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두호가 만난 人] '계족산 황톳길' 만든 조웅래 회장, 자유로운 영혼의 ‘괴짜왕’
[인터뷰365] 조웅래 선양소주 회장 - 2006년 국내 최초·최장 '계족산황톳길' 조성...맨발걷기의 성지로 - "나의 창조의 원동력은 작은 배려"...하이힐 여성에게 운동화 벗어준 후 시작된 맨발 걷기 - 대기업서 뛰쳐나와 단돈 2천만 원으로 홀로 창업한 ‘벤처1세대’ - 시행착오로 탄생된 황톳길...기행(奇行)에 '돌아이' 소리도 들어 - 머리가 아닌 가슴으로 살아야...19년째 이어온 황톳길 관리비만 매년 10억원 - ‘에코힐링’ 대중들이 함께 즐기는 문화예술 활동 확대 - ‘역발상적’ 도전의 결실...나답게 살아갈 궁리 게을리해선 안돼 - 좌우명은 ‘불광불급(不狂不及)’...미치지 않으면 이룰 수 없다
인터뷰365 김두호 인터뷰어(대담)·김리선 기자(정리)= “제 별명이 참 많아요. 그중의 하나가 ‘잡놈’입니다. 좋게 이야기하면 융합형 인간이고, 재미있게 말하면 잡놈이죠. 제가 살아온 삶이 그렇잖아요.”
조웅래(1959년~) 선양소주 회장의 말에는 거침이 없었다. 서울 양재동에 위치 한 서울 사무실에서 만난 그는 스스로를 ‘잡놈’이라 칭했다. 인터뷰 중 ‘돌아이(똘아이)’란 단어도 자주 등장했다. 다양한 영역을 넘나들며 고정관념을 뛰어넘는 ‘역발상적’ 도전을 이어온 그에게 자연스럽게 붙여진 별명이다.
조 회장은 무학(無學)의 부모 밑에서 가난을 딛고 성공한 자수성가형 기업가다. 지난 30여 년의 행로를 보면 그가 걸어온 길은 ‘괴짜’에 가깝다.
잘나가던 대기업에서 뛰쳐나와 33살에 단돈 2천만 원으로 홀로 창업에 나섰고, IT콘텐츠기업으로 ‘700-5425’ 전화정보 서비스를 크게 성공시키며 ‘벤처1세대’ 사업가로 승승장구하던 2004년, 돌연 대전·충남지역의 소주 회사를 인수하고 주류업계에 뛰어들었다. 그의 ‘기행'(奇行)’에 정점을 찍은 것이 바로 대전시 대덕구에 있는 ‘계족산 황톳길’ 조성이다.
우연히 맨발 걷기 효능을 경험한 조 회장은 2006년 계족산에 전국 최초로 맨발로 걸을 수 있는 길을 조성하기 시작했다. 누가 해달라고 한 것도 아니고, 본인 소유의 땅도 아니었다. 그런데 무려 14.5㎞에 이르는 국내 최초·최장 황톳길을 조성해 무료로 개방했다.
그러나 찾는 이가 없자, 자연에서 몸과 마음을 치유하자는 ‘에코힐링(eco-healing, 자연과 치유의 합성어)’ 캠페인을 주창하며 숲속음악회와 맨발 축제 등 다양한 문화 행사를 펼치기 시작했다. 그리고 ‘에코힐링’은 맨발 걷기를 넘어 대중들이 함께 즐기는 문화예술 활동으로 확대됐다.
그 결과 ‘계족산 황톳길’은 ‘맨발걷기의 성지’이자, ‘힐링의 명소’로 거듭났다. 현재 ‘계족산 황톳길’을 찾는 이는 연간 100만 명이 넘는다. 한국 관광 100선에 4회 연속 선정됐고, 여행 전문기자들이 뽑은 ‘다시 찾고 싶은 여행지 33선’에도 이름을 올렸다. 꾸준함과 진정성이 통한 결과다.
조 회장은 “소주 파는 놈이 ‘에코힐링’을 외치며 꾸준하게 하다 보니 이런 결과를 얻게 됐다”고 말했다.
2006년부터 19년째 이어온 황톳길 관리에만 매년 2천여 톤의 황토와 10억여 원이 들어간다. 그러나 그는 유언으로라도 남겨 사후에도 황톳길 관리를 이어 가겠다는 의지다.
조 회장은 이날 중절모에 붉은색 재킷과 노타이, 청바지 차림이었다. 격식 있고 중후한 ‘회장님’ 이미지와는 거리가 멀었다. 자유로운 영혼의 ‘괴짜왕’다웠다.
그는 “최고의 인생은 자기가 하고 싶은 걸 하고 사는 것”이라며 “그러기 위해선 나답게 살아갈 궁리를 게을리해선 안 된다”고 강조했다.
맨발의 첫 경험 잊지 못해 '돌아이' 소리 들어가며 조성한 황톳길
'계족산 황톳길'의 시작은 작은 배려에서 비롯됐다. 2006년 지인들과 계족산 임도를 걷던 조 회장은 일행 중 하이힐을 신고 온 여성에게 운동화를 벗어주고 맨발로 걷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날 저녁 몸이 후끈거리고 몸에 지렁이가 기어 다니는 ‘희한한’ 기분을 경험한다. 잠도 잘 오고, 거짓말처럼 스트레스도 풀렸다. 맨발걷기 효능을 직접 경험한 그는 이 경험을 사람들에게 알려주고 싶었다. 2006년 계족산 황톳길은 그렇게 시작됐다.
- 황톳길 조성은 수익 사업도 아닌 데다 이윤을 추구해야 하는 기업가의 입장에서 쉽지 않은 결정이었을 것 같다. 게다가 일반적인 소주 회사가 하는 일들은 아니지 않나.
“처음 맨발로 걷고 난 후 ‘이렇게 좋은 것을 혼자 누리기엔 너무 아깝다. 보다 많은 사람들과 함께 해야겠다’는 생각이었다. 그리곤 2006년 흙을 깔기 시작 했다. 다들 저보고 '돌아이'라고 했다. 다 미쳤다고 했다. 소주 몇 병 더 팔려고 했으면 하지 못했던 일이다. 내 돈 10원이라도 안 아까운 사람이 어디 있나. 계산했으면 못했다. 머리가 아닌 가슴으로 살아야 한다. 머리가 가슴을 이기지 못한다. 그래야 세상이 바뀐다.”
- 계족산황톳길 조성 후에도 19년간 꾸준히 관리를 이어오고 있다. 꾸준한 관리가 쉬운 일도 아닐뿐더러, 투입 비용도 만만치 않을 텐데.
“입장료를 받는 것도 아니니, 관리비만 1년에 한 10억씩 돈이 들어간다. 황토가 빨리 굳기 때문에 물 뿌리고 뒤집고 계속 관리해야 한다. 지금도 흙을 깔고 있다. 김제와 익산에서 최상의 황토를 가져온다.”
- 그런데도 이 일을 계속하는 이유가 뭔가.
“사람들한테 즐거움과 행복, 건강을 주고 싶어서다. 많은 이들이 제게 복 받을 거라고들 한다. 이런 ‘돌아이 짓’에도 아무 소리 안 해준 아내에게 참 고맙다. 계족산 황톳길은 앞으로도 계속 관리를 이어갈 것이다. 내가 죽더라도 흙을 계속 깔라고 아들에게 유언으로 남길 생각이다.”
- 계족산 황톳길이 대한민국 대표 힐링 명소로 불리는 배경에는 숲에서 즐길 수 있는 다양한 문화예술 나눔 활동의 역할도 커 보인다. 2007년부터 매주 토요일과 일요일 숲속음악회인 '뻔뻔(funfun)한 클래식' 공연을 이어오고 있고, 매년 5월에는 맨발 축제를 하는 등 대중들이 참여할 수 있는 문화예술 활동이 큰 호응을 얻고 있는데.
“사실 첫 황톳길 조성 후 지역민들의 반응이 시원찮았다. 찾는 이가 없었다. 미쳤다는 소리를 듣고 흙을 깔았는데 사람들이 와야 할 거 아닌가. 절박한 심정으로 “산으로 오세요”라며 대대적으로 홍보를 했다. 자연에서 몸과 마음을 치유하자는 뜻에서 '에코힐링(Ecology+healing합성어, 자연치유)'이란 캠페인도 펼치기 시작했다. 2007년 상표등록도 하고, 당시 유성의 한 호텔에서 관련 세미나도 했다. 산으로 왔다가, 맨발로 걷고 헤어지기 아쉽다는 생각에서 맨발 축제도 하고 음악회도 개최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한명 두명 찾는 사람들이 늘기 시작했다. 이후 KBS '생로병사의 비밀'에 소개된 후 입소문을 타며 전국 지자체에서도 찾기 시작했고, 전국에 ‘맨발길’이 급속하게 퍼졌다. 계족산에서는 맨발 걷기를 떠나 동창회, 계모임도 한다. 어르신만 오는 게 아니고 가족 단위로 많이 온다. 나 역시 초등학교 동창생들과 환갑잔치도 계족산에서 했다. 하하.”
- 지역 상생 공로를 인정받아 2023년까지 ‘5년 연속 지역사회공헌 인정기업’으로 선정됐고, 대통령 표창, 보건복지부장관 표창,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표창 등도 수상하기도 했다.
“지역에 기반을 둔 회사로서, 지역 사회에 보답한다는 마음을 갖고 있다. 내 창조의 원동력은 작은 배려에서부터 나온다. 작은 배려는 상대방의 마음을 헤아리는것 부터 출발하고, 그 배려가 계속 쌓이다 보면 ‘신뢰’라는 커다란 가치로 돌아온다.”
시행착오로 탄생된 황톳길, ‘맨발길’의 시초가 되다
계족산 황톳길은 전국 맨발걷기에 널리 사용되고 있는 황토를 처음 사용한 곳이다. ‘황톳길 맨발걷기’의 시초인 셈이다.
조 회장은 황토를 사용하기까지 시행착오도 겪었다. 처음엔 돌가루인 석분을 사용했다가, 불편한 촉감을 보완하기 위해 구하기 쉽고 딱딱한 마사토를 사용 했다. 그러다 촉감이 좋고 시각적으로도 보기 좋은 황토를 깔기 시작했다. 그는 “황토 조성은 효능과는 전혀 상관이 없다”고 말했다.
- 올바른 맨발 걷기 방법에 대한 의견이 다양하다. 황토, 적토 효능에 대한 의 견도 분분하다. 말씀대로라면, 황토가 효능과는 관련이 없다는 말인가.
“흙과 효능을 따지는 것은 의미가 없다고 본다. 오히려 거친 곳을 맨발로 걷는 게 더 좋다. 지압이 잘되는 바닷가 모래밭도 좋다. 푸른 바다 보고, 파도 소리 듣고, 좋은 공기 맞고, 밥맛도 좋아지니 그야말로 오감을 느낄 수 있는 곳이다. 맨발 걷기 방법은 정답도 없고, 이론도 없다. 자기 페이스에 맞춰 걷고 싶은 만큼 걸으면 된다. 대신에 스트레칭을 열심히 하는 게 중요하다.”
운전과 골프를 배우지 않았다는 그의 일과 중 하나는 걷고 뛰는 일이다. 그는 여전히 새벽뿐 아니라 주말에도 황톳길을 찾는다. 또 42.195㎞ 풀코스를 83회 완주한 마라톤 마니아이기도 하다. 특히 지난해 특별한 도전에 성공해 많은 사람에게 희망을 안겨주기도 했다. 바로 대한민국 국토경계 한바퀴 5,228㎞를 완주한 것.
2021년 12월 강원도 고성 통일전망대를 출발해 매주 2회 이상, 하루 평균 마라톤 풀코스 이상을 두발로 달리는 방식으로 2023년 1월 대한민국 국토경계 한 바퀴를 완주하며 많은 이들에게 할 수 있다는 희망을 주었다. 더불어 국내 최초·최단 시간인 116일 518시간 57분 59초를 기록해 KRI한국기록원에 최고 기록으로 등재되며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조 회장은 “돈도, 명예도 아닌 몸이 답이다”고 말했다. 조 회장이 10억 원의 사재를 털어 1999년 설립한 공익재단인 ‘조웅래 나눔재단’의 건강 철학이기도 하다. 그는 걷고 달리며 1㎞당 1만원을 적립 기부해 나눔 활동에 동참하고 있다. 뛰고 싶어도 뛰지 못하는 이들에게 부채의식을 느끼며 새로운 기부문화를 만든 것이다.
조 회장이 운영하는 유튜브 ‘몸이 답이다’에는 300개에 가까운 동영상이 올라와 있다. 이 중 그가 직접 사람들을 인터뷰해서 올린 영상도 80개가 넘는다. 조 회장이 대화를 나누며 직접 찍은 영상들이다. 그는 스스럼없이 시민들에게 다가가 말을 건다. 일주일에 2~3번 영상을 올린다고 했다. JTBC ‘차이나는 클라스’에서 화려한 입담을 자랑한 그는 ”제가 인터뷰도 잘한다“고 껄껄 웃었다.
- 촉망받는 신예 유튜버로도 활동 중이다. 다양한 강연을 통해 대중들과 소통에도 적극적이다.
“우리 회사 슬로건이 사람과 사람 사이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 있으면서 사람과 사람 사이를 즐겁게 이어주는 일을 한다는 의미다. 소리에서부터 시작해 술, 그리고 황톳길, 음악회에 이르기까지 모두 사람과 사람을 연결시키는 일 아닌가.”
- 지난 20여 년에 가까운 시간을 계족산 황톳길과 함께 해왔다. 이곳은 본인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가.
“꼬맹이부터 어르신까지 찾는 세대 간 소통할 수 있는 공간이자, 지역 간의 소통, 자연치유공간이다. 그래서 ‘에코 힐링’ 공간이다. 제겐 놀이터이자 집무실, 헬스장, 그리고 많은 사람들을 만나는 사교장이자 별장이다. 1년에 10억씩 들어가는 유지비가 많이 들어가는 별장. 하하.”
가난은 성장의 원동력이었다
조 회장은 경남 함안에서 4남 3녀 중 막내로 태어났다. 중학교 시절 아버지가 세상을 떠난 후 어머니는 홀로 농사를 지으며 7남매를 키웠다. 가난한 삶이었지만 그는 ”가난은 제 성장의 큰 원동력이 됐고, 강한 의지력을 키울 수 있는 계기가 됐다”고 말했다.
- 학창 시절은 어땠나.
“공부를 지지리도 안 했다. 하하. 대학 시절 학사경고도 두 번이나 맞았다. 고3 때 무작정 가출해 며칠을 떠돌다 온 적이 있다. 별 생각 없이 한 행동이었는데, 어머니께서 큰 상처를 받으셨다. 그 모습을 잊지 못해 후에 5425사업을 하면서 ‘가출이란 대문을 열고 나가는 게 아니라 부모 마음의 문을 찢고 나가는 것이다’는 내용의 공익광고도 했다.”
- 부모님은 어떤 분이셨나.
“어머니는 “잘해라, 이겨라, 1등 해라”는 말을 한 번도 하신 적이 없다. 무학(無學) 이셨기에 '방목'으로 키우셨지만, 현명하신 분이셨다. 늘 입버릇처럼 “말부터 앞세우지 말아라, 행동으로 옮겨라”고 말씀하셨다. 매사에 실천을 앞세우게 된 제게 큰 가르침을 주셨다. 학창시절 동네 형들한테서 담배를 배웠는데, 어느 날 어머니가 그 사실을 알고서도 “공복에 피지 말라”고 딱 한 마디 하셨다. 이래라저래라 하신 적이 한 번도 없으셨다.”
빌린 돈 2000만 원 창업자금으로 시작한 첫 사업
고교 졸업 후 조 회장은 당시 구미에 전자 단지가 들어서면서 유망학과로 떠 오른 전자공학과(경북대)에 입학했다. 졸업 후 1985년 25기 공채로 구미의 삼성반도체통신(삼성전자)에서 교환기 소프트웨어 엔지니어로 첫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그는 “조직이 크다 보니 내가 마치 부속품 같았다”고 말했다. 결국 3년 정도 근무하다 중소기업으로 이직했고, 회사를 다니다 33세에 창업에 눈을 돌렸다.
그리곤 1992년 전화정보서비스 사업을 시작했다. 대구 경북지역에서 ‘전화로 보는 오늘의 운세’ 서비스를 처음 시작한 것이 그다. 전화로 운세를 음성으로 들려주는 서비스였다. 1990년대 중반에는 소프트웨어 엔지니어란 경력을 살려 우리나라 최초의 ARS(자동 응답기) 보드를 개발하기도 했지만, 대기업의 자본력에 밀려 첫 쓰라린 실패도 맛봤다. ‘삐삐’(무선호출기)가 유행하던 시절엔 통화연결음 서비스를 선보였다. 핸드폰 컬러링의 ‘원조격’인 셈이다. 삐삐가 사라진 후에도 이 아이디어는 핸드폰으로 이어졌다. 조 회장은 전화정보 서비스업체인 ‘5425’를 이끌며 핸드폰 음악선물 시장을 석권, 벤처 성공 신 화를 썼다.
- 안정된 대기업을 그만두고 창업에 뛰어들기까지 쉽지 않은 결정이었을 텐데.
“아이디어 하나만으로 창업에 뛰어들었다. 최고의 밑천은 자기 확신이다. 좋은 아이디어만 있으면 되겠다는 확신이었다. 첫 창업 때 빌린 돈 2000만 원으로 시작했다. 이마저 애초에 빌린 3000만 원을 좀 더 불려보겠다고 주식 투자를 했다가 보름 만에 1000만 원을 날리고 남은 금액이었다. 정신이 번쩍 났다. 내가 잘 못하면 남은 돈까지 날리고, 처자식까지 굶겨야 하는 상황이 될 것 아닌가. 기를 쓰고 했다.”
- 그런데 갑자기 2004년 대전·충남지역의 기반을 둔 소주 회사인 ‘선양주조’를 인수하며 주류업계에 뛰어들었다. 게다가 연고도 없던 곳에서 말이다.
“IT기반 서비스(콘텐츠) 사업은 변화도 빠르고 국가 정책도 많이 바뀌니 변화가 많았고, 힘들었다. 소주 사업은 이전 사업과는 아무 관계가 없다. 그러나 '소리'나 '술'이나 차이는 없다. 타겟이 대중이란 점에서 본질은 동일하다. 업종만 다를 뿐이다. 앞서 IT콘텐츠 사업을 하면서 소리와 음악을 통해 대중들의 마음을 샀다면, 지금은 잘 만든 술로 사람들의 마음을 얻는 일이다. 대중을 상대로 소리를 가지고 성공한 경험이 있는데, 술이라고 못할 게 있나 싶었다.”
조 회장이 이끄는 선양소주는 과감한 시도를 이어가고 있다. 낮은 도수를 원하는 젊은 층 소비자의 입맛에 맞춰 지난해 국내 최저 도수(14.9도)&최저 칼로리(298㎉)의 소주 '선양'을 출시했으며, 지난 3월에는 소비자 물가 안정을 위해 GS리테일과 손잡고 전국 GS25 편의점에 업계 최저가 640㎖ 페트 소주를 출시해 화제를 모았다. 역발상을 통해 창의경영을 선도해온 조 회장의 창의적이고 혁신적인 경영 행보가 녹아든 결과다.
조 회장의 좌우명은 ‘불광불급(不狂不及)’이다. 미치지 않으면 이룰 수 없다는 의미다. 그는 “돌이켜보면, 어렵고 힘들더라도 ‘제대로 미쳐서’ 날뛴 건 거의 성공했다. 대충 미치거나, 남 이야기 듣고 한 일은 다 실패했다”고 말했다.
- 주량은 어떤가.
“술 좋아한다. 고교 시절 공부 안 하고 친구들과 술을 많이 마셨다. 동창들이 내게 술 좋아하더니 결국 주류회사 경영하냐고 하더라. 하하.”
- 인생의 선배로서 젊은이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경북대 IT대학 50주년 초청 특별 강연회에서 2만9000여 명 졸업생을 대표해 연단에 선 적이 있다. 대학 때도 학사경고도 두 번 맞았던 사람이 이렇게 이 자리에서 강연할 줄 누가 알았겠나. 세상일은 미리 알려고 하지 말라는 주제로 강연을 했다. 세상에 정해진 건 없다. 너무 미리 알려고 하지 말아라. 적어도 이 순간 최선을 다하다 보면 또 다른 길이 보이더라. 최고의 인생은 자기가 하고 싶은 거 사는 게 아니겠나. 그러기 위해선 나답게 살아갈 궁리를 게을리 해선 안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