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현수가 만난 人] "내 생애 가장 보람된 일은 '도산(島山)정신' 실천과 인재 육성"

[인터뷰365] 김소선 전 흥사단 이사장 - 日 마쓰시다 정경숙 모델 도산대학원대학교 설립이 꿈 - 올해 창립 111주년 맞는 도산(島山) 안창호 선생 창립한 '흥사단'   - 흥사단 아카데미 1기생 청년회장 거쳐 첫 이사장에 취임 - 2003년 흥사단 창립 90주년 기념행사 성대하게 치러 - 서울신문사 사우회 창립 주역으로 제3대 회장 지내 - 서울신문 재직 중 ‘광복 40주년 보신각종 중주사업’ 뿌듯

2024-04-24     박현수 편집위원

인터뷰365 박현수 편집위원(인터뷰어) = 사단법인 흥사단은 1913년 도산(島山) 안창호 선생이 창립한 대한민국에서 가장 오래된 순수 민간단체이다. 오는 5월 13일 창립 111주년을 앞두고 23일 ‘인터뷰365’와 만난 김소선(84) 전 흥사단 이사장의 감회는 남달라 보였다. 

김 전 이사장과 흥사단의 인연은 특별하다. 고교생 때 신문과 정치전문 월간지인 ‘인물계’, ‘진상’ 등을 애독하며, 흥사단의 무실역행(務實力行) 정신에 심취했다. 무실역행은 도산 안창호 선생이 강조한 민족독립운동의 중심사상이다. ‘실제에 힘쓰고 온 힘을 다해 행한다’는 뜻으로 말이나 이론보다는 행동하고 실천하여 내실을 다지는 것을 말한다. 그는 흥사단이 자유와 민주사상 고취를 위해 매주 개최한 ‘금요개척강좌’에 1960년부터 빠짐없이 참석했다.

아카데미 출신 첫 흥사단 이사장...64년째 흥사단 활동

그는 미래 대한민국 지도자 양성을 위해 1963년 급속한 조직 확대 방안으로 추진해 많은 인재를 배출한 흥사단 아카데미 1기생으로 이후 흥사단청년회 회장을 지냈다. 이어 아카데미 운동 핵심 주역으로 국내 주요 지역은 물론 미주의 워싱턴DC, 뉴욕 등 주요 도시에 조직을 확대해 2001년 아카데미 출신으로는 첫 흥사단 이사장에 선출됐다. 올해로 64년째 흥사단 활동을 하고 있고 지난해 흥사단 가입 60년을 맞은 김 전 이사장은 도산 사상을 기본으로 한 흥사단 이념에 입각해 국가 발전의 기본인 인물을 양성하기 위해 꾸준히 장학사업을 벌여 왔다.

그는 “나의 생애에 가장 가치 있고 보람 있는 일은 도산(島山)정신을 실천하고, 인재 육성을 위한 장학사업”이라고 강조했다. 한국 사회 발전과 번영의 기초인 인재 양성을 위해 흥사단청소년재단, 도산청소년재단, 정구충박사장학회, 충북협회 장학회, 재경 옥천군향우회 장학회, 그리고 청우장학회를 설립해 초대 이사장 또는 이사직을 맡기도 했다. 현재는 흥사단 청소년 재단과 청우장학회 명예 이사장으로 봉사하고 있다.

김 전 이사장이 청소년 장학사업에 남다른 애정을 갖는 것은 고난을 뚫고 일어선 오뚝이 인생의 주인공이기 때문이다. 1961년 진학한 성균관대 정치외교학과를 판촉사원, 가게 점원, 인천 부두 야간 경비원, 입시 과외 등으로 학비를 마련해 6년 만에 졸업했다. 학창 시절부터 안 해 본 일이 거의 없었을 정도다.

그는 1966년 재경 옥천군향우회를 창립해 총무이사와 부회장을 거쳐 회장을 지내기도 했다. 이러한 공로로 2017년 출향인사로는 처음으로 ‘옥천군민대상’을 수상했다.

김 전 이사장은 “일본의 국가지도자 양성기관인 ‘마쓰시타 정경숙(松下政經塾)’을 벤치마킹한 ‘도산대학원대학교’를 설립하는데 건강이 허락하는 한 적극 지원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대한민국을 이끌어 갈 차세대 리더를 키우는 것이 꿈”이라는 것이다.

흥사단은 한국사회 발전에 기여할 인재 양성을 목적으로 1955년부터 유능한 대학생을 선발해 미국 유학을 보내고, 중·고 대학생을 대상으로 장학사업을 실시해 왔다.

그가 흥사단 이사장으로 재직하면서 큰 자부심을 느낀 것 중 하나는 2003년 5월 13일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린 흥사단 창립 90주년 기념행사를 성대하게 치른 것이다.

이날 기념식은 김소선 이사장의 기념사에 이어 박관용 국회의장의 축사가 진행됐으며, 흥사단 창립 100주년 비전 선포문 낭독과 영상물 상영에 이어 강영훈 전 국무총리의 축배 제의와 안병욱 흥사단 고문의 만세삼창 등의 순으로 진행됐다.

기념식에는 문희상 청와대 비서실장, 한국청소년단체협의회 회장 현성 스님, 송월주 우리민족서로돕기운동 공동대표, 김종림 흥사단 민족통일운동본부 상임대표, 서영훈 대한적십자사 총재, 이태복 전 보건복지부 장관, 이부영·권철현 한나라당 국회의원, 장영달 민주당 국회의원, 이근배 한국시인협회 회장, 김우식 연세대 총장, 오명 아주대 총장을 비롯해 흥사단 원로 단우 및 시민사회단체 인사 등 약 500여 명이 참석해 성황리에 열렸다. 또 고건 국무총리도 축사를 보내 행사를 빛냈다.

이날 행사에서 흥사단은 창립 100주년을 앞두고 ‘비전 2013’ 실현을 위한 2대 목표와 10대 과제를 발표해 주목을 받았다. 2대 과제는 우리나라 청소년운동과 시민운동의 선구로서, 새 시대의 역사적 소명에 올바로 응답하기 위해 첫째, 민족의 통일 번영과 발전적인 민주사회 건설에 이바지할 일꾼의 양성에 매진하는 흥사단을 구현하자고 다짐했다.

둘째는 21세기 새로운 사회를 열어가기 위한 변화와 개혁의 주체로서 힘 있게 실천 봉사하는 흥사단을 정립하는 것을 목표로 삼았다. 이를 실현하기 위한 10대 과제로는 새 시대의 흥사단 운동을 위한 이념의 현대적 체계화 작업과 조직의 확대 강화 및 수련 활동의 심화를 제시했다. 이와 함께 정직하고 깨끗한 사회 건설을 위한 투명사회운동 전개와 교육 바로 세우기 및 청소년 교육을 위한 교육시민운동을 전개하자고 밝혔다.

17주년 맞은 서울신문사 사우회 창립 '산파역' 

특히 서울신문사 사우회 제3대 회장을 지낸 김 전 이사장은 사우회 창립 17주년을 맞아 감회가 뜻깊다고 한다. 사우회 창립에 산파역을 했기 때문이다.

“서울신문사에서 지난 2002년 21세기형 사회봉사운동으로 지식 나눔 운동을 전개한 바 있었습니다. 한국 사회 각 분야의 대표적인 인사들을 명예 논설위원으로 위촉해 전문지식 나눔 운동을 전개할 때 저는 사회문화 분야에서 대표적인 시민단체인 흥사단 이사장으로서 명예 논설위원으로 위촉됐습니다.”

그러나 김 전 이사장은 “서울신문 발전에 기여하지 못한 데 대해 부담감을 느껴오던 중 지난 2007년 서울신문사로부터 ‘폐간된 신문사도 사우회가 존재하는데 서울신문사는 사우회가 없다’며 창립 요청을 받았었다”고 회고했다. “그래서 서울신문사 내에 20여 개 크고 작은 사우 모임을 중심으로 의견을 수렴하고 고 신우식·김문진 전 사장과 협의해 발기인을 선정하는 등 사우회 창립 작업을 하게 됐다”고 했다.

그는 사우회 산파역에만 그치지 않고, 사우회장 재직 시 회원 수를 1000명 이상으로 늘리고, 사우회 자립을 위해 기금 6000만 원을 목표로 모금을 벌여 사우회 조직과 재정의 자립 기반을 튼튼히 하는데도 크게 기여했다. 이후 지난 2020년 1억 원을 돌파하는 밑거름이 됐다. 현재 신문·방송사를 통틀어 재정적으로 건실하고 활성화된 전직 사우회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국민 성금 8억 원 모금해 보신각종 중주사업 동참

1970년 경력사원 공채를 통해 서울신문사에 입사한 김 전 이사장은 총무이사를 거치는 등 30여 년간 재직하면서 사회공공 이익을 위한 공익사업, 문화진흥과 국민 정서 순화를 위한 문화사업을 벌였다.

그가 서울신문사에 재직 중 가장 보람을 느낀 것은 보신각종 중주 사업이다. 보신각종은 1468년 주조돼 517년간 천수를 다해 더 이상 타종이 어려워진 상태였다. 1968년 4월 27일 박정희 대통령의 기금 헌납으로 광화문에 건립한 ‘이순신 장군 동상’ 등 애국선열 동상 15기를 건립한 서울신문사의 전통을 계승해 1984년 당시 이종찬 국회의원(현 광복회 회장) 제의로 서울신문사에 사무국을 둔 보신각종 중주위원회가 각계 대표로 구성됐다.

김 전 이사장은 실무 책임자인 공익사업부장으로 국민 성금 8억 원을 모금해 1985년 8월 15일 광복 40주년 기념사업으로 보신각 새 종 타종식을 거행함으로써 민족정기를 계승하는 결실을 본 것이다.

또한 매년 서울신문사가 주최한 6·25 기념행사로 국군 모범 용사를 격려하기 위해 60명을 부부 동반으로 초대해 인솔 단장을 맡아 청와대를 비롯해 정부 주요 기관을 예방했다. 또 경주 등 문화재 탐방과 산업 시찰 행사는 대표적인 공익사업이었다. 문화사업으로는 국민 정서 순화를 위해 소설가 김동리, 시인 구상·서정주 선생 등을 초청해 매년 봄·가을 지방문화 강좌를 주관했다.

특히, 그는 “김덕수 사물놀이와 피아니스트 백건우 씨가 최초로 지방 공연을 가진 것은 우리나라 문화발전에 크게 기여한 것으로 보람을 느낀다”고 했다.

한편 33년간 서울 목동에서 살아온 김 전 이사장은 지난 2020년 2월 자연과 문화가 잘 조화된 고양시 일산 호수공원 주변으로 이사해 호수공원을 산책하며 건강을 관리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