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진원 365칼럼 | 노래하는 삼국유사] (7)선덕여왕이 모란을 품은 뜻은
[정진원 교수의 인문학 놀이터 이야기] - 반전의 여왕 선덕, 신라의 위기를 삼국통일의 기회로 삼다
▶(6)선화공주, 신라와 백제 양국을 아우르는 퀸이 되다에 이어서
인터뷰365 정진원 칼럼니스트 = 우리는 지난 이야기에서 삼국사기 기록에는 남아있지 않은 선화공주와 언니 선덕여왕 관계에 대한 이야기를 하였다. 그러나 삼국유사에는 선화공주가 아버지 진평왕과 어머니 마야부인의 딸로 등장한다. 곧 그들은 화랑세기 등 여러 기록을 통해 보면 선덕, 천명, 선화 세 공주를 낳았다. 첫째 선덕은 신라 최초 여왕이 되고 둘째 천명은 통일 신라의 초석을 다진 태종 무열왕의 어머니가 되었다.
그 막내 셋째 딸 선화공주만이 삼국유사에 스캔들 주인공으로 전해지는데 그것도 지금으로 치면 군고구마 장수 같은 떡거머리 백제 총각하고 정분이 나서 쫓겨났다는 이야기이다. 그런데 알고 보면 또 다른 ‘평강공주와 바보온달’ 신라 버전으로 마와 황금의 가치도 구분 못 하는 서동을 가르쳐 백제 무왕으로 만들었다는 기록에서 우리는 백제와 신라 양국의 퀸의 된다는 스토리를 풀어나갔다.
그 중 돋보이는 대비는 신라여왕 언니 선덕과 백제 동생 선화의 쌍벽을 이루는 신라 황룡사 구층탑과 백제 미륵사 목탑, 석탑 조성 이야기일 것이다.
우리는 그래서 신라 선덕여왕의 이야기를 이어 노래로 풀어나가고자 한다. 선덕도 최초의 여왕이 돼 있지만, 당나라 태종한테 향기 없는 모란꽃 조롱이나 받는다는 이야기에서 선화가 서동과 몰래 정을 통해 쫓겨나는 비련의 여주인공으로 알려진 것과 별반 다를 것이 없다. 어쩌자고 모든 이야기들은 빙산의 일각 같은 추문만이 천년 넘게 떠돌고 있는 것인가. 어디 과연 그런가. 들여다보고 뒤집어보고 감춰진 것들을 털어보자. 어마어마한 통찰력과 예지를 갖춘 인물이 납실 테니 의관을 정제하고 예를 갖추시라.
선덕여왕의 세 가지 예언 : 모란꽃 향기, 백제군사, 도리천
이제 드디어 삼국유사에서 ‘선덕의 예지력을 보여주는 세 가지 이야기(지기삼사)’는 나름대로 일연스님이 여왕 선덕의 의중을 짚고 있다고 여겨 그 시절로 떠나 선덕여왕을 만나보기로 한다.
모란! 꽃 중의 왕, 선덕! 신라의 향기로운 여왕이 되다
먼저 선덕에게 보내온 당태종의 모란꽃 그림에 대해 선덕의 의중을 들어보자.
선덕의 모란꽃 속 벌나비들
모란꽃 그림에 그리지 않았던 또는 꽃 품 속에 있어 보이지 않던
나를 따르던 벌나비들을 헤아려 볼꺼나
두 남편으로 지칭되는 진지왕의 아들이자 나의 숙부였던 용수 용춘 형제
그리고 나의 대신 을제 또한 남편이라 화랑세기는 말을 하지
역사상 전무후무했던 신라 첫 여왕 선덕에게 남편의 이름이 중요할까
그들은 나의 신실하고 든든한 지지세력이자 정치 참모들
그 용춘의 아들이자 동생 천명의 아들 김춘추
목숨걸고 고구려와 당나라에 가 외교를 펼쳤네
그리하여 내가 닦아놓은 삼국통일 기반 위에
그 이름도 거룩한 태종 무열왕 나의 조카 춘추
무엇보다 김유신!
김춘추를 무열왕으로 만들고 자신의 동생 문희와 결혼시켜
몰락한 가야 후손으로 신라부터 통일한 나의 일등공신
춘추를 ‘태종’ 무열왕이라 하여 ‘당태종’과 같은 반열에 올려놓은 공적
‘김유신’같은 신하를 두었던 덕분이라 중국도 승복한 나의 영웅
삼국통일의 실질적 주인공이요 왕과 왕실의 보호자같은 존재여
나에게 사천왕처럼 든든하고 믿음직했던 장군
백제가 침략해올 때 세 번이나 집에도 못 들르고
다시 전장터로 뛰어나갔던 나의 유신이여
선덕은 왕이 되자마자 시작해 3년 만에 분황사(芬皇寺)를 짓고 태종이 보낸 그림에 멋지게 답한다. ‘나 선덕의 향기, 향기로운 황제 분황(芬皇)의 절’이라 이름한 것이다.
이듬해에는 ‘신라의 미소’라 불리는 수막새로 유명한 영묘사도 새롭게 낙성하였다. 선덕여왕에게는 특히 영묘사와 관련된 일화가 많다. 영묘사 장육존상 조성, 백제군 침략을 알리는 영묘사 옥문지의 개구리울음, 짝사랑 지귀가 마음의 불로 자신과 탑을 불사른 것도 또한 영묘사였다. 영묘사는 여왕에게 어떤 절인가.
선덕의 영묘사 노래
기억하는가
모례의 여동생 사씨가 신라에 처음 짓고 비구니가 된 비구니 절
법흥왕의 부인도 묘법이라 이름짓고 비구니가 되었던
유서깊은 전불시대의 칠처가람
그 중 두 번째 절 영묘사
나는 그 절 신령스러운 사당 영묘사에서
백제 군인이 쳐들어온 것을 알았고
짝사랑 지귀의 불타는 마음도 받았고
혜공스님이 밧줄로 동여 불 끄는 신통력도 보았네
신령하고 오묘한 여인의 절 영묘사
많은 가르침과 훌륭한 비구니 조상들께 영감을 받았네
632년 즉위하고 최초의 여왕으로 너무 많은 힘을 쏟았던지 병이 난 여왕은 신라 불국토 구축에 힘쓴다. 즉위 다섯 해째 황룡사에서 병을 치유코자 인왕 백고좌법회를 열고 백 명의 스님들을 출가하도록 허락한다. 불교를 국교로 삼은 법흥, 진흥, 진평 등 선왕들을 이어 차근차근 신라의 불국토를 정비해 나간 것이다. 여왕의 16년 통치 기반을 다진 ‘불국토개발 1차 5개년 계획’이라 할 만하다.
여성의 생명성, 직설 화법으로 남성을 품고 삼국을 품다
같은 해 637년 5월 때마침 여왕의 진면목을 유감없이 보여줄 기회가 찾아왔다. 멋모르는 백제군 오백 명이 선덕의 예리한 정보망에 잡힌 것이다. 선덕의 할머니의 할머니들이 세우고 지켜왔던 영묘사, 그 안의 옥문지라는 연못에서 며칠씩 울던 개구리 울음소리가 힌트였다. 예로부터 개구리는 왕권이나 신성의 상징이라 금와왕도 금개구리 모양이었다. 경칩에 일어나 풍년을 점치던 개구리 떼가 때아닌 오월에 시끄러울 때는 심상치 않은 조짐이 있음을 여왕은 알아차린 것이다.
오백이나 되는 군사들이 몰래 숨어있다 해도 창이며 칼, 군복을 입은 무리들이 지나온 표시와 흔적은 밟히고 다친 천지만물은 이미 알고 있는 일. 보통 사람들이 눈치채지 못했다 해도 그것을 굽어본 천지신명과 그 계곡에 사는 개구리들, 그리고 ‘용봉(龍鳳)의 자태와 태양(太陽)의 위용’을 갖춘(화랑세기) 선덕은 그 기미를 놓칠 리 없었다. 바로 백제군 500명과 그 뒤에 따라오던 후진 1,200명까지 일망타진한 쾌거, 그 이야기를 들어보자.
선덕여왕의 여근곡 노래
마침 숨은 곳이 여근곡이라니 쾌재로다
공주일 적에도 내 왕위 계승에 불만을 품었던 칠숙과 석품이 있었다네
이제 앞으로 당태종이든 그 누구이든
나를 여왕이라 우습게 여기지 못할 절호의 기회
‘옥문지’와 ‘여근곡’이라니..
직설적이다 못해 노골적 지명으로 여왕을 능멸하려 하면 그 여성성
그대들에게 어떻게 적군을 무찌르는지 낱낱이 가르쳐 주리
남녀의 음양과 오행의 이론 정도면 충분하였지
남자는 양이고 여자가 음이라 하였겠다
오행을 나타내는 오방색 중 흰색은 서쪽을 뚯하느니
마침 여성을 상징하는 여근곡이 서쪽에
마침내 여근에 들어온 남근 백제군들
이제 어쩔텐가
제 발로 들어와 제 무덤을 파고 전멸될 순서를 기다린 꼴
그 참혹한 결과를 보고서야
남자인 것만이 벼슬인 몇몇 못난 신라 남성들
코가 납작해졌으리니
그렇다면 여왕이 생각하는 여성성과 남성성은 어떤 것인지 들어볼 차례.
선덕의 사랑 철학
일부 용렬한 남성들이 무시하고 하대해 온 여성성
알고 보면 남성이 기필코 도달해야 할 필생의 이상향이 아니던가
여성은 공격해야 할 대상이 아니라
함께 사랑하고 목숨바쳐 달려가고 싶은 생의 목적지
애초에 남성성과 여성성은 경쟁 상대가 아니라
서로 만나 아껴주고 보듬어 생명을 잉태하는 존재들
백제군사가 여근 골짜기에서 공격하려다 전멸한 것을 본 남성들이여
결론은 어떻든가
여근곡에 들어선 순간
그대들 항복 아니면 죽음뿐일세
선덕은 이렇게 백제군과 신라 남성을 여성성으로 품어내고 세계 만방에 모란의 향기로 승리를 장식했다. 그 이후 수많은 전쟁과 위기 속에서 훌륭한 남성들을 거느리고 삼국통일의 기반을 닦은 선덕의 노래를 들어 보자.
선덕의 모란꽃 속 벌나비들
모란꽃 그림에 그리지 않았던 또는 꽃 품 속에 있어 보이지 않던
나를 따르던 벌나비들을 헤아려 볼꺼나
두 남편으로 지칭되는 진지왕의 아들이자 나의 숙부였던 용수 용춘 형제
그리고 나의 대신 을제 또한 남편이라 화랑세기는 말을 하지
그들은 나의 신실하고 든든한 지지세력이자 정치 참모들
그 용춘의 아들이자 동생 천명의 아들 김춘추
목숨걸고 고구려와 당나라에 가 외교를 펼쳤네
그리하여 내가 닦아놓은 삼국통일 기반 위에
그 이름도 거룩한 태종 무열왕 나의 조카 춘추
무엇보다 김유신!
김춘추를 무열왕으로 만들고 자신의 동생 문희와 결혼시켜
몰락한 가야 후손으로 신라부터 통일한 나의 일등공신
춘추를 ‘태종’ 무열왕이라 하여 ‘당태종’과 같은 반열에 올려놓은 공적
‘김유신’같은 신하를 두었던 덕분이라 중국도 승복한 나의 영웅
삼국통일의 실질적 주인공이요 왕과 왕실의 보호자같은 존재여
나에게 사천왕처럼 든든하고 믿음직했던 장군
백제가 침략해올 때 세 번이나 집에도 못 들르고
다시 전장터로 뛰어나갔던 나의 유신이여
왕실과 관료들만 선덕여왕을 위하고 사모했던 것만은 아닌 대표적 여왕을 사랑했던 지귀의 이야기도 전해진다.
지귀의 사랑에 답함
여왕을 짝사랑해 화신(火神), 불귀신이 되고만 지귀여
그대만이 나의 매력을 알아보았으리
당나라 왕이 되었어도 몰라 본 나의 천겹만겹 여문 모란 봉오리 속정을
그대는 온몸을 불사르며 꿰뚫어 보았구나
간혹 그대를 인도설화 속 술파가 이야기라고 흠잡는 무리들이 있다지
정녕 죽을 만큼 짝사랑을 해 본 사람이라면
지귀든 술파가든 그 이름 그 나라 무엇이라도 개의치 않지
짝사랑 한 번 제대로 못 해본 용렬한 남정네들이여
나에게 술파가란 진짜 사나이 짝사랑 지귀를 하나 더 보태주었는가
무엇보다 신라의 스님들이야말로 선덕여왕과 최상의 파트너십을 이룬 인물들이었음도 여왕에게 직접 들어보자.
자장, 명랑, 혜공 신라 스님들에게 들려주는 노래
황룡사 구층탑과 통도사 창건
불국토 프로젝트를 함께 주도한 나의 사촌 자장이여
그대와 고락을 함께 한 왕노릇 보람찼다네
나를 장사지낸 도리천이 불국토임을 증명한 명랑이여
도리천 아래 사천왕사를 지어 당나라 군대를 물리친 명랑법사여
자장의 누이 법승랑의 아들이여 나의 자랑스런 조카여
원효의 스승 혜공이여
짝사랑 지귀가 나를 만나려다 잠들어
불귀신이 되어 영묘사를 모두 태우려할 적에
밧줄로 금줄을 쳐서 영묘사를 살린 혜공이여
서역인일지 모른다고 설왕설래하는 예술가 양지법사여
그 영묘사에 그대가 만든 장륙존상
그리고 사천왕사의 사천왕 모습들을 보면
양지 그대의 서역 기법이 예사롭지 않았지
아주 아름다웠지
지팡이를 날려 법척을 무찌르고
나 선덕의 병을 낫게 한 밀본법사여
이렇게 향기로운 모란, 나 분황 선덕에게
목숨을 아끼지 않는 충성과 사랑을 바친
사나이 대장부들이여
나의 일생이 그대들 덕분에
세계는 한 꽃송이
모란 꽃 한 송이
천지가 향기로 가득하였네
선덕, 도리천에 다시 태어나 불국토의 꿈을 이루다
이제 수많은 전쟁과 당태종의 조롱, 비담의 난에도 불구하고 통일의 기틀을 다진 왕 노릇에 대해 마음속 육성을 들어보기로 하자.
‘왕이 된 첫 해 제일 먼저 환과고독(鰥寡孤獨)의 구휼책을 펼쳤다. 지금도 독거노인과 고아들을 위한 사회복지 제도가 중요하지 않은가. 사회복지야말로 사회와 국가를 건강하게 하는 최우선 기반임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거대한 황룡사 구층탑이나 통도사, 분황사 창건 뿐 아니라 생의사의 작은 석미륵에 이르기까지 내실을 다지며 불국토 프로젝트를 완수하고자 애썼지. 백제, 고구려, 당나라와의 숱한 전쟁과 절체절명의 위기도 상생하는 여성의 힘으로 적재적소에 걸맞는 남성들과 더불어 헤쳐 나왔다.’
마지막 예언인 도리천에 관한 이야기는 어떨까.
‘이제 그 남성들에게 삼국통일의 열매를 안기고 647년 도리천으로 떠날 차비를 하던 이야기를 할 때로구나. 잦은 병고로 건강치 못했던 몸의 기운이 다해 가고 왕노릇하며 쏟아 부은 힘의 고갈로 나는 떠날 때를 헤아려 보았다. 어느 해 어느 날 어느 시가 될 것임을 예고하였더니 어리석은 상대등 비담, 덥석 그 날짜에 맞추어 나의 길동무가 되는 수고를 아끼지 않는구나. 반역의 탐심으로 구족과 사라지니 오호 애재라.
이미 왕궁에 내제석궁이 있었기에 내가 묻힌 도리천은 외제석궁이라 할 만 했지. 아버지 진평이 원하던 전륜성왕 선덕, 도리천에 가서도 완수해야 할 나의 서원이 있었지. 그 도리천에 명랑이 오색 비단으로 사천왕사를 꾸며 주었으니 당나라 배 오는 족족 침몰했다는 후문은 나, 선덕이 슬며시 그를 도와 분황의 향기를 전한 것일세.’
그렇다면 여왕의 생애를 통해 전하려 했던 여왕의 포부는 무엇이었을까.
나, 선덕
신라의 위기와 기회가 둘이 아님을
불교의 불이(不二) 가르침에서 배웠노라
황룡사 구층탑이 상징하듯 아홉 나라의 외침에 시달렸으나
그 외환 속에서 백성과 신하들이 오히려 나를 돕고 국력을 모았노라
고구려, 백제, 당의 숱한 침략의 위기 또한 기회였느니
훌륭한 춘추,유신 장수들과 선지식들이
역량을 유감없이 발휘한 인재 등용의 신라 불국토
나를 위험에 빠뜨리면 상대 또한 그만큼 위험 비용을 지불하고 마는 법
그러므로 항상 기회는 오히려 위기 속에 있음을 잊지 말지니
결국 신라보다 더 큰 고구려 백제는 망국이 되고 말았네
신라는 전화위복의 기회로 삼국을 통일하였으니
그 이름 통일신라
나, 선덕의 꿈은 지상의 통일에 그치지 않았네
천상천하의 온 세상이 모두 행복하게 사는 것
동서남북 사천왕이 지켜주는 도리천 수미산 꼭대기에서
모든 중생이 불성을 깨닫기를 발원하는 것
모란을 품어 향기로운 황제, ‘분황’의 아름다움으로
전쟁없는 평화의 불국토를 이루는 것
천년이 지나도 이루지 못한 나의 꿈을
이제 그대들이 이루어 주기를
선덕여왕의 이름은 덕만이다. 덕만은 열반경에 나오는 ‘덕만우바이’를 가리키는 것으로, 중생을 제도하기 위하여 여자로 태어난 보살의 이름이다. 선덕(善德)은 수미산의 꼭대기에 있는 도리천을 주재하는 천신 선덕바라문을 뜻하는 것으로 보고 있다.
선덕의 아버지 진평의 다른 이름은 백정(白淨)이며 왕비는 마야부인인데, 이는 석가모니의 아버지 슈도다나(백정왕 또는 정반왕의 뜻)와 어머니 마야부인에서 이름을 따온 것이다.
어쩌면 선덕은 석가모니를 꿈꾸고 죽어서도 신라 도리천을 구축한 진정한 신라 불국토의 부처였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