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하영 365칼럼] ‘맥시멀리즘’으로 구축한 비밀스러운 이야기...‘일리야 밀스타인 : 기억의 캐비닛’

[앨리스 박사의 문화로 보는 세상풍경] - 맥시멀리즘 화풍의 일러스트레이터 '일리야 밀스타인' 국내 첫 대규모 기획전 - 작가의 미공개 오리지널 드로잉 & 한국 전시를 위한 신작 최초 공개

2024-01-19     주하영 칼럼니스트

인터뷰365 주하영 칼럼니스트 = 화려함과 밝음은 보이지 않는 ‘어둠’을 바탕으로 한 경우가 많다. 삶을 보다 순조롭게, 나답게 살아갈 수 있도록 만들어주는 ‘지혜’는 고통과 암흑의 긴 터널을 지나온 사람들에게만 주어지는 특별한 선물이기도 하다.

아픔과 슬픔, 절망과 무기력의 밑바닥까지 내려간 곳에서 발견한 ‘나’라는 존재에 대한 정직한 인식 없이 세상을 향해 전진하며, 타인을 아우르고, 자신을 보듬는 삶의 균형을 이루는 ‘지혜’를 획득하기란 어렵다.

루게릭병을 진단받고 죽음에 이르는 마지막 순간까지도 사람들에게 따뜻한 ‘지혜’를 남기기 위해 애썼던 전직 승려이자 작가인 비욘 나티코 린데블라드는 ‘내가 틀릴 수도 있습니다’라는 책에서, 모든 인간의 자아 속에는 “자기만의 조용한 나침반”이 있음을 강조했다.

리비에라에서의

27세의 젊은 나이에 대기업의 최연소 임원이 된 사회적 ‘성공’에도 불구하고 끝없는 불안과 외로움, 우울과 불행을 느꼈던 린데블라드는 어느 날 모든 것을 내려놓고, 17년간 숲속 사원에서 수행을 거치며 진정한 자신을 발견하기 위한 노력을 다한다.

“폭풍이 몰아칠 때는 붙잡을 만한 것을 찾아내 자신을 붙들어 매야 한다”고 말하는 그는 “남들이 보기에는 사소한 일도 당사자는 죽을 듯이 고통스러울 수 있다”는 점을 인정하고, 고통 앞에서 무력한 자신을 달랠 ‘무언가’를 찾아야만 한다고 말한다.

린데블라드에 따르면, 마음의 지혜는 세상의 시선과 타인의 요구에 맞추려고 하는 “요란스러운 자아”와는 다르기 때문에 일부러 관심을 기울여 집중하지 않으면, 그 소리를 들을 수 없다.

갈등에 이끌리고, 불안과 불행에 기민하게 반응하며, 실패와 좌절에 집착하는 현실 속 자아와 진정한 자아의 투쟁 속에서, 삶을 “막장 드라마”로 만들지 않으려면, 우리는 요란한 소리에 묻혀 들리지 않는 “정교하게 연마된 내면의 소리”에 닿기 위해 고요함 속으로 침잠해야만 한다.

이처럼, 온전한 삶을 살 수 있도록 나를 이끌어주는 현명한 목소리, 바로 내 안에 있는 “조용한 나침반”을 발견하는 길에는 피할 수 없이 ‘어둠’의 시간이 내재되어 있다.

마이아트뮤지엄에서는 압도적인 디테일과 유머, 호기심으로 일상 속에 숨 쉬는 “작은 것들의 존재감과 매력”에 주목하도록 만드는 일러스트레이터 ‘일리야 밀스타인(Ilya Milstein)’의 국내 첫 대규모 기획전이 펼쳐지고 있다.

이탈리아 밀라노에서 태어나 호주 멜버른에서 성장한 밀스타인은 뉴욕에 거주하며, ‘더 뉴요커’, ‘뉴욕 타임스’,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페이스북, 구찌, LG 등 글로벌 브랜드와 협업해온 것으로 유명하다.

“순수예술과 상업예술의 경계를 자유롭게 넘나든다”는 평가로 세계적으로 두터운 팬층을 확보하고 있는 밀스타인의 이번 전시는, 공개되지 않았던 최신작을 비롯해 펜으로 그림을 그리는 작가의 섬세한 특징을 살펴볼 수 있는 ‘드로잉 원본’과 한국 전통 정물화 ‘책거리’를 접목한 특별 섹션을 포함하고 있다.

‘기억의 캐비닛’이라는 부제를 갖고 있는 전시회는 관람객들이 각자 자신의 캐비닛에는 무엇을 담을 수 있을까를 생각하며, 작가 밀스타인의 작품세계와 생각, 관심들을 들여다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는 특징이 있다.

또, 자신의 작품 스타일에 대해 “향수를 불러일으키고, 세밀하며, 따뜻하고, 종종 재미있다”라고 평가하는 밀스타인이 전달하려는 ‘비밀스러운 이야기’들을 찾아보도록 만드는 매력이 있다.

도록의 서문을 쓴 한영지 큐레이터에 따르면, 본 전시는 밀스타인의 내면의 탐구를 시작으로, 타인이라는 외부로의 연결을 거쳐,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에 이르는 ‘여정’을 4개의 ‘캐비닛’으로 은유해 구성하고 있다.

첫 번째 캐비닛이 한 명 혹은 두 명의 인물이 등장하는 작품들을 통해 ‘자아’에 집중하고, 가장 가까운 타인이라고 할 수 있는 ‘연인’과의 모습을 보여준다면, 두 번째 캐비닛은 가족과 친구들이 함께 머문 ‘일상’의 시간들과 실제 ‘장소’들의 모습을 드러낸다.

내부에서 외부로의 확장은 세 번째 캐비닛에 이르러 밀스타인을 세계에 널리 알리게 된 작품인 ‘뉴욕 타임스’와의 협업 시리즈를 비롯해, 도시와 군중이 가득한 세상을 돌아보고, 작가의 상상이 창조한 세상을 엿보도록 만든다.

마지막 캐비닛은 특이하게도 인물이 전혀 등장하지 않는 밀스타인의 신작들로 구성되어 있다. 자연과 동물, 건물, 혹은 특정한 공간만이 존재하는 작품들을 바라보는 동안 관람자들은 깊은 사색과 고독의 시간으로 빠져들게 된다.

프랑코 벨기에 만화의 ‘명료한 선(Ligne Claire)’ 스타일과 일본 목판화, 아즈텍 고문서의 세밀함에서 영감을 받은 것으로 알려진 밀스타인의 정교하고 밀도가 높은, 때로는 불가사의한 느낌의 작품들은 관람자로 하여금 알 수 없는 ‘향수’를 느끼도록 만든다.

1990년생인 밀스타인은 자신이 과거 시대의 대중문화에 대한 향수를 크게 간직한 학생이었음을 언급한다. 특히 1950년대에 EC 코믹스가 발행한 미국 풍자 잡지 ‘매드 매거진(Mad Magazine)’을 상당히 좋아했음을 피력한다.

상상

1930년대 유럽 만화에 막대한 영향을 끼친 벨기에의 만화가 에르제의 『땡땡의 모험』 시리즈를 읽으며 성장했다는 밀스타인은, 검정색 외곽선이 경계를 이루고, 선명한 색과 섞이지 않으면서, 평면으로 구현된 이미지들이 몰입감은 그대로 유지한다는 점에서, 마술적이면서도 영구성이 있음을 강조한다.

가장 좋아하는 아티스트로 1980년대 프랑스에서 가장 수요가 많은 광고 일러스트레이터이자 만화가였던 이브 샬랑(Yves Chaland)을 꼽는 밀스타인은 에르제의 경우, 인종과 젠더에 대한 묘사가 상당히 문제적이라고 할 수 있기 때문에, 그의 스타일은 수용했을지 모르지만, 영감을 받았다고 할 수는 없음을 지적한다.

밝고 화사하며 선명하고 유쾌한 밀스타인의 작품들이 알 수 없는 향수와 비밀스러운 고독을 품은 데에는 또 다른 이유가 존재한다. 한때 극단적인 우울증과 자기혐오로 인해 자살 충동까지 느꼈던 암흑의 시간들이 흐릿하게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기 때문이다.

밀스타인은 혼란스러움과 분열의 바닥까지 가라앉았던 그때의 시간들을 예술가로서의 자신에게 “필요한 전환점”이었다고 말한다. 예술가로서 스스로에게 정직해질 필요와 자아를 수용하고 이해하는 삶의 중요성에 대한 교훈을 얻었기 때문이다.

그는 “그 누구도 항상 최고의 작품을 만들어낼 수는 없음”을 기억하는 것은 중요하며, 자신이 좋아하지 않는 일이 무엇인지 깨닫는 과정이 자신의 목소리를 만들어가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는 점을 강조한다.

독학으로 그림을 배웠고, 18세까지 2,000페이지 분량의 만화를 그렸으며, 잡지를 출판하고, 전시회도 개최했던 밀스타인은 “20세부터 26세까지 긴장성 분열증에 가까운 정도의 우울증”으로 고통을 겪었다.

다니엘 지아코펠리와의 인터뷰에서, 밀스타인은 목표를 상실한 혼란스러움과 우울증에서 벗어나기 위해 심리상담사를 찾았고, 삶을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기 위해 멜버른을 떠나 뉴욕으로 향하는 선택을 하게 되었음을 토로한다.

미래를 위한 현실적인 선택이 오히려 스스로를 옥죄는 불안과 절망이 되어 자신의 모든 것을 무너뜨린 경험은 자신에게 가장 자연스럽게 느껴지는 한 가지 재능을 찾아 뉴욕에서 ‘일러스트레이터’로서 현재에 이르는 결과를 낳았다.

도록에 수록된 작가 인터뷰에 따르면, 6세 때부터 드로잉에 빠져든 밀스타인은 13세부터 만화책을 자체 제작해 가족과 친구들에게 판매했고, 15세에는 만화 잡지를 만들어 납품하기도 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면서 만든 만화 잡지는 전 세계 상점에서 판매하기 위해 1,000권을 인쇄해 배포할 만큼 성공을 거두기도 했다.

하지만 당시 호주는 일본, 미국, 프랑스와 같이 그래픽 문화가 발달하지 않은 상태에 있었기 때문에 일러스트레이터가 성장할 수 있는 가능성이 없었다. 밀스타인은 건축학을 현실적인 대안으로 선택해 대학에 진학했지만, 1년 만에 적성에 맞지 않음을 깨닫고 자퇴했다.

이후 드로잉과 판화를 공부하고자 멜버른 미술대학에 지원했지만 실패한 일은 밀스타인의 자신감과 자존감에 큰 타격을 주게 된다. 드로잉과 만화 잡지를 제외하고 여러 갤러리에 작품이 전시된 경력 또한 갖고 있었던 밀스타인은 인생에서 처음 맞이한 ‘절망’ 앞에서 방향을 잃고 만다.

친구들의 조언에 따라 현대 조각과 개념미술을 전공하게 된 밀스타인은 잠시 재미를 느끼기도 했지만, 여전히 채워지지 않는 공허와 불안, 혼란 속에 방황하며, 제도권에서 허용하는 ‘예술’을 하기 위한 노력에 자신을 끼워 맞추는 일을 계속한다.

호주 국립박물관과 퍼스 현대미술관에서 전시를 하고 국제적인 상을 수상하면서도 만족감이나 자신감, 확신을 가질 수 없었던 밀스타인은 결국 모든 작업을 그만두고, 자신이 심각한 우울증을 겪고 있음을 인식하게 된다.

린데블라드는 ‘내가 틀릴 수도 있습니다’에서 “성공과 행복은 다른 것”이며, 주변에서 볼 때 완벽해보이거나 능숙하게 살아가는 것처럼 보이는 삶도 당사자에게는 “엄청난 의지력과 자제력”으로 겨우 버텨낸 것일 수 있음을 강조한다.

“무언가에 진심이 아니더라도 열심히 흉내를 내면 생각보다 꽤 오래 버틸 수 있다”는 린데블라드의 말은 밀스타인에게도 고스란히 적용되었던 셈이다.

1983년

심리 상담을 통해 잃어버렸던 자아를 되찾고, 타인의 시선과 억압에서 벗어나 ‘가장 자연스럽고 진실한 자신’을 발견하고자 한 밀스타인의 노력은 어린 시절의 대부분의 시간을 그 어떤 계산도 없이 열정적으로 드로잉에 매진했던 스스로에게로 되돌아가도록 만들었다.

이 때문에 그는 자신의 예술적 목소리에 관해 “발견된 것이 아니라, 마치 필체처럼 존재의 자연스러운 연장선”으로 내재한 것이라고 설명한다. 6년이라는 시간의 방황 끝에 도달한 것은 결국 존재의 더 깊은 부분에 자양분과 활력을 불러 넣을 수 있는 순수한 열정과 열망으로 가득했던 어린 시절의 ‘자신’이었던 것이다.

일러스트를 활용한 광고와 잡지, 매체가 주를 이루는 뉴욕에서 밀스타인은 미술학교에서 배운 기술들과 비디오 편집기술, 포토샵, 독학으로 더한 코딩 실력을 통해 자신을 드러낼 수 있는 기회들을 섭렵한다. 특히, 뉴욕 타임스 스타일 매거진 ‘T’의 커미션 작품인 1980년대 뉴욕 시리즈들은 밀스타인이 세계로 도약할 수 있는 날개를 달아주는 계기가 된다.

1983년

사실 경험이 훨씬 많은 아티스트가 작업하기로 되어 있던 ‘T’의 1980년대 뉴욕 시리즈는 인쇄를 일주일 앞둔 상태에서 담당 아티스트가 하차를 통보하면서 급하게 차선책을 찾던 중 밀스타인에게 다가온 기회였다. 밀스타인은 소호와 트라이베카, 할렘, 이스트 빌리지 등 뉴욕 맨해튼의 주요 지역에 거주했던 실제 인물들의 기억을 참고해 상상력을 발휘한 거리 풍경을 그렸다.

아침부터 늦은 밤까지 뉴욕의 하루를 표현한 4점의 시리즈는 1980년대를 기억하는 예술가와 작가, 사진가들의 회상 자료들을 참고문헌으로 삼아 재구성될 필요가 있었다. 밀스타인은 6일이라는 촉박한 일정에도 모든 작업을 마무리할 수 있는 의욕과 열정이 넘치는 실력을 갖춘 젊은 아티스트였다.

뜻밖의

밀스타인의 작품에 영감을 부여한 화가들로는 ‘선명한 색상과 유머, 평범한 사람들이 있는 풍경, 기이함과 상상력, 세밀함과 정교함’을 특징으로 하는 16세기의 화가 피테르 브뤼헐과 히에로니무스 보스를 꼽을 수 있다. 이는 밀스타인의 ‘맥시멀리즘(Maximalism)’ 화풍의 일러스트들이 수많은 작은 장면들을 하나의 화폭에 상세하게 압축시켜놓는 방향으로 나아가도록 영향을 미친다.

백여 개의 속담과 격언의 의미를 마을 풍경을 그린 그림 한 장에 집약해 넣은 브뤼헐의 ‘네덜란드 속담’은 2018년 뉴욕 타임스 커미션으로 작업된 밀스타인의 ‘호주 속담’이나 ‘애거사 크리스티의 세계’, ‘분더캄머의 송환’, ‘과학의 정밀성에 대하여’, ‘에르퀼 푸아로의 세계’와 같은 작품들에 반영된다.

에르퀼

또, 세 폭 제단화에 에덴동산과 현세의 쾌락, 지옥의 모습을 기이한 상상력으로 가득 채운 보스의 ‘쾌락의 정원’의 영향력은 클럽 장면과 파티를 연출한 ‘환각’과 ‘뜻밖의 손님이 있는 거리 파티’, 그리고 공포와 혼란을 표현한 ‘추락’, ‘이민자들’ 등에서 찾아볼 수 있다.

‘많을수록 더 좋다’는 맥시멀리즘의 역사는 19세기 말 혹은 20세기 초를 뿌리로 언급하지만, 디자인 연구가인 알렉산드리아 우드에 따르면, 16세기에 부호들이 동물 표본과 예술품, 여러 상품들을 수집하고 전시하던 ‘호기심의 캐비닛(Cabinets of curiosities)’에서 연계성을 찾을 수 있다.

자신만의 취향이 드러나는 “보물들로 가득 찬 개인 박물관”이라고 할 수 있는 캐비닛으로 가득 찬 ‘방’은 밀스타인의 전시를 구성한 특징이기도 하다.

빅토리아 시대에 다시 두각을 드러낸 맥시멀리즘은 벽지와 러그, 커튼, 장식용 물품들을 집안 곳곳에 배치해 자신만의 ‘개성’을 반영하고, 사적인 자아를 보여주려는 문화를 반영했다.

티레니아해

우드는 현재의 맥시멀리즘은 2018년경부터 현대적 트렌드로 부활하기 시작했다고 말한다. 젊은 세대를 중심으로 SNS를 통해 이미지들이 공유되면서 빠르게 확산된 맥시멀리즘은 “색상과 모양, 톤, 질감으로 공간을 압도적으로 연출”하는 것을 특징으로 다양한 관심사를 반영한다.

미국 인터넷 매체 ‘복스(VOX)’의 레베카 제닝스는 밀레니얼 세대가 주도하는 현재의 맥시멀리즘은 공간을 채운 물건들이 “자신의 삶의 이야기를 담고 있는 지극히 사적이고, 복잡하며, 설명하기 어려운 것들의 수집”임을 의미한다고 설명한다.

인류

또, CNN의 니나 밀하우드는 맥시멀리즘이 정해진 규칙을 따르는 것이 아니라 흥미로운 질감이나 눈에 띄는 패턴, 화려한 색상과 기이함의 절충을 강조하는 ‘자유로운 표현방식’임에 주목한다.

혼란과 일탈을 허용하지 않는 절제된 미니멀리즘에서 벗어나려는 젊은 세대의 일종의 ‘저항’의 흐름이라고 볼 수 있다는 것이다. 결국 새롭게 추구되는 현재의 맥시멀리즘은 다양성과 복잡성을 수용하고 관용하며, 억압에서 벗어난 자유로움을 강조하는 ‘시각적 경향’인 셈이다.

깔끔하게 배치된 물건들이 불협화음을 낼 수 있음을 드러내고, 미니멀리즘 조각가들의 남성적 작업에 불만을 느꼈던 밀스타인이 엄격함을 벗어난 자유로움과 다양성의 ‘맥시멀리즘’을 따르게 된 것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밀스타인은 “그림이 언어의 기능”을 갖추기를 바란다. “많은 것을 여러 톤으로 이야기할 수 있고, 자연스럽게 흐르도록” 만들려는 그의 노력은, 오랜 시간이 걸림에도 불구하고 수작업을 통해 펜으로 그려내고, 드로잉에 디지털로 색채를 입히는 과정들을 통해 완성된다.

버려진

밀스타인은 명시적이면서도 모호함을 간직한, 시간의 흐름이 느껴지면서도 현재 혹은 상상 속에 자리한, 고독과 어둠의 일부를 포함한 일러스트의 세상을 창조한다. 일상 속의 한 장면이거나 길거리 풍경, 파티나 축제의 순간, 버려진 폐허의 구석처럼 보이는 평범함 속에는 예상 외로 상당히 많은 참고 자료와 사유, 작은 의도와 메시지들이 숨겨져 있다.

“모든 사람은 예술가”라는 주장을 통해 사회적 치유와 변화를 추구했던 요셉 보이스를 지지하는 밀스타인의 특징은 그의 작품 속에 고스란히 숨 쉬며 “작업하는 데 틀린 방법은 없으며, 과정이 다양할수록” 더욱 다양한 문화가 양산될 것이라는 그의 믿음을 전달한다.

간과된 것들을 눈여겨보길 바라는 밀스타인의 소망은 상세한 묘사로 화폭을 채운 맥시멀리즘의 ‘항연’ 속에 관람자의 눈이 조금 더 오래 머물기를 바란다. 그가 숨겨놓은 언어의 ‘톤’들은 관람자의 호기심과 상상을 통해 새로운 ‘의미’에 도달할 수 있는 ‘기회’를 꿈꾼다. 3월 3일까지 마이아트뮤지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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