2020년 말 드디어 중국행 비행기가 재개됐다. 그리고 일 년 만에 다시 중국에 갔지만, 상황은 예전 같지 않았다.

“코로나19 팬데믹 영향으로 외국인에 대한 경계가 심해졌어요. 타국에서 제한적 활동을 하느니 고국으로 돌아가 내 나라에서 마음 편하게 일하고 싶었습니다."

신인의 자세에서 다시 시작..."좋은 연기자 위한 발판 마련에 올인"

그리고 10년간의 중국 생활을 정리하고 귀국했다. 엄수빈은 “내 나라에서 신인의 자세에서 다시 시작했다”며 연기에 대한 강한 의지를 내비쳤다. 연극에의 도전장도 그런 의미가 담겨있다.

그가 북경영화대학교 졸업 시 참여했던 작품이 ‘바오다오이춘’ 이란 연극이었지만, 중국에서는 영화배우로 활동해왔다. 엄수빈은 내년에 대학로에서 공연되는 연극 ‘이 몸이 죽고 죽어’에서 주인공 도화 역으로 무대에 오를 것이라고 말했다. 

“사실 중국에서 연기를 배우고 연기 생활을 해온 저는 연기에 대해 끊임없이 고민을 해왔어요. 연극을 통해 제 연기 실력을 한 단계 끌어올리고 연기 생애에 한 획을 그을 수 있으리라 기대합니다. 좋은 연기자로서의 발판 마련에 올인을 하고 있습니다.”

엄수빈은 현재 영화 '그리고 목련이 필때면' 막바지 촬영에 한창이라고 말했다. 그는 “연기력에 승부를 걸고 최고의 자리에 우뚝 서는 그날까지 최선의 노력을 기울일 것”이라며 눈을 반짝였다. 그의 가까운 미래에 무한한 서광이 가득하길 기원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