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하영 365칼럼] 사회의 차별과 억압, 파워게임의 희생양...英국립극장 라이브(NT Live) ‘오셀로’

[앨리스 박사의 문화로 보는 세상풍경] - 2023-2024 국립극장 ‘엔톡 라이브 플러스(NTOK Live+)’ 시리즈 - '최초' 수식어가 익숙한 영국 국립극장 부예술감독 클린트 다이어의 새로운 해석

2023-12-04     주하영
영국

인터뷰365 주하영 칼럼니스트 = 시대에 따라 우리가 옳다고 믿는 가치는 다르다.

“가장 인문학적인 미래학자”라고 불리는 후안 엔리케스는 2020년에 출간한 책 ‘무엇이 옳은가’에서 기술과 지식의 팽창이 우리의 믿음을 바꾸어 놓았으며, 윤리 혹은 표준이라고 생각했던 것들의 빠른 변화를 이끌었고, 진리로 여겨지던 것들의 쉼 없는 붕괴를 목도하도록 만들었음을 지적했다.

그는 과거에 사람들이 ‘올바르다’ 혹은 ‘그르다’고 생각했던 것들과 현재에 우리가 ‘올바르다’ 혹은 ‘그르다’고 생각하는 것들은 다르며, 윤리에는 “‘규칙은 변한다’는 절대적 성질”이 작용하기 때문에, 인식의 성장과 전환의 방식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고 말했다.

엔리케스에 따르면, 사람들은 대부분 후대의 자손들만큼은 보다 높은 기준이 적용되는 세상에서 한층 발전된 삶을 살기를 바란다. 옳고 그름을 판단하는 일은 “매우 중대한 주제”이며, 우리는 자신의 “어리석음을 깨닫고 그 어리석음을 비웃을 수 있어야”만 낡은 믿음에서 벗어나 미래를 향할 수 있다. 즉, “오늘의 선택이 인류의 내일을 결정”하게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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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1월 26일, 영국 국립극장은 19개월간 공석으로 비어 있던 부예술감독의 자리에 클린트 다이어(Clint Dyer)를 임명했다.

다이어는 2016년 영국 국립극장의 리틀턴 씨어터에서 공연된 미국 극작가 어거스트 윌슨의 연극 ‘마 레이니, 그녀가 블루스’에서 트롬본 연주자 ‘커틀러’ 역할을 맡아 I.A.R 어워즈 베스트 액터상을 수상했다.

또, 2020년, ‘영국의 죽음’ 시리즈 공연을 통해 작가이자 연출가로서도 국립극장과 작업을 함께 했다. 코로나19로 봉쇄조치가 반복되는 속에서도 1월과 10월, 두 차례에 걸쳐 도프먼 씨어터와 올리비에 씨어터에서 작품을 선보인 다이어는 “배우, 작가, 연출가로서 국립극장과 풀 스케일의 작업을 모두 경험한 첫 번째 흑인 영국 예술가”라는 타이틀을 갖게 되었다.

2014년부터 발전되기 시작한 ‘영국의 죽음’은 노동자 계급 출신의 백인 아들이 아버지의 장례식장에서 술에 잔뜩 취해 추도사를 하는 1인극의 형식을 취하고 있었다.

또, 영국이라는 나라가 강요하는 ‘백인다움(whiteness)’과 ‘영국성(britishness)’, 국가주의와 인종주의의 사회적 억압에 대한 날카로운 고찰을 담고 있었다. “흑인이 백인에 관한 극을 쓴다는 것”만으로도 급진적인 일로 여겨진 작품은 10분 정도의 영상으로 만들어져 영국 언론 ‘가디언’의 웹사이트에 업로드되었고,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결국 2020년 1월, 도프먼 씨어터에서 초연된 ‘영국의 죽음’은 2020년 5월, 미국에서 발생해 전 세계의 관심을 사로잡은 ‘조지 플로이드 사건’에 대한 반응으로 ‘영국의 죽음: 델로이’를 통해 ‘흑인다움(blackness)’의 문제와 영국에서 흑인 남성으로 살아간다는 것의 ‘공포와 억압’에 관한 주제로 확장되었다.

연극

영국 국립극장의 총 예술감독이자 극장장인 루퍼스 노리스는 조지 플로이드 사건으로 새롭게 인식된 성(性), 계층, 장애에 대한 배제의 문제와 인종주의를 경계하는 관객들의 감수성에 발맞추기 위해, “예술계의 중대한 전환이 필요한 시점”에 “창의적인 두뇌”를 갖춘 다이어가 부예술감독으로서 새로운 메시지와 변화에 헌신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다.

다이어는 2021년 11월, 스카이 아츠를 통해 TV 영화로 제작한 ‘영국의 죽음: 대면’을 송출함으로써, 백인 남성과 흑인 남성을 주인공으로 한 앞선 두 개의 1인극에서 미처 발전시키지 못한 두 인물의 대화와 서로에 대한 이해를 성취했다.

2023년 가을, 다이어는 ‘영국의 죽음: 클로징 타임’을 통해 또 한 번 담론의 확장을 시도했다. 그는 1부의 주인공 마이클의 여동생이자 2부의 주인공 델로이의 아내인 ‘칼리’와 델로이의 어머니 ‘드니스’를 통해 한 가족이 된 백인 여성과 흑인 여성의 갈등과 인종적 시선, 사회 시스템의 문제, 남성성과 여성성 등을 코믹한 방식으로 날카롭게 제시했다.

최근 국립극장은 해외 유수 공연을 영상으로 소개하는 ‘엔톡 라이브 플러스(NTOK Live+)’의 2023-2024 시즌의 일환으로 다이어가 연출한 연극 ‘오셀로’의 ‘엔티 라이브(NT Live)’를 선보였다.

다이어의 ‘오셀로’는 2022년 11월, 영국 국립극장의 리틀턴 씨어터에서 초연되어 “완전히 새롭게 느껴지는 작품”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다이어에게 “셰익스피어의 비극 ‘오셀로’를 영국 국립극장 무대에 올린 첫 번째 흑인 연출가”라는 타이틀을 부여한 공연은, ‘질투심’이라는 주제에 초점을 맞출 때 간과되는 인종 차별과 여성 혐오, 사회에 작동하는 파워게임과 심리적 영향의 문제를 전면에 가져온 특징이 있었다.

‘오셀로’ 공연에 대한 다이어의 문제의식은 1980년대 중반, 그가 배우의 꿈을 꾸면서 영국 국립극장에 처음 방문했을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벽에 걸려있던 대배우 로렌스 올리비에가 검은색으로 얼굴을 칠하고 무어인 사령관 역할을 맡았던 1964년 ‘오셀로’의 공연 사진은 다이어의 마음에 큰 상처를 남긴다.

17세기 초 ‘오셀로’가 초연된 후 400년이 넘는 영국 공연의 역사에서 백인 배우가 얼굴을 검게 칠한 ‘블랙페이스(blackface)’가 아닌, 흑인이 흑인을 연기하는 무대가 등장한 것은, 1980년대부터였다. 흑인 배우가 연기하는 오셀로는 압도적인 백인 배우들 사이에서 유일한 ‘비백인 인물’로 무대 위에 등장하기 시작했다. 현재에는 오히려 흑인 배우가 연기하지 않는 오셀로를 보는 일이 더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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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에도 다이어는 연극 ‘오셀로’의 주제 가운데 “인종차별을 최우선 의제로 삼지 않으려는 무의식적 혹은 의식적 편견”이 오히려 대화의 가능성을 후퇴시켰음을 지적한다. 그는 “흑인의 경험을 표현하는 데 불편을 느꼈던” 백인 연출가들이 오셀로의 ‘질투심’에 좀 더 초점을 맞춘 탓에 셰익스피어가 겨냥했던 ‘불안과 편견이 가득한 사회, 혐오와 학대, 권력구도의 맥락’을 놓치고 있음을 강조한다.

이 때문에 다이어의 ‘오셀로’는 삼면이 돌계단으로 구성된 무대 위로 1600년대부터 2022년까지 순차적으로 연도가 빠르게 바뀌는 가운데, 과거 ‘오셀로’ 공연의 포스터들을 영사하고, 역사적 맥락을 관객에게 노출하면서 시작된다.

청소부로 보이는 배우가 무대 바닥을 대걸레로 닦으면서 잠시 객석을 응시하면, 관객들의 웅성거림이 잦아들고, 왜곡된 목소리와 기계음 소리가 점점 더 크게 들리면서 암전에 이른다.

곧이어 흑인 배우 자일스 테레라가 연기하는 ‘오셀로’가 빠르게 계단을 내려와 한 줄기 조명 속에서 무술 동작을 화려하게 선보인다. 아프리카 원주민의 기합소리를 내기도 하면서 긴 곤봉을 휘두르는 오셀로의 뒤쪽으로 계단 위에 ‘검은 제복을 입은 사람들’이 늘어서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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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셀로를 평가하듯, 혹은 감상하듯 바라보던 검은 제복의 사람들은 무대 우측에서 지팡이를 짚은 백인 사령관이 등장해 ‘브라보’를 외치며 박수를 유도하자, 아래로 내려와 환호한다. 오셀로가 감사를 표하듯 환호에 응대하며 한 손을 위로 뻗는 순간, 제복을 입은 사람들은 갑자기 거칠게 야유를 던지며 변하기 시작한다.

왜곡되는 전자음향 소리와 함께 오셀로를 향해 비난하듯 손을 뻗으며 적대감을 드러내는 사람들의 모습에 오셀로는 혼란스러움을 느끼며 두 손으로 머리를 감싼다. 그 순간 계단 꼭대기에 조명이 켜지면서 금발 머리의 백인 여성 ‘데스데모나’가 등장한다.

검은색 드레스를 입고 긴 머리를 늘어뜨린 채 정면을 응시하고 있는 데스데모나를 본 오셀로는 가슴에 한 손을 가져다 대며 놀란 표정을 짓는다. 오셀로가 그녀를 좀 더 자세히 보려고 애쓰는 사이 왜곡된 전자음향과 소음이 또다시 증폭되고, 제복을 입은 사람들은 주변 계단의 곳곳에 자리를 잡고 앉아 무대를 응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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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이어는 셰익스피어의 ‘오셀로’의 1막 1장 초반의 80행 가량의 대사를 삭제하고, 로데리고와 이아고가 브라반티오 의원 집의 문을 두드리는 장면을 강하게 제시한다.

“늙고 검은 숫양이 하얀 암양을 덮치고 있음”을 경고하고, “무어인과 등이 둘 달린 짐승”을 만들고 있는 딸의 “고약한 탈선”을 바로잡을 것을 외치는 장면은 ‘린치(lynch)’를 선동하는 폭도나 백인 우월주의 집단 ‘KKK’를 떠올리게 하는 지점이 있다.

로데리고가 관중을 선동하는 방식과 횃불을 들고 구호를 외치면서 ‘올가미’를 높이 들어 올리는 군중의 모습은 흑인 남성과 백인 여성의 결합을 바라보는 ‘혐오’의 시선을 강하게 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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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이어는 ‘채널 4 뉴스’와의 인터뷰에서, 희곡 텍스트가 “일종의 지도”라고 한다면, 연출가에 의해 이루어지는 “간섭”이 실제 “이야기”를 만들어낼 수 있음을 강조한다. 그는 자신이 삶에서 겪어 온 “흑인으로서의 경험”이 반영되었음을 언급하면서, 오셀로의 이야기가 그에게는 항상 백인 아버지가 백인 딸들에게 흑인 남자와의 데이트를 만류하는 경고로 들렸음을 덧붙인다.

다이어는 셰익스피어가 “권력의 역학관계”를 드러내고자 했고, 대부분의 공동체에서 공통적으로 발견하게 되는 ‘혐오와 적대감’을 염두에 두고 있었음을 강조한다.

새로운 타자가 사회의 높은 ‘지위’를 갖게 될 때, 기존의 구성원들은 그것을 방치할 수 없음을 느끼게 되고, 타자의 지위를 빼앗기 위해 ‘게임’을 시작한다. 권력의 정상에 있는 사람들은 자신의 아래에 있는 자들이 서로 ‘자리’를 놓고 싸우도록 내버려 둔다. 그들이 서로를 물고 뜯으며 싸우는 한 정상의 자리를 위협할 일은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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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이어는 셰익스피어가 ‘오셀로’를 통해 “인간이 시스템 속에서 어떻게 작동하며 움직이는지를 보여주고자 했다”고 말한다.

그의 이러한 생각은 백인 공동체에 흑인 용병으로 지휘관의 자리에 오르고, 최고의 여자를 아내로 삼은 오셀로를 향해, 이아고가 보이는 적대감이 ‘인종차별’과 ‘파워게임’에 기인함으로 연결된다.

따라서 다이어가 그려내는 악인 ‘이아고’는 결코 객석의 웃음을 낳는 법이 없도록 유지되며, 겉으로는 드러나지 않지만 속으로는 백인 우월주의와 여성혐오를 간직한 ‘비뚤어지고 폭력적인 인간’으로 설정된다.

무엇보다 흥미로운 점은 데스데모나를 ‘사회운동가’로서 공동체의 금기처럼 작동하던 경계를 넘어서고, 자신이 선택한 ‘사랑’을 위해 모두에게 맞서 적극적으로 대항할 힘을 가진 인물로 그렸다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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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데모나는 백인 공동체를 배반한 대가로 부여되는 사회의 ‘여성 혐오’적 시선을 넘어서려고 하는 인물이며, 이아고의 아내인 에밀리아와 함께 가정 폭력의 희생양으로 스러지면서도 목소리를 내는 인물이다.

따라서 다이어의 데스데모나는 오셀로를 향해 ‘무어인’이라는 단어를 사용하지 않는다. 그녀는 때로 오셀로의 대사 일부를 말하기도 하고, 아내를 무시하고 조롱하는 이아고를 향해 강한 ‘경멸’을 드러내기도 한다.

데스데모나는 에밀리아를 향해 결코 남편인 이아고에게서 배우지 말 것을 조언하는데, 어떤 면에서는 그 점이 데스데모나를 죽음으로 이끄는 이아고의 계략을 한층 도발하는 원인이 된다.

다이어는 한쪽 팔에 붕대를 감고 얼굴에 구타를 당한 흔적을 간직한 ‘에밀리아’를 설정함으로써, 이아고가 사회에서 느끼는 패배감과 열등감을 아내에게 ‘폭력’으로 분출해왔음을 드러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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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인이 지배하는 사회 구조와 억압, 남성성과 여성성을 강요하는 시스템의 논리는 계단에 둘러 앉아 있거나 서서 지켜보는 ‘제복을 입은 사람들’에 의해 고대 그리스극의 ‘코러스’처럼 구현된다.

다이어는 사회의 제도나 시스템이 모든 것을 조장하고 조종하는 ‘힘’을 갖고 있는 상황에서 개인인 우리가 자신의 삶을 마음대로 움직일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음을 강조한다.

끊임없이 인물들을 지켜보는 계단에 배치된 사람들은 ‘판옵티콘(panopticon)’의 원형감옥을 떠올리게 하는 시스템을 대변하는 ‘은유적 장치’로 기능한다. 인종주의와 여성 혐오, 질투심은 삼각 연결 고리를 이루며, 서로의 불안과 분노, 복수심을 먹고 자란다.

이아고의 질투심 유발과 거짓말, 가스라이팅(gaslighting)이 효과를 거두면서 오셀로를 비롯한 여러 인물에 대한 지배력을 발휘하는 것은 “사회의 거짓말”이 작동하는 “구조” 때문이다. 이아고가 자극하는 것은 로데리고, 카시오, 오셀로, 데스데모나가 간직한 ‘불안’과 ‘비참함’ 혹은 ‘간절함’이고, 그가 설파하는 것은 사회가 품은 고정관념 혹은 거짓되고 편향된 사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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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이어는 ‘라운드테이블 인터뷰’에서, 사회 속에서 불행하다고 느끼는 남성이 시스템을 전복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반란을 일으키지도 않을 때, 사회에서 하지 못한 것을 ‘집’으로 가져온다는 점을 지적한다.

이아고는 사회에서 자신이 누릴 수 없는 만족과 권력을 남편의 사랑과 애정을 되돌리기 위해 끝없이 고개를 숙이는 아내 에밀리아를 향해 신체적 ‘폭력’을 행사함으로써 얻고자 한다.

아내를 향한 의심과 혐오, 학대와 폭력은 데스데모나가 백인 남성 구혼자들을 모두 물리치고 비난의 시선을 감수하면서도 이방인이자 흑인인 자신을 선택한 ‘이유’를 신뢰하지 못하고 흔들리기 시작하는 오셀로에게로 전이된다.

이아고는 외모가 아닌 “마음에서 얼굴을 본” 데스데모나와의 관계 안에서 비로소 온전한 자신의 ‘정체성’을 발견한 오셀로의 내면에 자리한 약한 고리, 즉 ‘불안’을 끝없이 흔들어댄다.

셰익스피어가 “불안의 거미줄에 걸린” 인간의 동물적 측면과 함께 계급과 사회적 지위를 둘러싼 질투, 증오와 폭력의 메커니즘을 드러내고자 했음을 주장하는 다이어는 오셀로와 이아고의 심리적 동요에 사회가 작용하고 반응하는 과정을 조명의 효과와 메아리처럼 반향하는 소리를 통해 드러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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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셀로의 간질 발작은 매우 실제적으로 무대 위에 구현되며, 데스데모나를 의심하는 순간부터 촉발된 그의 정신적 분열은 기계음과 왜곡된 소음과 더불어 점점 가속화된다.

다이어는 셰익스피어 희곡의 대사를 상당 부분 삭제하거나 순서를 변경해 자신의 의도를 관철한다. 이아고의 대사들이 많이 축약된 특징이 있으며, 마지막 5막 2장의 오셀로의 대사와 장면 구성은 상당 부분 변화된다. 다이어는 데스데모나의 죽음 앞에서 에밀리아가 용기를 내 목소리를 높이고, 여성을 향한 폭력을 행사하는 남성을 질타하는 장면을 감동적이고 강렬하게 구현한다.

또, 데스데모나와 에밀리아가 죽음에 이른 채 나란히 누워 있는 모습을 통해 오셀로와 이아고의 폭력을 유사한 맥락으로 배치시킨다. 스스로를 칼로 찌르고 죽음에 이른 오셀로는 제복을 입은 사람들과 함께 계단에 위치하며, 자신의 악의의 동기를 결코 밝히지 않겠다고 외치는 이아고를 향해 응시하는 장면으로 막을 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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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이어의 ‘오셀로’는 흑인의 렌즈를 통해 바라본 셰익스피어의 작품 해석을 통해 현재의 세상이 어떻게 ‘불안’을 ‘폭력’으로 전환하고 있는지, 어떻게 ‘혐오’와 ‘좌절’이 서로 짝을 이루어 인간을 ‘어둠’으로 몰고 가는지를 드러낸다.

거울처럼 기능하는 무대를 통해 그가 기대하는 것은 관객들의 시스템에 대한 자각과 인식, 그리고 연극이라는 경험을 통해 얻은 새로운 시선을 통한 ‘변화’이다.

오셀로가 시스템의 희생양인 만큼 데스데모나와 에밀리아, 심지어 이아고마저도 시스템 속 개인의 비극이 된다. 이 모든 ‘불안’과 ‘혐오’를 이겨낼 방법이 우리에게 있을까? 사회의 억압과 그릇된 잣대로부터 자신을 구하기 위해 우리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결국 오늘날 우리의 선택은 자신 뿐 아니라 인류의 미래를 결정하게 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