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중헌의 문화와 사람] 연극 '안티고네' 선풍...3인 연출가의 3색 공연

- 연극 '안티고네' 국내 연극계 상륙 - 정재호, 송훈상, 권혁우 연출, 3인 3색으로 작품해석 - 장 아누이 작품 재해석한 정재호 버전, 불꽃 튀는 연기 대결 명징한 연출

2022-08-18     정중헌 기획자문위원

인터뷰365 정중헌 기획자문위원 = 최근 세계 각국에서 가장 많이 공연하는 작품 중 하나가 소포클레스의 그리스 비극 '안티고네'라고 한다. 몇 년째 만연하는 팬데믹에 우크라이나 전쟁까지 터져 비극(悲劇·tragedy)이 조명받는 것일까. 국내서도 '안티고네' 무대가 잇따르고 있다.

서울예대 출신 중견 연출가들인 정재호, 송훈상, 권혁우가 펼쳐온 3인 3색 프로젝트가 '현혹', '산돼지'에 이어 세 번째 작품으로 선택한 '안티고네'가 8월 17일부터 9월 4일까지 혜화동 동숭무대소극장에서 차례로 막을 올린다.

기원전 5세기 소포클레스의 3부작 비극 중 하나인 '안티고네'는 5~6개 버전이 있다는데, 정재호 연출은 장 아누이 버전을, 권혁우 연출은 브레히트 버전을, 송훈상 연출은 소포클레스 원작을 재해석했다.

필자는 정재호 연출의 '안티고네' 첫 공연을 관람했다. 정재호 연출은 카프카의 '변신', 황대현의 '현혹' 등을 보고 주목해 왔다. 작품 분석에 깊이가 있고 연출 감각이 신선해서였다.

장 아누이 원작을 김옥미가 각색한 이번 무대에서 정 연출은 ‘화분과 정원’의 이미지와 대사를 삽입해 주인공 안티고네를 식물로 해석했다. 장 아누이 원작을 보지 못했지만 정 연출이 시도한 식물의 이미지는 새로운 해석이긴 했지만, 아직 작품에 녹아들지 못했다는 느낌을 받았다.

하지만 정재호 버전 '안티고네'에서 연출이 가장 돋보였다. 원작에 없는 정원사를 객석에 앉혀 상황을 해설해 주는 점부터가 독특했다. 사각의 링을 중심으로 좌우 양면의 객석에 맞게 배우들의 동선을 정형화하고, 의상과 대사도 시대를 초월해 현대화했으며, 음악도 새로 작곡해 사용하는 등 정성을 쏟았다. 그런데 첫 공연이라 제대로 구현되지 못한 점이 아쉬웠다.

'안티고네'의 핵심은 인간의 법과 양심(신의 법)의 대립이다. 오이디푸스의 딸인 안티고네는 크레온왕이 금한 반역자 오빠의 시신을 거둔 죄로 형벌에 처한다. 90분 공연의 하이라이트는 안티고네(장주연)가 크레온(배찬태)의 등에 달라붙어 치열한 설전을 벌이는 장면이다. 대사 위주와 달리 매우 육감적이면서도 절절함(안티고네)과 방어력(크레온)의 팽팽한 대결이 몸으로 느껴졌다.

또 하나의 핵심은 근위병 죠나 역에 임은연 배우를 캐스팅한 점이다. 50대의 이 배우는 중성적 캐릭터에 우렁찬 목소리와 엣지 넘치는 연기로 안티고네를 수사하고 감시하는 국가 공권력의 실체를 온몸으로 연기해 무대를 활성화했다.

결국 모든 것이 비극으로 끝을 맺는다. 2500년 전의 비극이 오늘에 실감을 주는 것은 신과 인간의 비극이 오늘날에도 여전히 절박한 문제로 대두되고 있고, 비극적 결말을 통해 우리 자신을 성찰해 볼 수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어려운 여건에서도 정재호 연출은 고대 연극의 코러스를 방불케 하는 배우 활용과 식물적인 상상력으로 비극의 정신을 부각시키는 응집력을 보여주었다.

정원사로 캐스팅된 연기파 배우 서광재는 묵직한 해설로 극의 이해를 도왔다. 안티고네 역 장주연은 권위적이고 공격적인 크레온 역 배찬태에 맞서 뚝심 있게 자신의 의지를 표출하는 타이틀롤을 야무지게 해냈다. 강성 무대에 유모 역 이은향은 연성의 아우라를 불어넣었고, 이 작품에서 언니 이즈메네로 나오는 정다은은 강성인 동생을 감싸는 성숙한 연기를 보였다. 하이몬 역 강운도 비운의 연인 역을 열정으로 소화해냈고, 듀량 역 남병우와 전령 역 차승우도 극의 전환에 일조하며 극의 배경을 이루는 코러스 역할도 해냈다.

앞으로 권혁우, 송훈상의 '안티고네'를 계속 보겠지만, 국제 정세나 국내 정치 풍토에서 희랍 비극 '안티고네'가 주는 인간에 대한 깊은 성찰과 비극성은 요즘 우리에게 시사하는 점이 많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