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하영 365칼럼] 어린 시절 행복 찾아 떠나는 여행...슬라바 폴루닌의 ‘스노우쇼’

[앨리스 박사의 문화로 보는 세상풍경] - 30년간 전 세계 120개가 넘는 도시를 사로잡은 광대 마임쇼 - 2015년 이후 8년만의 내한

2023-05-31     주하영

인터뷰365 주하영 칼럼니스트 = 유쾌함과 단순함, 호기심과 놀라움, 상상력으로 가득한 어린 시절에는 세상이 아름답게 보인다. 작은 일에도 기쁨이 넘치고, 걱정스러운 일은 금방 잊으며, 흉내를 내거나 놀이를 찾아 즐긴다.

영국 극작가 톰 스토파드는 “어린 시절을 간직하면 결코 나이가 들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는 ‘유토피아의 해변’에서 알렉산드르 게르첸(Alexander Herzen)의 입을 통해 아이의 목적은 어른이 되는 것이 아니라 “아이로 존재하는 것”이라고 피력한다.

게르첸은 매 순간 자신의 모든 것을 쏟아 붓는 자연의 본성을 강조하면서, 짧은 삶이라고 해도 가치가 없다고 말할 수 없으며, 실현되지 않은 미래를 위해 현재를 희생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한다.

인간의 덧없음에 슬퍼하기 보다는 순간의 강렬함을 놓치지 않고 행복의 순간을 포착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는 그는 이렇게 덧붙인다. “우리 자신의 행복도 챙기지 못하면서 뒤에 올 사람들의 행복을 챙기겠다는 생각은 경박함을 넘어선 자만입니다.”

1993년 러시아 모스크바에서 초연된 후 지난 30년간 7,000회 이상 공연되며 전 세계 7백만 명이 넘는 관객들의 마음을 사로잡은 슬라바 폴루닌의 ‘스노우쇼’가 8년 만에 한국을 다시 찾았다.

“러시아 광대의 전설”로 여겨질 뿐 아니라 전통 광대극을 현대 예술의 새로운 장르로 부활시킨 “광대 예술의 대부”로 일컬어지는 폴루닌은 자신의 쇼에 대해 “아이들이 제 공연을 정말 좋아하지만 아이들만을 위한 공연은 아니다”라고 설명한다.

그는 “어른들을 동심으로 돌아가게 만드는 것이 더 중요하다”면서, 아이들은 자연의 본성적인 상태에 가깝기 때문에 행복하고 자유롭지만 “어른들은 그렇게 될 수 있는 방법을 상기시켜줄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그래서일까? 슬라바의 ‘스노우쇼’의 공연장에는 어른 관객과 아이 관객을 구분하는 것이 어렵다. 모두가 함께 객석으로 퍼져나가는 비눗방울을 향해 손을 뻗으며, 머리 위로 드리워지는 거미줄을 열심히 뒤쪽으로 걷어내고, 초대형 풍선 공을 날려보려고 이리 저리 움직인다. 갑자기 내 소지품을 다른 사람에게 가져다주는 광대에게 불쾌함을 느끼지도 않고, 좌석의 팔걸이 위로 발을 딛고 관객들의 머리 너머로 움직이는 광대들에게 오히려 손을 내밀어 떨어지지 않도록 도와준다.

박수 요청에 적극적으로 호응하는 일은 물론 생수병에 구멍을 뚫어 자신에게 물세례를 남발하는 광대들에게 조롱당했다는 불편함도 느끼지 않는다. 어느 순간 모두가 같은 나이에 도달한 듯 하나가 되어버린 객석은 웃음과 미소, 상기된 표정의 얼굴들이 가득하다. 데이비드 브린과의 인터뷰에서 폴루닌이 되묻는다. “과연 우리 중 누가 어린 시절로 돌아가 어린 아이가 되고 싶지 않을까요?”

슬라바의 ‘스노우쇼’는 사실 “러시아 카니발 문화의 부활”을 꿈꾸며 삶을 밝은 색으로 바라보고 일상을 축제로 바꿀 수 있는 광대들을 위해 폴루닌이 세운 ‘바보들의 아카데미(Academy of Fools)’를 위한 작품이었다.

폴루닌은 아카데미를 운영할 기금 마련을 위해 전 세계 관객들을 대상으로 투어 공연을 할 수 있는 쇼를 만들기로 결심하고, 1994년 영국 런던에서 첫 해외 공연을 선보였다. 200명의 관객으로 시작한 해크니 엠파이어 극장에서의 첫 공연은 일주일 만에 50년 동안 사용하지 않았던 3층 객석을 오픈해야 할 정도로 빠르게 입소문을 타기 시작했다.

표를 구하기 힘들어 극장 앞에 대기하는 관객들이 끝도 없이 줄을 설 정도로 인기가 많았던 공연은 1997년 또 다시 올드빅에서 매진 행렬을 기록했고, 1998년 올리비에 상을 비롯해 20개의 국제 어워드 수상을 이어갔다. 2004년 미국 뉴욕 공연을 성공적으로 마친 <스노우쇼>는 “광대 예술의 걸작”이라는 평가를 받았고, 30개국의 투어를 지속해 나갔다.

1950년생인 폴루닌은 모스크바의 남쪽에 위치한 노보실이라는 작은 마을에서 태어났다. 블라디미르 벨로골로브스키와의 인터뷰에 따르면, 어렸을 때부터 ‘놀이’는 그의 삶을 지배하는 요소였고, 다른 사람들을 즐겁게 만드는 일에 열정적이었다고 한다. TV에서 찰리 채플린의 <키드(The Kid)>를 보고 상당히 깊은 인상을 받은 그는 모자를 쓰고 지팡이를 휘두르면서 채플린의 걷는 방식을 따라하곤 했다.

또, 숲과 강 근처에 살았던 그는 자연 속에서 ‘환상’을 창조하는 일에 관심이 많았다. 루이스 캐럴의 소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를 기반으로 한 게임을 만들어 친구들과 함께 했고, 나뭇가지와 나뭇잎으로 4층짜리 오두막을 손수 짓기도 했다. 눈으로 도시를 세우고, 주변 사람들을 위한 축하행사를 기획하기도 했던 그는 공간과 삶을 연결하는 그의 작업들이 ‘랜드 아트(Land Art)’라고 불린다는 것도 나중에 알게 되었다고 한다.

책을 좋아하는 “꽤 똑똑한 아이”였던 그는 공학을 공부하기 위해 상트페테르부르크로 향하지만 마르셀 마르소의 무언극(pantomime)을 보고 마임에 매료되어 광대예술의 길로 선회하게 된다.

“말 한마디도 없이 관객과 깊고 의미 있는 대화를 이어가는” 마르소의 마임에 충격을 받은 그는 전통적인 광대 공연이 아닌 연극적 구성을 갖춘 무언극 형태의 새로운 광대예술을 개척하고픈 열망을 품기 시작했다. 1988년까지 극단 ‘리체데이(Licedei)’를 구성해 성공적으로 여러 공연들을 펼쳐 보인 폴루닌의 레퍼토리 중 광대 아시사이(Asisyai)의 탄생은 ‘슬라바’의 전신이 되었다.

노란색의 헐렁한 점프 수트 차림에 커다란 빨간 신발을 신고 헝클어진 빨간 머리와 빨간 코를 가진 광대 아시사이는 1980-1981 신년 특집 텔레비전 쇼로 방영되며 처음 모습을 드러냈다. 아시사이의 공연은 “레오니드 옌기바로브 광대극의 시적인 슬픔과 마르셀 마르소의 팬터마임이 가진 정제된 철학, 찰리 채플린 영화가 품은 인간애와 희극적 신랄함을 담은 부드럽고 시적인 캐릭터의 탄생”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곧, 폴루닌은 아시사이가 가진 다면적 측면들을 각기 다른 인물로 떼어내어 독립시킬 수 있다는 점을 인식했고, ‘스노우쇼’에 등장하는 여러 광대 인물들로 성장시킬 수 있었다.

두 대의 커다란 전화기 사이를 오가면서 다이얼을 돌리고, 알 수 없는 언어로 로맨틱한 남녀의 대화를 목소리 톤과 행동, 마임과 감정 변화로만 관객에게 전달하는 ‘아시사이’의 서정적이면서도 극적이고, 우울하면서도 희극적인 장면은 현재 ‘스노우쇼’에도 포함되어 있다.

‘스노우쇼’는 보통 사람들과는 다른 방식으로 사물을 바라보는 광대의 무한한 가능성을 실험하고, 마술적이고 즉흥적인 분위기를 구현함으로써 어른이 된 관객들이 저항하지 않고 ‘우스꽝스러움’의 세계에 휘말리도록 오랜 시간 노력해 온 여정의 산물이기도 하다. ‘스노우쇼’가 탄생하기 전까지 20년간 폴루닌이 작업해 온 많은 아이템들이 포함되어 있고, 그가 탐구해 온 여러 주제들 또한 담겨 있기 때문이다.

특히 ‘눈’의 이미지는 어린 시절 실제 자신의 경험에 근거하는데, ‘스노우쇼’ 마지막을 장식하며 1분 이상 엄청난 양의 종이 눈 폭풍이 객석을 향해 불어 닥치는 장면은 태양의 서커스 ‘알레그리아’의 인터미션 직전 장면과 같은 형식이다.

또, 옷걸이에 모자를 씌우고 코트를 걸어 놓은 채 광대의 팔 한 쪽만 코트 소매 안으로 집어넣어 애틋한 사랑 혹은 우정 관계에 있는 두 사람의 슬픈 이별 장면을 구현하는 것 역시 ‘알레그리아’의 장면과 같다. 이는 90년대 들어서면서 폴루닌이 1년 반 가량 태양의 서커스와 함께 작업을 했기 때문인데, 창작 아이디어를 보다 빠르게 실제 공연에 적용시키고 여러 실험을 할 수 있는 작은 규모의 공연을 원했던 그는 태양의 서커스를 떠나기로 결심한다.

2017년 헬렌 뉴젠트와 진행한 인터뷰에 따르면, 폴루닌은 자신을 대체할 연기자를 우연히 뉴욕 택시 안에서 만나게 되는데, 그가 탑승한 택시의 운전사가 예전에 잘 알던 러시아 고전 연기 훈련을 받은 배우였고, 현재까지 그가 태양의 서커스에서 폴루닌의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5미터 이상 눈이 쌓이는 경우가 많은 러시아의 어느 겨울 날, 장을 보러 갔다가 돌아오지 않는 어머니를 하염없이 기다리며 ‘상실’의 두려움을 느꼈던 경험은 폴루닌으로 하여금 ‘눈’과 ‘죽음’을 연결하도록 만든다.

벨로골로브스키는 ‘스노우쇼’라는 공연의 제목은 러시아어로 눈과 젠틀함 혹은 부드러움을 뜻하는 단어의 합성어이고, 영어 단어를 러시아어로 읽게 되면 ‘꿈’을 의미하므로 공연에 사용되는 ‘눈’은 “종종 더럽고 추한 세상을 순식간에 아름다운 곳으로 만드는 변형의 힘”을 상징할 수 있다고 지적한다.

이에 폴루닌은 눈이라는 소재는 셰익스피어의 연극 <리어왕>에서 광대와 리어의 대화 중 폭풍이 몰아치는 장면에서 영감을 얻었다고 밝힌다. 그는 “광대놀음과 비극을 결합하고, 자연의 힘을 무대로 가져올 필요”는 미친 리어가 폭풍이 몰아치는 황야를 배회하며 맞서는 데서 촉발되었고, 바람의 역동적인 힘을 무대로 가져오기 위해 ‘항공기 엔진’이 필요하다는 생각에 이르게 되었다고 설명한다.

눈을 뜰 수 없는 강렬한 빛과 고개를 들 수 없는 거센 바람, 앞을 막는 종이 눈 폭풍에도 무대를 바라보려 애쓰는 ‘관객들’과 커다란 흰색 천을 휘날리며 항공기 엔진의 동력 앞에서 버티는 ‘광대’의 모습은 하나로 합쳐져 완벽한 ‘피날레’를 완성한다.

관객들의 모습은 광대의 모습과 함께 엄청난 삶의 바람과 세상의 폭풍에 저항하려는 분투와 안간힘, 그 자체를 상징하게 된다. 바람과 눈, 기쁨과 슬픔, 만남과 헤어짐, 수줍음과 호기심, 과도한 열정과 침묵, 장난스러움과 짓궂음, 외로움과 귀찮음 등의 관계성은 ‘스노우쇼’의 플롯을 구성한다.

신비로움과 우울, 꿈의 환상적인 분위기와 현실 속 일상의 해프닝들은 이유를 명확히 알 수 없는 광대들의 엉뚱한 행동과 바보스러운 면모, 당혹스럽고 우스꽝스러운 상황들로 웃음을 낳는다.

기차 경적 소리가 들리는 동화 속 같은 공연장 안은 관객들이 입장하는 계단과 객석 사이 곳곳에 뿌려진 종이 눈으로 가득하다. 또, 반젤리스의 1973년 음악 ‘바닷가의 작은 소녀’ 선율에 담긴 서정성이 관객들의 마음에 ‘향수’를 불러온다.

막이 오르면, 긴 줄을 끌면서 등장한 슬퍼 보이는 얼굴의 노란 옷의 광대가 한숨을 길게 내쉬며 매듭을 만들어 줄을 목에 감는다. 삶을 끝내기라도 하려는 듯 고독해 보이는 노란 옷의 광대는 끝도 없이 긴 줄을 하염없이 잡아당기다 다른 쪽 끝에 자신과 똑같은 모습으로 서 있는 초록색 외투의 광대와 마주하게 된다.

서로에게 놀란 두 광대는 어느 새 목에 감았던 줄을 풀어놓고 다른 존재의 뒤를 탐색하며 우울에서 벗어난다. 호기심과 우연의 마주침, 노란 옷과 빨간 신발의 광대와 챙이 옆으로 긴 헤진 모자를 쓴 초록 외투의 광대들은 관객들을 알 수 없는 세상으로 인도하기 시작한다.

‘스노우쇼’는 플롯을 설명하기 어려운 여정과 명확히 알 수 없는 상황들이 침묵의 무언극으로 구현되는 공연이다. 과장된 행동과 마임으로 상황을 전달하고, 제스처로 관객의 참여를 유도하며, 대중문화로 익숙하게 알려진 음악들을 배경으로 어디서 본 듯한 장면을 재현하는 무대는 상상력을 이용해 이야기를 구성하기보다는 순간의 장면이 선물하는 분위기와 감정에 젖어들 것을 요구한다.

또, 예측하지 못한 놀라운 아이디어들이 관객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기는데, 객석을 모두 뒤덮는 거미줄의 아이디어와 스펙터클을 만들어내는 종이 눈 폭풍, 초대형 풍선을 향해 손을 뻗으며 즐기는 공놀이 커튼콜 등은 잊을 수 없는 하나의 ‘기억’을 형성한다.

광대는 안정에서 벗어나고자 끊임없이 무언가를 흔드는 “혼돈의 왕”이라는 폴루닌의 말처럼, 비누 거품 방울로 채워진 무대에서 아코디언 반주에 맞춰 노래를 부르던 광대들은 다음 순간 침대를 끌고 나와 빗자루를 꽂고 커튼을 드리운 보트를 타고 항해한다.

상어 지느러미를 등에 달고 스케이트보드를 타고 엎어진 채로 움직이며 영화 ‘조스’의 한 장면을 패러디하는 웃음 가득한 장면은 곧바로 두려움을 불러오는 커다란 소리에 방해를 받는다. 유니콘처럼 보이는 달빛 요정이 은빛 가루를 뿌리며 그네를 타기도 하고, 괴이한 날개를 등에 단 채 등불을 손에 든 섬뜩한 유령들이 얼어붙은 눈길을 걷는다.

또, 화살을 여러 개 맞은 노란 옷의 광대가 좀 더 멋있는 죽음을 맞이하고자 요란하게 비틀거리며 객석을 활보하는가 하면, 객석으로 내려온 초록 외투의 광대들은 관객들의 신발이나 양말과 같은 물건들을 가져가고 물을 뿌리거나 종이 눈을 퍼부으며 난장판을 만든다.

폴루닌은 “나는 시각적인 사람이며, 플롯은 부차적인 것이고, 근본적으로 감정을 추구한다”라고 설명한다. 그는 중요한 것은 결과가 아니라 과정이며, 분위기가 과정이라면, 결과는 플롯이라고 덧붙인다.

‘스노우쇼’의 목표는 “규칙을 깨는 사람들”인 광대들을 통해 관객들이 모두 “행복”에 도달하도록 만드는 것이다. 행복은 결과에 있지 않고 바로 지금, 이 순간에 벌어지고 있는 일, 그 자체에 대한 감정과 어딘가에 도달하기 위해 열심히 앞으로 나아가는 과정에 있다고 주장하는 폴루닌은 “삶이 끓어오를 때”, 모든 것이 움직이고 “즐거운 혼돈 속에 있을 때에만” 아이처럼 웃을 수 있고, 행복을 느낄 수 있다고 말한다.

그의 쇼는 슬픔에 빠진 누군가와 인생의 어두운 면 또한 놓치지 않고 담아낸다. 사소한 일로 친구와 싸우고 홀로 비스듬히 기운 의자에 앉아 술을 마시거나 커다란 여행 가방을 들고 눈 쌓인 대지에 홀로 발을 딛는 광대는 인간의 감정이 주변의 세상에 영향을 받는다는 것과 우리에게 서로가 좀 더 필요하다는 사실을 일깨운다.

차갑고 냉담하기는 해도 모든 것을 덮는 눈의 속성이 ‘치유’를 의미하는 것과 같이 쌓이는 눈은 상처도, 아픔도, 기억도, 모두 자신 안에 품는다. 조용히 쌓이는 눈은 세상을 포근하게 어루만지며 전체를 하얗게 물들인다. 마치 그 어떤 것도 신경 쓰지 않는다는 듯, 그 어떤 비밀도 숨겨줄 수 있다는 듯, 눈은 그 하얀 손을 내밀어 모든 흔적을 살포시 덮고 다른 세상을 창조한다.

동력에 휘몰아치는 눈은 폭풍이 되어 앞을 막고 많은 것을 잃게 하겠지만, 폭풍이 지나가고 난 뒤 남겨진 저항의 승리자들에게는 쌓여 있는 눈을 굴려 공을 만들고 새로운 집을 지을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다. 폴루닌은 말한다.

“나의 가장 큰 꿈은 쇼가 매번 깊은 슬픔에 빠진 누군가를 치유하는 것입니다. 만약 이 쇼가 인간에게 그런 영향을 미칠 수만 있다면, 그것이 제게는 모든 것이 될 것입니다.”

슬픔에 빠진 누군가를 일으켜 세울 수 있는 ‘눈’의 힘을 보여주는 공연, 광대의 환상과 행복 속으로 들어가 다시 어린아이가 될 수 있도록 만들어주는 쇼, 그런 행운을 거부할 사람이 있을까? 슬라바의 ‘스노우쇼’가 오랫동안 사랑받은 이유는 바로 그 때문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