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하영 365칼럼] 사회불안장애와 SNS, 거짓말에 대한 질문...뮤지컬 '디어 에반 핸슨'
[앨리스 박사의 문화로 보는 세상풍경] - 2017년 토니 어워즈 6개 부문 수상·2018년 그래미어워즈 최우수 뮤지컬 앨범상 수상 - '라라랜드', '위대한 쇼맨', '알라딘'의 창작 듀오 벤지 파섹 & 저스틴 폴 작사·작곡
인터뷰365 주하영 칼럼니스트 = 특정 상황이 부여하는 극도의 긴장감으로 인해 온몸이 경직되고 떨리는 ‘불안’은 모든 인간이 심리적 부담을 느낄 때 공통적으로 겪는 현상이다.
하지만 ‘사회불안장애(social anxiety disorder, SAD)’는 수줍음이 많아 사람들이 많은 장소를 멀리하거나, 연설이나 면접을 앞두고 긴장을 느끼는 것과는 다르다. 타인의 평가나 감시를 받는다고 느끼는 상황에 대한 극심한 두려움과 공포, 자신의 무능함을 모두가 인지함으로써 수치심에 노출될 것이라는 과도한 자의식은 일상생활에 심각한 지장을 초래한다.
심장이 불편할 정도로 두근거리고, 손바닥이 땀으로 축축하게 젖으며, 속이 메스껍고 울렁거릴 뿐 아니라 어지러움과 호흡곤란을 느끼는 증상, 낯선 사람과 대화하는 일에 끔찍한 어려움을 느끼고 심하게 떨려서 움직일 수조차 없는 상태, 사회불안장애는 ‘회피’를 안전한 것으로 느끼게 만든다.
자신의 불안과 두려움이 비합리적이고 과장된 것임을 인지하면서도 초조함을 느끼고, 타인의 판단이 굴욕감을 낳을 것이라는 공포는 실제로 그런 상황에 이른 것도 아닌데, 미리 불안을 느끼고 어떻게든 피하기 위해 온갖 노력을 기울이며 움츠리도록 만든다.
미국 불안⸱우울증 협회에 따르면, 사회불안장애는 대부분 13세부터 증상이 뚜렷해지기 시작한다. 청소년 시기는 호르몬의 영향 외에도 또래 집단의 인정에 대한 열망과 부모와의 불화, 자아에 대한 확신 부족으로 인해 불안정한 상태에 놓이기 쉬운 탓이다. 미국에서 사회불안장애로 고통받는 사람들의 숫자는 2005년 12%에서 15년 후인 2020년, 58%까지 증가했다.
여러 가지 요소가 원인으로 제기되지만, 가장 두드러지는 이유로는 “소셜미디어(social media)의 부상”을 꼽는다. 2020년 필립 제프리스와 마이클 웅가의 보고서에 따르면, 본질적으로 대면 상호작용이 필요하지 않은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SNS)의 연결 방식은 어린 나이에 진입이 가능했던 젊은 층을 중심으로 매년 사회불안장애의 증가세를 보인다고 한다.
SNS의 과도한 사용으로 인한 중독성, 비교와 경쟁으로 인한 자아 정체성의 손상, 사이버 괴롭힘과 허위 정보의 확산, 실제 소통 능력의 저하는 “개방, 참여, 공유의 가치”를 표방하며, “다대다의 쌍방향적 관계성”과 “정보의 민주화”를 지향했던 소셜미디어의 폐해이자 모순이기도 하다.
충무아트센터 대극장에서는 사회불안장애와 자살, 거짓말, 정체성, 애도, SNS의 문제를 다루는 브로드웨이 뮤지컬 '디어 에반 핸슨(Dear Evan Hansen)'의 아시아 최초 한국 초연이 막바지를 향하고 있다.
2015년 미국 워싱턴 D.C. 아레나 스테이지에서 초연된 뮤지컬 '디어 에반 핸슨'은 2016년 12월, 브로드웨이로 진출했고, 매회 매진에 가까운 판매율을 기록하며 103%라는 객석 점유율을 기록했다.
2017년 토니어워즈에서 최우수 작품상과 극본상, 작곡상을 포함해 총 6개 부문을 수상한 '디어 에반 핸슨'은 오리지널 캐스트 앨범이 빌보드 TOP 10 차트에 오르면서, 2018년 그래미어워즈에서 최우수 뮤지컬 앨범상을 수상했다. 2022년까지 브로드웨이에서 1,678회 공연을 선보인 '디어 에반 핸슨'은 영국과 호주, 핀란드에서도 공연되었으며, 2023년 북미 투어를 거치면서 뮤지컬 앨범 스트리밍 순위 3위에 올랐다.
초연 전 누구도 예상치 못한 뮤지컬 '디어 에반 핸슨'의 인기는 일반적으로 뮤지컬에서 다루기 어렵다고 간주되던 정신 건강의 문제와 청소년의 자살을 주제로 한 점도 작용했지만, 작사와 작곡을 맡은 벤지 파섹(Benj Pasek)과 저스틴 폴(Justin Paul)의 음악이 주는 위로의 힘이 큰 이유였다.
영화 '라라랜드'의 작곡에 참여해 아카데미상과 골든 글로브상을 수상한 경력의 파섹과 폴은 미시간 대학교에서 뮤지컬을 공부하던 시절부터 함께 창작을 해왔다.
‘파섹 앤 폴’이란 이름으로 활동하는 두 사람은 원래 뮤지컬 배우를 꿈꾸었다. 하지만, 1학년 발레 수업에서 자신들이 가장 춤을 못 추는 학생들이라는 사실을 깨달았고, 좋은 배역에 캐스팅되기 힘들다는 점을 인지하면서, 점차 “공연자가 아닌 창작자”가 되는 데 집중하기 시작했다.
두 사람은 대학 2학년이던 2005년, 처음 공동으로 작사/작곡을 한 뮤지컬 '엣지스(Edges)'로 출발해 현재에 이르렀다. 파섹과 폴은 SNS와 같은 커뮤니케이션 플랫폼의 발명이 자신들의 작업을 널리 알릴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고 설명한다.
2004년에 페이스북, 2005년에 유튜브가 서비스를 시작하면서, 20대 초반이었던 파섹과 폴은 다른 음악 전공자들과 자유롭게 소통할 수 있었고, 세계 어느 곳에서도 제작된 앨범 없이 디지털로 자료를 접할 수 있는 환경의 혜택을 받을 수 있었다.
공연을 계획하고 쇼케이스를 선보이거나 CD 앨범을 제작해 제공하는 과정 없이 곡을 써서 바로 업로드하고, 다른 사람들이 자유롭게 피드백을 남길 수 있는 SNS의 환경은 두 사람이 뮤지컬 작업을 활발히 할 수 있도록 만들었다.
말콤 글래드웰이 쓴 책 '아웃라이어(Outliers)'에서 언급된 “타이밍의 중요성”을 지적하는 폴은 자신들이 “매우 운 좋은 세대”임을 인정한다.
플랫폼의 발전은 마케팅을 따로 하지 않고도 홍보할 수 있는 수단이 되었고, 좋은 아이디어와 영상 콘텐츠가 온라인을 통해 퍼져 나가면서, 그들은 1년 안에 20군데와 작업하는 기회를 가질 수 있었다.
또, 2009년부터 인기를 끌기 시작한 뮤지컬 TV 드라마 시리즈인 '글리(Glee)'의 확산이 브로드웨이 및 지역 뮤지컬 시장에 영향을 미쳤고, 뮤지컬을 불편한 장르로 느끼던 사람들이 관객으로 유입되는 전성기가 시작되었다.
'디어 에반 핸슨'은 원전이 있는 작품을 개작하거나 전체의 일부만을 작사/작곡에 참여한 경우가 아닌, 두 사람이 온전히 자신들만의 스토리를 만들어 작사와 작곡을 덧입힌 “첫 번째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개발과정만 4년이 걸린 '디어 에반 핸슨'은 2010년, 당시에는 이름이 알려지지 않았던 프로듀서 스테이시 민디치의 제안으로 시작되었다.
“아무도 하지 않으려는 작업이 있는지”를 묻는 질문에 파섹은 고등학교 동급생의 죽음과 그로 인해 염려하게 된 SNS의 영향을 떠올렸다. 모든 곳이 연결된 디지털 세상에서 오히려 그 어느 때보다 “고립감”을 느끼는 현재는 ‘비극적인 사건’이 발생했을 때, 이상하게도 그 비극과 연루되기 위해 거짓된 에피소드를 조작하는 사람들을 양산하고 있었다.
폴은 9·11 테러 사건이 있던 당시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친척이 무역센터 건물에 있었다면서 거짓말을 하거나 비극과 연관된 이야기를 지어내는 현상과 마주했던 기억을 떠올렸다.
두 사람은 비극적인 사건의 일부가 되고 싶은 사람들의 욕망이 왜 생겨나는 것인지 궁금해했고, 유명인들의 죽음에 대한 기사를 공유하고 공동체로서 연대의 메시지를 남기고 행동하는 관심의 물결에 긍정적인 요소만큼 부정적인 요소가 있음을 인지했다.
뮤지컬 '디어 에반 핸슨'은 약물 과다 복용으로 숨진 파섹의 동급생의 비극에 다른 학생들이 보인 태도가 출발점이 되었다.
비극의 일부가 되려는 사람들의 열망과 공개적인 애도를 통해 관심의 중심에 있으려는 경향은 '디어 에반 핸슨'의 스토리를 처음 구성할 때부터 “일종의 비난”으로 염두에 둔 것이었다.
하지만 주인공에게 감정 이입을 하지 못할 경우, 뮤지컬로의 성공이 어렵다는 점에서 설득력 있는 연극적 대본의 필요성이 제기되었고, 극작가인 스티븐 레벤슨(Steven Levenson)이 파섹의 경험을 기초로 전체 이야기를 구성했다.
레벤슨은 죽은 동급생 ‘코너’에 대해 거짓말을 하는 주인공 에반에게 관객이 공감할 수 있는 맥락을 찾고자 노력했다.
그는 극도로 외롭고 상처받은 존재가 누군가에게 인정받고 포용될 뿐 아니라 관심의 중심에 서게 되는 순간, 그 기회를 놓치지 않고 싶은 욕망에 휩쓸려 실수를 저지를 수 있다는 보편성에 주목했다.
원래 약물 과다 복용으로 인한 우발적 죽음이었던 설정은 ‘자살’로 변경되었고, 코너는 에반의 “대리자”의 위치에 놓였다.여름 방학 때 견습생으로 일하던 공원의 나무 위에 올라가 고의적으로 두 손을 놓고 떨어져 한쪽 팔에 깁스(붕대)를 하게 된 일은 코너가 자살에 이른 사건과 연계된다고 할 수 있었다.
절망적인 외로움과 불안증세로 인한 고통, 자살 충동, 정신 건강의 문제는 에반과 코너가 다른 방식으로 표현하고 있을 뿐, 유사한 맥락을 갖고 있다.
십대가 느끼는 ‘연결’과 ‘접촉’에 대한 강렬한 열망과 소속감의 결핍으로 인한 방황, 가족 관계에서 겪는 몰이해와 갈등은 '디어 에반 핸슨'의 중심 주제가 되었다.
십대 청소년이 가족과 지역 및 학교 공동체 안에서 어떤 관계를 맺는지, 소외에서 탈출하기 위해 어떤 노력을 하는지, 죽음이라는 상실에 대처하는 사람들의 태도에는 어떠한 것들이 있는지에 관한 질문은, ‘혼자’라는 고립감에 빠진 에반이 코너의 가족과 또래집단의 관심을 받으면서 거짓말을 증폭하는 모습을 통해 탐구된다.
상담 치료사에게 제출할 과제로 “오늘 하루가 괜찮을 것”이라는 격려의 편지를 써야 하는 에반은 개학한 첫날, 소통은커녕 외면과 공격을 당하는 상황과 마주한다. 그는 불안 증세가 심해지는 우울함 속에서 원래 의도했던 긍정적인 편지가 아닌, 절망적인 상황에 대한 자신의 ‘진심’을 드러낸다.
에반이 자신을 비웃은 것으로 오해하고 밀쳐 넘어뜨리는 폭력을 행사한 코너는 프린터 인쇄를 기다리고 있는 에반에게 깁스에 사인을 해주겠다고 제안한다. 미안함을 표현하는 대신 자신의 이름을 깁스에 쓰며, “이제 우리 친구인 척 할 수 있겠다”고 말하던 코너는 에반의 편지에 자신의 여동생 이름이 있는 것을 발견한다.
조이를 몰래 짝사랑하면서 작은 ‘희망’을 품지만 그녀와 가까워진다고 한들 달라질 게 없음을 탄식하는 편지는 “내가 내일 사라진다고 해도 알아챌 사람이나 있을까?”라는 질문으로 끝을 맺는다.
코너는 에반이 일부러 자신을 자극하려고 조이의 이름이 언급된 편지를 보게 했다면서 불같이 화를 내고, 재킷 주머니에 편지를 넣은 채 가버린다.
3일 후, 에반의 편지는 코너가 자살하기 전에 쓴 ‘유서’로 그의 가족에 의해 오인되고, 코너의 엄마 신시아와 아빠 래리는 에반의 깁스에서 코너의 이름을 발견하자, 그가 코너의 유일한 친구였을 것이라는 가정에 확신을 갖는다.
“너의 가장 소중한 친구인 나로부터”라는 서명이 근거라고 말하는 신시아의 간절한 눈을 들여다보면서, 에반은 진실을 밝히지 못한 채 코너가 진심을 나눈 유일한 친구였던 척하기 시작한다.
아들의 죽음에 상처를 입고 깊은 슬픔을 가누지 못해 절망하는 신시아와 래리에게 ‘평화’를 주기 위해, 그리고 자신을 괴롭히던 오빠의 죽음을 애도할 수 없어 죄책감과 분노를 느끼는 조이를 ‘위로’하기 위해 시작한 ‘거짓말’은 점차 걷잡을 수 없는 방향으로 치닫는다.
에반은 “가족이 친구”이기 때문에 가끔 시간을 함께 보내고 대화를 나눌 뿐이라고 말하는 재러드의 도움으로 코너와 주고받은 비밀 계정의 이메일을 조작한다. 또, 자신이 팔을 다친 순간에 코너가 함께 있었고, 코너가 어린 시절 가장 좋아했던 과수원에 함께 방문했었다고 거짓말을 한다.
에반의 거짓말은 코너에 대한 좋은 기억을 찾으려고 애쓰는 신시아와 경제적 윤택함을 비롯한 모든 것을 가지고도 무책임한 선택을 한 아들을 용서할 수 없는 래리가 안정을 찾아가는 데 도움이 된다.
조이는 죽은 오빠가 여동생을 아꼈지만 말로 표현하지 못했다는 에반의 위로에 따뜻함을 느끼고, 두 사람은 어느덧 연인 사이가 된다.
에반은 코너의 죽음을 추모한다면서 팔찌를 판매하고, 티셔츠에 이름을 새겨 수익을 거두는 학교와 지역 공동체 안에서, “다른 소문이 코너의 죽음을 밀어내고 관심의 우위에 서는 것을 막아야 한다”는 알라나의 말에 자극을 받는다.
투명 인간이 되는 것의 끔찍함, 모두에게 잊히는 두려움을 잘 아는 에반은 코너를 추억하는 집회를 열고, 모금을 통해 코너의 행복했던 기억이 스며들어 있는 폐쇄된 과수원을 되살리는 프로젝트를 기획한다.
알라나는 대중의 관심이 쏠리는 중심에 있기 위해, 옳은 일을 위해 매진한다는 나르시시즘의 일환으로, “코너 프로젝트”의 공동 회장직을 맡는다.
모두가 바라는 추모연설을 거절할 수 없어 수락하고, 벌벌 떨며 대본을 바닥에 떨어뜨리고, 당황해 연설을 이어가지 못하던 에반은 “누구도 잊히거나 사라질 수 없으며, 모두가 소중한 존재이고, 손을 뻗기만 하면 다른 누군가가 달려올 것”이라는 진심 어린 메시지를 가까스로 전달한다.
에반의 연설 영상은 SNS를 타고 급속도로 퍼져나가고, 유명 인사가 된 에반은 코너 가족의 일원이 된 듯, 꿈에 그리던 공동체의 일원이자 눈에 띄는 존재로서의 생활을 이어간다. 에반은 홀로 자신을 키우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바쁜 엄마 하이디에게 모든 일을 함구한 채 재러드 집에서 숙제를 한다는 핑계를 댄다.
진실을 밝혀야 한다는 부담감을 느끼면서도 조이를 비롯한 코너 부모님과의 관계를 깨뜨릴 수 없어 거짓말을 계속하는 에반은 “코너의 죽음으로 가장 이득을 본 사람”이라는 재러드의 지적에 날카롭게 반응한다. 또, 이메일의 앞뒤 내용이 맞지 않음에 의심을 품은 알라나에게 문제의 발달이 된 자신의 편지를 코너의 유서라면서 보여준다.
알라나는 웹사이트에 유서를 올리고, 사람들의 관심은 다시 집중되지만, 가족이 아닌 친구에게 유서를 남길 만큼 무관심에 고통받던 코너를 동정하며, 신시아와 래리, 조이를 비난하는 온라인 공격이 시작된다. 더 이상 진실을 숨길 수 없는 에반은 코너 가족에게 모든 것을 사실대로 털어놓고, 엄마 하이디의 품속으로 뛰어든다.
'디어 에반 핸슨'은 비평가들과 관객의 호평만큼이나 비난과 혹평의 논란에 휩싸이기도 했던 작품이다. 에반의 거짓말이 이기적인 선택이었다는 비판과 그 어떤 처벌도 주어지지 않는다는 윤리성에 대한 지적은 사회불안장애를 제대로 표현하지 못했을 뿐 아니라 부정적인 이미지를 심었다는 비난으로 이어졌다.
하지만 레벤슨에 따르면, 대본 집필 과정에서 아동 정신 연구소를 통한 검증 절차가 있었고, 사회불안장애와 우울증으로 고통을 겪는 십대의 이야기를 다룬 책(원제: What You Must Think of Me)을 참고한 부분이 있다.
또, 공연이 끝날 때마다 많은 관객들이 무대 앞으로 다가와 배우들에게 자신의 경험을 이야기하는 일이 잦았고, 이메일을 통해 에반과 코너와 유사한 고립의 고통을 겪었음을 토로하며, 불편한 주제를 다뤄준 데 대한 감사의 편지를 받는 일이 많았다.
파섹과 폴은 연극이나 독립영화였어야 할 대본에 인물의 마음을 진정성 있게 전달하고, 관객 모두에게 위로가 될 수 있는 음악을 만들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그들은 큰 반향을 일으킨 '디어 에반 핸슨'이 SNS의 세상에서 더 큰 불안과 고립에 노출되는 현재 세대의 비극과 “가장 진실하지 않은 모습을 보여주고 싶은 유혹”을 느끼는 순간에 대한 따끔한 “경고”가 되기를 바랐다.
관심으로 인해 권력이 집중되고 이익을 위해 조작적 조건화를 만들어나가는 SNS의 세상은 유익성 만큼이나 유해성을 품고 있다. '디어 에반 핸슨' 역시 사회불안장애와 자살, 우울증, 거짓말과 같은 불편하고 다루기 힘든 문제에 관심을 가지도록 만드는 유익성 만큼이나 장애에 대한 오해와 편견, 자살 미화, 거짓말을 용서함으로써 타인에게 가해지는 상처를 외면하게 되는 위험성을 품고 있다.
파섹은 “자신에 대해 좋은 점을 믿으려면, 나쁜 점 또한 믿어야 한다”고 말한다. '디어 에반 핸슨' 역시 많은 사람들에게 위로와 감동을 준 좋은 점뿐 아니라 좀 더 주의를 기울였어야 할 아쉬운 점 또한 품고 있다고 볼 수 있지 않을까?
한 가지 분명한 점은 현재의 세대가 직면한 세상과 그 세상이 품은 문제에 대해 적어도 우리가 논의하고 질문할 수 있는 지점을 '디어 에반 핸슨'이 갖고 있다는 사실일 것이다. 누구나 소중한 존재여야 하는 세상에서 우리가 끝없이 고립과 소외를 느끼는 이유는 도대체 무엇일까? 6월 23일까지 충무아트센터 대극장. 7월 4일~21일까지 부산 드림씨어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