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하영 365칼럼] ‘유산’으로 연결된 두 세대의 삶...연극 ‘3일간의 비’
[앨리스 박사의 문화로 보는 세상풍경] - 美 “도시 엘리트 삶을 기록하는 극작가”로 불리는 리차드 그린버그 작품 - 1998년 퓰리처상 희곡 부문 최종 후보 노미네이트
인터뷰365 주하영 칼럼니스트 = 이전 세대가 다음 세대에게 남기는 ‘유산(legacy)’에는 무엇이 있을까? ‘유산’은 일반적으로 “죽은 사람이 남겨 놓은 재산”, “앞 세대가 물려준 사물 또는 문화”를 말한다. 하지만 부모가 자식 세대에게 물려주게 되는 유산에는, 물질적인 것뿐 아니라 유전적 성질, 믿음, 윤리철학, 성격, 명성, 기억 등 많은 다른 것들이 포함되어 있다.
‘레거시 프로젝트’의 창립자이자 작가인 수잔 V. 보사크는 유산이라는 단어가 ‘죽음’을 떠올리게 하지만, “과거로부터 배우고, 현재를 살아가며, 미래를 구축하게 된다”는 점에서, 결국 “삶과 생활에 관한 것”이라고 말했다.
죽음 뒤에 남겨질 것들에 대해 생각하고, 앞선 세대가 남긴 것에 관해 호기심을 품는 것은 ‘인간’이라는 종만이 가진 특징이기 때문에, 유산에 관한 질문은 “인간이 어떤 존재인가를 밝히는 일에 필수적인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보사크는 “시간을 초월한 상호 연결”이라고 할 수 있는 유산이 “우리보다 앞서 존재했던 사람들에 대한 필요와 우리 뒤에 존재하게 될 사람들에 대한 책임”을 인식하도록 만들기에, “현재에 우리가 어떤 삶을 살고 싶은지, 어떤 세상에서 살고 싶은지를 결정하는 데 도움이 된다”고 덧붙였다.
미국 극작가 리차드 그린버그(Richard Greenberg)는 1997년, 한 세대가 다음 세대에게 남겨주는 유산 가운데 ‘비밀’이 포함되어 있을 경우, 가족의 비밀이 다음 세대에게 미치는 영향과 진실의 왜곡, 상처를 탐구한 연극 ‘3일간의 비’를 선보였다.
그린버그 특유의 재치와 도시에 살고 있는 엘리트의 함축이 담긴 언어를 바탕으로, 건축과 심리의 연계성이라는 지적인 소재를 다루면서, 1995년과 1960년이라는 두 시대를 넘나드는 작품은 1998년 퓰리처상 희곡 부문 최종 리스트에 노미네이트되었다.
1999년 런던 공연 당시 영국 일간지 ‘텔레그래프’로부터 “최근 몇 년간 발표된 가운데 가장 뛰어난 미국 연극 중 하나”라는 찬사를 받은 ‘3일간의 비’는 1막과 2막이 35년의 시간을 건너뛰며, “세대 간의 미스터리”를 다루는 작품이다.
1막에서 1995년을 배경으로 30대의 인물들을 연기한 배우들은 2막에서 35년 전인 1960년을 배경으로, 1막의 인물들의 부모 세대를 1인 2역으로 연기한다.
30대 초중반으로 설정된 부모 세대의 인물들은 1막에서 제시된 “3일간의 비”라는 말을 둘러싼 진실을 드러내지만, 완벽한 진실이 무엇이었는지는 확실히 알 수 없다.
그린버그의 ‘3일간의 비’에 담겨있는 불확정성과 비밀스러움, 부모 세대와 자식 세대의 연결성과 단절, 과거와 현재, 미래의 연관성은 관객들의 호기심을 자극했고, 1999년 콜린 퍼스를 비롯해 2006년 줄리아 로버츠와 브래들리 쿠퍼, 2009년 제임스 맥어보이 등 스타 배우들의 공연이 이어지도록 만들었다.
최근 2017년 국내에 첫 선을 보인 뒤 6년 만에 재공연된 연극 ‘3일간의 비’의 막이 내렸다.
2017년에 이어 다시 한번 각색과 연출을 맡은 오만석은 프레스콜에서 차별점을 묻는 질문에 무대 위 건물 바깥쪽으로 실제 비가 내리는 장면을 연출한 것과 배우들의 조합에 따라 전혀 다른 매력을 찾을 수 있도록 자율성을 부여한 것을 꼽았다.
또, 초연 당시 관객들이 불친절하다고 느꼈던 부분들을 쉽게 풀어내고자 했고, 인물들의 관계도 “가벼우면서 친밀한 원작의 느낌을 많이 살렸다”고 덧붙였다. 실제로 그린버그의 원작 희곡에 등장하는 인문학적 배경이 있어야만 이해할 수 있는 용어들은 일부 배제되거나 설명을 덧붙여서 완화된 것으로 보인다.
또, 2017년 라이브 피아노 연주가 이루어졌던 부분은 사라졌지만, 피아니스트이자 작곡가인 이루마의 ‘봄비’와 ‘회상’을 메인 테마로 적용해 작품이 지닌 슬픔과 멜랑꼴리, 회한과 미련, 로맨스의 느낌을 담아 여운을 남기는 방식을 택했다.
인물들의 관계에서 앞으로 맞이하게 될 어려움과 장애를 의미함과 동시에 재탄생과 성장, 시간과 감정의 흐름을 상징할 수 있는 ‘비’가 실제로 무대 위에 쏟아지는 마지막 장면 역시 감각적인 미장센을 연출하며, 작품이 지닌 미확정성과 신비감의 느낌을 더했다.
연극 ‘3일간의 비’는 1995년 ‘네드’라고 불리던 건축가 에드먼드 제인웨이의 아들 ‘워커’와 딸 ‘낸’이 1963년 ‘라이프’ 매거진에 실리면서 유명해진 ‘제인웨이 하우스’를 유산으로 물려받기로 한 장면에서 시작한다.
지난 30년간 유명세를 떨친 대부분의 건축물들이 아버지와 아버지의 오랜 친구 ‘테오 웩슬러’의 작품임을 설명하는 워커는 일 년 전 아버지가 갑작스럽게 돌아가셨고, 누나와 자신이 오늘 “반세기 동안 지어진 개인 주택 가운데 가장 유명한” 제인하우스를 상속받을 것임을 강조한다.
그린버그의 원작에서 “유산(legacy)”이라는 단어로 끝을 맺는 워커의 독백은 작품 전체를 지배하는 듯 느껴지는데, 제인웨이 하우스라는 집이 물질적인 상속 이상의 정신적, 심리적 가치와 비밀스러운 개인의 역사와 이야기를 간직하고 있기 때문이다.
1막이 워커와 낸, 그리고 테오 웩슬러의 아들 ‘핍’ 사이에 발생한 제인웨이 하우스 상속 에피소드라면, 2막은 35년 전 워커와 낸의 부모인 네드와 ‘라이나’, 그리고 핍의 아버지인 테오의 이야기가 펼쳐진다.
또한, 1막에서 워커와 낸, 핍이 관객을 향해 자신들의 부모에 대해 소개하면서 객석과 무대의 경계를 무너뜨리고, 연극에서 벗어나 환상이 아닌 현실로 돌아오는 구성을 취한다면, 2막은 리얼리즘적 재현을 고수한다.
1960년 건축가로의 성공을 꿈꾸던 네드와 테오가 함께 자취하던 스튜디오 공간과 건물 밖 제인웨이 스트리트의 무대는 1995년인 1막에서도 동일하게 등장하지만, 오랫동안 비어있던 시간의 빛바램과 허름함을 간직한다.
같은 공간의 다른 느낌, 1인 2역으로 등장하는 배우들이 연기하는 부모 세대와 자식 세대의 연계성, 동일한 사실이 전혀 다른 진실을 갖고 있는 반전과 놀라움은 제대로 설명되지 않는 여러 디테일과 함께 관객이 1막과 2막을 비교하면서, “3일간의 비”라는 문구의 수수께끼를 풀어나가는 재미를 선사한다.
상당히 불안정한 정서를 지닌 듯 보이는 워커는 아버지의 죽음 소식을 접한 뒤 장례식에도 참석하지 않은 채 1년 동안 잠적했다가 갑자기 나타난다.
2살 터울의 누나 낸은 8살의 어린 나이에 어머니가 고층 건물의 로비에서 몸을 던져 온몸이 유리창에 박힌 모습을 본 충격으로 고통을 겪고 있는 워커를 사설탐정까지 고용해 수소문하지만, 찾지 못한 상태에 있다. 시간이 흐르면서 워커가 죽었을지 모른다고 생각하고 일상으로 돌아갔던 낸은 갑작스러운 워커의 출현에 보스턴에서 뉴욕으로 온다.
요양원에서 정신질환 치료를 받고 있는 어머니의 상태가 상당히 호전되었을 때와 유사하다고 비교되는 워커는 35년 전 아버지와 테오 아저씨가 함께 거주했던 스튜디오의 침대 매트리스 밑에서 낡은 노트 한 권을 발견한다.
모든 문장이 일기예보를 적어놓은 듯, 아무 감정도 없이, 짧은 기록으로만 구성된 노트는 “1960년 4월 3일에서 5일, 3일간 비”라는 첫 메모로 시작한다. 어머니가 창문에 몸을 던졌던 1972년 5월 12일의 비극은 “끔찍한 밤”으로, 가장 친한 친구인 테오가 죽어가던 때의 기록은 “테오가 죽어간다, 테오가 죽어간다, 테오가 죽었다”로 마무리되는 아버지의 일기장은 워커의 호기심을 촉발한다.
워커는 누나가 제인웨이 하우스를 자신에게 주기를 바란다. 도시를 좋아하지만, 자신이 속한 곳을 찾을 수 없어 방황하는 워커는 아름다워 보이는 제인하우스를 만들던 사람들은 행복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낸은 평생 자신을 옥죄어 온 불안정한 동생에게서 벗어나 자유로워지고 싶은 마음에 아버지의 일기장을 더 이상 읽지 않는다는 조건으로 제인웨이 하우스를 넘겨주겠다고 말한다.
하지만 남매는 그 집이 테오 아저씨의 아들인 핍에게 상속된 것을 변호사 사무실에서 알게 된다. 핍은 독설을 쏟아내고 나가버린 워커에게 오히려 죄책감을 느끼면서 아무 말도 할 수 없는 자신의 처지에 불만을 토로한다.
10살 때부터 워커의 상태를 살피면서 고통스러워하는 워커에게 상처를 주지 않기 위해 항상 신경 쓰고 노력해야 했던 핍은 더 이상은 참을 수 없다고 말한다. 매우 솔직하고 투명하며 밝은 성격의 핍은 워커에게 말하지 않고 마음속에 담아두었던 진실들을 쏟아낸다.
그는 항상 문제를 일으키며 주변 사람들을 힘들게 만드는 것은 워커 자신이면서, 관심을 독차지하고 모든 상황을 마음대로 하려는 워커가 틀렸다고 지적한다. 하지만 쏟아지는 진실 속에서 낸이 오랫동안 동생에게 감추고 있던 비밀이 드러나고, 워커는 또다시 집 밖으로 뛰쳐나간다.
연극 ‘3일간의 비’의 흥미로운 점은 1막에서 제시되거나 설명되는 많은 부분들이 2막에서 진실이 아닌 것으로 판명되거나, 전혀 다른 사실들을 내포하게 된다는 것이다. 특별한 직업도 없이 도시를 배회하며 걷고, 또 걷는 방랑자의 삶을 사는 워커는 30대의 네드가 꿈꾸던 이상향인 ‘플라뇌르(Flâneur)’라고 할 수 있다.
2막에서 네드는 심하게 말을 더듬는 증상으로 의사소통의 어려움을 겪고 있는데, 관객들은 아버지가 자신을 싫어했기 때문에 말을 하지 않았다는 워커의 추측이 틀렸음을 인지하게 된다.
네드는 비 오는 도시 거리를 배회하며 관찰하는 자유로움과 가벼움을 언급하며, 인생에 패턴이 없기 때문에 희망이 필요하지 않고, 그렇기에 고독하지만 외롭지 않은 존재가 “가장 이상적인 최고의 삶”이라고 말한다.
독일의 철학자이자 평론가인 발터 벤야민에 의해 “무관심하지만 매우 예민한 부르주아 지식인”으로 규정된 플라뇌르는 산책을 통해 도시를 관찰하고 기록하는 라이프 스타일을 추구한다.
19세기에 파리의 ‘문학적 유형’으로 등장한 플라뇌르는 건축학과 연결되면서, “지나가면서 우연히 마주친 건물의 디자인에 의도치 않게 영향을 받는 사람들”을 의미하게 되는데, 실제로 1막에서 워커는 옛 모습을 고스란히 간직한 와인바에서 “놀라운 발견(Epiphany)”을 하게 된다.
아이러니한 점은,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오늘이기에 과거와 미래의 의미가 없고, 인생에 담긴 승리와 비극이 아닌, 스쳐 지나간 낯선 카페와 사람들만이 남겨지는 삶은 가벼울 것이라고 생각했던 네드의 이상향, 즉 ‘워커의 삶’이 전혀 그렇지 않다는 사실이다.
워커는 끝없이 자신이 속할 수 있는 장소를 찾아 헤매고, 잊히기를 원치 않으며, 아버지의 과거를 알고 싶어 하고, 미래를 구축할 수 있는 의미를 발견하고자 무거운 ‘방황’을 지속한다.
그는 ‘고통’ 속에 있고, 마침내 아버지의 진실을 찾았다고 생각한 순간에서야 비로소 그에게 드리워진 방황의 ‘무게’에서 해방되어, 35년 전 아버지가 머물렀던 스튜디오에서 ‘삶’을 향한 길을 모색하기로 결심한다.
우연히 촛불에 비친 조명의 효과를 통해 찾아낸 “테오가 죽었다. 나는 그에게서 모든 것을 빼앗았다”라는 문장은, 워커에 의해, 제인웨이 하우스가 아버지가 디자인한 작품이 아니었으며, 아버지의 침묵이 “지옥에서 사용되는 언어”처럼 많은 것을 말하고 있었음으로 해석된다.
하지만 1막에서 워커가 조합한 진실은 2막에서 사실이 아님이 밝혀진다. 1960년, 워커의 어머니인 라이나는 테오와 연인 관계에 있었으며, 테오와 아버지 네드는 “천재성과 취향”이라는 분리된 역할로, 네드의 부모님이 전 재산을 투자한 집의 설계를 위해 애쓰고 있었다.
테오는 독일의 건축가 미스 반 데어 로에의 모더니즘 아이콘인 ‘판스워스 하우스’를 오마주한 디자인을 보여주는데, 네드는 그것이 명백한 ‘표절’임을 지적하고, 두 사람은 크게 다투게 된다.
잠시 부모님 댁에 머물면서 설계 구상을 하겠다는 테오로 인해 네드는 스튜디오에 홀로 남겨지고, 비가 억수같이 쏟아지던 날, 거리에서 우연히 라이나와 마주치게 된다.
폭우를 피해 스튜디오에 들어와 젖은 옷을 말리던 라이나와 네드는 서로의 공통점을 발견하고 친밀감을 느끼기 시작한다. 두 사람은 오랜 짝사랑의 고백을 홀로 수줍게 하던 네드의 말을 라이나가 엿듣게 되면서, 3일 동안 함께 머물게 된다.
네드가 기록장에 처음으로 써 내려간 “3일간의 비”는 사랑의 성취와 행복, 기쁨을 담고 있지만, 테오를 향한 ‘죄책감’이 시작된 첫날이자, 건축 설계자로서의 재능을 인정하고 발휘하기 시작한 ‘천재성 발견’의 날이기도 하다.
남부 출신의 예민한 정서의 라이나는 서른을 넘긴 나이에 아무것도 이루지 못한 채 테오와의 불안정한 관계 속에서 정체성을 찾기 위해 분투해왔다. 폭우로 인해 네드와 시간을 보내면서 라이나는 끝없이 말을 쏟아내는 자신이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있을 수 있으며, 자신이 네드의 천재성을 이끌어 줄 ‘뮤즈’가 될 수 있음을 인식한다.
‘진짜’라고 느껴지는 무언가를 잡고 싶었던 라이나는 자신의 존재를 진중하게 받아들이지 않는 테오 대신 목표를 부여할 수 있는 네드를 선택한다. 하지만 테오의 건축 설계의 꿈도, 연인도 모두 빼앗았다는 네드의 ‘죄책감’은 평생 두 사람 곁에 머무르기 시작한다.
“원하는 것과 현실적으로 이루게 될 것” 사이를 잇는 것은 ‘죄책감’이라는 네드의 이론은 가질 수 있는 것을 욕심내지 않고 억누르는 네드를 이끄는 뮤즈인 라이나에 의해 상승 비행곡선으로 바뀌지만, 38살의 젊은 나이에 폐암으로 죽음을 맞이한 테오로 인해 하강 곡선을 그리게 된다.
2막은 세 사람의 관계가 처음 어긋나기 시작한 1960년의 사건만을 보여주기 때문에, 이후의 일들에 대해서는 1막에서 워커와 낸, 핍이 쏟아낸 정보들만으로 추측해야 할 필요가 존재한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죄책감이 어떤 식으로든 인물들 사이의 관계에 작용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부모 세대의 진실을 전혀 모르는 상태에서도, 핍과 워커, 낸 사이에는 다른 형태의 죄책감이 작용한다.
또, 네드의 이성적인 차가움과 자기보호본능은 딸인 낸에게, 라이나의 불안정함과 예민함은 아들인 워커에게, 테오의 긍정적이고 행복 추구적인 속성은 핍에게 고스란히 전수된 듯 유전적 상속의 측면이 드러난다.
그린버그는 연극 ‘3일간의 비’를 통해 한 세대가 품은 이야기가 다른 세대에게 미치는 영향, 영원히 알 수 없는 진실의 깊이,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에 작용하는 죄책감과 부채감, 그리고 존재의 의미를 찾고자 애쓰는 도시 현대인의 방황을 탐구한다.
이전 세대에서 다음 세대로 상속되는 유산은 결코 가볍지 않으며, 예상치 못한 많은 유사점을 불러온다. 또, 이전 세대의 고민만큼 다음 세대의 고민도 첨예하며, 각자의 입장과 상황에서 선택은 항상 부수적인 피해와 누군가의 고통, 상처를 동반한다.
유산은 이전 세대의 소유물이라는 물리적인 것에서 출발하지만, 과거 속에 묻혀 있던 것들을 돌아보는 과정에서 삶의 성취와 실패, 기대와 실망, 열망과 상처에 대해 재고하도록 만든다.
보삭은 “어린 나무를 심기에 가장 좋은 곳은 오래된 나무가 있는 곳”이라고 말한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서로를 더 단단하게 접목해 상호 의존적인 기반을 만들 수 있는 곳, 이전 나무가 만든 길을 따라 더 깊숙이 뿌리를 내릴 수 있는 곳, 워커는 아버지의 비밀을 찾는 노력 속에서 스스로 뿌리를 내릴 수 있는 장소를 발견한다.
아버지와 어머니의 사랑이 시작된 곳, 더불어 죄책감과 부채감, 천재성과 성취가 교차하기 시작한 곳, 어쩌면 그곳은 워커와 낸이 부모의 유산을 딛고 보다 자유로운 삶으로 나아가기에 완벽한 출발점인지도 모른다.
무대 위에 쏟아지는 빗줄기가 실패로 좌절하던 테오에게 핍의 어머니 ‘모린’이라는 또 다른 사랑을 찾아준 것처럼, 워커에게도 새로운 ‘삶’과 ‘안정’을 가져다주지 않았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