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두호의 별들의 고향] 배우 양조위, 그리고 이란영화 '바람의 향기'가 안긴 깊은 감동

- 부산국제영화제 개막식이 남긴 두 가지 여운

2022-10-11     김두호 칼럼니스트
제27회

인터뷰365 김두호 칼럼니스트(/부산)= 지난 5일 부산 영화의전당 야외무대에서 개막된 제27회 부산국제영화제 개막식에 참석하고 일주일이 지났지만 그날 개막식 무대에 등장한 홍콩배우 양조위(梁朝偉 량차오웨이)의 얼굴 가득 피어오른 따뜻하고 은은한 미소와 개막작인 이란영화 ‘바람의 향기’가 안겨준 깊은 감동의 여운이 지워지지 않고 있다. 

양조위는 출연영화 ‘화양연화’ ‘비정성시’ ‘씨클로’ ‘색,계’ 등이 칸과 베네치아영화제에서 남우주연상 또는 최고상인 황금사자상을 받는 등 홍콩영화의 대표적인 명배우로 1997년부터 부산영화제를 네 차례 참가한 단골손님이다. 이번에는 영화제 주최측이 아시아영화인상을 시상하고 그의 대표작 6편을 상영하는 기획전도 마련했다.

그가 4000여 관중의 박수갈채를 받으며 하얀 나비넥타이에 하얀 연미복 차림으로 레드카펫을 밟고 나타나면서 씩 웃는 표정은 순한 정감이 느껴지는 그저 보통 아저씨 같은 생김새로 흡사 안성기 배우로 착각할 정도로 닮아 잠시 깜짝 놀라기도 했다.

별도의 기자회견에서 그는 좋아하는 한국배우 송강호나 전도연과 공연하고 싶다는 얘기도 했다. 올해 60세, 40년 연기 경력의 홍콩배우 양조위는 레드카펫을 밟은 많은 국내외 영화인 중 가장 매력적인 인물의 여운을 남겨준 인물이었다.

제27회

개막작품으로 선보인 이란 영화 ‘바람의 향기’(Scent of Wind)는 부산국제영화제가 아시아권 필름의 중심축으로 성숙해진, 축제의 정체성을 대변해준 작품으로 평가받을 만한 작품이었다.

화면이 열리고 적어도 30여분이 지나도록 작품의 주제와 작의(作意)를 파악하는 데 인내가 필요하였지만 점차 아주 단순한 사건들이 지극히 절제된 대사로 전개되면서 상상을 넘어선 휴머니즘 영화의 감동이 쿵하고 가슴을 때리며 감성을 충혈시켰다.

공간 전환을 하지 않고 피사체의 동작을 담아내는 고도의 카메라워크가 필요한 롱테이크 앵글 안에 일어서지 못하고 앉은 자세로 두발을 땅바닥에 끌며 이동하는 중증 하반신장애인이 벼랑에 붙어서 약제를 채취하는 도입부부터 느낌이 심상치 않게 다가왔다.

극의 골격은 지극히 간단하다. 그 장애인에게는 유일의 가족인 어린 아들까지 식물인간으로 병상에 누워있다. 주인공은 그들이 아니라 가난하고 문명의 혜택이 보이지 않는 삭막한 산촌에서 힘들게 사는, 세상에서 가장 슬퍼 보이는 그 장애인 남자로부터 전깃불 고장 신고를 받고 달려온 전기기술직 공무원(전력부 소속으로 번역)이다.

그가 고장 난 변전기의 부속을 구하기 위해 사력을 다해 사방팔방으로 뛰어다니며 임무를 수행하고 ‘어떻게 저럴 수가’라는 탄성이 터지도록 넉넉하지도 않은 자신의 재산까지 털어가며 장애인을 돕는 깊고 질긴 인간애를 다큐멘터리의 리얼리티로 그려냈다.

누워 있어서 등창으로 고생하는 어린 아들을 위해 염소를 팔아 침구를 장만해 주고 이어서 연인을 찾아가는 시각장애인의 길잡이가 되어주는 주인공의 착한 세상 이야기가 볼 때는 지루하게도 생각했지만 보고난 뒤 한 주가 지나도록 진한 여운이 사라지지 않고 있다.

주연 겸 연출을 한 배우출신의 하디 모하게흐 감독이 배우들과 이번 개막식에 참석했다. 그는 독특하게도 무대 인사말 대신에 답례인사라면서 이란의 전통 노래를 불렀다.

그의 노랫말은 알아들을 수 없었지만 구성진 가락은 우리의 애절한 판소리 가락을 떠올려주었다. 그의 영화는 인간사회가 냉혹한 면도 많지만 끝없이 희생적이고 따뜻한 인정의 향기도 공존한다는 것을 전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