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365] 시각장애인 판사 김동현, "인생 바닥의 순간, '가능성'에서 희망을 찾았다"
['희망전도사' 김동현 판사 겸 작가를 만나다] - 에세이집 '뭐든 해 봐요'를 펴내..."최선의 현실을 선택할 수 있는 용기" - 카이스트 졸업 후 연세대 로스쿨 재학 중 의료사고로 실명 - 한 달간 매일 어머니와 함께 했던 3천 배...나의 곁을 지켜 준 가족들 - 성적 우등생으로 로스쿨 졸업 후 국내 2호 시각장애인 법관 활약 - "담당 의사에 대한 원망? 용서했죠"
인터뷰365 김리선 기자 = "어쩔 수 없는 일과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구분하고 할 수 있는 일을 해나가는 것이 중요하다. 내 상황을 냉정하게 들여다보고 나한테는 최선인 현실을 선택하는 것도 용기였다"('뭐든 해 봐요' 40p.)
에세이집 '뭐든 해 봐요'를 펴낸 김동현 작가는 시각장애인 법관이다. 로스쿨 재학 중 의료사고로 실명했지만, 포기하지 않고 도전해 현재 법관으로 재직 중이다. 앞서 지난해 예능프로그램 '유 퀴즈 온 더 블록'에 출연, 긍정적 메시지를 전파하며 큰 감동을 선사하기도 했다.
그는 '유퀴즈' 출연 후 '아침 마당', '세바시', 라디오프로그램 등에도 출연하며 희망 전도사로도 활동 중이다. 그러나 출연 소식을 지인들에게 잘 얘기하지 않는다고 했다. 알려지면 "'스샷'(화면 캡처)이 찍혀서 놀림감이 된다"고 웃었다.
그를 16일 서울 강동구에 있는 북카페도서관 다독다독에서 진행된 북토크에서 만났다. 김 작가(그는 북토크 자리에선 판사가 아닌, 작가로 불리길 원했다)는 유쾌했고, 답변엔 재치가 넘쳤다. 솔직한 그의 대답에 종종 독자들 사이에선 웃음이 터져나왔다.
"계절이 바뀔 때 우울감을 느낀다"고 밝힌 한 독자는 그에게 우울감의 극복 방법을 묻기도 했다. 김 작가는 "우울감 극복을 위해 몸을 혹사시킨다. 운동을 해서 땀을 빼고 나면 많이 극복 된다"는 조언을 건넸다.
북토크는 2022년 문학나눔 도서보급사업의 일환으로 첫 도서를 발간한 작가를 응원하고 도서에 대한 홍보를 지원하는 '나의 첫 책 프로젝트'의 하나로 마련됐다.
그의 얼굴은 시종일관 미소를 머금고 있었다. '뭐든 해 봐요'란 책 제목처럼 그의 한마디 한마디엔 긍정적인 삶의 태도를 엿볼 수 있었다. 김 작가는 "활발한 성격은 아니지만, 긍정적인 성격은 맞는 것 같다"고 했다. 인터뷰365는 북토크 이후 김 작가와의 인터뷰를 별도로 진행했다. 다음은 인터뷰와 북토크에서의 질의응답을 함께 담았다.
- 책을 쓰게 된 계기가 있나요?
"제 얘기가 누군가에게는 힘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으로 썼어요. 이런 상황에서라도 현실을 잘 받아들이고, 할 수 있는 것을 하나씩 해나가다 보면 뭔가 좋은 일이 생기지 않을까 싶어요. 독자분들이 제 책을 읽고 인생이 약간이라도 바뀌다면, 굉장히 기쁠 것 같아요."
- 책 출간 후 주변 반응은 어땠나요.
"술술 읽혀서 한 번에 다 읽었다는 분도 있고요. 가장 기억에 남는 분은 제 마라톤 연습 장소까지 일부러 찾아오셔서 편지를 담은 USB를 주시고 책에 사인을 받아가셨어요. 기분이 좋았어요. 이래서 책을 쓰나 싶었죠. 주변에서 제일 평이 안 좋은 쪽은...가족들? 하하. 재미없는 걸 누가 읽느냐면서요. 가족들은 다 아는 내용이니까요."
말은 그렇게 했지만, 가족에 대한 마음은 애틋하다. 그는 책에 이렇게 적었다. "우리는 모두 누군가의 도움을 받아야 하고 그 보살핌으로 살아간다. 내가 힘들고 어려운 시간을 헤쳐 나올 수 있었던 것은 언제나 나의 곁을 지켜 준 가족들 덕분이다. 이제 내가 지킬 차례다. 이런 이야기를 하면 동생이 또 일침을 가할 것이다. 지난번 집에 갔을 때 소파에서 뒹굴고 있던 나에게 커피를 갖다주면서 한마디 던졌다. "방송 나가서 혼자 잘살 수 있다고 하더니 다 해줘야 되고 손 너무 많이 간다!"
- 첫 책인데, 에세이를 쓰면서 힘든 부분이 있었나요?
"제가 사고 이후 10년여가 지났는데, 에세이를 쓰면서 그동안에 있었던 일들을 쭉 돌아보게 되는 계기가 됐어요. 시간이 지나면 점점 기억이 흐려지는데, 책을 쓰면서 정리를 하고 가는 느낌이어서 좋았습니다. 당연히 힘든 기억도 많이 떠올랐는데, 제가 힘들 때 도와주셨던 고마운 분들도 생각나고요. 이 책을 쓰면서 제가 더 많이 단단해지는 계기가 된 것 같아요. 9개월간 퇴근 시간과 주말을 이용해 틈틈이 쓰면서 완성했어요."
변호사를 꿈꾸던 로스쿨 학창 시절, 시력을 잃었다
김 작가는 공학도 출신이다. 그는 "제 MBTI는 많은 분이 오해하시는데 일단 I(내향)로, INTP다"며 "INTP 사람은 아인슈타인이 대표적이다. 공대에 가야 볼 수 있는 스타일"이라고 웃는다.
과학고와 카이스트를 졸업한 그는 IT 전문 변호사를 꿈꾸며 연세대 로스쿨에 진학했다. 2학년이 되던 해인 2012년 5월, 간단한 시술을 받던 도중 절망적인 인생의 위기가 찾아왔다. 의료사고로 시신경이 손상되면서 하루아침에 갑작스럽게 시력을 잃었다.
도저히 받아들이기 힘든 상황에서 낙담한 그를 일으켜 세운 것은 어머니였다. 충격과 좌절감에 식음을 전폐하고 영양제도 거부하며 희망 없는 삶을 살던 시기, 그는 비몽사몽 중에 누군가와 대화하는 어머니의 목소리를 듣는다. "빨리 회복해서 공부할 생각은 안 하고, 뭐 잘했다고 저러고 누워서 밥도 안 먹고 영양제도 안 맞겠단다." 어머니의 한탄은 그에겐 현실적인 조언과 다름없었다. 그제서야 그는 밥을 먹기 시작했다.
- 당시 병원에서 어머니의 말투는 어땠나요.
"한이 맺힌 말투였어요. 아들이 이렇게 된 상황에서 완전히 꺾인 것 같이 보이니까요. 굉장히 한스러우셨겠죠. 제겐 굉장히 도움이 됐어요. 집이 부산이어서 치료를 하려면 서울에 머물러야 했기에 방을 하나 얻어 어머니와 함께 살았어요. 하루 일정은 어머니와 아침에 산책한 후 병원을 다녀온 후엔 오후에 얘기를 나누고, 라디오를 들었어요. 계속 제 뒷바라지를 하셨죠."
- 절을 찾아 한 달간 매일 3천 배를 시작하게 된 것도 어머니의 권유에서였다고요.
"3천 배를 저만 한 게 아니라 어머니도 함께했어요. 연세도 있고 무릎도 안 좋으셔서 절을 줄이긴 하셨지만, 옆에서 늘 함께 절을 하셨어요. 제가 쓴 책을 보고 어머니가 "나도 함께 절을 했는데, 하지 않은 것처럼 썼더라"며 서운해하시더라고요. 하하."
- 지금도 3천 배를 하라면 할 수 있을 것 같나요?
"아니요. 지금은 못 할 것 같아요. 엄두가 안 나요. 그 상황이었으니까 했던 거지요. 어머니나 스님들이 제게 힘을 주셔서 가능했던 일이에요. 지금 생각해보면 제정신으로는 할 수 없는 일이었어요. 어떻게 했나 싶어요."
'가능성'을 '현실화' 한 힘, "조금의 가능성이라도 보이면 희망이 된다"
김 작가는 자퇴 대신 복학을 택했다. 가능성이 있는 최선의 선택을 했고, 희망이 보였다. 성적 우등생으로 로스쿨을 졸업한 그는 서울고등법원 재판연구원, 서울시 장애인인권센터 변호사를 거쳐 2020년 신임법관으로 임용됐다. 현재 수원지방법원 판사로 재직 중이다. 국내 2호 시각장애인 법관이기도 하다.
- 실명이란 큰 시련을 겪고도 이를 극복할 수 있었던 원동력은 무엇일까요?
"전 그때가 바닥이라고 생각했어요. 현재 상황에서 더 나빠질 게 없다는 생각이었어요. 그 바닥에서 제가 나올 방법은 방향을 설정하고 전진하는 것밖엔 없었던 거죠. 그 상황에서 계속 남아있기는 싫었어요. 이게 가장 큰 원동력이 아니었나 싶어요. 그리고 저한테는 희망이 있었어요. 로스쿨을 다닐 때였으니, 2년만 더 하면 변호사가 될 수 있다는 현실적인 부분이었던 거죠. 학교에 빨리 복학해야 그동안의 공부를 안 잊어버리고, 함께 공부했던 친구들과도 같이 공부할 수 있다는 현실적인 것들이 저를 빨리 바닥에서 끌어올려 줬죠."
- 사람들에겐 좌절의 시기가 있을 테지만, 좌절을 딛고 희망을 품는 건 어려운 것 같아요. 사람들이 좌절감을 느끼는 이유가 뭘까요.
"원하는 것을 얻지 못했을 때, 그러니까 그 원하는 것을 얻을 가능성이 없어졌다고 생각할 때가 아닐까요. 조금이라도 가능성이 보이면 희망인 거죠. 공대 출신에서 보면 (가능성을)확률적으로 생각합니다. 원하는 게 있다면, 그것을 얻을 확률은 얼마나 될까를 고민하죠."
- 그럼 의료사고를 겪은 후 좌절을 극복할 가능성을 얼마나 본 거죠?
"저는 높게 봤어요. 제가 없는 길이 가는 게 아니니까요. 새 길을 개척해야 한다면 가능성을 낮게 됐을 텐데, 법조계에는 이미 판사나 변호사로 활동하시는 시각장애인 분들이 있으니까요. 방법이 없다고 생각 안 했어요. 제 능력과 노력의 문제인 거지, 한번 시도는 해봐야 하지 않겠어요?"
그는 책에 자신이 겪었던 일련의 상황들을 담담하게 적어 내려간다. 그는 당시를 회상하며 "살다 보면 누구나 사고를 당할 수 있다. 하필 그 대상이 나였을 뿐, 화를 난들 상황을 부정한들 아무 소용이 없다"고 썼다.
- 당시 담당 의사에 대한 원망은 없나요.
"사고 후 아무것도 안 한 건 아니에요. 피해보상을 받기 위해 소송을 진행하긴 했지만, 상대방에 대한 원망은 아니었어요. 처음에는 물론 화가 나죠. 그런데 그 사람한테 화를 낸다고 해서 제 시력이 돌아오는 게 아니잖아요. 현실적인 상황은 제가 피해보상을 받고 앞으로의 삶을 계획해야 하는 거였죠. 원망하고 거기에 매몰되어서 제가 원래 해야 할 일을 못 하는 것보다는 그것을 털어버리고 가야 했죠. 그리고 그 사건 이후에 그 의사가 피해에 대한 회복이나 재활에 충분한 지원을 했고 나름의 노력을 많이 했기에, 저도 용서를 할 수 있었어요. 아마 그가 본인이 책임이 없다는 식으로 나왔으면 저도 그렇게 하지 못했겠죠."
- 책에 "남보다 잘하는 것이 아닌 전보다 더 잘하는 것이 발전이다"고도 썼지요. 어떤 의미인가요?
"우리는 뭔가를 하게 되면 다른 사람과 자꾸 비교하고 줄을 세우게 되잖아요. 경쟁이라는 게 사실은 자기 발전에 도움이 되는 때도 있지만, 자신을 갉아 먹는 경우도 있거든요. 제가 초중고까지 공부하면서 누구한테 뒤처진다는 느낌이 없었는데, 과학고에 진학하고선 저보다 잘하는 학생들이 나오니까 점점 벽에 부딪혔어요. 카이스트에 가서도 굉장히 힘들었죠. 그런데 그런 경쟁이 중요한 게 아니라, 제가 전보다 더 나은 사람이 되는 게 중요한 거잖아요. 판단은 남과의 비교가 아니라, 스스로가 알 수 있다고 생각해요."
실명 후 선택한 판사의 길...6700페이지에 이르는 사건도
김 작가는 평소 지하철을 애용한다. 출근 때엔 혼자 지하철을 타고 다닌다. 서울에서는 장애인을 위한 복지콜이나, 바우처 택시를 이용하기도 한다고 했다.
- 일과는 어떻게 보내나요?
"일상은 출근해서 일하고 퇴근하는 단조로운 생활입니다. 사건의 기록을 읽고 판결문을 쓰는 게 배석판사의 주 업무입니다. 읽고 있는 기록의 내용이 계속 바뀌기 때문에 재미있기도 하죠. 일주일에 두 번 PT도 받습니다."
- 판사를 하게 된 계기가 있다면요.
"사실 실명이 되면서 판사를 하게 된 거죠. 원래는 판사를 할 생각이 없었어요. 처음 로스쿨에는 과학기술정책에 관심이 있어서 진학한 거였어요. 로스쿨을 다니다 보니 IT분야 변호사에 관심을 가졌는데, 실명 후엔 현실적으로 하기가 어렵게 됐어요. 어떻게 해야 하나, 고민 했죠. 당시 시각장애에도 판사 활동을 하시던 최영 판사님의 모습을 보며 처음으로 판사에 대해 생각을 하게 된 거죠."
- 업무는 어떤가요?
"기록 파악을 위해 그는 텍스트를 기계음으로 읽어주는 음성 엔진을 활용해요. 억양이나 감정이 전혀 표현되지 않는 텍스트 자체를 듣다 보니 사실에 더 집중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죠. 최근에 굉장히 머리 아픈 사건이 있었어요. 기록만 6700페이지에 이르는 관리비 사건이었죠. 상가관리단에 10년 치 관리비 계산이 잘못됐다며 법원에 관리비청구를 한 사안인데, 양 측 주장이 워낙 팽팽하게 대립했어요. 제가 계산 해서 정답을 드려야 하잖아요. 기록이 많기도 하고 어려워서 판결문 쓸 시간이 부족하더라고요. 한 달을 연기한 끝에 지난달에 판결을 선고할 수 있었죠. 또 모녀 사이 간 소송도 있었는데, 4번의 조정에도 합의가 안 돼서 결국 선고했던 건도 있어요. 가족 간 분쟁이 생기면 오히려 더 해결하기 힘든 경우가 있어요. 안타깝죠."
- 6700페이지요? 이 정도 기록이 흔한가요?
"흔하지는 않아요. 다른 판사분은 1만 페이지가 넘는 사건을 다루기도 하시더라고요."
- 결정을 해야 하는 업무에 대한 스트레스는 없나요.
"연구원 때는 보고서를 쓰지만 판결이 나가는게 아니니까 부담이 없었고, 변호사로 활동할 때는 의뢰인을 위한 주장을 하면 됐는데, 판사가 되니까 판단에 대한 스트레스가 있더라고요. 해결 방법은 없어요. 다만, 편견을 가지지 않고 제가 주어진 능력 안에서 최선을 다해 판단하는거죠."
- 직장 밖에서 직업이나 사회적 위치를 의식하기도 하나요.
"전혀 없지는 않아요. 술을 먹고 사회적 물의를 일으키면 안 되니 신경을 쓰죠. 하하. 다니면서 판사라고 얘기하지 않아요. 법원에서만 판사인 거죠. 운동할 때는 동현 씨, 이곳에서는 작가로 이렇게 불리는 게 좋습니다."
"내년 '쇼다운' 국가대표가 목표"
김 작가의 취미는 마라톤과 시각장애인 스포츠인 쇼다운이다. 지금도 매주 토요일마다 남산을 찾아 마라톤 달리기 연습을 한다. 쇼다운은 소리가 나는 공의 위치를 파악해 배트로 쳐서 테이블 반대편에 있는 상대편 골 포켓에 공을 넣는 경기다. 그는 쇼다운 국가대표로 세계선수권대회에도 출전한 실력자이기도 하다. 지난 5월 개최된 국가대표 선발전에서 훈련 부족으로 탈락의 쓴맛을 봤다는 그는 "이번에 다시 국가대표가 되기 위해 열심히 연습할 예정"이라고 각오를 다진다.
- 평소 운동을 즐기시나봐요.
"사실 운동을 잘 못 해요. 어릴 때 피구를 하면 깍두기였고, 달리기를 하면 제 뒤에 뛰어오는 사람도 없으니 선생님이 그냥 들어오라고 그랬거든요. 하하. 이젠 장족의 발전을 거듭해서 마라톤을 하게 된 거죠. 쇼다운은 운동 능력도 필요한데 집중력도 필요해서, 운동보다는 놀이라고 생각하고 즐겁게 했어요."
- 마라톤을 좋아하게 된 계기가 있나요.
"일단 마라톤을 시작한 후 건강이 가장 좋아졌어요. 또 시각장애인은 동반 주자가 있어야 마라톤을 할 수 있는데, 누군가와 함께 같은 길을 뛴다는 게 좋아요. 그리고 다 뛰고 났을 때의 그 성취감이 있죠."
장애인을 향한 시선, '배려'보다 '고려'를 해주길
- 장애인에 대한 차별이나 편견을 느낀 적이 있다면요.
"불편함을 많이 느끼고 있어요. 예를 들면 식당에서는 키오스크로 주문을 많이 하는데, 혼자 가면 주문할 수가 없어요. 집에서는 혼자서 다 할 수 있도록 세팅이 되어 있는데, 본가에 가면 (터치를 통한) 월패드(지능형 홈네트워크)로 되어 있어서 불을 켜거나 문을 열어주는 일은 할 수가 없어요. 저로서는 굉장히 아쉬운 부분이고, 빨리 개선되었으면 하지만 쉽지는 않지요.
장애인이 편하게 살 수 있는 사회는 우리 모두가 더 편하게 살 수 있는 사회라는 걸 말씀드리고 싶어요. 장애인을 위해 특별히 무엇을 해달라는 게 아니에요. 가령, 엘리베이터가 생기면 휠체어를 탄 장애인만 이용하는 게 아니거든요. 짐이 많거나 유모차를 끈다거나, 다리가 불편하신 어르신들도 다 이용할 수 있으니까요. 장애인을 '배려' 한다기 보다는 '고려'를 해주셨으면 좋겠어요."
- 사법 시스템 접근과 관련해 장애인으로서 어떻게 느끼나요.
"여러 문제가 있죠. 우선 물리적 장벽의 경우가 있긴 하지만, 이는 시설을 바꾸면 됩니다. 예전보다 많이 개선됐어요. 그러나 정보 접근은 힘든 부분이 있죠. 예를 들어 시각장애인 입장에서 전자 소송의 경우는 사이트가 굉장히 불편하게 되어 있고, 종이로 된 기록은 읽을 수가 없어요. 정보 접근에 있어서 장벽인 거죠. 이를 완화할 수 있는 장벽이 없지는 않지만, 충분히 제공되고 있다고 보긴 어려워요. 법원에서도 장애인 사법 지원 가이드를 통해 지원 하는데, 아직 장벽이 낮다고 보긴 어려워요. 그래도 저는 긍정적으로 봐요. 계속 개선되고 있거든요. 법원에서도 노력하고 있고, 사회적 관심도 좀 늘어났어요."
- 한국 사회에서 장애 친화적인 부분이 부족하다고 느낀 적이 있나요? 혹시 사례가 있다면요.
"쉽게 말씀드리자면, 제가 보고 싶은 드라마가 생겼어요. 그런데 시각장애인이 보려면 화면 해설이 지원되어야 합니다. 화면의 장면을 설명 해주거든요. 화면 해설이 없으면 못 보는 거죠. 이는 영화관에서도 마찬가지예요. 화면 해설을 해주는 영화는 주로 평일 낮 시간대에 상영해서, 저로서는 그 시간대에 볼 수가 없어요.
예전에 장애인법연구회 변호사 두 분과 미국 영화관을 찾은 적이 있어요. 시각장애인 입장에서 체험하러 간 거죠. 이곳에선 우선 영화표를 예약할 때부터 장애인 편의 표시가 제공됩니다. 청각장애인을 위해 대화를 자막으로 지원하는 경우는 CC(Closed Caption)표시가, 시각장애인을 위해 화면 해설을 음성으로 제공하는 경우는 AD(Audio Description)로 표시되죠. 영화 예약을 하고 영화관에 가면 관련 장비를 줍니다. 가령 시각장애인에겐 목에 착용할 수 있는 휴대용 단말기를 주는데, 헤드셋을 쓰면 음성을 들을 수 있어요. 한국에서는 현재 시청각 장애인들이 영화관을 상대로 소송을 하고 있는데, 지금 대법원에 가 있습니다."
- 직접 소송 참여도 하는 건가요?
"그렇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전 판사이기 전에 장애인 당사자이기 때문에, 그 사안의 결과에 따라 제 삶에도 굉장히 영향을 많이 받을 수 있겠죠. 그래서 관심이 클 수밖에 없고요."
- 앞으로 글을 쓸 계획이 있나요?
"사실 제가 책을 쓴다면 무협 소설을 쓰지 않을까 했어요. 주변 분들도 그만 읽고 좀 써라, 이제 창작할 때도 되지 않았나 하더라고요. 하하. 그건 못 쓸 것 같고요. 제가 만약 쓴다면 에세이겠죠. 글 쓰는 게 힘들어요. 일하면서 쓰는 게 쉽지 않더라고요. 다음 작품 언제 나오냐고 누가 물어보면 10년 기다리라고 하거든요. 그전에는 나오지 않을까 생각은 합니다."
- 지금 도전해보고 싶은 게 있나요?
"현재로서는 특별히 하고 싶은 건 없어요. 뭔가 재미있다고 생각되는 일이면 또 도전하겠지만요. 그러기 위해선 더 다양한 기회를 가져봐야 하지 않을까 싶어요. 뭔가 해봐야 재미가 있는지도 알 수 있으니까요. 아마 또 생기지 않을까요."
- 가장 행복할 때는 언제인가요?
"여자친구와 있을 때요. 함께 시간을 보내면서 얘기하면 즐거워요."
- 인생의 가치관을 말씀해 주신다면?
"거창한 건 없어요. 다만 행복하게 살면 좋겠어요. 다른 사람들도 같이 행복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