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65신간] ‘나도 잘 쓴 한 페이지가 있다’ 수필집 낸 민윤기 시인
- ‘월간시인’ 발행인으로 ‘우먼센스’ 등 여성지 창간 주역
인터뷰365 김두호 기자 = 시와 소설, 수필 등 문학 분야의 오프라인 정기 간행물이 불모시대로 접어든 온라인 시대에 활자 매체 ‘월간 시인’을 창간, 안정적인 고정 독자를 확보해 출판계의 주목을 받는 ‘월간 시인’ 민윤기 대표(서울시인협회 회장)는 시인이면서 문화비평가다.
그가 최근에 펴낸 ‘나도 잘 쓴 한 페이지가 있다’ 에세이집은 제목부터 문재(文才)로 일찌감치 두각을 나타내며 시집, 문화비평, 평전, 산문집 등 20여 권이 넘는 화려한 저술 활동을 해온 자만(自慢)을 애써 감춘, 겸손이며 은근한 거드름으로 보인다. 그는 1966년 중앙대 국문과 재학시절에 월간 ‘시문학’으로 등단, 박목월 시인이 만든 ‘심상’을 포함해 ‘창작과 비평’ ‘상황’ 등 문학지에 꾸준히 시를 발표했다. 이어서 1974년 베트남 전쟁 종군 연작시 ‘내가 가담하지 않은 전쟁’을 수록한 첫 시집 ‘유민’을 내놓았다.
1970년대 중반부터 문학 쪽으로 저항과 통제의 긴장감이 밀려들자 ‘시인’을 접고 방송스크립터, 출판, 신문기자, 잡지편집자 등 생업을 위한 직종에서 활동하게 되었고 그 시절 서점에서 날개 돋친 듯 팔리던 여성지 ‘레이디경향’ ‘우먼센스’ ‘마리안느’ 등을 창간하거나 편집주간으로 이름을 떨친 덕분에 지금까지도 ‘민 주간’이라는 직함의 호칭이 붙어 다닌다.
물심양면 전력을 투구해 ‘월간시인’이 고정 독자 2천여 명에 이르자 자신의 지난 삶에서 잊을 수 없는 인연과 사연들을 돌이켜 보며 마치 ‘나도 잘난 한 페이지가 있다’는 듯이 인생 여담을 재밌는 읽을거리로 엮어냈다.
그는 수록한 글들을 심각하고 거대한 담론이나 논리에 맞추지 않고 가볍고 작은 ‘초에세이집’이라는 의미를 생각해 책 제목도 ‘작고 말랑말랑하다’로 정하려 했다는데, ‘나도 잘 쓴 한 페이지가 있다’로 바꾼 것은 자신이 좋아하는 천양희 시인의 시구(詩句) ‘치열하게 산 자는 / 잘 씌어 진 한 페이지를 갖고 있지’에서 따왔다고 고백했다.
내용을 비슷한 주제별로 나누어 6개 항목으로 분류, 모두 105개의 보고 겪고 나눈 다양한 사람들과의 일화와 사물에 대한 기록과 발견, 주장을 실었다. 특히 ‘윤동주 연구소장’을 연상시킬 만큼 윤동주 시인에 집착해온 이야기를 비롯해 김남조 피천득 김대규 노천명 김수영 오상순 시인들의 일화들이 등장하고 여성지 베스트셀러였던 ‘레이디경향’ ‘우먼센스’ ‘마리안느’를 만들 때 만난 다양한 직종의 명사들도 많이 등장한다.
특히 정이 깊었던 동갑내기 친구인 요절 시인 이세룡의 ‘세계의 포탄이 모두 별이 된다면’의 시구를 읊어가며 쓴 추억담에는 글쓴이의 눈물이 젖어있음을 느끼게도 한다. 일제강점기에 활동한 근대문학 1세대 김명순 시인이 도쿄 유학 시절, 건국 초기 육군참모총장을 역임한 장군이 일제강점기 소위 시절에 성폭행을 한 사건 일화도 그녀가 남긴 시와 함께 소개하고 있다.
젊은 나이에 떠난 강수연 배우의 타계 소식을 전하는 매체들이 그녀가 생전에 남긴 “야, 우리가 돈이 없지 가오가 없냐?”라는 말을 제목으로 올려놓기도 했다. 바로 그 말의 출처가 자신이라는 뜻밖의 얘기가 나온다. 1980년대 중반 스포츠서울 창간 초기에 연재한 ‘철수와 미미의 청춘스케치’의 이규형 작가가 자신의 소설을 강수연을 캐스팅, 영화로 준비하던 시기에 책의 출판을 맡은 자신이 그들을 동반해 식사 자리로 옮기면서 습관처럼 써먹었다는 유래를 공개했다.
민 시인은 2011년 서울시 문화관광디자인부 위촉으로 수도권 지하철 스크린도어 관리 용역을 맡은 것을 계기로 시를 다시 쓰기 시작하고 이어서 ‘지하철 시집’을 시리즈로 발간하면서 누구나 시를 쓰는 시문학의 대중화 운동을 펼쳐가고 있다.
발표한 시집으로 ‘시는 시다’ ‘삶에서 꿈으로’ ‘서서, 울고 싶은 날이 많다’ ‘홍콩’ ‘무궁화꽃이 피었습니까?’ ‘사랑하자’ 등을 냈고, 청춘소설 ‘사랑 먼저 할래요’, 문화비평서 ‘일본이 앞에서 뛰고 있다’ ‘그래도 20세기는 좋았다’ ‘일본에는 여자가 없다’, 평전으로 ‘어린이운동가 소파 방정환’, 산문집 ‘산애미친’ ‘빗자루를 든 사장님’ ‘가족이 희망이다’를 비롯해 ‘노천명 전집 종결판’ ‘박인환 전시집’ ‘윤동주는 살아있다’ ‘못다핀 청년시인 이상 윤동주 박인환’등의 책을 펴냈다.
월간 시인’이 독자 수가 갈수록 늘어나고 있는 데는 국립도서관에서 살다시피하면서 천재 시인들의 사료를 집중 분석하고 그들 생전의 발자취를 되살리는 과제에 관심을 둔 것과 함께 누구나 시인이 될 수 있는 길을 열어주는 아름다운 시문학의 전도(傳道), 작은 출판사이지만 교보문고 영풍문고 종로서적과 인접한 곳에 두고 서점을 오가면서 독자들의 반향을 눈과 귀로 확인하며 발로 뛴 진로 찾기가 먹혀든 덕분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