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두호가 만난 人] 이해룡 영화인원로회 회장, 韓영화 충무로시대 '의리의 맏형'

[인터뷰365] ‘왕년의 액션스타’ 이해룡 영화인원로회회장 - ‘돌아오지 않는 해병’ ‘장군의 아들’ 등 3백여편 출연한 액션스타 - 외롭게 살다가 세상 떠난 영화인들 장례식 치러주는 아흔의 원로 영화인 - 원로배우 부고 소식에 가장 먼저 달려가 빈소 지켜

2023-12-13     김두호 인터뷰어

인터뷰365 김두호 인터뷰어 = 아흔을 눈앞에 둔 ‘왕년의 액션스타’ 이해룡(1936∼ ) 원로배우는 사단법인 한국영화인원로회 회장(이사장)이다. 영화인원로회는 배우와 감독, 촬영, 조명, 기술, 제작 스태프 등 일생을 영화제작 현장에서 보내고 은퇴한 65세 이상의 영화인들이 회원이다.

영화 촬영 기간에 모이고 흩어지며 자유 직업인으로 활동해 온 영화인들은 은퇴 나이가 일정하지 않다. 감독이나 제작회사가 부르지 않으면 그 시기가 물러날 시기가 된다. ‘영화판’이 평생을 바친 일터지만 퇴직금이나 별도의 연금, 복지혜택 등이 없어서 대다수 노후를 힘겹게 맞이하는 사람이 많다.

때문에 원로 영화인들의 맏형 노릇을 하는 이해룡 배우가 회장(이사장)인 영화인원로회가 주로 하는 일은 십시일반 성금을 모아 지병으로 투병 중인 회원을 지원하거나 외롭게 세상을 떠나면 장례식까지 뒷바라지 해주고 있다.

지난해 한국영화 중흥기를 이끈 영화 제작자의 한사람인 이우석 동아수출공사 회장이 제12회 아름다운예술인상(신영균예술문화재단 주최) 공로상 시상금 2천만 원 전액을 영화인원로회에 기부하였고, 올해도 영화예술인상을 수상한 이정재 배우가 2천만 원 시상금 전액을 포함한 5천만 원을 기부받아 따뜻한 화제를 남긴 영화인원로회 회장 이해룡 배우를 만났다.

배우는 노후가 외롭다

- 원로 영화인들 모임의 발족 시기와 배경에 대하여 

"20여 년 전 정진우 원로감독이 중심이 되어 발족하였다. 한동안 순수 친목 모임 정도로 유지되다가 15년 전 고 최지희(1940∼2021) 배우가 영화인 공식 단체로 기반을 조성해 회장을 거친 후 내가 9년째 운영을 맡고 있다. 회원이 200여 명까지 되었으나 그동안 60여 분이 타계하고 지금은 150여 명 된다."

- 최지희 배우는 출연 영화 ‘아름다운 악녀’ 제목이 별칭으로 통하던 충무로 영화 전성시대 스타가 아닌가?

"1960년대 ‘아름다운 악녀’의 명배우였다. 그런데 최지희 전 회장도 우리가 장례식에서 장지까지 마련해 모셨다. 한때 일본에서 살며 사업으로 크게 성공했지만, 마음씨가 착해 많은 재산을 잃고 독신으로 노후를 고독하게 맞이했다. 대체로 충무로 시절 인기를 누린 배우들이나 감독 등 영화인들이 화려한 때가 있었지만 대다수 여유롭게 만년을 맞이하지 못하고 어렵고 외롭게 살아가는 것이 현실이고 아픔이다."

- 지금 생존한 원로 영화인들의 근황부터 전해 달라.

"얼마 전 박동룡 배우가 외롭게 살다가 떠났지만, 남궁원 윤일봉 등 원로들도 몇 해째 건강이 여의치 못해 걱정이다. 지난 11월 생신을 맞이해 아흔여섯인 신영균 회장은 우리 모임의 명예회장으로 노후에도 부귀와 건강 장수를 누리는 극히 드문 사례의 원로배우인데 우리가 사용하는 충무로 원로회 사무실도 그분이 제공해서 만남의 공간으로 활용하고 있다. 우리 모임은 입회 자격이 정해져 있지 않고 고령의 은퇴 영화인이면 서로 다 아는 처지라 누구나 회원 대우를 해준다."

6일

- 이정재 후배 배우가 지난 12월 4일 원로회에 후원 성금 5천만 원을 전달해 따뜻한 미담이 되었다.

"영화에 젊음을 바친 선배들이 가난과 병고로 힘겹게 살고 있다는 소문을 가끔 들을 때마다 선배들의 후광을 입은 후배의 한사람으로 미안한 마음을 가졌고 종종 쓸쓸하게 떠나셨다는 부음을 접하면 가슴이 아팠다면서 지난 10월 제13회 아름다운예술인상(신영균예술문화재단 주최) 시상금으로 받은 2천만 원 전액을 포함해 후원 성금 5천만 원을 기부해왔다. 작년에도 이우석 동아수출공사(영화사) 회장이 시상금 전액을 기부해주셨다."

- 이해룡 회장은 60, 70년대 전쟁영화나 무협, 권격 액션 영화의 단골 배우였다. 또 사나이답게 보이는 외모 탓인지 주먹을 휘두르는 악역을 많이 연기했던 것 같다. 실제 충무로시대 누구에게도 밀리지 않고 ‘한주먹 한다’는 배우로도 소문이 났었다.

"부인하지 않겠다. 태권도 몇 단이라는 사람들도 나에게 꼼짝 못 하고 무릎을 꿇게 했다. 태권도든 유도든 맞대결하면 쌈꾼을 못 이긴다. 싸움 잘하는 사람은 오르지 상대를 제압하는 급소를 공격할 줄 알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는 나쁜 쪽에 주먹을 사용하지는 않았다. 힘깨나 쓴다며 약자들이 두려워했던 액션 배우 L을 맞대결로 제압하기도 했다."

- 출연 작품이 어마어마한 거로 알고 있다.

"1956년 21살 때 윤봉춘 감독의 ‘유관순’ 영화에서 악질 두목 역으로 시작해 300편이 넘는다. 이만희 감독의 ‘돌아오지 않는 해병’을 포함해 17편, 임권택 감독의 ‘장군의 아들’을 포함해 15편, 정진우 감독의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 등 10편, 그리고 이두용 감독 8편, 배창호 감독 7편 등 당대 최고의 감독들이 즐겨 나를 출연시켰다. 함께 공연한 배우는 김승호 허장강 최무룡 장동휘 최은희 신성일 김지미 엄앵란 문희 등 헤아릴 수 없이 많다. 신상옥 감독의 ‘내시’에서 최은희 남궁원 배우와 공연했는데 나도 내시 역이었다. 조긍하 감독의 ‘김구’ 영화에서 내가 암살 저격범 안두희 역을 맡아 악명을 떨치기도 했다."

- TV드라마도 많이 출연하지 않았는가?

"MTV 인기 프로였던 ‘수사반장’ ‘무풍지대’ ‘모래시계’를 비롯해 40여 편 출연했다."

영화

영화인들이 붙여준 별칭 ‘만년 장례위원장’

- 원로배우들이 별세하면 가장 먼저 달려가 빈소를 지키는 것으로 소문나 있다. 영화인들 사이에 ‘만년 장례위원장’의 별칭이 따르기도 한다. 그동안 영화인들의 장례식을 지켜보고 치르면 겪은 남다른 일화도 많을 것이다.

"일일이 기억한다면 천일야화같이 그에 관련된 이야기는 끝이 없다. 아마도 60년이 넘는 동안 몇백 명이 될지도 모르겠다. 가장 잊을 수 없는 장례식은 나와 형제 관계의 우정을 나눈 이만희 감독이 별세했을 때 충무로 복판에서 수백 명의 영화인이 모인 가운데 노제를 지낸 순간이 떠오른다. 나와 형님, 아우하면서 영화를 만들었던 그는 내 개인적인 영화 인생에서도 가장 잊을 수 없는 감독이었다."

- 지난 12월 초 김수용 감독이 타계했다. 지금 원로 영화인들 가운데 건강이 여의치 못한 분들의 근황을 전해달라.

"남궁원 윤일봉 원로들이 다 같이 건강이 여의치 않아 걱정이다."

- 평생을 모두 영화에 바쳤다. 영화와 더불어 살아온 삶에 대하여 남다른 감회가 있다면 어떤 이야기를 남겨주고 싶은가?

"영화는 20세기에 등장한 최고의 문화예술이다. 성인이 된 관객들이 청소년기에 가장 잊을 수 없고 영향을 받은 것이 무엇이냐고 물어보면 많은 사람이 감명을 준 영화나 영화배우를 꼽는다. 영화는 예나 지금이나 사람들에게 꿈과 사랑을 전달하는 최고의 미디어다. 한국영화를 꽃피운 충무로 시대와 다르지만, 영화배우라는 직업에 긍지를 느끼며 살아왔고 지금도 보람을 느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