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하영 365칼럼] 순응하는 자아와 진정한 자아의 ‘투쟁’...연극 ‘와이프’

[앨리스 박사의 문화로 보는 세상풍경] - 영국 극작가 사무엘 아담슨 2019년 화제작 - 노르웨이 극작가 헨릭 입센의 ‘인형의 집’에 대한 지적인 분석 - 1959년부터 2042년까지 4대 걸친 여성과 퀴어의 삶 변천사

2024-02-05     주하영
2024년

인터뷰365 주하영 칼럼니스트 = 예술이 세상을 바꾸는 일이 가능할까? 많은 극작가들이 연극을 통해 세상에 변화를 가져올 수 있기를, 사람들의 마음에 혁명의 불꽃을 일으킬 수 있기를 희망해왔다.

연극을 통해 “정신의 혁명”을 성취할 수 있음을 주장해 온 영국의 극작가 에드워드 본드는 “예술은 인간의 주체성을 발전시키는 한 가지 수단”이라고 말했다. 본드에 따르면, 사회 속에서 살아가는 인간들의 모습을 거울처럼 구현하는 ‘연극’은 “스스로를 경험할 수 있는 장소”로 기능한다.

연극이 제공하는 환상과 현실의 ‘틈’은 사회가 모호하게 흐려놓았거나 감춰버린 진실들을 노출한다. 왜곡된 것을 인식하는 관객은 스스로 “이야기에 대한 분석”을 실행하고, 불편한 진실과 마주한다.

무대는 일상의 이면을 드러내고, 보다 발전된 세상, 변화된 미래, 달라진 자신을 위해 현재와 투쟁해야 할 필요성을 인식하도록 만든다. ‘변화’를 갈구하는 마음은 자유롭고 자치적인 인간 존재를 창조하기 위한 ‘노력’에 돌입하기 시작한다.

본드에게 연극은 인간이 자신을 둘러싼 모든 것을 종합적으로 분석하고 통합하기 위해 갖춘 “필연적인 생물학적 능력”, 즉 뇌의 능력에 의해 “필요해진 예술”이다.

연극

1879년 12월, 노르웨이의 극작가 헨릭 입센의 연극 ‘인형의 집’의 주인공 노라가 문을 ‘쾅’ 닫고 집을 나서는 마지막 장면의 울림이 세상을 떠들썩하게 만들었다. 누군가에게 속한 ‘인형’이 아닌, 한 ‘인간’으로서 홀로서기 위해 내딛는 주체적 걸음의 선택이라는 극의 결말은 남편과 아이들을 떠난 ‘여성’인 노라에 대한 들끓는 논쟁과 “사실주의(Realism)”라는 새로운 현대 연극의 시작을 가져왔다.

여성의 위치를 ‘가정’에 국한시키고, 딸로서, 아내로서, 엄마로서의 역할만이 강조되던 시대에, 결혼의 유대를 신성하게 여기던 중산층의 도덕률을 깨고, 스스로의 판단에 근거한 행동을 실천한 ‘노라’라는 인물의 상징성은 20세기를 거쳐 현재에 이르기까지 그 ‘울림’을 지속해왔다.

2019년 5월, 다양성과 새로움을 추구하는 영국 런던에 위치한 킬른 극장(The Kiln Theatre)에서는 사무엘 아담슨(Samuel Adamson)이 입센의 ‘인형의 집’에 영감을 받아 창작한 연극 ‘와이프(Wife)’가 초연되었다.

1959년과 1988년, 2019년, 그리고 아직 다가오지 않은 미래인 2042년을 배경으로 4대에 걸친 가족의 결혼과 성 정체성, 삶의 해방에 관한 이야기라고 할 수 있는 연극 ‘와이프’는 영국 주요 언론으로부터 별 4개 이상의 평점을 받으며, 화제를 낳았다.

연극

2019년 10월, 한국에서 초연된 연극 ‘와이프’는 2020년 재연을 거쳐 제56회 동아연극상 작품상과 연출상, 신인연기상을 수상했다. 현재 LG아트센터 서울 U+스테이지에서는 연극 ‘와이프’의 삼연 무대가 막바지를 향하고 있다.

연극 ‘인형의 집’의 마지막 장면이 공연되는 무대와 공연을 마친 배우의 분장실을 출발점으로 하는 연극 ‘와이프’는 입센의 작품과 주제에 대한 ‘반응’으로 창작되었다.

아담슨은 오슬로 대학교의 입센 연구소와의 인터뷰 영상에서, 연극 ‘와이프’의 가장 중요한 지점은 작품에 등장하는 모든 인물이 각자 입센의 ‘인형의 집’ 공연과 관련해 상호 교차한다는 사실이라고 말했다.

또, 결혼이라는 제도를 비롯한 입센이 다루었던 모든 종류의 주제가 영국의 시대적⸱사회적 맥락에 비추어 변형되거나, 다르게 해석되고, 반영된다는 점을 강조했다. 이 때문에 연극 ‘와이프’는 입센의 작품에 대한 선행 지식이 많을수록 흥미로운 지점들을 많이 발견할 수 있는 특징이 있다.

또, 입센이 탐구했던 “사회에 저항하는 개인”과 “과거가 현재에 미치는 영향”을 접목해 ‘결혼’이라는 제도가 만들어낸 ‘와이프’의 위치를 여성뿐 아니라 ‘퀴어(Queer)’와 관련해 추적하기 때문에, 영국의 성소수자 인권운동의 역사에 대한 지식을 갖출수록 작가가 겨냥한 지점을 이해하기 용이한 부분이 있다.

연극

아담슨은 ‘인형의 집’의 주제를 ‘퀴어’와 접목한 것은 처음부터 의도한 부분은 아니었지만, 작품을 구상하는 과정에서 ‘인형의 집’이라는 연극의 영향력과 충격을 염두에 두었을 때, 자연스럽게 도달하게 된 지점이라고 밝혔다.

한 개인으로서 ‘노라’가 사람들에게 의미하는 것은 “관습에 대한 도전과 저항, 반항”이었고, 사회질서에 방해가 되는 존재로 여겨지던 소수자들이 다수의 편견을 넘어서서 ‘자유’와 ‘해방’을 향해 움직이는 일에는 ‘노라’의 존재가 ‘용기’를 불러일으키는 원천이 될 수 있었다.

아담슨은 입센의 ‘인형의 집’이 “20세기에 가장 많이 공연된 연극”이자 현재까지도 “가장 인기 있는 연극”이 된 이유는, 단지 놀라운 페미니스트 작품이기 때문이 아니라, 모든 인간의 유전자에 각인되어 있는 스토리텔링 기법, 즉 소수가 다수의 억압을 이겨내는 이야기, 자신이 누구인가를 찾는 문제를 다루고 있기 때문이라고 피력했다.

실제로 연극 ‘와이프’에서 가장 중요하게 탐구되는 문제는 ‘나는 진실한 나 자신으로 살고 있는가’와 사회가 요구하는 역할에 맞춰 ‘순응하는 자아와 진정한 자아 간의 갈등’이다.

영국에서 양차 대전 이후 가정을 지키는 아내이자 아이들의 양육자인 어머니로서의 여성이 매우 강조되던 1959년을 출발점으로 하는 연극은, ‘노라’ 역을 연기한 배우 수잔나의 분장실에서 데이지가 하게 된 ‘선택’과 관련해 4대에 이르는 후손의 삶에 미치는 영향을 탐구한다.

1959년

데이지는 남편 로버트와 함께 연극 ‘인형의 집’ 공연이 끝난 후 수잔나의 분장실을 방문한다. 로버트는 은행장인 남편과 아이들, 하인이 있는 완벽한 가정을 두고 집을 떠난 연극의 주인공 노라의 선택에 대한 비난을 쏟아낸다.

“아무것도 없이, 아무것도 없는 곳으로” 뛰쳐나간 노라를 비아냥거리는 로버트를 향해 수잔나는 오히려 노라는 “모든 것이 있는 곳으로” 나아간 것임을 강조한다.

수잔나는 사냥꾼과 다름없는 입센이라는 작가가 “인습에 박힌 모든 것에 총을 겨눴다”라고 평가한다. 두 사람의 관점의 대결은 19세기 후반에 ‘인형의 집’이 불러온 사회의 논란을 그대로 대변한다는 데서, 변화된 것이 별로 없는 20세기 중반을 인식하도록 만든다.

“80년이나 된 연극인데도 아직도 날카롭게 찔러대는 극”임을 강조하는 수잔나에게 집을 나간 노라가 다시 돌아오는 선택을 하는 “4막”이 필요함을 강조하는 로버트는, 1956년 3월에 브로드웨이에서 초연된 뮤지컬 ‘마이 페어 레이디’의 해피엔딩 결말이 훨씬 나았다고 외친다.

연극

입센의 옹호자였던 영국 극작가 조지 버나드 쇼의 1913년 연극 ‘피그말리온’을 원작으로 하는 뮤지컬이 쇼의 사후에 제작되었고, 주인공인 일라이자가 노라처럼 독립적인 선택을 하는 결말이 아닌 다른 뉘앙스의 결말이, 원작자인 쇼가 극렬하게 반대하던 일이었음을 인지하는 수잔나는 로버트를 참을 수가 없다.

한편, 데이지는 연극이 남편의 속을 뒤집어놓았다는 사실과 비밀리에 동성애 관계에 있는 수잔나를 남편과 마주치게 했다는 스릴에 만족감을 느낀다. 로버트가 자리를 비운 사이, 수잔나는 자신과의 비밀스러운 관계가 ‘저항’이라고 착각하는 데이지의 어리석음을 지적하면서, “누구나 자기 자신이 되려면 대가를 치러야 함”을 강조한다.

남편의 아이를 임신했음을 알리는 데이지에게 수잔나는 ‘이별’을 선포하고, 아이를 없애겠다면서 수잔나에게 매달리던 데이지는, 결국 남편과의 거짓뿐인 결혼이 요구하는 ‘사회적 역할’에 충실할 것을 약속한다.

1988년

데이지가 자신의 성정체성을 숨기고 이성애자들의 세상에서 가부장적인 제도에 순응하기로 한 결정, 즉 로버트와 데이지의 허울뿐인 ‘계약’ 속에 감춰진 비밀은, 두 사람의 아들인 ‘아이바’와 그의 동성 연인 ‘에릭’, 에릭의 딸 ‘클레어’, 클레어의 딸인 또 다른 ‘데이지’에 이르기까지, 영향을 지속한다.

따라서 연극 ‘와이프’는 의도적으로 4막 구조를 취한다. 보수적인 부르주아 계급의 결혼과 남성 중심의 체제에서 여성에게 도덕적으로 “옳은 일”이 강조되던 1959년의 데이지와 로버트, 수잔나의 관계는 성인 남성의 동성애가 합법이 되기는 했지만 에이즈 감염의 공포와 함께 성소수자를 향한 혐오가 확산되었던 1988년의 아이바와 에릭의 맥락으로 옮겨간다.

아직

아이바는 자신의 엄마 데이지를 동성애 혐오자로 인식하고 있고, 저항적이고 자유로운 자신의 태도와 행동을 엄마가 창피해한다고 느낀다. 데이지를 돌보도록 아이바에게 고용된 간병인 에릭은 자신의 성 정체성을 인정하지 못한 채 아이바를 사랑하면서도 사회가 여전히 옳다고 주장하는 길을 따르기로 선택한다. 데이지처럼 에릭 역시 ‘거짓’ 속에 숨는다.

동성 결혼이 합법이 되었을 뿐 아니라 ‘노라’의 역할에 젠더의 경계가 무너진 ‘인형의 집’이 공연되는 2019년, 58세가 된 아이바는 배우인 카스와 결혼한 상태에 있다.

30년 전 아이바의 곁을 떠난 에릭이 리디아라는 여자 친구와 결혼해 낳은 딸 클레어가 약혼자 핀과 함께 아이바를 찾아온다. 뒤늦게 자신의 정체성을 인식하고 호주로 이민을 간 에릭은 성소수자 옹호 활동을 하다 혐오 범죄의 희생양이 되었다.

클레어는 아버지 에릭이 사랑했던 아이바를 통해 비극을 맞이한 아버지의 삶을 이해하고 가까이 다가가고자 하지만, 아이바는 에릭이라는 사람을 모른다고 말한다.

동성 결혼이든, 이성 결혼이든, 아내와 남편을 구분하고 서로의 역할과 의무, 사회적 시선을 의식하는 제도적 관계에는 위선과 허위, 경제적 맥락과 억압이 존재한다. ‘인형의 집’에서 노라와 토르발드가 “진정한 결혼”의 의미를 두고 벌이던 논쟁, 서로가 동등한 위치에서 상대와 만들어내는 “기적 같은 일”은 2019년에도 여전히 먼 곳에 있는 듯 보인다.

2019년

아이바를 만난 클레어의 뱃속에 있던 아기가 20대가 된 2042년, 극장에서 안내원으로 일하던 데이지는 입센의 ‘인형의 집’ 공연에 매료된다. 클레어의 딸 ‘데이지’는 다니고 있던 의과대학을 자퇴하고 연극이라는 예술의 길을 가고자 한다. 동성 결혼과 퀴어가 더 이상 문제가 되지 않는 미래에 ‘노라’는 여전히 누군가에게 경종을 울리고, ‘자유’를 선택하도록 영감을 불어 넣는다.

노라 역을 연기해왔지만 은퇴선언을 하는 배우 수잔나는 데이지에게 아무런 의미를 갖지 못하는 연극 때문에 의사라는 도움이 되는 직업을 놓아서는 안 된다고 말한다. 2042년에도 아내와 남편이라는 단어는 존재하고, 자신만의 삶을 창조하고 적극적인 선택을 하는 사람들에게는 용기가 필요하다.

저항하고 분투하는 삶에는 대가가 필요하고, 순응과 외면, 포기를 선택할 것을 권하는 목소리에는 억압이 자리한다. 진정한 삶의 의미를 찾는 사람들에게, 사회가 말하는 옳은 선택이 아닌 ‘나’에게 가장 옳은 선택을 하려는 사람들에게, 노라는 여전히 ‘진실’을 말하는 사람이며, ‘저항’의 상징이다.

동성

삼연을 맞이하는 국내 공연 ‘와이프’의 경우, 아담슨의 원작이 2019년과 2042년으로 설정해놓은 부분을 2023년과 2046년으로 변경한 것으로 보인다. 아담슨은 4개의 파트로 나뉜 시대를 건너뛰며 변화하는 장면에서, 입센의 ‘인형의 집’이 각 시기마다 다르게 공연되는 퍼포먼스 경향을 반영하도록 설정하고 있는데, 이에 착안한 것이 아닌가 싶다.

2019년은 연극 ‘와이프’가 초연된 해이므로, 국내에서 삼연이 진행되는 2023년으로의 변화는 ‘현재’의 의미를 부각시키게 되고, 더불어 19세기에 입센이 센세이션을 불러일으킨 주제와 맥락이 현재를 거쳐 어떤 미래에 이르게 될 것인가를 자연스럽게 상상하게 되는 효과를 불러온다.

흥미로운 점은 총 6명의 배우에 의해 공연되는 ‘와이프’에서 5명의 배우는 각기 다른 역할을 하도록 설정하면서도, ‘수잔나’만은 노라 역을 연기하는 배우에서 변화를 주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연극

시대마다 다른 수잔나로, 퍼포먼스의 경향에 따라 다른 노라를 연기하지만, 데이지, 아이바, 에릭, 클레어, 그리고 클레어의 딸 데이지와 각기 다른 상황에서 만나 다른 영향을 미치는 수잔나의 존재는 매우 중요하다.

때로 관객에게 입센의 ‘인형의 집’을 분석하는데 필요한 지식들을 전달하고, 인물에게 의미심장한 말을 남기며, 연극계가 겪는 젠더 불균형 캐스팅의 현재를 지적하거나, 퀴어 소설과 영국에서의 ‘인형의 집’ 공연의 역사를 언급하는 수잔나의 대사는 방대한 것들을 요약의 형태로 담고 있다.

수잔나가 ‘인형의 집’ 공연에서 타란텔라 춤을 출 때 사용하는 ‘탬버린’이 1959년 데이지의 손을 거쳐 2042년 또 다른 데이지에 의해 노라를 연기하는 여배우의 ‘분장실’이라는 공간으로 되돌아온다는 설정 또한 인상적이다.

독거미에 물린 사람이 몸 안의 독을 빼내기 위해 추던 춤인 ‘타란텔라’와 함께하는 탬버린은 그 자체로 주입된 ‘독’을 털어내고 완전한 ‘자유’에 이르기 위한 ‘투쟁’을 상징하게 된다.

탬버린은 1959년의 데이지가 테이트 갤러리에서 매료된 존 윌리엄 워터하우스의 1888년 그림 '샬롯의 여인(The Lady of Shalott)'과도 연계되면서, 소리 없는 아우성과 같은 ‘고통’과 ‘질식’의 이미지로 확장된다.

19세기 영국 시인 알프레드 테니슨의 서정 발라드 속 여인의 고립되고 억압된 삶과 저주, 이상과 현실 혹은 예술과 삶 사이의 갈등과 괴리는 그림에 반영된다. 데이지와 아이바는 '샬롯의 여인'이라는 그림 앞에서, 몸의 모든 세포와 신경이 자극되는 것을 느낀다.

컨셉

아담슨이 극의 제목을 ‘와이프’로 정한 것은 그 단어가 남편이 아내에 대한 모든 법적 소유권을 가졌던 시대에 대중화되었기 때문이다. 법으로 승인된 결혼 관계에서만 적용되는 ‘남편(husband)’과 ‘아내(wife)’라는 단어는 위계를 포함하고 있고, 권력관계를 담고 있다.

아내와 남편이라는 단어 대신 ‘배우자(spouse)’라는 단어를 사용할 것이 권장되는 사회로 변화했음에도, 사람들은 여전히 결혼생활에 대해 이야기할 때 오랜 역사와 관습 속에 익숙해져 버린 단어를 사용하며, 그 속에 갇힌다.

친구이자 파트너, 동반자, 반려자임을 인식하면서도 사회적 맥락에 맞춰 역할을 분배하고 의무를 규정하는 일이 현재에는 달라졌을까? 결혼에 있어 위계가 없는 평등은 가능할까? 관계 속에서 한 개인이 온전히 자신을 추구하는 일에는 무엇이 필요할까? 아담슨은 이러한 질문들이 영구적이며, 입센의 ‘인형의 집’이 촉발한 것들의 연장선에 있다고 말한다.

훨씬 진보된 사회에 살고 있다고 생각하는 현재에도 노라의 선택은 쉽지 않다. 노라의 선택이 더 이상 큰 균열이나 파열을 일으키지 않는 사회에 살고 있다고 믿지만, 19세기와 현재의 간극은 엄청나게 크게 느껴지지 않는다.

연극

입센이 촉발한 ‘정말로 자신이 된다는 것은 무엇일까, 사회 속 인간이 오롯이 자신으로 살아가는 일은 가능할까’와 같은 질문들과 함께 제기되는 것은 노라의 선택이 항상 ‘저항’이자 ‘용기’로 읽힌다는 점이다. 예술이 세상을 바꿀 수 있는가에 대한 대답은 회의적일지 모른다.

하지만 적어도 입센의 연극 속 주인공인 노라가 긴 세월 동안 많은 사람들에게 ‘자유’를 향한 영감과 깨달음을 준 것은 사실이다. 연극이 삶을 바꿀 수 있는가, 없는가의 문제는 결국 개인의 선택에 달려있다.

‘인형의 집’ 속 노라의 선택이 현재에도, 미래에도 의미를 가지는 것은 그녀가 타인에게 끊임없이 ‘기회’와 ‘자유’, ‘희망’을 외치기 때문이 아닐까? 2월 8일까지 LG아트센터 서울 U+스테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