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하영 365칼럼] 공정함 위해 함께 걸어야 할 필요...연극 '편입생'
[앨리스 박사의 공연으로 보는 세상풍경] - ‘두산인문극장 2022:공정’ 마지막 공연 작품...미국 극작가 루시 서버의 2018년 초연작
인터뷰365 주하영 칼럼니스트 = 2020년 미국의 정치철학자 마이클 샌델은 8년 만에 출간된 신간 <공정이라는 착각>을 통해 능력주의와 공정, 정의에 대한 질문을 불러 일으켰다.
계층 간의 이동이 점점 더 어려워지고 불평등이 심화되는 가운데 현대 사회의 ‘공정’을 위한 노력이 충분한 것인지, 우리가 추구하고 있는 사회가 과연 정의와 공정을 실현할 수 있는 방향으로 움직여가고 있는 것인지에 대한 분석과 통찰을 제시한 샌델은 2019년 미국을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입시 부정 사건으로 서론을 시작했다.
윌리엄 싱어라는 입시 컨설팅 브로커는 상류층 및 유명인들을 대상으로 시험성적 및 특기생 추천서 조작을 통해 명문대 부정입학을 가능하게 했고, 2011년부터 2019년까지 총 2500만 달러(한화 약 282억)를 뇌물로 챙긴 것으로 밝혀졌다. 매사추세츠 주 지방 검찰청과 FBI는 이 사건에 연루된 유명인 학부모들이 총 33명에 달하며, 9명의 대학코치가 관련이 있음을 공개했다.
샌델은 싱어의 입시부정사건이 미국인들로 하여금 ‘분노’를 표출하도록 만들었고, 사회 속에서 앞선 사람은 누구인지, 그들에게 제공된 기회가 정당한 것인지에 대한 ‘공정성’의 질문을 던지게 만들었다고 평가했다. 입시부정행각은 “능력보다 돈이 앞선 사례”였고, “누구나 자신이 노력한 만큼 해낼 수 있다”는 능력주의에 위배되는 것이었다.
표준화된 시험을 통해 경제적으로 어려운 배경에 놓여 있는 학생들도 장래를 보장받을 수 있도록 한 고등교육 시스템에 불공정을 조장한 불법적 행위는 대중에게 용납될 수 없었다. 샌델은 능력주의에 입각한 대입 시스템이 공정하다고 여기는 대중의 시각에는 “더 많이 노력한 사람이 성공에 이를 수 있는 관문을 통과해야 하고, 혜택을 누려야 한다는 암묵적 동의가 있음”을 지적했다.
문제는 모두가 정말로 공평한 기회를 갖고 있는가, 능력주의가 과연 공정에 기반하고 있는가, 성취에 대해 순전히 자신의 노력의 결과라고 말할 수 있는가에 대한 숙고가 필요하다는 점이었다.
샌델은 엘리트 체제를 뒤엎고 능력주의에 입각한 시스템을 만들기 위해 시행된 SAT가 현재에는 작동하고 있지 않음을 지적했다. 저소득층의 자녀들이 배경과 상관없이 자신들의 천부적 지능과 재능만으로 장학금 수혜를 받으며 명문대를 졸업하고 “미래가 물려받은 특권이 되지 않도록” 하려던 제임스 브라이언트 코넌트의 비전은 현재 실패로 입증되고 있었다.
코넌트의 능력주의는 이미 세습귀족제로 굳어진 채 아이비리그 대학생의 3분의 2가 상위소득계층 출신이고 하위소득 출신자는 4퍼센트도 되지 않는 상태에 이르고 있었다. 인종과 성별, 성적 취향, 종교로 인한 불평등을 없애기 위한 노력은 성과를 거두었을지 모르지만 성공 속에 자리한 ‘행운’의 속성을 인정하고 ‘겸손’을 보이는 자세의 부족은 사실상 완벽히 균등한 기회와 공정한 분배라 할 수 없는 기울어진 조건에서의 승리를 ‘능력’에 기인한 것으로 정당화하는 부당함을 낳고 있었다.
두산아트센터는 ‘공정’을 주제로 한 ‘두산인문극장 2022’의 마지막 연극 작품으로 미국 극작가 루시 서버(Lucy Thurber)의 2018년 초연작 <편입생>을 선보였다.
서버는 서부 매사추세츠 저소득 가정 출신으로 술과 마약, 10대 임신, 폭력이 일반적인 환경에서 경제적 빈곤과 주변의 유혹, 갈등과 절망을 떨치고 스스로의 길을 개척한 극작가이자 교육자이다.
빈곤과 결핍, 폭력으로 점철된 지역에서 벗어나 장학생 제도를 통해 사립학교에서 고등교육을 받을 수 있었던 서버는 한 소녀가 유년기부터 청소년기, 성인기에 이르는 과정 속에서 바라본 미국 빈민층의 문화와 현실을 다룬 5부작 연극 ‘힐 타운 시리즈(The Hill Town Plays)’로 2014년 오비상을 수상했다.
서버는 오랫동안 ‘생존’을 위한 노력 속에 끊임없이 불안과 공포에 시달리던 자신이 ‘안정’을 찾기 시작한 것은 얼마 되지 않았음을 언급한다. 그녀는 아무리 과거로부터 멀어지려고 해도 항상 우리는 과거와 연결되어 있으며, 폭력의 문화는 기회가 결핍된 경우 훨씬 더 쉽게 다가오는 경향이 있음을 지적한다.
사회적 평등을 이루기 위한 도구로서 고등교육을 강조하는 미국의 장학제도 자체에 의문을 제기한 연극 <편입생>은 서버가 이끌었던 브롱크스 고등학교의 방과 후 연극 프로그램에서 만난 실제 두 학생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경찰에게 잡히지 않는 법이나 마약하는 법, 죽임을 당하거나 강간당하지 않고 생존할 수 있는 법을 배우는 일이 더 중요한 곳에서 벗어나기 위해 안간힘을 쓰며 스스로를 지키고 장학금 수혜자가 되어 고등교육의 혜택을 받는 일은 상상할 수 없을 만큼 힘들고 어려운 길이다.
서버는 실제 장소를 기반으로 하지만 이름은 존재하지 않는 명문대 ‘해럴대학’에 편입을 위한 지역인재로 추천되어 면접을 보러 온 라틴계 레슬링 선수와 흑인 동성애자 인문계 지원자의 이야기를 조명한다. 댄버스 지역 커뮤니티 칼리지를 다니고 있는 두 학생은 장학생 후보자들을 위한 면접 일정을 담당하는 상담교사의 무관심으로 인해 뒤늦게 결정된 면접에 참석하기 위해 거센 바람이 부는 뉴잉글랜드로 오게 된다.
저소득층 지역인재들이 명문대에 편입할 수 있도록 후원하는 ‘민주주의 활동연대’ 소속인 데이비드는 상담교사의 실수로 인해 다른 날짜에 따로 면접을 봐야 하는 학생들이 같은 날 면접을 봐야 할 뿐 아니라 갑작스러운 일정으로 인해 숙소를 구할 수 없어 모두 한 방에서 묵게 된 상황에 짜증이 나있다.
2명의 학생들을 데리고 다음 날 있을 면접을 급하게 준비해야 하는 데이비드는 이미 도착해 있는 클라런스에게 다른 학생이 한 명 더 올 예정이라고 말한다. 면접만 보면 편입이 결정되는 것으로 알고 있던 클라런스는 자신이 다른 지역 커뮤니티 칼리지의 5명의 후보자들과 경쟁해야 한다는 사실에 크게 낙담한다. 같은 학교 학생이 있다는 말에 깜작 놀라는 클라런스를 향해 데이비드는 아직 도착하지 않은 학생은 체육특기자 전형이기 때문에 함께 경쟁할 일은 없다고 안심시킨다.
그 때 상당히 거친 언어를 사용하는 호들갑스러운 학생이 레슬링화가 매달린 가방과 트레이닝복 차림으로 방 안으로 뛰어 들어온다. 크리스토퍼라고 소개한 그는 클라런스가 어릴 적 같은 동네에 살았다는 사실을 기억해내고 자신을 모르냐고 계속 다그친다. 서로 같은 지역 커뮤니티 칼리지를 다니는지 몰랐던 두 학생과 지역인재전형 담당자 데이비드는 주문한 샌드위치가 도착할 때까지 면접에서 질문될 내용들을 점검하며 예행연습을 하기로 한다.
연극 <편입생>은 모텔방에서의 면접 준비 과정과 해럴대학에서 두 학생이 각각의 면접 교수와 진행하는 대화들을 통해 클라런스와 크리스토퍼의 삶이 어땠을지, 빈곤을 딛고 삶을 개척하는 일이 어떤 고통을 수반하는지를 드러낸다.
교육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할머니의 보호 속에 자란 크리스토퍼는 레슬링으로 뉴욕 주 랭킹 2위를 기록하고 있으며, SAT 점수 또한 수학실력으로 인해 높은 편이다. 하지만 고등학교 3학년 때 편찮으신 할머니를 간호하느라 운동을 쉬었고, 할머니가 돌아가신 뒤 다시 마음을 추스르고 대학에 들어가는 데 2년이라는 공백 기간이 생겼다. 데이비드는 할머니의 죽음과 관련해 좀 더 면접관들의 마음을 사로잡을 수 있는 이야기의 전개를 원하지만 크리스토퍼는 불같이 화를 내며 밖으로 나가버린다.
클라런스는 크리스토퍼의 무례함과 거친 언어, 성적 취향이나 여성에 대한 비하 발언, 산만함과 집중력 부족에 대한 데이비드의 지적에는 동의하면서도 할머니의 죽음을 하나의 ‘에피소드’로 여긴 것은 데이비드의 잘못이라고 말한다.
데이비드는 학창시절 패트릭이라는 룸메이트가 극보수주의 성향의 가족들에게 자신이 동성애자임을 고백한 후 버림받은 충격으로 목을 매 자살한 기억을 갖고 있다.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인정해주고 생각과 시야를 확장시켜 준 아름다운 청년 패트릭을 기억하는 데이비드는 크리스토퍼의 동성애 혐오 발언을 참을 수 없었음을 토로한다.
그는 말한다.
“배경은 아무 상관없어. 누구라도 절망적인 상황에 빠질 수 있는 거야. 나도 무슨 말인지 알아. 패트릭은 에피소드가 아냐. 아니, 내 에피소드일지 모르지. 난 그 애를 막지 못했어. 아무런 도움도 주지 못했지.”
사실 크리스토퍼가 쏟아내는 말의 상당 부분이 위험 수위를 넘나드는 발언인 것은 맞다. 지나치게 편견에 빠진 생각들, 자신의 경험에만 국한된 의견들, 다른 사람의 말을 듣기 보다는 끝없이 자신의 말만 쏟아내는 대화가 어려운 태도, 불편한 질문에 공격적으로 반응하는 폭력적 측면들은 관객들 역시 불안을 느끼도록 만든다.
격이 없는 친화력을 가진 듯하면서도 불같이 화를 내는 크리스토퍼는 불안장애를 갖고 있다. 그의 걱정과 불안은 혼자 남겨졌을 때 발작처럼 찾아오고, 클라런스는 쳐다보지 말라는 크리스토퍼의 외침에 뒤로 돌아서서 한참 동안 그가 진정되기를 기다린다.
두 사람은 점차 서로의 이야기를 시작하고, 관객들은 클라런스가 14세 때 브롱크스를 떠나 브루클린으로 갔으며, 크리스토퍼가 알고 있듯 동성애자임이 밝혀져서가 아니라 끔찍한 폭력 사건에 연루되어 있었기 때문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어린 시절 위험한 무리들과 어울리던 클라런스를 크리스토퍼는 두려워했다. 클라런스가 속해있던 갱단의 우두머리는 다른 무리와 어울리기 시작한 일원을 응징하는 끔찍한 폭력 사건을 저지르고 만다.
클라런스는 크리스토퍼가 레슬링 연습을 하러 체육관으로 가는 길에 폭력의 현장에 있는 자신을 봤다고 생각해왔다. 하지만 그 길이 시체들을 밟지 않기 위해 엄청난 노력을 기울이며 지나야 하는 힘든 여정이라고 생각해온 크리스토퍼는 그 어떤 일에도 연루되지 않기 위해 오로지 한 곳만 바라보며 움직이는 일을 지속해왔다. 어쩌면 그가 자신을 봤을지 모른다는 생각으로 자신에게도 그곳에서 빠져나올 기회가 있었을지 모른다고 상상해왔던 클라런스는 죄의식과 절망, 끔직한 기억의 트라우마로 인해 울기 시작한다.
서버는 폭력이 일상을 지배하는 지역에서 벗어나기 위해 노력했던 자신의 과거와 자신이 가르쳤던 두 학생의 실제 사건을 결합해 연극 <편입생>의 두 인물을 완성한다. 그녀는 “돈과 일이 결핍되고, 교육의 기회가 결핍된 곳”에서는 “수치심과 좌절감, 무력감”이 동반되는 경향이 있으며, 그러한 부정적 감정들은 ‘폭력’으로 연결된다고 말한다.
또, 그들에게는 그들만의 언어와 문화가 생성되기 때문에 의식이 언어로 표출되는 것이 아니라 삶을 통해 스며든 언어를 제대로 된 판단 없이 사용할 수밖에 없다고 설명한다. 교육과 연극이 “똑같은 경이로움과 기회”를 제공한다고 말하는 서버는 교육의 장소인 대학과 연극의 장소인 극장이 모두 “안전한 장소”이자 좋은 대화를 나눌 수 있는 “호사를 누릴 수 있는 곳”임을 강조한다.
세상을 더 나은 곳으로 만들기 위한 책임과 자신과 같은 처지에 있는 학생들을 대변하고 이끌어야 할 필요를 느끼는 서버는 연극 <편입생>을 통해 저소득층 계급에게 더 많은 고등교육의 기회가 주어져야 함을 설파한다.
클라런스의 면접관인 조지아 교수와 크리스토퍼의 면접관인 로지 코치는 인문대와 체육대로 구분되는 성격만큼 차이가 있다. 원작에서 조지아 교수는 남부 농장 출신의 중년의 흑인 남성으로 등장하지만 국내 공연은 여성으로 성별에 변화를 준 것으로 보인다. 책으로 가득한 도서관과 담쟁이 넝쿨이 멋스럽게 어우러진 캠퍼스에 감동을 받은 클라런스는 조지아에게 좋은 인상을 남기기 위해 최선을 다하지만 결국 높은 학점과 훌륭한 대화에도 불구하고 낮은 SAT 점수가 문제가 된다.
한편, 처음부터 로지 코치와 갈등을 일으키던 크리스토퍼는 자신에게 공정한 판단과 평가를 해줄 것을 강력하게 외친다. 메인 주 시골에서 여자 럭비 장학생으로 해럴대학을 졸업하고 코치가 된 로지는 여성에 대한 편견으로 가득 차 있고 예의가 없으며 불편한 질문에 폭력적으로 반응하는 크리스토퍼에게 중요한 것은 “상대를 마주보고 깨끗하고 정직하게 고통스러운 싸움을 할 수 있는가”라고 말한다.
거짓말을 하고픈 순간에도 뒤로 물러섬이 없이 스스로에게 당당할 수 있도록 정직한 싸움을 반복하는 것, 그것만이 수많은 시체들을 보지 않고 지나쳐가며 버텨낸 트라우마와 불안을 극복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라는 로지의 말에 크리스토퍼는 솔직함을 드러낸다.
“출구가 어디인지 나만 알고 너희들이 모르는 거, 그건 내 잘못이 아니라고, 너희들이 시체가 된 건 내 잘못이 아니라고 말할 용기가 없었어요. ... 이제는 알아요. 뭐가 중요한 건지. 이제는 하나만 바라보고 갈 자신이 있어요!”
서버는 데이비드와 조지아, 로지가 최종 편입생을 결정하는 회의 장면을 통해 장학제도의 허점과 한계, 근본 취지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로지는 레슬링 팀에서 간절히 원하는 크리스토퍼를 편입생으로 결정하지만, 조지아는 면접을 통해 감명 깊은 인상을 남겼지만 SAT 점수가 부족한 클라런스를 떨어뜨린다. 데이비드는 학점이 높고 인문학적 소양이 풍부하며 에세이 내용이 훌륭한 클라런스가 해럴대학의 교과과정을 충분히 소화할 수 있다고 주장하지만 조지아는 더 실력 있는 학생들을 데려오는 것이 장학제도의 목표라고 말한다.
더 높은 SAT 점수를 받은 학생들을 선발하는 것이 공정하다는 조지아와 다른 대학에서도 기회를 찾을 수 있는 학생들보다 잠재성을 충분히 갖추고 있는 클라런스에게 기회를 제공하는 것이 장학제도의 취지에 맞는다는 데이비드의 논쟁은 점점 더 격해지기 시작한다. 데이비드는 기준이 평가하지 못하는 능력들과 다양한 잣대의 필요성을 강조하며 기존의 시스템을 흔들고 무너뜨려 새로운 길을 모색하는 것이 장학제도의 목적이라고 주장한다. 조지아가 외친다.
“아니요! 장학제도의 취지는 기준을 넓히고 확장하려는 것이지 무너뜨리려는 게 아니에요!”
서버의 질문은 샌델이 던진 능력주의 체제에 관한 논쟁과 연계된다.
샌델은 경제철학자 프리드리히 하이에크의 말을 인용하며 자신이 가진 재능이 우연히 사회에서 높은 가치를 쳐주는 재능인 것은 오직 노력의 결과라고만 할 수 없음을 강조한다. 가치 있는 능력을 가지게 된 “행운의 요소”를 인정하지 않을 경우, 세상은 연민과 감사, 연대의 마음을 잃게 된다는 게 샌델의 주장이다.
그는 미국의 철학자 존 롤스의 주장을 빌어 “승자가 불운한 사람과 승리의 과실을 나누는 방법”을 선택해야 할 필요성을 강조한다. 서버는 빈곤계층 출신의 작가로서, 연극 <편입생> 속 인물들과 유사한 길을 걸어온 교육자로서, 마지막 장면을 통해 크리스토퍼와 클라런스에게 자신만의 답을 남긴다.
국내 공연의 경우 원작과는 조금 다른 결말의 느낌을 반영하고 있지만, 서버가 겨냥한 것은 클라런스와 크리스토퍼의 ‘연대’이다. 카페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는 클라런스를 찾아 온 크리스토퍼는 “이제는 네가 보여”라고 말한다. 클라런스가 대답한다. “그래. 나도 네가 보여.”
원작에서 크리스토퍼는 말한다. “우리 둘 다 괜찮을 거야. 내가 너와 함께 걸을게.” 클라런스가 답한다. “그래. 나도 너와 함께 걸을게.”
시체들을 밟지 않기 위해 분투하며 출구만을 바라보던 크리스토퍼와 누군가 자신에게 손을 내밀어주기를 바라며 함께 갈 수 있는 길을 기대하던 클라런스의 연대, 전체 시스템을 흔들 힘이 없는 그들에게 서로가 서로의 불빛이 되어주고 등대가 되어주는 ‘연대’는 든든한 지지가 된다. 좀 더 많은 데이비드와 로지가 함께 할 수 있다면, 조지아가 자신의 성공에 깃들어 있는 ‘행운’의 요소를 인정하고 좀 더 겸손해질 수 있다면, 어쩌면 변화가 있을지 모른다는 기대와 희망을 서버는 연극 <편입생>의 끝부분에 남긴다.
공정함을 위한 논쟁과 평등함을 위한 투쟁은 아직도 먼 여정을 남겨두고 있다. 서버는 교육과 연극이 사회 속에 보이지 않는 계층의 삶 속으로 들어가 결핍된 지역의 아이들을 밝은 곳으로 끌어낼 수 있는 교량이 되기를 바란다. 소외된 지역에 손을 뻗어 예술을 통해 엘리트 기관과 잠재성을 갖춘 학생들이 접촉하고 소통할 수 있도록 만드는 것, 경계를 허물고 벽을 낮추는 것, 서버가 자신과 같은 계층의 아이들을 위해 선택한 평생의 과업은 바로 그것이다.
연극 <편입생>은 말한다. 당신에게 주어진 성공이 전적으로 공정한 것이 아닐 수 있다고. 당신에게 주어진 기회가 특권일 수 있으며, 당신의 모든 것이 행운과 불운 사이에서 결정된 것일 수 있다고. 겸손과 연민, 너그러움과 분배, 존중과 이해만이 세상을 조금 더 공정한 곳으로, 평등한 곳으로 만들 수 있을 것이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그 길을 ‘함께 걷는 것’이 아닐까?