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두호가 만난 人] "들이대는 거죠" 영화제작자로 활동 반경 넓힌 김흥국
[인터뷰] 영화제작사로 변신한 가수 김흥국 - 다큐멘터리 영화 ‘목련이 필 때면’ 제작 참여..."돈 벌기 위한 목적 아냐" - "죽음 넘어선 박정희-육영수 부부 사랑이야기...눈물 바다 될 것" - 10년 무명 설움을 한 번에 날린 히트곡 '호랑나비' - 라디오 생방송 진행하며 '어록' 다수 쏟아내..30년 ‘예능의 신’으로 활약
인터뷰365 김두호 인터뷰어(대담)·김리선 기자(정리) = 가수 김흥국(1959~)을 떠올리면 많은 이미지가 있다. 1989년 발표한 당대 최고 히트곡으로 꼽히는 ‘호랑나비’ 가수에서부터, 해병대 출신 가수, ‘흥궈신’, ‘예능 치트키’ 방송인, 라디오DJ, 월드컵 응원단장, 축구광 연예인 등. 또 20년 넘게 본인의 이름을 건 ‘김흥국 장학재단’을 통해 형편이 어려운 이들을 돕고 있는 의외의(?) 면도 있다.
“아, 들이대는 거죠.”
그의 유행어처럼 김흥국의 인생은 ‘들이댐’의 연속이다. 이 때문에 우여곡절도 많았지만, 부침이 심한 연예계에서도 오뚜기처럼 재기해 30여 년간 꾸준히 대중과 호흡할 수 있었던 비결이기도 하다. 활동 영역도 참 넓다. 가요계, 예능계, 방송계까지. 그의 이름은 정치권에서도 심심찮게 들려오더니, 이젠 영화제작사 '흥.픽쳐스'를 세우고 영화제작에도 활동 반경을 넓혔다. 박정희 전 대통령과 영부인 육영수 여사의 생애와 업적을 다룬 다큐멘터리 영화 ‘목련이 필 때면’을 통해서다. “이젠 거의 반 정치인”이라고 농을 던졌다. 재치넘치는 그의 언변이 인터뷰 내내 이어졌다.
애국하려는 마음에서 시작한 다큐 영화 ‘목련이 필 때면’
- 영화제작에도 뛰어들었다. 다큐는 상업 영화도 아닌 다큐 영화는 흥행도 힘들지 않나.
"영화제작은 처음이다. 돈을 벌기 위한 목적이 아니다. 애국하려는 마음으로 시작했다. 최근 영화 '건국전쟁'을 보면서 몰랐던 역사적 사실을 알고 눈물을 흘렸다. 이승만 초대 대통령에 대해 몰랐던 사실이 많았다. 이를 제 유튜브에 올렸더니 "당신이 역사를 뭘 아냐"며 안 좋은 반응도 나오더라. 정치적 좌우를 떠나 한 편의 영화를 보고 제 감정도 마음대로 표현 못 한다는 게 참 아쉬웠다. 그러던 중 윤희성 감독을 만나면서 ‘목련이 필 때면’을 제작하게 됐다."
- 메가폰을 잡은 윤희성 감독과는 어떤 인연으로 만나게 됐나.
"지인의 소개로 윤 감독을 처음 만났는데, 통하는 게 있었다. 박정희-육영수 두 분에 대한 영상 자료를 상당히 많이 확보하셨더라. 영화로 제작하려면 누군가의 도움이 필요했다. 그 꿈에 힘을 보태고 싶었다. 윤 감독이 “영화에 모든 걸 다 쏟겠다”고 하셨다. 영화에 등장하는 재연 장면은 제가 도움을 줄 수 있겠다 싶었다."
- 영화에 재연 장면도 들어가나.
"120분 분량이 논픽션이며, 전체 영화 분량의 70%정도가 실록 영상이다. 30%는 재연이다. 박정희-육영수 부부를 재연할 배우로 최근 오디션을 거쳐 신예 김궁과 양수아가 선발됐다. 현재 막바지 촬영 중이다."
- 첫 제작 영화라는 점에서도 기대가 남다를 텐데.
"감독님이 “눈물바다가 될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이 영화를 보면 계속 눈물을 흘리게 하는 장면이 계속 나올 것 같다. 6월 25일 개봉을 계획 중이다."
- 이번 영화를 통해 강조하고 싶은 부분이 있다면?
"영화는 6.25전쟁 속에서도 죽음을 넘어선 구구절절한 두 분의 사랑이야기다. 박정희 전 대통령과 육영수 여사는 대구에서 결혼하자마자 생이별을 했다. 육 여사가 박 전 대통령이 보고 싶어 6.25 전쟁통에서도 대구에서 험난했던 죽령고개를 넘어 제천을 거쳐 강원도 정선까지 가셨다더라. 촬영에 앞서 정선에서 두 분이 살았다는 신혼집도 발굴했다. 그 동네에 살고 계신 토박이 주민의 증언도 들었다. 전쟁통 속에서도 두 분이 2주일간 꿈속 같던 신혼을 보내던 정선의 산골짜기 민가에서 첫 촬영을 시작할 수 있었다."
난 정치인이 아니다, 나라가 잘되길 바랄 뿐
- 정치권에서의 행보도 주목받았다. 최근 22대 총선에서 국민의힘 후보 지원 유세에 나섰고, 과거 2002년 정몽준 대선 후보의 특보로도 활동하지 않았나.
"반 정치인이 됐다. 하하. 그러나 난 정치인이 아니다. 다만 나라가 잘되길 바랄 뿐이다. ‘흥국'은 아버지가 지어주신 이름이다. ‘흥할 흥(興)에 나라 국(國)’이란 뜻이다. 나라를 흥하게 하라고 지어주신 것 같다. 그래서인가. 어렸을 때부터 애국심이 남달랐던 것 같다. 늘 이 몸을 나라에 바치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그래서 해병대도 다녀왔다. 저도 아들, 딸이 있다. 미래가 있고 희망을 주어야 한다고 본다."
- 어린 시절은 어땠나.
"6남매 중 늦둥이 막내다. 서울 번동 변두리에서 자랐다. 당시 그 동네가 논밭이었는데, 아버지가 농사를 지으셨다. 아버지는 내가 초등학교 6학년 때 일찍 세상을 떠나셨다. 어머니가 6남매를 홀로 키우셨다."
- 법명도 있다고 하던데.
"종교가 불교다. 법명은 운봉이다. '운봉거사' 김흥국이다. 전국에 '흥국사'가 많은데 그곳을 다녀온 사람들이 자꾸 물어본다. 하도 물어보길래 농으로 "우리 절이야"하고 말한 적도 있다. 그랬더니 학생들이 "아저씨 부자네요" 이런다. 사람들이 그 절이 다 제 것인 줄 안다."
10년 무명생활에서 '호랑나비'로 일약 스타덤
김흥국은 ‘오대장성’이란 밴드 출신으로, 오랜 무명 시절을 보냈다. '오대장성' 이야기를 꺼내자 그는 "아이고...오래전 이야기다. 멤버들은 뿔뿔이 헤어졌다"며 오랜 기억을 꺼냈다. 그는 "병장 출신 다섯 명이 모여 만든 밴드여서 밴드명이 병장이 별 다섯 개란 의미"라고 웃었다.
"당시 노사연 씨가 맨날 놀렸어요. "장성이 몇 명이냐"길래 "다섯 명이다"고 했더니, 뭐 하는 사람들이냐고 물어요. 그래서 그냥 병장 출신이라고 했더니 웃더라고요. 하하"
김흥국은 1989년 히트곡 ‘호랑나비’로 그해 방송계를 휩쓸며 10년 무명 설움을 한 번에 날렸다. 그때 그의 나이 30세. 김흥국은 양복에 콧수염, 그리고 "아싸, 호랑나비 한마리가~"를 부르며 무대를 현란하게 누비는 호랑나비 춤으로 일약 스타덤에 올랐다. 가요 순위 프로그램 5주 연속 1위를 비롯, 10대 가수상 수상의 영예도 안았다.
- 그때 인기가 대단했다. 당시 TV만 틀면 나왔으니까.
"그해 1년간 KBS, MBC 공중파 방송을 싹쓸이했다. 그전까지 인사해도 안 받던 그 유명한 분들이 사진 찍어달라고, 사인해달라고 했다. 아주 따뜻했던 한해였다."
- 방송인으로 활동하면서 젊은 층 사이에서도 인기가 많았다.
"호랑나비 춤 때문에 아이들이 좋아했지만, 예능을 많이 했다. 가수가 노래를 해야 하는데, 제가 ‘예능의 신’이라고 해서 ‘흥궈신’(흥국의 중국식 발음 ‘흥궈’에 예능신 ‘신’의 합성어)이라고 불렸다. ‘시청률 제조기’였다. 유재석, 신동엽, 김구라도 내가 나가면 상대가 안 됐다. 하하. 내가 다 들이대니까. PD, 작가들이 좋아했다. 죽어가는 프로그램도 많이 살렸다. 그런데 이제 나이 들었다고 연락이 없다. 젊은 애들만 출연시키고...이러면 안됩니다! 하하."
과거 “내가 제일 잘 나가”던 시절을 설명하던 김흥국은 너스레를 떨었다. 특유의 웃음소리로 털털거리며 웃던 그는 사뭇 시무룩한 표정으로 내심 서운함을 내비쳤다. “저 아직 감각이 있어요. 유튜브도 제대로 찍고 있는데.”
- 하하. 활동하면서 재미있는 일화가 있다면.
"박미선 씨와 10여 년간 2시간짜리 라디오 생방송을 함께 진행했다. 당시 제가 실수를 많이 해서 '어록'이 많다. 어느 날 라디오 생방송에서 미국의 UCLA(유씨엘에이)대학을 '우크라 대학'이라고 잘못 읽었다. 하하. 제가 세 곳의 대학을 나왔는데, 어딘 줄 아는가. ‘해병대’, ‘들이대’, ‘우크라대’!"
"20년 기러기 생활 모두 청산했죠"
김흥국은 ‘이종환의 밤의 디스크쇼’를 진행한 ‘라디오 DJ계 전설’ 故이종환 선생과의 특별한 인연도 소개했다. 수많은 실수로 유명(?)했던 김흥국 라디오 방송을 궁금해하던 이종환 선생이 그의 방송을 듣기 위해 일찍 출근한 적이 있었다고.
“이종환 선생이 밤 10시에 방송을 하셨는데, 하루는 일찍 방송국에 출근하셨어요. 제가 하는 방송이 오후 6시부터 8시까지였는데, 직접 듣기 위해서였죠. 제 방송을 듣고 “이야, 세상에, 이렇게 방송하는 놈도 있구나. 저렇게 해도 안 잘리다니, 있을 수 없는 일이 벌어졌다”며 놀라셨대요. 라디오 최고의 전설 DJ셨던 분이셨잖아요. 제가 하도 실수를 많이 하니까, 어떻게 방송하는지 궁금하셨나봐요. 직접 들어보니까 놀랐대요. 재밌더래요. 이제 김흥국 시대가 됐구나 하셨죠. 하하.”
- 자녀들의 근황이 궁금하다. 과거 한 예능프로그램에서 ‘번칠이’로 친숙한 첫째 아들 김동현 씨의 근황이 공개되어 화제를 모으기도 하지 않았나.
“동현이는 올해 34살이 됐다. 호주, 미국 등 해외 생활을 오래 했다. 절 닮아서 자유분방하다. 음악도 좋아하고 그림도 좋아한다. 여행가이기도 하다. 얼마 전에는 여행 에세이를 펴내면서 작가로도 데뷔했다. 책 홍보를 해야 하는데, 아들이 못하게 한다. 유명해지면 돌아다니기 어렵다고. 하하. 그래서 아들 몰래 지인들에게 한 권씩 선물하려고 했더니, 아이고 오늘도 책을 안가져왔다. 올해 24살 된 딸 주현이는 미국 뉴욕에 소재한 SVA(스쿨 오브 비주얼 아츠)를 졸업하고 한국에 있다. 이제 20년 기러기 생활은 모두 청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