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terview人 동정] 40년간 간직해온 숙제 푼 백건우..."이젠 음악을 즐기고 싶다"
- [현장365]백건우의 오랜 꿈, 그라나도스 ‘고예스카스’ 발매..."자유를 상징하는 곡 같아" - 신보에는 직접 찍은 사진 수록...15세 부터 이어온 사진 취미
인터뷰365 김리선 기자 = "가슴에 언젠가는 꼭 그라나도스의 ‘고예스카스’를 연주해보고 싶었는데, 40여년 이란 시간이 흘렀죠. 이 곡은 자유를 상징하는 곡과 같아요. 저 역시 자유롭게 연주했습니다. 이젠 음악을 즐기고 싶어요."
'건반 위의 구도자' 백건우가 40년간 가슴에 품어왔던 숙제와 같던 곡을 들려준다. 슈만 신보 이후 2년 만에 발매 한 '그라나도스-고예스카스'를 통해서다.
19일 서울 서초구 스타인웨이 갤러리에서 '그라나도스-고예스카스' 발매 기념 기자간담회를 갖고 "처음 경험하는 스페인 음악 그 자체만으로도 새로웠다"고 말했다.
그는 "그라나도스의 곡은 다채롭고, 화려하면서도 세련됐다"며 "감정 표현에 있어서도 굉장히 자유로운 곡처럼 느껴졌다. 인간적이고 즉흥적이며 더 열정적이다"고 말했다.
스페인 작곡가인 엔리케 그라나도스는 국내에서 크게 주목받지 못한 수많은 작곡가 중 한 명이다. 스페인의 민족음악을 바탕으로 낭만적이고 따뜻한 선율을 그려낸 인물이다. 이번에 발매한 피아노 모음곡 '고예스카스'는 그라나도스가 남긴 걸작 중 하나로 손꼽힌다. 스페인 화가인 프란시스코 고야의 전람회를 본 후 받은 영감을 음악으로 구현해낸 작품으로, 7곡이 수록됐다.
백건우는 "이전에는 스페인 음악을 특별히 연주한 적은 없다"고 했다. 그는 "스페인 곡은 길어야 5분인 곡들이 연속되는데, 나는 한 번 연주를 시작하면 30분 이상 그 음악에 빠져있는 것을 좋아한다"며 "'고예스카스'는 7곡이지만, 다른 곡과 달리 다 한 작품으로 쓰여진 곡이어서 느낌이 전혀 다르다"고 말했다.
백건우와 그라나도스의 고예스카스의 첫 만남은 40여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뉴욕에 머물던 젊은 시절, 알리시야 데 라로차가 연주하는 고예스카스를 듣고 큰 감동을 받았다고 한다. 그는 "음악을 공부하다 보면 인생에서 음악적으로 중요한 순간이 있다"며 당시를 떠올렸다.
"저는 당시 젊은 학생이었는데, 그 곡을 들으며 '음악이 정말 있구나'를 체험했어요. 초가을이나 초겨울 쯤이어서 날이 추웠는데, 음악을 듣는 동안 카네기홀에 마치 햇빛이 내리쬐듯 따뜻함을 느꼈습니다. 음악을 통해 다른 세상을 다녀올 수 있구나, 피부로 느꼈던 순간이었죠. 처음부터 마직막까지 화려하고 황홀했으며, 마음을 사로잡는 음악이었습니다. "
'그라나도스-고예스카스' 앨범에 수록된 모든 사진은 백건우가 스페인 연주 여행 당시에 찍은 것들이다. 표지에 담긴 화병에 담긴 매혹적인 붉은 꽃 사진과 손글씨 역시 그의 작품이다.
15세 때 뉴욕에 있을 때부터 사진을 찍었다는 그는 사진 전시회를 열었던 경험도 있다고 한다. 백건우는 "카메라를 들고 나가기 전엔 주제를 생각하고, 어떤 식으로 찍을지 생각한다"며 "한 장을 찍어도 그런 준비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다만, 그는 "사진이란 예술적 표현 방식을 사랑하긴 하지만, 취미이지 사진가는 아니다"고 말했다.
사진전 요청도 이어지고 있다고. 백건우는 "올해 이상하게 동시에 대만이나 파리, 한국에서 사진전을 하자는 제안이 많았다"며 "올 겨울에 대만 연주회 일정이 있는데, 그곳에서 아마 사진전을 할 것 같다"고 했다. 한국에서 사진전 계획이 없냐는 질문에는 "아직 모르겠다. 준비를 해봐야 한다"며 "카메라로 찍은 후 사진 정리를 해야하는데, 지금은 찍어놓기만 했다"고 웃었다.
백건우는 열 살이 되던 1956년 김생려가 지휘하는 해군교향악단(현 서울시립교향악단)과 그리그 피아노 협주곡으로 데뷔했다. 이후 15세에 미국으로 건너간 그는 세계적인 권위의 콩쿠르에서 수차례 수상하며 거장의 반열에 올랐다. 60여 년이 넘는 세월 동안 피아니스트로 살아온 그는 "사람마다 자기와 맞는 악기가 있는 것 같다"며 "피아노는 굉장히 많은 것을 담을 수 있다. 오케스트라와 타악기도 할 수 있고, 노래도 할 수 있다. 그래서 저와 맞는 것 같다"고 말했다.
그러나 백건우는 "음악을 해오며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다"며 "음악인으로서 살아남기가 쉽지 않았다"며 녹록치 않았던 해외 음악 시절을 회상하기도 했다.
"활동 초기 뉴욕에서 활동할 때 지금과는 상황이 많이 달랐어요. 한국이 지금은 세계적으로 인정받고 환영받는 나라가 됐지만, 40~50년 전에는 한국 음악의 위상도 달랐죠. 한 개인이 세계 음악계와 싸우는 게 벅찼습니다."
백건우는 1972년 미국 뉴욕 링컨 센터에서 진행된 라벨의 피아노 독주곡 전곡 연주회를 언급하며 "직접 프로그램을 구상해 피아니스트로 발표회를 개최한 이 때가 내가 생각하는 데뷔"라고 말했다.
백건우는 일흔을 넘긴 나이에도 매일 피아노 연습과 연구를 게을리하지 않고, 늘 새로운 곡에 도전해왔다. 지금도 왕성한 연주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경력을 쌓기 위해선 받아들여야 하는 것들이 많아요. 불가능하게 느껴지는 음악도 소화해야 하고, 때론 짧은 시간에 새로운 곡을 배워야 합니다. 호흡이 잘 맞지 않은 지휘자와도 연주를 해야하며 불가능한 스케줄 안에서도 연주를 위해 비행기를 타야하죠. 그러나 전 지금은 그럴 필요가 없어요. 여유가 생겼죠. 이제는 하고 싶은 곡을 할 수 있는 스케줄에 맞춰서 하는게, 저와 잘 맞는 것 같아요."
그는 이번 앨범 발매와 더불어 오는 23일 울산중구문화의전당을 시작으로 부평아트센터(9월 24일), 제주아트센터(9월 27일), 마포아트센터(10월 1일), 경기 광주 남한산성아트홀(10월 6일), 예술의전당(10월 8일) 강릉아트센터(10월 19일)에서 리사이틀 투어를 진행한다.
백건우는 "음악을 즐기고 싶다"고 했다.
"어느정도 마음의 자유를 찾은 것 같아요. 나이가 들면서 음악과 더 친해지는 것을 느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