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하영 365칼럼] 산 자와 죽은 자 사이에 놓인 삶...연극 '햄릿'

[앨리스 박사의 공연으로 보는 세상풍경] -신시컴퍼니 2016년 이해랑 탄생 100주년 기념공연 재공연, 이해랑 연극상 수상 작품

2022-08-12     주하영

인터뷰365 주하영 칼럼니스트 = 2020년 북아일랜드 태생의 작가 매기 오파렐은 1596년 11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난 셰익스피어의 아들 ‘햄닛(Hamnet)’의 죽음에 관한 미스터리를 기반으로 한 소설 ‘햄닛’으로 영국 여성문학상과 전국 도서 비평가 협회상을 수상했다. 처음 셰익스피어의 생애에 대해 공부를 하게 되었을 때부터 갑작스러운 어린 아들의 죽음이 너무 언급되지 않는다는 사실에 당혹스러움과 슬픔을 느꼈다는 그녀는 “햄닛과 연극 ‘햄릿’의 연관성”에 주목할 필요를 강조했다.

영국을 대표하는 극작가 윌리엄 셰익스피어의 가장 위대한 희곡 작품으로 평가받는 덴마크의 왕자 ‘햄릿’에 관한 비극 이야기는 1599년부터 집필된 것으로 알려져 있고, 보통 1601년에 완성된 것으로 추정된다.

오파렐은 소설에서 셰익스피어의 둘째 딸 주디스의 쌍둥이 형제였으며 역병으로 죽음에 이른 것으로 추정되는 아들 ‘햄닛’의 그림자가 셰익스피어와 그의 아내 앤 해서웨이(아그네스)의 주변에 항상 머물러 있었다고 상상한다. 아들의 그림자를 영원히 지워낼 수 없을 것 같은 아내 아그네스는 자신의 아들의 이름을 제목으로 한 연극 ‘햄릿’을 보기 위해 처음 런던으로 향한다. 떨리는 발걸음을 옮기며 그녀는 생각한다. “당신이 어떻게 감히, 이럴 수가 있어?...도대체 무슨 생각인거야?”

무대 위에 등장한 ‘햄릿’역의 배우를 보는 순간 아그네스는 멈칫한다. 4년 전에 죽은 아들이 살아있었다면 그와 같은 모습이지 않을까? 죽은 선왕 햄릿의 유령을 연기하는 남편과 소년과 청년 사이에 위치한 듯 보이는 햄릿을 바라보면서 아그네스는 깨닫는다.

무대 위에 두 사람, 살아있는 젊은 햄릿과 죽은 아버지 햄릿, 살아있으면서도 죽어있는 ‘햄릿’이라는 이름을 가진 그림자, 그녀의 남편은 그가 할 수 있는 유일한 방식으로 아들에게 다시 생명을 불어넣기 위해 애쓰고 있을 뿐이다.

유령이 되어 버린 아들에게 삶을 가져오고, 고통과 상실, 존재와 죽음, 분노와 절망, 슬픔과 망각 사이에서 고뇌하면서 그는 자신의 헤어 나올 수 없는 감정과 기억, 후회, 회한을 연극을 통해 표출하고 있다. 막이 내리고 관객들에게 인사를 한 후 퇴장을 하던 유령은 아그네스의 눈을 똑바로 응시하며 말한다.

“나를 기억해줘.”

연극

국립극장 해오름극장에서는 신시컴퍼니가 2016년 셰익스피어 서거 400주년과 이해랑 탄생 100주년 기념공연으로 선보였던 연극 ‘햄릿’이 새롭게 재공연되고 있다. 2016년 당시 이해랑 연극상을 수상했던 한국 연극계를 대표하는 원로배우들 9명을 중심으로 펼쳐졌던 공연은 객석 점유율 100%의 기록을 세웠을 뿐 아니라 이해랑 연극상을 수상했다.

한국에서 연극 ‘햄릿’은 1951년 이해랑 연출에 의해 최초 전막 공연을 선보였다. 또, 1989년 이해랑 연출이 죽음에 이를 때까지 예술혼을 불태웠던 작품으로 알려져 있다.

2016년 공연 당시에는 “극장 속의 극장, 연극 속의 연극”을 설정해 무대 위에 별도로 관객석을 만들고 기본적으로 빈 무대의 3면을 객석이 둘러싸게 되는 “무대의 맨살을 관객에게 노출시키는” 방식으로 연극이 이루어졌다. 당시 프로그램북에서 무대디자이너 박동우는 “연기의 효과를 극대화할 수 있는 공간을 창출”하고 “연기의 전달을 최적화”하기 위해 관객들이 오롯이 배우에게 집중할 수 있도록 무대의 시각적 화려함은 최소화했음을 밝혔다.

연극

6년이 지나 2022년 다시 무대에 오른 연극 ‘햄릿’은 2016년 공연을 이끌었던 원로배우들이 주연이 아닌 조연과 앙상블로 참여하고, 햄릿과 오필리어, 레어티즈, 호레이쇼, 로젠크란츠, 길덴스턴 등의 역할은 젊은 배우들이 연기하는 변화를 적용했다.

또한, 무대 위의 객석이 아닌 기존의 프로시니엄 아치로 구분되는 대극장 무대를 사용하기 때문에 미니멀하면서도 덴마크의 엘시노어 성의 느낌과 죽음의 기운이 가득한 묘지를 강조하기 위해 거대한 기둥, 계단, 조명과 음향을 효과적으로 활용하는 방식을 택했다.

의상 역시 2016년의 한국적이고 제의적인 느낌이 아닌 현대적인 복장으로의 변화가 이루어졌다. 프로그램북에 따르면, 햄릿의 의상은 심리적인 상태를 반영해 검은색으로, 클로디어스의 의상은 권력의 욕망을 드러내는 광택이 있는 소재로, 거투르드의 의상은 한가지로 정의되지 않는 컬러로 인물의 성격을 드러내는 방식으로 설정되었다.

무엇보다 2022년 공연이 강조하고 있는 ‘배우들’의 역할에 무게감을 줄 수 있도록 배우들의 의상은 아주 오랜 시간을 떠돌며 영혼들의 이야기를 듣고 관객 앞에 연기로 이야기를 전달해 온 것 같은 “어느 시대에서 왔는지 모르는 사람들”을 표현했다.

2022년 연극 ‘햄릿’의 특징은 셰익스피어의 원작에서 숙부 클로디어스의 속내를 떠보기 위해 극중극 ‘쥐덫’을 공연하는 유랑극단의 배우들을 ‘배우 1,2,3,4’로 확장시켜 극의 시작을 열고 끝맺음을 하는 의미심장한 역할을 하도록 설정했다는 점이다.

연극

막이 열리면 어둡고 추운 밤, 종소리가 울리는 가운데 높은 기둥들이 솟아있는 사이로 허름한 옷차림의 배우들이 짐가방을 든 채로 나타나 말한다.

“춥다. 뼈가 시리게 추워. 어둡구나. 먹물처럼 깊은 밤이다.”

산 자는 잠이 들고 죽은 자는 눈을 뜨는 시각에 무언가가 희끗한 형상으로 지나갔음을 말하는 배우들은 지옥 같은 한숨을 내쉬며 분노한 듯 보이는 유령을 향해 하고픈 얘기를 하라고 외친다.

“난 들어야겠다. 네 말에 이 몸이 산산이 부서진다고 해도 나는 네 말을 들어야겠다!”

연극

첫 장면의 설정은 마지막 장면과 연결되며 음산하고 추운 겨울과 죽음의 이미지를 형성한다. 햄릿을 비롯한 거투르드, 레어티즈, 클로디어스가 모두 죽음에 이른 후 인물들은 한 명씩 유령처럼 일어나 계단 위로 올라간다. 객석을 바라보며 서 있는 인물들을 바라보는 이들은 관객들만이 아니다. 요란한 천둥소리와 함께 어디선가 등장한 배우들 역시 그들을 바라보고 있다. 온 몸으로 빠르게 퍼지는 독으로 인해 죽음의 순간에 가까워지는 햄릿은 안타까움에 눈물짓는 호레이쇼를 향해 말한다.

“이것은 나의 무대, 나의 연극. 사라지는 것은 내 몫이고 남는 것은 자네의 몫이지. ... 이제야 나는 책을 덮을 수 있게 되었다. 나의 모든 대사는 끝났다. 남은 것은 침묵 뿐!”

죽음의 강을 건넌 인물들이 모두 일어서서 뒤쪽으로 멀리 사라지고 배우들만 남겨진 무대는 첫 장면과 같다. 뼈가 시린 추위와 어둠을 언급하는 배우들이 말한다.

“멀리서 종이 울리네. 이 기나긴 광대놀음도 이제는 끝인가?”

짐가방을 든 배우들은 먼 곳을 바라보며 발걸음을 옮기고 막이 내린다.

연극

5막으로 구성된 셰익스피어의 원작을 2막으로 변경하고 많은 생략과 축약, 새로운 내용을 더해 완성한 배삼식 작가의 극본은 고대의 음유 시인들이 죽음과 고통, 슬픔의 이야기를 읊조리는 호메로스의 영웅 서사시를 떠올리도록 만든다.

창극 대사의 운율과 리듬, 유사한 어조의 단어와 비유의 문장들이 짝을 이루며 시적인 느낌을 자아내는 대본은 셰익스피어의 언어의 운율과는 다르지만 창극 고전의 느낌을 불러온다. 유령으로 사라진 누군가의 이야기를 전달하는 배우들, 가슴 깊이 파고드는 강렬한 감정과 메아리처럼 울려 퍼지는 대사들, 배삼식 작가의 극본이 전달하는 효과는 “보는 연극이 아니라 듣는 연극”이 강조되던 19세기 이전의 전통극의 역사를 떠올리도록 만든다.

연극

캐나다 트렌트 대학의 영문과 교수인 스티븐 브라운은 2016년 TEDx 강연에서 셰익스피어의 극들은 사실상 분석하거나 연구하기 위한 것이 아닌 “듣고 느끼는 것”임을 강조했다.

셰익스피어가 극작 활동을 했던 16세기말, 17세기 초부터 19세기 이전까지 관객들은 공연을 “들었다”고 표현했지 “봤다”고 말하지 않았음을 지적하는 브라운은 셰익스피어의 극들은 소리에 관한 것이고, 사람의 목소리를 들을 때 위로와 안도를 느끼는 인간의 특성을 셰익스피어가 매우 잘 이해하고 있었음을 설명한다.

브라운에 의하면, 당시 관객들은 작가가 포착한 희노애락의 감정과 삶의 진실을 전달하기 위해 이야기의 무게를 견디는 사람, 즉 ‘배우’를 눈앞에서 목격함으로써 삶에서 중요한 것이 진정 무엇인지를 감정적으로 느끼고 경험하며 깨달았다고 할 수 있다.

연극

2016년 로열셰익스피어 극장에서 개최된 셰익스피어 400주년 라이브 축제에서 “21세기의 셰익스피어이자 대중문화를 선도하는 언어의 천재”로 소개된 힙합 래퍼 아칼라 역시 셰익스피어의 언어는 인간의 심장박동수에 맞춘 비트와 평민들도 이해할 수 있었던, 글을 읽고 쓰지 못하던 90퍼센트의 관객들이 알아들을 수 있는 감성적인 것이었음을 강조한다.

힙합 비트에 맞춰 사랑하는 연인을 여름날에 비유한 셰익스피어의 소네트 18번을 랩으로 전달하는 아칼라는 “리듬은 인간이 감정을 소통하고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준다”고 말한다. 그는 “말하는 것의 분위기와 리듬은 말하고자 하는 것이 무엇인가 만큼이나 중요하다”고 덧붙인다.

연극

2022년 연극 ‘햄릿’은 작품이 말하고자 하는 ‘죽음’이라는 주제를 명배우들의 한국적인 리듬을 살린 선명한 울림과 강렬한 목소리로 연륜과 감정을 담아 관객들에게 전달한다.

손진책 연출은 프로그램북을 통해 햄릿이 긴 독백 7개를 통해 죽음을 고민하는 것은 “시간의 빗장이 풀린 사이”로 과거와 현재가 섞이고 죽음과 삶이 뒤섞인 가운데 햄릿이 “인류의 비극적 운명에 저항하는 위대한 영혼의 모험”을 드러내고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세상은 무대이고 모든 인간은 배우일 뿐”이라는 셰익스피어의 희극 ‘뜻대로 하세요’의 대사를 인용한 손 연출은 2022년 연극 ‘햄릿’의 테마는 “죽음 바라보기”이고, 무대 위에서 수많은 죽음과 삶을 경험한 배우들이 ‘죽음’을 바라보게 되는 구성을 취한 것은 세상을 무대로 삼아 살아가고 있는 우리가 연극을 통해 삶 속에 있는 죽음을 향해가는 자신의 모습을 보는 것과 같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연극

클로디어스가 말하듯 “삶이란 죽음이 내어준 선물”이라는 관점에서 본다면 삶은 행복한 것이어야겠지만 아버지의 장례식이 끝난 지 한 달 만에 삼촌과 결혼한 어머니 거트루드를 바라보는 햄릿의 삶은 답답함과 우울로 가득 차 있다. 때마침 선왕 햄릿과 똑같은 모습으로 나타난 “슬픈 얼굴”의 유령이 클로디어스의 독살과 근친상간에 대해 말하자 햄릿의 운명은 비극을 향해 나아가기 시작한다.

그는 “참지 말 것과 잊지 말 것”을 요청하는 죽은 유령의 억울함을 기억하고 복수를 실행하기 위해 자신이 꿈꾸었던 모든 미래와 과거를 지우기로 결심한다. 죽음의 복수를 결심한 자에게 삶을 향한 꿈과 다음을 의미하는 미래는 어울리지 않는 단어이기 때문이다. 그는 말한다.

“산 자도 햄릿이고, 죽은 자도 햄릿! 죽은 햄릿이 일어나고 산 햄릿이 지워졌다. 죽은 햄릿이 산 햄릿 속에 들어앉았다!”

연극

스스로를 “썩은 종기를 도려내는 칼”로 인식하는 햄릿의 자아는 자신의 삶과 아버지의 죽음 사이에 갇혀 버린다. 햄릿에 대한 이러한 설정은 오필리어를 향해 “수녀원으로 가라”고 외치는 갑작스러운 변심과 광기의 서사, 세상과 인간을 향한 혐오의 시선을 이해할 수 있는 것으로 만든다.

아름다운 오필리어에게 사랑을 고백하던 그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사랑의 가변성을 확인시켜준 어머니로 인한 고통과 불안, 복수를 향한 분노와 혼란 속에 흔들리는 죽은 자와 산 자 사이의 ‘햄릿’이 존재할 뿐이다.

엘시노어 성을 찾은 배우들이 펼쳐 보이는 아킬레스의 아들 피루스의 프라이엄 왕을 향한 복수 장면과 남편의 죽음을 목격한 아내 헤큐바의 절규 장면은 햄릿으로 하여금 연극을 통해 양심을 자극하고 복수의 확실한 근거를 마련하려는 계획을 세우도록 만든다.

한편, 아버지 폴로니어스의 명령에 따라 햄릿의 광기가 거절당한 사랑 때문인지를 살피기 위한 수단으로 이용되는 오필리어는 자신이 증명해야 하는 것이 무언인지 알 수 없는 혼란에 빠진다. 꼭두각시처럼 미끼로 이용되는 자신을 인식하는 오필리어는 햄릿의 광기의 끝에 깊이를 알 수 없는 ‘슬픔’이 있다는 것을 안다. 단지 그 깊은 슬픔의 원인이 무엇인지를 모를 뿐 그녀는 자신에게 주어질 답이 무엇이든 그것이 ‘아픔’이 될 것임을 인지한다. 자신으로 인한 광기이든, 다른 이유로 인한 광기이든, 햄릿을 사랑하는 오필리어의 마음이 찢어질 듯한 아픔으로 가득찰 것은 분명하기 때문이다.

연극

배삼식 극본, 손진책 연출의 ‘햄릿’은 오필리어를 스스로가 조종당하는 것을 알면서도 줄을 끊어내지 못해 비극에 이르는 것으로, 거트루드 왕비는 클로디어스의 선왕 살해를 전혀 모른 채 아들로 인해 인식에 이르고 아들의 목숨을 구하기 위해 스스로 독이 든 술을 마시는 것으로 설정한다.

또, 참회하는 클로디어스를 향해 햄릿이 곧바로 죽음의 복수를 실행하지 않는 이유를 기도하는 자를 죽인 암살자가 되어 세상 사람들에게 권력을 향한 욕망의 살인으로 오해받고 진실을 밝히지 못할 것을 염려한 선택으로 해석한다.

클로디어스의 경우에도 참회가 아닌 삶을 향한 발버둥을 선택한 악역으로 그려진다. 악마에게도 허락되는 구원의 가능성을 언급하며 어차피 저지른 악행이니 무조건 살아남기 위해 전진하겠다는 클로디어스의 결심은 리처드 3세의 ‘비틀린 마음’을 떠올리게 만든다.

연극

어머니를 향한 분노를 드러내며 아무것도 믿을 수 없게 된 불행한 삶의 원인이라 비난하던 햄릿은 선왕의 유령과 마주한다. 말없이 그를 바라보는 유령의 존재는 어머니를 가혹하게 몰아세우는 햄릿 자신을 향한 경고이기도 하고 복수를 재촉하려는 마음의 다짐이기도 하다.

그의 과격함은 휘장 뒤에 숨어 몰래 지켜보고 있던 폴로니어스를 클로디어스로 착각하고 확인도 없이 총을 발사하도록 만들고, 그로 인해 그 또한 죄인이 된다. 이 때문에 ‘죽느냐 사느냐’의 고민은 영국으로 향하는 배에 올라탄 햄릿의 또 다른 독백과 하나로 연결되며 합쳐진다.

불행을 끌고 다니며 고통에 찬 삶을 견뎌나가는 인간이라는 존재에 대한 고민은 우발적인 살인을 저지르고 난 다음 장면에 등장함으로써 점차 삶의 허무와 죽음이라는 끝을 수용하며 비극의 운명 속으로 성큼 걸어 들어가는 햄릿의 변화에 설득력을 부여하게 된다.

연극

레어티즈 또한 억울한 아버지 폴로니어스의 죽음에 대한 복수를 꿈꾼다는 점에서 햄릿과 같은 위치에 놓이게 된다. 독을 바른 검으로 햄릿을 찌르기도 하지만 자신 역시 그 칼로 죽음에 이르는 레어티즈는 독이 든 술잔의 범인이 클로디어스임을 햄릿에게 알려준다. 그는 복수를 위해 정정당당함이 아닌 비열한 수단을 적용한 자신의 죄가 그에게 되돌아왔음을 인식함과 동시에 햄릿 왕자를 용서하고 자신의 용서 또한 구한다. 햄릿은 말한다.

“용서? 누가 누구를 용서한단 말인가? 모두가 자신의 죗값을 치렀을 뿐인데.”

연극

알렉산더 대왕이든 어릿광대든 살아있을 때의 삶이 어떠했든 죽음을 통해 ‘해골’과 ‘흙먼지’로 남겨지는 인간이란 존재의 무상함은 모두의 죽음과 함께 연극이라는 세상의 막을 내린다. 먹먹함을 남기는 무대의 스산함 속에 또 다시 유랑을 떠나는 배우들의 뒷모습은 삶과 죽음의 이야기를 전달하는 연극이라는 예술의 핵심인 ‘배우들’을 비춘다. 8월 13일까지 국립극장 해오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