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하영 365칼럼] 존재의 고독인가, 사랑의 고독인가?...‘에드워드 호퍼: 길 위에서’
[앨리스 박사의 문화로 보는 세상풍경] - 2023년 서울시립미술관 해외소장품 걸작전 - 에드워드 호퍼의 드로잉, 판화, 유화, 수채화 작품 160여 점&산본 호퍼 아카이브 자료 110여 점 전시 - 서울시립미술관과 뉴욕 휘트니미술관 공동 기획
인터뷰365 주하영 칼럼니스트 = ‘고독하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 고독은 외로움과 다르다.
고독의 사전적 정의는 “사회적 관계를 떠나 고립과 은둔을 즐기는 상태, 방해가 없이 생각하고, 시간을 보내는 것의 표현, 사적이고 내밀한 시간을 갈망하는 것”이다.
미국의 심리학 저술가인 하라 에스트로프 마라노는 “외로움이 고립감을 특징으로 하는 부정적인 상태”라면, 고독은 “외롭지 않고 혼자 있는 상태”로서 “고요함을 즐기는 수단”이며, “내면의 풍요로움”을 위해 추구되어야 할 보충의 ‘기회’라고 말한다.
그녀는 “고독은 성찰, 내면의 탐색, 성장”에 사용할 수 있는 시간이기에 깊은 독서 혹은 “자연의 아름다움을 경험”하기 위해서도 필요하다고 피력한다.
“현대인의 고독을 그린 작가”라는 수식어로 가장 유명한 화가가 있다면, 단연코 20세기 초 일상의 소외와 단절에 주목한 미국의 화가 에드워드 호퍼일 것이다.
저널리스트인 애니 프루는 2004년 ‘가디언’에 기고한 글에서, 호퍼의 그림을 설명하는 수식어들을 다음과 같이 정리했다.
“치명적인 침묵, 에로틱한 절망, 지울 수 없는 모호함, 아이러니, 상징적인 해석, 형이상학적 신비로움.”
프루는 대부분의 비평가와 예술 전문가들뿐 아니라 관람자들이 호퍼의 그림에서 “고독, 소외, 외로움, 심리적 긴장”을 느낀다는 점을 지적하면서, 그것은 인간 존재가 품은 “자아의 고독에 내재된 슬픔 혹은 우울”이라고 말했다.
미국의 계관시인 마크 스트랜드는 호퍼의 그림에 대한 에세이집에서 ‘빈 공간’에 주목한다. 그는 호퍼의 빈 공간들이 “짧고 고립된 순간”을 표현하고 있으며, “방금 무슨 일이 있었는지의 분위기를 전달하면서 앞으로 일어날 일을 암시”하는 일종의 ‘실마리’를 제시하는 특징이 있다고 설명한다.
상당히 “연극적”이라고 할 수 있는 호퍼의 그림들은 “삶의 전과 후의 시간을 그린 빈 공간”으로 기능하며, 관람자는 그의 그림을 바라보며 끝없이 궁금해하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이름을 알 수 없는 공연을 보고 있는 관객”처럼 관람자는 그림 속에 숨겨진 비밀스러운 무언가를 파헤치기 시작한다.
스트랜드는 현실이 드러내는 모습 너머에 있는 보이지 않는 것을 상상하도록 만드는 호퍼의 인물들이 “기다림의 공간 속에 홀로 갇힌 존재들”처럼 자리한다는 사실에 주목한다. 마치 “배역을 상실한 등장인물”처럼 특별히 갈 곳도 없이, 미래가 없는 듯 보이는 호퍼의 인물들은 그림 앞에 선 관람자들로 하여금 충분한 ‘숙고’의 시간을 통해 숨겨진 이야기를 추측하도록 만든다.
서울시립미술관 서소문본관에서는 65년에 이르는 호퍼의 전체 화업을 돌아보고, 작가의 삶과 작품의 발전과정을 조망할 수 있도록 기획된 2023년 해외소장품 걸작전 ‘에드워드 호퍼: 길 위에서’가 펼쳐지고 있다. 2019년부터 호퍼의 작품을 가장 많이 확보하고 있는 뉴욕 휘트니미술관과 협의를 시작해 서울시립미술관이 공동으로 기획한 전시이다.
1968년 호퍼의 아내 조세핀으로부터 작품 2,500여 점을 기증받은 휘트니미술관은 2017년 아서 R. 산본 호퍼 컬렉션 트러스트가 보유한 4,000여 점의 아카이브를 이어받아 세계 최대 규모의 호퍼 작품 컬렉션을 보유하게 되었다.
이번 전시에서는 호퍼의 전 생애에 걸친 드로잉, 판화, 유화, 수채화 작품 160여 점과 산본 호퍼 아카이브의 자료 110여 점이 7개의 섹션으로 소개된다.
‘에드워드 호퍼’, ‘파리’, ‘뉴욕’, ‘뉴잉글랜드’, ‘케이프 코드’, ‘조세핀 호퍼’, ‘호퍼의 삶과 업’으로 구분된 섹션들은 호퍼가 선호했던 장소들을 따라 작품의 지평을 넓혀간 화가의 방식을 돌아볼 수 있도록 구성된 특징이 있다.
호퍼가 미술을 공부하던 학생이었을 때부터 삽화가로 생계를 유지하고, 에칭과 수채화 작업을 통해 발전하며, 전업 화가로만 작품에 몰두하고 집중했던 시기들을 전체적으로 돌아볼 수 있는 장점이 있다. 또, 화가의 삶에 초점이 맞춰진 만큼 호퍼의 조력자이자 반려자, 매니저로서 조세핀 니비슨 호퍼의 역할에 대한 조명도 이루어진다.
1882년 뉴욕주 남동부에 위치한 나이액(Nyac)에서 태어난 호퍼는 중산층 가정에서 그림과 문학, 예술을 접하면서 성장했다. 몽테뉴와 플로베르, 위고, 투르게네프와 같은 작가들의 작품을 좋아했던 호퍼의 아버지는 아들에게 문학적 영향력을 발휘했고, 그림 그리는 것을 좋아했던 호퍼는 7살 때 그림용 칠판을 크리스마스 선물로 받으면서 ‘화가’의 꿈을 품기 시작했다.
주요 출판물들의 삽화를 모사하며 그림을 그리던 호퍼의 작품 중 하나가 1889년 주간지 ‘퍽(PUCK)’에 실린 일은 호퍼의 부모님이 그를 실용 미술 위주의 뉴욕 일러스트레이팅 학교에 보내는 계기가 되었다. 호퍼는 이듬해 순수미술을 가르치는 뉴욕예술학교로 편입하게 되는데, 뉴욕예술학교는 이후 세계적인 명성의 미술대학인 파슨스 디자인 스쿨로 발전한다.
호퍼는 20세기 전반 미국 사실주의를 이끈 로버트 헨라이, 초상화와 정물화, 인물화를 주로 그렸던 미국의 인상주의 화가 윌리엄 체이스, 에칭을 많이 제작했던 판화가이자 화가인 케니스 헤이스 밀러의 수업을 통해 성장하기 시작한다.
학교에서 교내 장학금과 상을 받으며 우수한 학생으로서 두각을 드러냈던 호퍼의 화가를 향한 열망은 ‘자화상’과 ‘손을 그린 습작들’을 통해 살펴볼 수 있다. 오디오 도슨트의 설명에 따르면, 호퍼가 품었던 “자신의 예술성에 대한 자신감과 훌륭한 예술가로 성장하고자 한 의지”를 엿볼 수 있다.
‘자화상’은 늘 중절모와 정장 차림으로 단정함을 중요시했던 호퍼의 모습을 담고 있는데, 평생 인터뷰를 꺼렸고, 은둔자로서의 삶을 선호했으며, 조용하고 내성적이지만 언제나 자신만의 길을 가고 싶어 했던 단호함 또한 느껴지는 듯하다.
종교심이 강한 침례교 가정에서 청교도적 보수주의의 영향 아래 성장한 호퍼는 기차로 1시간 정도 거리에 있는 뉴욕예술학교를 통학했다. 기차 창문을 통해 바라보던 풍경들은 이후 그의 작품의 프레임 구성에 영향을 미친 듯하다.
집과 학교만을 오가던 호퍼가 부모의 곁을 떠나 뉴욕에 방을 구하게 된 것은 졸업할 즈음이었고, 1906~1910년 사이에 세 번에 걸친 파리로의 여행은 호퍼의 그림 스타일에 변화를 가져오게 된다. 파리에서도 부모님이 마련해 준 침례교단 건물 위층 숙소에서 머물렀던 호퍼는 유럽의 정서를 품고 있는 파리를 아름답고 우아한 도시로 느낀 반면, 뉴욕은 무질서하고 우울한 곳으로 느꼈다.
파리는 호퍼가 야외 작업을 통해 어두운 색조에서 벗어나 부드러운 빛과 수평구도를 갖추기 시작하도록 만들었는데, 파리의 일상에 대한 관찰을 통해 이루어진 성과들은 1909년의 ‘비스트로 또는 와인 가게’와 1914년 ‘푸른 저녁’으로 구체화된다.
전시 설명에 따르면, 두 작품은 파리가 아닌 뉴욕에서 완성된 특징이 있고, “실제적인 관찰에 기초한 구성에서 출발하지만 기억과 상상력이 더해지면서 완성되는 호퍼의 사실주의적 특성이 본격화되는 초기 사례”로서 의미를 지닌다.
특히 ‘푸른 저녁’은 아르튀르 랭보의 시를 좋아하던 호퍼가 파리에서 느낀 보헤미안적 감성을 드러내며, “여름날 푸른 저녁이면 난 들길을 가리라”라는 시구와 연결시킨 작품이지만, 비평가들에게 혹평을 받았다.
세르지오 로씨에 따르면, 당시 미국 대중에게 파리는 “변태적 산업의 중심지이자 백인 노예의 본거지로 인식”되었기 때문인데, 마음의 상처를 입은 호퍼는 작품을 보이지 않게 치워버렸을 뿐 아니라 이후 파리를 연상케 하는 그림들을 그리지 않게 되었다.
결국 ‘푸른 저녁’은 호퍼 사후에 미술사가인 로이드 구드리치에 의해 발견되었는데, 호퍼의 전기를 쓴 게일 레빈은 호퍼가 그림 속 인물들을 통해 관람자와 심리적 긴장 관계를 조성하는 자신만의 스타일을 보여주기 시작한 것이 ‘푸른 저녁’부터라고 평가한다.
1915년 이후부터 호퍼가 주력한 뉴욕의 풍경과 미국인들의 일상은 ‘있는 그대로의 사실의 재현이 아닌 작가의 내면과 기억을 통해 새롭게 상상력이 더해진 장면’이라고 할 수 있다.
롤프 귄터 레너는 호퍼가 오브제를 회화적으로 변모시킬 때에는 항상 근거를 제시하는 경향이 있음을 지적하는데, 현실에 대한 사실주의적 재현은 사실 “있는 그대로의 현실을 복구해 내려는 허구에 뿌리를 둔 환상”이기 때문이다. 레너는 호퍼의 후기작들은 이처럼 “순수한 현실에 대한 허구성을 꼬집는 반발의 의미를 간과하고서는 제대로 이해할 수 없다”고 피력한다.
실제로 호퍼는 “눈으로 보는 바를 그리는 일은 훌륭한 일”이지만 “기억 속에 간직하고 있는 바를 그리는 것은 훨씬 더 훌륭한 일”이라고 언급한 적이 있는데, 호퍼의 그림이 관람자에게 미스터리와 궁금증을 촉발하는 이유는 그가 ‘기억’과 ‘상상’에 기반해 작품을 완성하기 때문이다.
호퍼는 그림 하나를 완성하는데 몇 주 혹은 몇 달을 소재를 찾거나 아이디어 구상을 하고, 스케치만을 하면서 시간을 보낼 정도로 영감을 얻는데 오랜 시간을 필요로 했다. 하지만 막상 붓을 들면 4주 정도에 완성했다고 한다.
호퍼의 절친한 친구이자 화가, 비평가인 가이 페네 뒤 브와는 호퍼가 자신에게 “하늘의 구름을 그리는 데 몇 년의 시간이 필요했다”고 말한 적이 있음을 언급하기도 했다.
기억 속의 이미지들을 결합하고, 자신의 아내만을 모델로 삼아 스케치한 것들에 상상과 변형을 가하고, “모든 답은 캔버스에 있다”고 말하면서 사실주의가 아님을 강조했던 호퍼가 “내가 가진 유일하고 진정한 힘은 나 자신”이라고 말한 이유는 아마 내면에서 벌어지는 고독한 싸움 탓이었을 것이다.
2022년 다큐멘터리 영화 ‘호퍼: 아메리칸 러브스토리’를 제작한 필 그랍스키 감독은 ‘필름 포커스’와의 인터뷰에서, 호퍼 자신이 “스토리텔링의 대가”라는 점이 관람자들로 하여금 “무슨 일이 발생하고 있는지 추론하도록 만든다”고 설명한다. 그는 언뜻 보면 사실적으로 보이는 호퍼의 그림들이 자세히 들여다보면, 디테일이 생략되었거나, 현실감이 부족한 특징이 있음을 지적한다.
가구의 비율이 맞지 않거나, 옷이 너무 작으며, 문 손잡이가 없고, 표지판이 없는 등 상상할 수 있는 실마리를 남긴 그의 그림들은 일종의 탐정놀이처럼 관람자로 하여금 “추측하고, 근거를 찾도록” 만든다.
이 때문에 항상 캔버스를 바라보는 관람자는 화가를 의식할 수밖에 없고, 화가가 의도한 것이나 인물이 담고 있는 이야기, 혹은 장소가 제공하는 빈 공간의 미스터리를 풀기 위해 ‘몰입’하게 된다. 매우 연극적이고 영화적인 속성을 지닌 호퍼의 그림들은 시선의 프레임이 중요하고, 조명과 햇빛, 그림자에 따라 숨겨진 드라마가 생겨난다.
본 전시에서는 2017년부터 4년에 걸쳐 완성된 그랍스키의 다큐멘터리 영화 또한 상영되는데, 호퍼가 전업 화가로만 생계를 유지할 수 있기 전 20여 년간(1906-1925) 제작한 삽화가로서의 창작물들과 1925년부터 1936년까지 10여 년간 호퍼 부부가 함께 관람한 연극 티켓 모음, 1913년부터 호퍼의 모든 그림에 관한 작품 정보와 판매 내역이 담겨 있는 4권의 장부 역시 살펴볼 수 있다.
그랍스키의 영화는 뉴욕예술학교 1년 후배이기도 한 화가이자 배우 지망생인 조세핀이 40세에 결혼해 자식 없이 평생을 함께 한 ‘남편 호퍼’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하도록 만드는 지점이 있다.
호퍼의 그림이 처음 팔린 것은 1913년의 일이었고, 또 다른 그림을 팔기까지 10년의 시간이 필요했다. 상업 일러스트레이터로서 생계를 유지하던 호퍼는 에칭 작업을 통해 자신의 작품 세계가 구체화되어가는 것을 느끼고 있었다.
1923년 글로스터를 방문한 호퍼는 조세핀을 만나게 되는데, 조세핀은 호퍼를 수채화의 길로 이끌었을 뿐 아니라 브루클린 미술관 전시에 함께 참여할 것을 권유했다. 그로 인해 두 번째 작품이 팔렸고, 수채화 작업들이 좋은 평가를 받으면서, 호퍼는 마침내 전업 화가로서 살아갈 수 있는 기회를 가질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결혼 후 조세핀은 자신의 작업실을 가지지 못한 채 기질적으로 정반대였던 남편을 중심으로 생활하며, “불안과 자기학대 속에 애증이 뒤섞인” 관계를 이어가면서 화가로서의 꿈을 펼칠 수 없었다. 2017년에 공개된 조세핀의 일기는 상당히 폭력적이고 심한 갈등을 겪었던 부부의 일상을 담고 있는데, 1930~50년대 후반까지 미국 가정에서 당대 여성의 역할이 무엇이었는지를 엿볼 수 있다.
많은 비평가들이 현재의 에드워드 호퍼는 아내인 조세핀이 없이는 불가능했다고 말할 정도로 조세핀은 화가로서의 호퍼의 삶을 위해 많은 역할을 했다.
캔버스에 등장하는 모든 여성 인물의 포즈를 취하는 누드모델이었고, 장부에 작품에 대한 모든 정보와 판매 내역, 대여 및 전시 이력을 꼼꼼하게 기록한 매니저였으며, 호퍼가 능숙하지 못한 사교적인 관계들을 관리했다.
1년의 절반을 보내던 매사추세츠 케이프 코드 반도의 스튜디오 겸 집 역시 조세핀이 물려받은 유산을 발판으로 한 것이었고, 그런 환경 덕분에 1930년대 후반부터 호퍼가 작업방식을 바꿔 더 많은 시간을 스튜디오에 머물면서 기억에 남겨진 이미지들을 합성해 작업을 할 수 있었다.
남편의 그림들을 “아이들”이라고 불렀던 조세핀이 “둘 중 한 사람만을 위한 공간이 있어야 한다면, 그건 의심할 바 없이 그를 위한 공간이어야 한다”고 쓴 일기는 모든 삶의 중심이 ‘호퍼’여야 했던 그녀의 슬픔을 짐작하게 한다.
기차와 선박, 창문과 문, 다리와 건물, 극장과 철길, 해안선, 숲과 바다 근처의 집, 호퍼가 다룬 모든 장소들은 실제 장소이면서도 실제가 아니다. 현실에 존재하는 곳을 바탕으로 상상을 더한 것이거나 실제 방문했던 곳의 기억에 의존해 새롭게 생산된 곳들이다.
가만히 서 있거나 앉아서 밖을 응시하고 있는 사람들, 눈에 보이는 것보다 많은 것들이 발생하고 있는 것처럼 느껴지는 “계속되는 상태”의 공간들, 같은 공간에 마주하고 있으면서도 서로 “등을 돌리고 있는 듯” 보이는 소외와 냉담, 권태와 무관심의 정서를 품은 인물들... 호퍼의 팬인 영화감독 빔 벤더스의 말처럼, “카메라가 어디에 있는지 항상 알 수 있는” 그의 그림들은 카메라 앵글을 벗어난 곳에 무엇이 있는지에 대해 관람자가 끊임없이 상상하도록 만든다.
1953년 ‘리얼리티’ 저널에 발표한 성명서에서 호퍼는 “위대한 예술은 예술가 내면의 삶을 외적으로 표현하는 것”이며, 그렇게 표현된 “내면의 삶은 세상을 바라보는 예술가의 개인적인 비전의 결과”라고 말했다.
호퍼의 내면에 자리한 것은 정확히 무엇이었을까? 평화롭고 정지된 것처럼 보이지만 긴장과 투쟁의 요소가 항상 존재하는 그의 그림들이 말하고자 한 것은 본질적인 인간 존재의 고독이었을까? 아니면 파스칼 키냐르의 말처럼, “혼자가 아닌 고독의 형태”라고 할 수 있는 ‘사랑’을 “타자를 고갈시키고 타자에 의해 스스로 고갈되는 것”으로 이해한, 그만의 사유와 인상을 재현하려는 시도였을까? 호퍼가 캔버스에 숨겨 놓은 진실은 도대체 무엇이었을까? 8월 20일까지 서울시립미술관 서소문본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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